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울의 표현은 그다지 자연스럽지 않다.
- 바울은 분명히 자기를 자랑한다.
- 정당성을 입증하기 위해 자신이 경험한 환상과 계시를 자랑한다.
- 그러나 반대로 자랑은 삼가겠다고 말한다.
- 자랑이 이롭지 않다고 말한다.
- 강점은 자랑하지 않고 오직 약점만 자랑하겠다고 말한다.
- 이렇게 바울은 분명히 자신의 강점을 자랑한다.
- 그러면서 강점을 자랑하지 않겠다, 약점만 자랑하겠다고 말한다.
[고후 12:1] 자랑함이 나에게 이로울 것은 없으나, 이미 말이 나왔으니, 주님께서 보여 주신 환상들과 계시들을 말할까 합니다.
[고후 12:5] 나는 이런 사람을 자랑하려고 합니다. 그러나 나 자신을 두고서는 내 약점밖에는 자랑하지 않겠습니다.
[고후 12:6] ・・・・ 그러나 자랑은 삼가겠습니다. 그것은 사람들이, 내게서 보거나 들은 것 이상으로 나를 평가하지 않게 하려는 것입니다.
만약 논리적 일관성을 가지려면, 자랑하거나 하지 말아야 한다.
- 강점만 자랑하고 약점은 숨기거나, 반대가 되어야 한다.
- 또는 강점과 약점을 모두 자랑하면서 자신의 자랑거리를 당당하게 밝혀야 한다.
- 그런데 바울은 실제로 강점을 자랑하면서, 강점은 자랑하지 않겠다고 말한다.
- 이 점에서 일관성이 없다.
하지만 바울의 내면을 이해하기 위한 열쇠는 바로 여기에 있다.
- 바울은 모순을 통해 자신의 진의를 밝히는 경우가 많다.
- 바울은 왜 일관성 없이 모순되는 두 가지 주장을 동시에 했을까?
- 왜 강점을 자랑하면서, 자랑하지 않겠다고 말했을까?
- 이 질문에 답을 찾을 때, 바울의 숨은 뜻까지 이해할 수 있다.
바울의 논증 방식 - 수평 구조를 전제
오답을 먼저 말하면, 이렇게 해석하는 사람이 많다.
- 바울이 강점을 자랑하여 거짓 사도에 의해 빼앗긴 정당성을 되찾으려 한다는 것이다.
- 그래서 환상과 계시를 자랑한다는 것이다.
- 왜냐하면 거짓 사도가 자신의 신비한 경험을 과시하며 바울을 무시했기 때문이다.
- 그래서 바울 자신에게도 거짓 사도 못지않게 신비한 능력이 있다고 주장하며 자기 정당성을 입증하려 한 것이라고 해석한다.
- 쉽게 말해서, 자기 능력을 과시하여 거짓 사도를 기죽이려 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나는 이 해석에 반대한다.
- 자신을 높여서 다른 사람을 낮추는 방식은 바울의 것이 아니다.
- 바울은 그런 방식을 쓰지 않는다.
- 왜냐하면 그 방식은 수직 구조를 전제하기 때문이다.
- 바울은 높고 거짓 사도는 낮다는 구조를 만들기 때문이다.
- 그런 방식을 쓰면, 수직 구조를 인정할 수밖에 없다.
- 수직 구조를 인정하면, 그동안 쌓아온 바울의 논리가 전부 부정된다.
- 바울의 방식은 수평 구조를 전제한다.
예를 들어, ‘난 너와 달라. 나만 현명해. 그러니까 너는 어리석어.’라고 말하지 않는다.
- 이는 수직 구조에서 자신을 높이고 상대는 낮추는 것이다.
- 이렇게 수직 구조를 전제한다.
- 거짓 사도의 방식이다.
- 그리고 많은 사람이 본문을 오해하는 방식이다.
하지만 바울은 다른 방식으로 논증한다.
- 바울은 ‘나와 너는 같아. 그런데 난 어리석어. 그러니까 너도 어리석어.’라고 말한다.
- 이는 전자와 같이 상대의 죄를 지적한다.
- 상대의 어리석음을 고발한다는 점에서 전자와 후자는 똑같다.
- 하지만 결론을 입증하는 전제가 다르다.
- 수직 구조가 아니라 수평 구조를 전제한다.
- 자신과 상대방이 동등하다는 것을 전제한다.
