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사도행전

(49)
사도행전(42) 21:17-40 민족, 율법, 성전을 거스르는 바울 - 복음의 후폭풍 유대 사람들은 바울이 민족, 율법, 성전을 거스른다며 죽이려 든다. [행 21:28] 소리 쳤다. "이스라엘 동포 여러분, 합세하여 주십시오. 이 자는 어디에서나 우리 민족과 율법과 이 곳을 거슬러서 사람들을 가르칩니다. 더욱이 이 자는 그리스 사람들을 성전에 데리고 들어와서, 이 거룩한 곳을 더럽혀 놓았습니다." 그에 대한 근거로, 바울이 이방인 드로비모를 성전 안에 데리고 들어왔다는 것이다. [행 21:29] 이는 그들이 에베소 사람 드로비모가 바울과 함께 성내에 있는 것을 전에 보았으므로, 바울이 그를 성전에 데리고 들어왔으리라고 생각하였기 때문이다. - 이방인이 성전에 들어가는 것은 철저하게 금지되어 있었다. - 심지어 로마 당국도 로마인이 성전 안에 들어가 사형을 당하는 것조차 묵인해주었다. 하..
사도행전(41) 21:1-16 그리스도인이 바울을 간곡히 만류하는 이유 왜 말릴까? - 정확하게 말해서, 사도행전은 이들의 만류를 두 번이나 넣어서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뭘까? - 이들은 바리새인처럼, 적대자도 방해꾼도 아니다. - 예수님의 제자들처럼, 예수님을 따르지만 여전히 어리숙한 사람도 아니다. - 믿음이 있는 것을 넘어서, 성령 충만한 사람들이다. - 그래서 이러한 충돌은 내분으로 오해될 수 있다. - 오해를 사면서까지 이 충돌을 담은 이유는 뭘까? 결론부터 말해서, 시련이다. - 신앙의 여정에는 시련이 있다는 것이다. - 그런 시련은 전도 여행 전체에서 반복되었다. - 특히 로마행이 시작된 20장부터 본문은 시련을 더욱 부각한다. 본문에서 나오는 시련의 원인은 다양하다. ① 그 시련이 유대 사람들 때문에 일어났다. [행 20:3] 거기서 그는 석 달을 지냈다. ..
사도행전(40) 20:17-38 여러분은 깨어서 눈물로 훈계하던 것을 기억하십시오. 또 문맥이다. - 내가 이 이야기를 이렇게 많이 하는지 몰랐다. - 한이 맺혀서 그렇다. - 개인적으로, 내 말을 문맥 없이 오해받았던 억울함이 있다. - 그리고 신앙적으로, 문맥 없는 성경 해석에 대한 분노가 있다. - 게다가 이 둘이 합쳐져서, 문맥 없는 성경 해석에 익숙한 사람에게 문맥에 따른 성경 해석을 제시하면, 문맥 없이 자기 생각을 고수하며, 나에게 반발한다. - 이런 억울함과 답답함이 내 안에 많이 있나 보다. - 앞으로 좀 더 절제되고 정제된 표현을 쓰겠다. 본문은 유명한 바울의 고별 설교이다. - 그래서 많은 설교가 있다. - 그런데 문제는 바울이 죽음을 앞두고 애절하게 작별 인사하는 것에서 해석을 멈춘다. - 3년을 동고동락했던 바울과 에베소 사람들이 헤어질 때 얼마나 슬펐을까를 주제..
사도행전(39) 20:1-16 부르심 따라 가는 바울과 방해하는 유대인 - 유두고는 왜? 언제나 그랬듯, 본문을 다큐가 아니라 소설로 보겠다. - 있는 그대로의 사실을 기록한 것이 아니라, 치밀하게 기획, 구성, 편집된 기록이라는 뜻이다. - 이렇게 쓰인 의도가 있고, 의도가 전달하려는 메시지가 있다는 뜻이다. 물론 없는 일을 거짓으로 만들었다는 것은 아니다. - 있었던 일을 부각하기도 하고, 생략하기도 하여, 일련의 사건 전개를 통해 일관된 메시지를 담았다는 것이다. 더 근원적으로 말하면, - 세상에서 기록된 글 중에 진정한 의미의 다큐, 즉 있는 그대로의 사실은 없다. - 하나도 없다. - 일기조차도, 회의록조차도 있는 그대로의 사실이 아니다. - 실제 상황을 강조 혹은 축소, 부각 혹은 생략하여 편집하고 재구성한 것이다. - 그 안에 드러나는 혹은 드러나지 않은 의도와 메시지가 있다. ..
