사도행전 (49) 썸네일형 리스트형 사도행전(50) 28:1-31 사도행전 결론 - 로마 도착 그 자체 사도행전은 이상하게 끝난다. - 마무리가 제대로 되지 않은 것 같다. - 특히 바울이 그 험난한 길을 돌아 로마 황제에게 재판을 받으러 왔는데, 정작 재판받는 장면이 나오지 않는다. 그리고 유대인 지도자와의 대화로 끝난다. - 그것도 그들에 대한 부정적인 예고로 끝난다. - 복음이 유대인을 떠나 이방인에게 옮겨졌음을 선포하며 끝난다. [행 28:28] 그러므로 여러분은 하나님의 이 구원의 소식이 이방 사람에게 전파되었음을 알아야 합니다. 그들이야말로 그것을 듣고 받아들일 것입니다. - 보통 마무리는 긍정적으로 화기애애하게 끝나는 것이 일반적인데 말이다. - 그런데 유대인들과 각을 세우며 갑자기 끝난다. 그러면서 정작 로마에서 어떻게 복음이 전파되었는지는 또 생략되어 있다. - 복음 전파에서 중요한 역할을.. 사도행전(49) 27:1-42 이렇게 해서 모두 구원을 받게 되었다. - 구원의 과정 과연 바울이 로마로 가는 여정을 이렇게까지 자세히 기록해야 했을까? - 본문에 나오는 지역을 하나씩 따라가다가 지쳐서 내뱉은 하소연이다. - 그래도 지역 이름은 항해 경로를 아는 데 도움을 주지만, 이물, 고물, 닻, 키 등 운행 정보까지 알 필요가 있었을까? - TMI가 아닐 수 없다. - 무엇을 위해 사도행전은 로마 항해 여정을 자세히 기록했을까? 결론부터 말해서, 하나님께서 얼마나 강력한 의지로 바울을 로마로 보내시려는지를 보여준다. - 그것을 위해 얼마나 험난한 경로를 거쳤는지, 배 안에서 얼마나 많은 어려움이 있었는지 자세히 설명하는 것이다. - 그러한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바울을 끝내 로마에 보내신다. - 이렇게 하나님의 뜻은 성취된다. 본문은 크게 세 단락이다. ① 1-12절: 바울의.. 사도행전(48) 26:1-32 바울의 마지막 항변 - 성경에 나온 것밖에는 말한 것이 없다. 이제 드디어 바울의 항변도 끝이 난다. - 본문 이후 바울은 천신만고 끝에 로마에 도착하고, 로마에서 많은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했다는 소식을 전하며 사도행전이 끝난다. - 그러니까 이번 본문이 바울의 복음을 들을 수 있는 마지막이다. 따라서 본문은 바울의 항변을 완결한다. 바울의 논리 구조 전체를 정리하겠다. 먼저 바울이 항변을 시작하게 된 계기는 무엇이냐? - 유대 사람들의 공격이다. 그들은 어떻게 공격했는가? - 두 가지다. - 첫째로, 바울이 민족, 율법, 성전을 부정한다고 했다. - 둘째로, 바울이 로마 황제를 부정한다고 했다. [행 24:5~6] 우리가 본 바로는, 이 자는 염병 같은 자요, 온 세계에 있는 모든 유대 사람에게 소란을 일으키는 자요, 나사렛 도당의 우두머리입니다. (6) 그가 성.. 사도행전(47) 25:1-27 바울의 항소 - 바울은 전략가인가, 아니면 충동가인가? 본문에서 바울은 철저히 계획을 세우고 전략을 짜서 유대 사람들과 베스도에게 대항하는가? - 아니면 계획과 전략 없이 그때그때 충동적으로 상황을 모면하는가? - 더 정확하게 말하면, 본문은 바울의 전략가적인 면모를 부각하는가, 아니면 충동가적인 면모를 부각하는가? 더 구체적으로 물으면, 바울이 가이사에 항소한 근원적인 동기는 무엇일까? - 로마에 가서 복음을 전해야 한다는 사명감 때문에 한 전략적인 선택일까? - 아니면 단순히 예루살렘으로 끌려가지 않기 위해 몸부림친 충동적인 선택일까? - 왜냐하면 바울은 자신이 예루살렘으로 가는 즉시 살해당할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해설서에서는 바울의 항소를 전략적인 선택이라고 말한다. - 바울은 3차 전도 여행 후반부에서부터 로마행을 결심했기 때문이다. .. 