그런데 자신이 현명하기는커녕 어리석다고 자신을 낮춘다.
- 그리고 자신이 어리석은 만큼 상대방도 어리석다는 것이다.
- 이는 자신과 상대방이 동등하다는 전제에서 나온 결론이다.
이렇게 자신을 과신하는 상대방의 어리석음을 고발하는 것이다.
- 이것이 바울의 논리 방식이다.
이 관점에서 본문을 다시 보자.
- 분명히 바울의 의도는 거짓 사도를 비판하는 것이다.
- 그리고 거짓 사도 비판을 위해 자기 강점을 말한다.
- 거짓 사도처럼 자신도 신비한 경험을 했다고 자랑한다.
- 그래서 많은 사람이 바울 역시 수직 구조에서 자기 우월성을 과시하는 것으로 오해한다.
- 자기 자랑을 통해 자기를 높이고 거짓 사도를 낮추는 것으로 착각한다.
하지만 많은 사람이 바울의 가장 중요한 한마디를 간과한다.
- ‘자랑함이 이로울 것이 없다, 강점을 자랑하지 않겠다, 자랑은 삼가겠다,
- 특히 어리석은 사람이 되어버렸다.’라고 말하는 것이다.
- 즉, 강점을 자랑하는 자신이 어리석다며 자신을 낮추는 부분을 간과한다.
- 신비한 경험을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것 자체가 부끄럽다는 것이다.
[고후 11:1] 여러분은 내가 좀 어리석은 말을 하더라도 용납해 주시기 바랍니다. 꼭 나를 용납해 주십시오.
[고후 11:17] 지금 내가 하는 말은, 주님의 지시를 따라 하는 말이 아니라, 어리석음에 빠져서 자랑하기를 이렇게 장담하는 사람처럼, 어리석게 하는 말입니다.
[고후 12:11] 나는 어리석은 사람이 되어버렸습니다. 여러분이 나를 억지로 그렇게 만들었습니다. 그러나 여러분은 나를 인정해 주었어야 마땅합니다. 내가 비록 보잘것없는 사람일지라도, 저 우두머리 사도들보다 부족한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바로 이것이 핵심이다.
- 바울은 거짓 사도를 비판하기 위해 자기를 자랑한다.
- 그런데 정말로 자신의 신비한 경험이 자랑스럽기 때문에 자랑한 것이 아니다.
- 오히려 자기 자랑이 얼마나 부끄럽고 어리석은 짓인지 알려주기 위해서이다.
- 이렇게 자신처럼 어리석게 자기 자랑을 하는 거짓 사도 역시 어리석다는 것을 논증하기 위해서 말이다.
이를 정형화하면 다음과 같다.
- 대전제: 바울 자신과 거짓 사도는 결국 동일하다.
- 소전제: 그런데 바울 자신은 어리석게도 자기를 자랑한다.
- 결론: 따라서 똑같이 자기를 자랑하는 거짓 사도 역시 어리석다.
그러니까 바울은 자기 자랑을 해도 되기 때문에 한 것이 아니다.
- 많은 사람이 이렇게 착각한다.
- 그래서 자기도 바울처럼 복음을 위해 자기를 자랑한다.
하지만 바울은 자신의 어리석음을 부각하여 자기를 낮추기 위해 자랑한 것이다.
- 자랑이 어리석은 짓이라고 강조하기 위한 것이며,
- 이를 통해 자기를 자랑하는 거짓 사도를 정죄하기 위한 것이다.
- 자기를 낮추고 자기 정당성을 부정하기 위해 자랑을 사용한 것이다.
그렇다면 이러한 바울의 고백을 들은 거짓 사도는 무엇을 느껴야 할까?
- 거짓 사도는 자기 정당성을 주장하기 위한 증거로 신비한 경험을 사용했다.
- 그런데 같은 신비한 경험이 바울에게는 자기 정당성을 부정하는 증거로 사용된다.
- 어리석고 부끄러운 증거가 된다.
그 결과 거짓 사도는 깨달아야 한다.
- 그동안 자신의 주장이 얼마나 어리석었는지 말이다.
- 신비한 경험을 자랑하는 것이 얼마나 부끄러운 것인지 말이다.
- 물론 바울의 의도대로 되지 않았지만 말이다.
바울은 이렇게 주장하기 위해 자신을 높이기는커녕 자신을 낮춘다.