사도행전(38) 19:23-41 아데미 여신은 위대하다. - 우상의 무능력 반증 에베소 사람들은 열광적으로 아데미 여신을 찬양한다. [행 19:28] 거기에 서 있는 사람들이 이 말을 듣고 격분해서 "에베소 사람의 아데미 여신은 위대하다!" 하고 소리를 질렀다. [행 19:34] 모두 한 목소리로 거의 두 시간 동안이나 "에베소 사람의 아데미 여신은 위대하다!" 하고 외쳤다. - 멘트만 보면 신실한 신앙 같다. - 온 인생을 다 바쳐서 아데미 여신만 믿는 사람들 같다. - 아데미 여신의 능력을 온전히 신뢰하는 것 같다. - 한편으로는 요즘 교회에서 하는 찬양 집회 같다. 하지만 실상은 아데미 여신의 능력을 의심한다. - 여신의 위신이 땅에 떨어질까 봐 두려워한다. [행 19:27] 그러니 우리의 이 사업이 명성을 잃을 위험이 있을 뿐만 아니라, 위대한 아데미 여신의 신전도 무시당하고..
사도행전(37) 19:11-22 로마에도 꼭 가 보아야 하겠습니다. - 왜 하필 이 시점에? 이게 너무 궁금하다. - 왜 하필 이 시점일까? - 에베소에서 사역 잘하고 있다가 왜 갑자기 로마로 가겠다는 것일까? - 바울의 심경에 어떤 변화가 있었길래 그런 결심을 했을까? 이보다 더 궁금한 것은, 사도행전은 왜 에베소 사역 한 가운데 로마행 결심을 끼워 넣은 것일까? - 에베소 사역과 로마행은 어떤 관련이 있을까? - 사도행전은 에베소 사역과 로마행을 결합하여 어떤 메시지를 전하려 했을까? 이것을 알려고 엄청 찾아봤는데, 실패했다. - 에베소 사역과 로마행을 연결하려는 시도 자체가 없다. - 로마행을 에베소 사역이라는 맥락 안에서 해석하려는 시도가 없다. - 맥락과 무관하게 로마행 자체만 가지고 갑론을박한다. 이런 부분이 신학에서 가장 답답하다. - 로마행처럼 상징적인 의미가 있는 사건을 맥락과 ..
사도행전(36) 19:1-10 요한의 침례와 성령 침례의 차이 - 미래적 신앙의 한계 본문 내용은 간단하다. - 에베소의 제자들이 요한의 침례만 알 뿐, 성령은 알지 못했다. [행 19:2] "여러분은 믿을 때에, 성령을 받았습니까?" 하고 물었다. 그들은 "우리는 성령이 있다는 말을 들어보지도 못하였습니다" 하고 대답하였다. - 그래서 바울은 그들에게 침례를 행하였다. - 그랬더니 그들에게 성령이 내려서 방언과 예언을 했다. 그러나 내용은 간단한 반면, 의문점은 많다. - 본문 안에서, 요한의 침례와 성령 침례의 차이의 문제이다. - 바울이 이 두 가지를 구분한 의도는 무엇일까? - 앞뒤 맥락에서, 에베소의 첫 사역에 성령 침례가 갖는 의미 문제이다. - 사도행전은 에베소에서 왜 성령을 전면에 부각했을까? 해설서에서는, 언제나 그렇듯, 무책임하다. - 에베소 제자들은 요한의 가르침까지만..
사도행전(35) 18:18-28 문제적 남자 아볼로 - 3차 전도 여행의 촉발자 아볼로를 설교 주제로 삼은 이유는 뒤로 미루고, - 먼저 성경 읽는 태도 이야기를 하겠다. 여러 번 말했지만, 창문으로 풍경을 볼 때 두 가지가 중요하다. - 과 을 알아야 한다. - 그래서 창문을 통해 보이는 풍경에서 창문의 왜곡을 바로잡아야 왜곡 없는 실제 풍경을 상상할 수 있다. 성경을 읽을 때도 마찬가지이다. - 본문을 통해 보이는 상황과 본문이 왜곡하고 있는 점을 알아야 한다. - 그래야 바울의 실제 상황이 어땠는지 더 정확하게 상상할 수 있다. 하지만 풍경을 보여주는 창문과 바울을 보여주는 본문에는 차이가 있다. - 창문은 아무 의도 없이 풍경을 왜곡시키기만 한다. - 즉, 창문의 왜곡은 단순한 오류이다. - 반면 본문은 의도와 목적을 가지고 바울의 일부를 부각해서 보여준다. - 즉, 본문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