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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린도후서
고린도후서(15) 11:1~15 바울의 어리석은 자랑
바울은 이번 본문을 기록할 때 몸 둘 바를 몰랐다. - 해야 하는 말이었지만, 하기 싫은 말이었기 때문이다. - 자기 육체를 자랑해야 하기 때문이다.그래서 시작부터 양해를 구한다. - 자신이 지금부터 어리석은 말인 육체의 자랑을 할 것인데, - 이는 정말 육체를 자랑스럽게 생각해서가 아니다, 부끄럽고 어리석은 말이다. 라고 강조한다. - 그러나 꼭 필요해서 어쩔 수 없이 하는 것이니 용납해달라고 말한다. [고후 11:1] 여러분은 내가 좀 어리석은 말을 하더라도 용납해 주시기 바랍니다. 꼭 나를 용납해 주십시오.그런데 이러한 양해는 한 절로 끝나지 않는다. - 다음 본문인 16절에서 21절까지 무려 여섯 절 동안 육체를 자랑하는 것이 얼마나 어리석은지 강조한다. [고후 11:16~17] 거듭 말하지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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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린도후서(14) 10:1~18 얕잡아 보일 수밖에 없는 바울의 전도 방식
본문에는 바울의 입을 통해 바울을 비하하는 다양한 표현이 나온다. - 이는 바울에 대한 고린도 교회의 태도를 드러낸다. - 이를 통해 바울이 고린도 교회에서 배척받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 그래서 바울은 그들의 말을 인용하며 자신을 항변한다. - 그리고 동시에 그들을 엄하게 꾸짖는다.바울의 말만 듣고 그들이 누구인지 특정하기는 어렵다. - 단지 그들의 특징을 유추할 수 있을 뿐이다. - 그들의 특징은 다음과 같다. 첫째로, 그들은 바울을 얕잡아보고 있다. - 그래서 그들은 바울이 편지와 달리 실제로 유순하고 약하고 말주변도 변변치 못하다고 말한다. [고후 10:1] 나 바울은 그리스도의 온유하심과 관대하심을 힘입어서 여러분을 권면합니다. 내가 얼굴을 마주 대하고 있을 때에는 여러분에게 유순하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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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린도후서(13) 9:1~15 ‘자발’적인 헌금을 요구하는 바울의 ‘강요’
바울은 명백하게 고린도 교회에게 헌금을 요구한다. - 1~2절에서, 헌금에 대한 고린도 교회의 열성을 상기하며, - 3~5절에서, 디도와 두 형제를 고린도 교회에 보낸 이유를 언급하며, - 6~7절에서, 헌금에 대한 기본 원리를 인용하며, - 8~12절에서, 하나님의 넘치는 은혜에 근거하여, - 13~15절에서, 헌금의 궁극적 목적을 제시하며 헌금을 요구한다.물론 바울이 직접적으로 헌금을 명령하지 않는다. - 그리고 자신은 헌금을 명령하는 것이 아니라고 말한다. - 그러나 이렇게 다양한 방법으로 반복해서 헌금에 대한 말을 들으면, - 듣는 사람은 압박받을 수밖에 없다. - 바울의 말만 듣고 명령이 아니라고 단정 짓는 것은 일종의 기만이다. - 바울의 말을 듣고 명령이 아니라고 느낄 사람은 아무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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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린도후서(12) 8:16~24 헌금 모금의 어려움
본문은 세 가지 층위로 해석할 수 있다. - 첫째로, 가장 표면 층위는 ‘고린도 교회에게 헌금을 요청’하는 것이다. - 이는 지난 본문부터 이어지는 내용이다. - 바울이 본문을 통해 결국 하려는 말은 헌금 요청이다. - 헌금 요청이 어떤 의미를 갖는지는 지난 본문에서 충분히 다뤘다. [고후 8:24] 그러므로 여러분은 그들에게 여러분의 사랑을 보여 주십시오. 그리하면 그들을 파송한 교회들이 그것을 보고서, 우리가 그들에게 여러분을 자랑한 것이 참된 것이었음을 확인할 것입니다.둘째로, 한 단계 깊은 층위는 ‘헌금을 모금하는 사람에 대한 추천장’이다. - 헌금을 직접 모금하는 사람이 얼마나 신뢰성이 있는지를 자세하게 설명한다. - 열심히 모은 돈이 허투루 낭비되면 얼마나 실망스럽겠는가. - 그래서 바울은 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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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린도후서(11) 8:1~15 물질적인 헌금 요청에 담긴 영적인 의미
바울은 갑자기 고린도 교회에게 헌금을 요청한다. - 바울은 어떤 맥락에서 헌금을 요청하는 것일까? - 맥락을 보면 바울이 고린도후서를 통해 전하려는 의도가 조금 더 선명해질 것이다. 바울은 7장 4절까지 자신을 항변했다. - 왜냐하면 고린도 교회가 바울을 부정하고 거부하고 있기 때문이다. - 그래서 자신이 사도로서 합당하고 진실하다는 것을 반복해서 강조한다. - 이를 통한 관계 회복이 고린도후서를 기록한 바울의 중요한 목적이다. [고후 7:2] 여러분은 마음을 넓혀서, 우리를 받아 주십시오. 우리는 아무에게도 부당한 일을 한 적이 없고, 아무도 망친 적이 없고, 아무도 속여서 빼앗은 일이 없습니다.그런데 7장 5절부터 바울의 태도가 바뀐다. - 고린도 교회 때문에 기쁘다고 말한다. [고후 7:9] 지금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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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린도전서(10) 7:5~16 바울이 기뻐하는 근원적인 기준 - 관계 회복
많은 사람이 기쁨과 슬픔 같은 감정을 이성보다 열등하게 본다. - 감정은 충동적이고 순간적이기에 사람의 본질을 바르게 드러내지 못하지만, - 이성은 심사숙고하기에 사람의 본질을 더 정확하게 드러낸다는 것이다. - 그래서 플라톤은 일관성 있는 이성이 충동적인 감정을 통제해야 한다고 했다.하지만 언제나 그런 것은 아니다. - 때로는 이성보다 감정이 사람의 본질을 더 정확하게 드러낸다. - 이성은 본래의 자신보다 되고 싶은 자신을 드러내려 하기 때문이다. - 이성은 자기를 반성하기도 하지만, 욕망에 따라 자기를 미화하기도 한다. - 이성으로 심사숙고하는 과정에서 이러한 왜곡이 일어난다. - 이를 ‘자기 기만’이라고 한다.반면에 감정은 즉흥적이기에 욕망에 의해 왜곡될 가능성이 적다. - 본심이 곧바로 튀어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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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린도후서
고린도후서(09) 6:3~7:4 여러분은 옹졸한 마음을 넓히라!