- 자기 정당성을 부정한다.
- 그리고 자신을 거짓 사도와 동일시한다.
- 수평 구조에서 말이다.
- 이를 통해 주장의 대상이 되는 거짓 사도의 정당성까지 부정한다.
이것이 바울의 방식이다.
- 수직 구조를 전혀 사용하지 않는다.
- 오직 수평 구조만을 전제한다.
- 그러면서도 거짓 사도의 죄를 정확하게 지적한다.
- 신비한 경험, 즉 자기 강점을 자랑하는 것이 얼마나 부끄러운지 깨닫게 한다.
바로 이 때문에 일관성 없게 주장한 것이다.
- 강점을 자랑하면서, 강점을 자랑하지 않겠다고 말한 것이다.
- 모순되는 두 주장 사이에 숨겨진 주장이 있기 때문이다.
- 강점 자랑은 어리석다는 주장이다.
바울은 강점을 자랑하는 것이 어리석다고 말한다.
- 그러면서 바울 역시 자랑을 통해 자기 어리석음을 드러낸다.
- 자기를 낮춘다.
이는 바울이 강점을 자랑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 실상은 자랑한 것이 아니라 부끄러움을 고백한 것이다.
- 그래서 바울은 강점을 자랑한 것이 아니다.
- 오히려 자기 어리석음을 드러내어 약점을 고백한 것이다.
이것이 일관성 없어 보이는 바울 주장의 실체이다.
- 일관성 있게 수평 구조를 전제하고 있다.
- 일관성 있게 자신을 낮춘다.
- 일관성 있게 거짓 사도를 비판한다.
- 일관성 있게 과시하거나 자신을 높이지 않는다.
- 일관성 있게 하방 지향성을 갖는다.
바울의 자랑에 대한 오해 - 자기 자랑 합리화
하지만 여전히 많은 사람이 본문을 오해한다.
- 바울이 자기 경험을 자랑하고 과시했다고 착각한다.
- 과시를 통해 자기 정당성을 입증하고 거짓 사도를 제압하려 한다는 것이다.
그 때문에 이렇게 착각한다.
-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의 자랑과 과시는 필요하다.
- 그래야 사람들의 이목을 집중시킬 수 있고, 사람들의 인정을 받을 수 있다.
- 인정을 받아야 복음도 받아들인다.’
- ‘복음을 따른다고 초라하고 하찮은 모습만 보이면,
- 누구도 관심을 갖지 않고, 누구도 인정하지 않으니,
- 아무리 복음을 전해도 성과가 없다.
- 아무리 바른 복음이라 해도 듣지 않으면 무슨 소용이겠는가.
- 들리는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는 자랑과 과시가 어쩔 수 없이 필요하다.’라는 것이다.
하지만 이는 완전히 착각이다.
- 복음이 갖는 하방 지향성을 부정하는 태도이며,
- 이는 곧 십자가 죽음으로 가장 낮은 곳까지 추락하신 예수님을 부정하는 태도이다.
- 복음을 전하기 위한 필요악이 아니라, 복음 자체를 왜곡하는 태도이다.
- 복음을 전하면서도 고난을 피하고 싶은 욕망 표출일 뿐이다.
- 복음을 전할 때조차 자기를 자랑하고 싶은 죄 고백일 뿐이다.
- 희생과 헌신 없이 복음에 동참하겠다는 뜻이다.
복음은 모든 사람을 가장 낮은 곳으로 추락시킨다.
- 아무것도 남기지 않고 모든 것을 빼앗는다.
- 가장 어리석고 가장 부끄러운 자리로 내려가게 한다.
- 길게 논증할 필요도 없다.
-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이미 그것을 보여주셨다.
십자가의 하방 지향성
그 이유를 간단하게 설명하면,
- 그렇게 낮아질 때만 수직 구조 없이 수평 구조에서 죄를 깨닫게 할 수 있기 때문이다.
- 바울이 그랬던 것처럼 말이다.
예수님은 자신의 특별함과 강점을 과시하며, 인류의 죄를 지적하지 않으셨다.
- 십자가에서 괴력을 뽐내며 손의 못을 뽑고 내려오지 않으셨다.
- 예수님은 가장 낮은 자리에서 가장 부끄러운 모습을 드러내셨다.
- 십자가에서 가장 초라하고 추하게 죽으셨다.
- 그런데 이를 통해 예수님은 모든 인류와 동등함을 입증하셨다.