사도행전(46) 24:1-27 코로나와 같은 바울 - 공동체의 힘 바울은 복음을 전할 때, '로마 전복'을 의도했을까? - 겉으로 표현하지는 않았지만, 로마에 복음을 전해서 황제 숭배를 하나님 숭배로 전환하고픈 마음이 있었을까? - 그렇게 로마를 전복시켜서 세상에 복음을 전하려는 마음이 있었을까? 답하기가 어렵다. - 있었을 것이라고 말하기에도, 없었을 것이라고 말하기에도 어렵다. - 바울이 로마에 복음을 전하면서, 분명히 로마인들이 하나님을 숭배하기를 바랐을 것이고, 그는 곧 황제 숭배 포기를 의미하기 때문이다. - 그리고 황제 숭배 포기는 로마 전복과 같은 뜻이기 때문이다. - 그렇다면 바울에게는 로마 전복 의도가 있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로마 전복 의도가 있었다면, 과연 로마 황제에게까지 당당하게 항소할 수 있었을까? - 자신의 무죄를 이렇게 당당하게 주장할.. 사도행전(45) 23:12-35 복음의 두 가지 이중성 복음에는 두 가지 이중성이 있다. - 첫째가 죽음과 부활이고, 둘째가 육과 영이다. - 이를 이중성이라고 말하는 이유는, 죽음과 부활 그리고 육과 영이 구분되기도 하고 구분되지 않기도 하기 때문이다. - 삼위일체 하나님이 그러신 것처럼, 완전히 구분되는 독립적이면서 동시에 구분할 수 없는 완전히 하나이기 때문이다. 이는 정말 여러 번 말했으니, 간단히 말하겠다. - 그런데 이전과 차이가 있다면, 죽음과 부활 그리고 육과 영을 한 번에 말한다는 것이다. - 이 둘은 서로 전혀 상관없는 것인데, 모아놓고 같이 보면 근본 원리가 묘하게 비슷하다. - 왜 그런지까지 사람은 알 수 없지만, 세상의 근원과 맞닿아있는 본질적인 것들이기 때문에 상당한 공통점을 갖는다. 죽음과 부활은 구원에 관한 것이다. - 예수님은 .. 사도행전(44) 23:1-11 재판을 통해 드러난 실체 - 회칠한 벽 본문을 한마디로 하면, '자충수'이다. - 재판의 목적은 대제사장과 의회원들이 바울의 잘못을 밝히는 것이다. - 그러나 그들은 바울이 아닌 자신의 문제를 드러낸다. - 그들 내부에서조차 바울에 대해 찬반양론으로 갈린다. - 바울의 잘못을 제대로 지적하지 못한다. - 결국 재판을 통해 대제사장과 의회원들의 잘못만 드러난다. - 즉, 자기 꾀에 자기가 넘어간 셈이다. 그뿐만 아니라 오히려 바울에게 잘못 없음이 밝혀진다. [행 23:9] 그래서 큰 소동이 일어났다. 바리새파 사람 편에서 율법학자 몇 사람이 일어나서, 바울 편을 들어서 말하였다. "우리는 이 사람에게서 조금도 잘못을 찾을 수 없습니다. 만일 영이나 천사가 그에게 말하여 주었으면, 어찌하겠습니까?" - 바리새인은 드러내놓고 바울을 옹호하고 나선다.. 사도행전(43) 22:1-30 복음의 폭력성 - 유대인을 향한 바울의 변호 자극적으로 제목을 지었다. - 복음이 얼마나 폭력적인지 부각하기 위해서이다. - 폭력성이 복음의 전부는 아니지만, 잘 드러나지 않는 중요한 부분이기 때문에 부각하려 한다. 여기서 '폭력성'은 다른 말로 '영향력'이다. - 그런데 단순한 영향력이 아니라, 영향력의 크기가 너무 커서 영향을 받은 사람의 인생 전체가 파괴될 정도를 말한다. - 복음이 사람을 전인격적으로 제압하고 굴복시킨다는 점을 부각하기 위해 '폭력성'이라고 표현한 것이다. 게다가 폭력성에는 '강압성'도 들어있다. - 만약 영향력은 크지만 자발적인 경우에는 폭력이라 말하지 않는다. - '순종'이라고 말한다. - 그런데 복음의 영향력은 자발적이지 않다. - 물론 복음을 자발적으로 바랄 때 복음의 영향력을 받을 수 있다. - 그러나 그 영향력은 .. 이전 1 2 3 4 ··· 7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