2장 14절부터 시작된 바울의 자기 변론의 결론 단락이다. - 바울은 자신이 사도라는 것을 부정하는 고린도 교회에게 자신을 변론했다.바울이 제시하는 핵심은 사도의 기준이다. - 바울과 고린도 교회는 외형에 대한 관점이 달랐다. - 바울은 외형이 화려하지 않고 초라하더라도 복음을 바르게 전하기만 하면 충분하다고 했고, - 고린도 교회는 바른 복음을 가진 사람은 반드시 외형까지 화려해야 한다고 했다. 그런 차이로 바울에 대한 판단이 달랐다. - 고린도 교회는 초라한 외형을 가진 바울을 사도가 아니라고 판단했다. - 바른 복음을 가졌다면 저렇게 고난과 박해를 당할 리 없다는 것이다. - 고난당하는 이유가 바울에게 죄가 있기 때문이라고 믿었다. - 그래서 바울을 거부했다.반면에 바울은 초라한 외형과 상관없이 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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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린도후서
고린도후서(08) 5:11~6:2 ‘새로운 피조물’의 진정한 뜻
본문 해석에 앞서 기억해야 할 것은 본문을 기록하는 바울의 정황이다. - 한마디로, 바울은 고린도 교회에 거부당했다. - 결정적인 이유는 초라한 행색 때문이다. - 바울이 어디를 가나 박해당하고 고난당하기 때문이다. - 승리와 번영을 복음의 증거로 믿었던 고린도 교회에게 바울의 모습은 불신의 증거였다. - 그래서 고린도 교회는 바울을 거부했다. - 신앙의 명목으로 말이다.이에 대응하여 기록한 편지가 고린도후서이다. - 그래서 바울은 두 가지를 말한다. - 먼저는, 복음을 바르게 정의한다. - 왜냐하면 고린도 교회가 바른 복음을 떠나 화려함을 추구하는 복음에 현혹되었기 때문이다. - 다음으로, 바로 그 복음에 따라 자신이 살아왔음을 입증한다. - 왜냐하면 고린도 교회가 화려함을 근거로 초라한 바울을 부정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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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린도후서(07) 5:1~10 죽음을 감수하는 믿음의 증거 - 기쁨이 아닌 탄식
보물은 질그릇에 담겨 있다. - 그래서 보물을 얻으려면 질그릇 안으로 들어가야 한다. - 질그릇이라는 초라함, 고난, 박해를 감당할 때만 보물을 손에 쥘 수 있다.마찬가지로 예수님은 죽고 부활하셨다. - 그래서 예수님을 믿으면 예수님과 함께 죽고 함께 부활한다. - 따라서 부활의 능력을 얻기 위해서는 먼저 죽음 안에 머물러야 한다.바울도 고난과 박해에 찌들어 있다. - 이유는 하나이다. -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이다. - 하나님께서 복음의 능력을 죽음을 통해서만 드러내시기 때문이다. - 그래서 바울은 평생 죽음을 짊어지고 다니다가 비참하게 죽는다. - 하지만 그로 인해 인류 전체에게 복음이 전해진다. 이것은 피할 수 없는 현실이다. - 보물을 얻기 위해 질그릇에 들어가야 하고, - 부활의 은혜를 얻기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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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린도후서(06) 4:1~18 질그릇만 간직할 수 있는 보물
결국 바울이 하려는 말은 하나이다. - 질그릇만 보물을 간직할 수 있다. - 여기서 질그릇은 초라한 바울의 삶이고, - 보물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다. - 그러니까 하나님의 은혜와 생명, 복음, 진리, 영광은 반드시 초라하고 궁핍하며 처량해 보이는 사람을 통해서만 전해질 수 있다는 것이다. - 오히려 화려하고 풍요로우며 윤택한 삶을 사는 사람이 전하는 복음은 본래의 뜻을 온전히 전달할 수 없다는 것이다. [고후 4:7] 우리는 이 보물을 질그릇에 간직하고 있습니다. 이 엄청난 능력은 하나님에게서 나는 것이지, 우리에게서 나는 것이 아닙니다. 이렇게 본문은 질그릇과 보배의 관계를 말한다. - 질그릇에 담긴 보배만 온전히 보배의 역할을 할 수 있고, - 동시에 보배를 담는 그릇은 반드시 초라한 질그릇이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