- 바로 그 모습을 통해 인류 전체가 얼마나 부끄러운지 깨닫도록 하셨다.
따라서 전도에는 과시와 자랑이 있으면 안 된다.
- 그것은 수직 구조를 전제한 거짓 사도의 방법이다.
- 바울의 방법이 아니다.
전도는 자기 부정과 부끄러움을 고백해야 한다.
- 하방 지향성을 가져야 한다.
- 그래서 우리 모두가 동일하게 어리석다는 것을 입증해야 한다.
- 이것이 수평 구조를 전제한 바울의 방식이다.
- 이것이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보이신 방식이다.
바른 전도의 어려움
그래서 바른 전도는 어렵다.
- 가장 부끄러운 자리이고, 어리석음을 드러내는 자리이기 때문이다.
- 자기 부끄러움과 어리석음으로 인한 조롱과 비난을 감수해야 하는 자리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바르게 전도하는 사람은 특별하다.
- 남들과 달리 자기 부끄러움과 어리석음을 유달리 잘 아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 자기 죄를 너무 잘 알아서 남들 앞에 고백하는 것이 더 이상 특별하지 않은 사람이기 때문이다.
- 죄 고백으로 인해 사람 앞에서 느끼는 부끄러움보다
- 낮은 곳에서 예수님 만나는 기쁨이 훨씬 큰 사람이기 때문이다.
- 그렇기 때문에 자기를 끝없이 낮출 수 있다.
그래서 바른 전도자를 예수님이 그토록 기뻐하신다.
- 그만큼 예수님을 사랑하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 자기가 가진 모든 것을 잃어도 예수님 한 분의 기쁨으로 충분히 만족하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 그 기쁨을 위해 모든 것을 포기하고 기꺼이 추락하여 가장 어리석은 자리까지 내려가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그러셨던 것처럼 말이다.
하지만 누군가는 이렇게 말한다.
- 그래서 전도가 되겠냐고 말이다.
- 부끄러움과 어리석음을 드러내는 사람의 말을 누가 듣겠냐고 말이다.
- 초라하고 하찮은 모습으로는 누구도 전도할 수 없다고 말이다.
맞다. 이렇게 해서는 쉽게 전도가 되지 않는다.
- 그래서 전도가 어려운 것이다.
- 지금 바울이 그런 것처럼 말이다.
바울도 전도에 실패했다.
- 어리석음과 부끄러움을 드러냈다는 이유로 고린도 교회에 부정당했다.
- 세상에 어리석은 사람의 말을 믿을 사람은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런 태도는 정확하게 고린도 교회의 논리와 일치한다.
- 초라한 전도를 부정하는 태도는 바울을 부정하는 고린도 교회의 태도와 같다.
- 이런 태도를 가진 사람은 반드시 바울까지 부정할 수밖에 없다.
- 바울을 부정하면, 하나님과 성경 전체까지 부정하게 된다.
이는 전형적으로 세속적인 태도이다.
- 복음을 전하고 싶긴 하지만, 세상에서도 인정받고 싶은 태도이다.
- 복음을 전하여 영적인 유익도 얻고 싶지만, 세속적인 유익도 포기하지 못하는 태도이다.
- 이런 태도를 정죄하고 바로잡기 위해 쓴 편지가 고린도후서인데,
- 고린도후서를 읽고도 여전히 어리석음과 부끄러움을 피하려는 사람이 많다.
- 여전히 고린도 교회의 전철을 밟으려는 사람이 많다.
바로 그런 사람들 때문에 본문에 대한 오해가 생긴 것이다.
- 바울이 강점을 과시하여 거짓 사도를 기죽이려 했다고 해석하려 한다.
- 바울처럼 강점을 자랑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이다.
다시 말하지만, 이는 고린도후서를 완전히 반대로 해석하는 것이다.
- 바울의 의도를 완전히 부정하는 것이다.
- 바울을 부정한 고린도 교회를 따르는 것이다.
1~6절: 자랑스러움을 부끄러워함 - 환상과 계시
바울의 궁극적인 목적은 모든 사람이 서로 사랑하고 하나님을 사랑하도록 하는 것이다.
- 사랑이 전부이기에 모든 사람이 그 사랑에 동참하도록 하는 것이다.
- 이 문장은 너무 자명해서 논증할 필요도 없다.
그런데 문제는 이를 모든 사람이 원하지만, 아무도 행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 근본적으로 사람이 다른 사람의 사랑스러움을 발견하지 못한다.
- 그러니 사랑하려는 노력이 언제나 실패한다.
그렇다면 왜 다른 사람의 사랑스러움을 발견하지 못할까?
- 누누이 말했듯이, 수직 구조 때문이다.
- 수직 구조는 사람의 존재 본질이 아니라 사람이 가진 소유, 능력, 성과만 보도록 한다.
- 사람 고유의 매력을 발견하지 못 하게 한다.
- 그래서 사랑스러움도 발견하지 못 하게 한다.
따라서 궁극적 목적인 사랑을 이루기 위해 수직 구조를 반드시 파괴해야 한다.
수직 구조 파괴 방법 - 수평 구조 제시
그렇다면 수직 구조를 어떻게 파괴할까?
- 결론부터 말해서, 사람이 가진 소유, 능력, 성과를 부정해야 한다.
- 소유, 능력, 성과로 사람을 평가하는 기준을 부정해야 한다.
- 그것으로 사람을 평가하고 수직 배열하는 것이 얼마나 틀렸는지 입증해야 한다.
예를 들어, 몸무게가 기준인 세계가 있다고 해보자.
- 무거운 사람은 귀하고 가치 있는 존재이고, 가벼운 사람은 하찮고 가치 없는 존재이다.
- 이는 마치 먹을 것이 귀하던 시절에 복부 비만을 부의 상징으로 여겼던 것처럼 말이다.
이 세계에서 몸무게를 기준으로 한 수직 구조를 파괴하는 방법은 무엇이겠는가?
- 두 가지를 입증하면 된다.
- 과체중은 심혈관에 문제를 일으켜 수명에 심각한 악영향을 준다는 것과
- 반대로 저체중이 오히려 건강에 좋아 수명을 연장한다는 것을 입증하면 된다.
그러면 무거운 사람에 대한 존경과 가벼운 사람에 대한 무시가 사라진다.
- 그리고 무거워지려는 노력도 멈춘다.
- 그래서 몸무게와 상관없이 사람을 동등하게 존중하는 태도가 생긴다.
- 물론 현실에서는 몸무게가 아닌 새로운 기준으로 사람을 평가할 테지만 말이다.
- 그래서 수직 구조가 유지될 테지만 말이다.
수직 구조를 파괴하기 위해 바울이 논증하는 것도 두 가지이다.
- 소유, 능력, 성과를 갖는 것이 얼마나 나쁜지 논증하고,
- 반대로 소유, 능력, 성과를 갖지 않는 것이 얼마나 좋은지 논증하면 된다.
그래서 바울은 1~6절에서는 신비한 경험을 말하고, 7~10절에서는 몸의 가시를 자랑하는 것이다.
- 왜냐하면 신비한 경험은 당시에 귀한 가치로 평가되던 것이다.
- 그래서 신비한 경험을 가진 것은 자랑거리였고, 사람들은 그런 사람을 존경했다.
- 거짓 사도 역시 자신이 가진 신비한 경험으로 자기 정당성을 입증하고 바울을 부정했다.
그런데 만약 내가 바울과 같은 상황이었다면, 이렇게 말했을 것이다.
- ‘너희가 신비한 경험으로 나를 무시하는데, 나 그렇게 만만한 사람 아니야.
- 나도 너희처럼 엄청나게 신비한 경험 있어.
- 나는 천국까지 가봤다니까.
- 그러니까 이제 나 무시하지 마.
- 내 앞에 무릎 꿇어.’라고 말이다.
[고후 12:4] 이 사람이 낙원에 이끌려 올라가서, 말로 표현할 수도 없고 사람이 말해서도 안 되는 말씀을 들었습니다.
만약 그랬다면 바울은 훨씬 쉽게 정당성을 얻었을 것이다.
- 거짓 사도뿐만 아니라 고린도 교회도 바울을 인정하고 존중했을 것이다.
- 이렇게 훌륭한 사람을 몰라봤다며 사과까지 할 것이다,
하지만 바울은 이렇게 말하지 않는다.
- 왜냐하면 이는 거짓 사도의 방식이다.
- 수직 구조를 전제한다.
- 신비한 경험을 기준으로 사람을 수직 배열하는 것이다.
그래서 바울은 다르게 말한다.
- ‘나도 너희처럼 신비한 경험을 자랑스럽게 생각해.
- 그런데 자기를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것은 정말 어리석은 짓이야.
- 나도 천국에 가봤고, 그게 자랑스러운 줄 알았는데, 아니더라고.
- 너희도 나처럼 신비한 경험이 자랑스럽지? 나도 그 마음 알아.
- 이렇게 나도 너희도 다 어리석어.’라고 말한다.
[고후 12:1] 자랑함이 나에게 이로울 것은 없으나, 이미 말이 나왔으니, ・・・・
[고후 12:11] 나는 어리석은 사람이 되어버렸습니다. 여러분이 나를 억지로 그렇게 만들었습니다. ・・・・
이렇게 바울은 수평 구조를 전제한다.
- 바울과 거짓 사도를 동일시한다.
- 똑같이 어리석다고 고백한다.
- 그러니 거짓 사도도 자기 죄를 깨달으라는 것이다.
바로 이것을 말하기 위해 신비한 경험을 말한 것이다.
- 세상의 기준에서 자랑스러운 일을 자랑하지 않고 부끄러워한 것이다.
- 이유는 분명하다.
- 먼저는 거짓 사도의 죄를 깨닫게 하기 위해서이고,
- 궁극적으로는 아무도 신비한 경험을 기준으로 사람을 평가하지 못하게 하기 위해서이다.
- 그래서 신비한 경험을 가졌든 갖지 못했든 동등하게 여겨지도록 하기 위해서이다.
- 즉, 수평 구조를 맺기 위해서이다.
7~10절: 부끄러움을 자랑스러워함 - 몸의 가시
그런데 7~10절에서 같은 말을 반대로 한다.
- 1~6절에서는 자랑스러움을 부끄러워했다면,
- 7~10절에서는 부끄러움을 자랑스러워한다.
바울에게는 ‘사탄의 하수인’이라고 부를 만큼 몸을 가혹하게 괴롭힌 질병이 있었다.
- 그로 인해 전도 사역조차 방해받은 것 같다.
[고후 12:7] 내가 받은 엄청난 계시들 때문에 사람들이 나를 과대평가 할는지도 모릅니다. 그러므로 내가 교만하게 되지 못하도록, 하나님께서 내 몸에 가시를 주셨습니다. 그것은 사탄의 하수인이라고 할 수 있는데, 그것으로 나를 치셔서 나로 하여금 교만해지지 못하게 하시려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그 질병을 기뻐하며 자랑한다.
- 그 질병이 그리스도 능력의 통로라고까지 생각한다.
[고후 12:9~10] 그러나 주님께서는 내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내 은혜가 네게 족하다. 내 능력은 약한 데서 완전하게 된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능력이 내게 머무르게 하기 위하여 나는 더욱더 기쁜 마음으로 내 약점들을 자랑하려고 합니다. (10) 그러므로 나는 그리스도를 위하여 병약함과 모욕과 궁핍과 박해와 곤란을 겪는 것을 기뻐합니다. 내가 약할 그 때에, 오히려 내가 강하기 때문입니다.
왜 바울은 부끄러움을 자랑하는 것일까?
- 이 역시 세상에 있는 부끄러움이라는 기준을 파괴하기 위해서이다.
- 세상은 질병을 가진 사람을 부끄럽고 하찮은 존재로,
- 건강한 사람을 당당하고 귀한 존재로 인식한다.
- 이렇게 세상은 건강과 질병이라는 기준으로 사람을 수직 배열한다.
분명히 거짓 사도는 바울의 질병을 근거로 바울을 공격했을 것이다.
- 하나님의 사도라는 자가 어떻게 자기 병 하나도 못 고치냐는 것이다.
- 그래서 하나님의 일을 어떻게 하냐는 것이다.
- 심각한 질병을 가진 것은 하나님 저주의 증거이고,
- 따라서 바울은 절대 사도가 아니라는 것이다.
- 이 역시 수직 구조를 전제로 한 주장이다.
이에 바울은 질병이라는 기준을 파괴한다.
- 질병이 있다고 하더라도, 질병 때문에 마음껏 사역할 수 없더라도,
- 질병 때문에 그리스도의 능력이 머물 수 있다면, 그리고 더 강해질 수 있다면,
- 질병이 오히려 은혜라는 것이다.
게다가 바울은 부끄러운 질병을 마음껏 자랑한다.
- 부끄러움을 자랑하면 자랑할수록,
- 그래서 부끄러움을 부끄러워하지 않으면 않을수록
- 부끄러움을 근거로 세워진 수직 구조가 무너지기 때문이다.
- 그로 인해 질병을 가진 사람과 건강한 사람 사이의 구분이 사라지고,
- 모든 사람이 동등한 관계를 맺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는 단순히 질병이 은혜라는 단순한 사실 하나만 말하는 것이 아니다.
- 질병과 건강으로 사람을 구분하는 인류의 가치 체계 전체를 부정하려는 것이다
- 질병과 건강으로 사람을 수직 배열하는 수직 구조를 파괴하려는 것이다.
- 그래서 모든 사람이 수평 관계를 맺도록 하는 것이다.
역시 이유는 분명하다.
- 먼저는 질병을 근거로 바울을 부정하는 거짓 사도의 죄를 깨닫게 하려는 것이고,
- 궁극적으로는 아무도 질병을 기준으로 사람을 평가하지 못하게 하기 위해서이다.
- 그래서 질병이 있든 건강하든 동등하게 여겨지도록 하기 위해서이다.
- 즉, 수직 구조를 파괴하고 수평 구조를 맺기 위해서이다.
이렇게 바울은 두 가지를 말한다.
- 자랑스러움을 부끄러워하고, 부끄러움을 자랑스러워한다.
- 신비한 경험을 부끄러워하고, 질병을 자랑스러워한다.
왜냐하면 먼저는 거짓 사도 때문이다.
- 거짓 사도가 신비한 경험을 과시하며 바울을 무시했기 때문이다.
- 또 질병을 이유로 바울을 부정했기 때문이다.
바울의 궁극적인 목적 - 사랑
그런데 바울의 궁극적인 목적은 거짓 사도에서 멈추지 않는다.
- 인류 전체를 향한다.
- 세상 누구도 신비한 경험 때문에 존경받거나 무시당하지 않도록,
- 그리고 세상 누구도 질병과 건강 때문에 존경받거나 부정당하지 않도록 말이다.
이를 통해 바울은 최종 목적지에 이른다.
- 그것은 누구도 소유, 능력, 성과에 따라 수직 배열되지 않고,
- 모두가 동등한 관계를 맺기 위한 것이다.
- 그래서 사람을 소유, 능력, 성과로 평가하지 않고,
- 사람이 가진 존재 그 자체로 인식하도록 하기 위한 것이다.
왜 그래야 할까?
- 사람의 고유한 매력, 즉 사랑스러움을 발견하기 위해서이다.
소유, 능력, 성과는 사람을 존경하게 할 뿐, 사랑하게 할 수 없다.
- 그래서 모든 사람이 사랑을 원하지만, 아무도 사랑하지 못한다.
- 그 원인이 수직 구조에 있다.
- 그래서 바울은 수직 구조를 파괴하려 한 것이다.
그러나 수평 구조에서는 소유, 능력, 성과가 전부 배제된다.
- 사람을 평가하는 모든 가치가 부정된다.
- 사람을 치장하는 옷이 전부 벗겨진 채 알몸 그대로 드러난다.
물론 그로 인해 사람의 죄도 드러난다.
- 옷이 가려주었던 사람의 진정한 추함이 드러난다.
- 바울도 신비한 경험에 대한 자랑스러움을 드러내어 부끄러웠다.
- 바울로 인해 거짓 사도의 부끄러움도 드러났다.
하지만 수평 구조에서는 그 추함이 사람을 평가하는 기준으로 작용하지 않는다.
- 사람이 가진 다양한 특징 중 하나로 인식한다.
- 장단점의 구분은 오직 수직 구조에서만 존재하는 구분이다.
- 신비한 경험을 많이 가질 만큼 영적으로 강한 사람이 더 많은 영적 성과를 낼 수 있고,
- 더 많은 성과를 내는 것이 좋다는 전제에서만 장점이 된다.
- 반대로 질병을 가진 사람은 육체적 한계로 인해 많은 성과를 낼 수 없고,
- 적은 성과를 내는 것은 나쁘다는 전제에서 단점이 된다.
반면에 수평 구조에서는 다르다.
- 신비한 경험으로 인한 영적인 성과가 공동체를 사랑하게 도우면 좋은 것이지만,
- 신비한 경험을 과시하여 공동체 안에 경쟁과 시기로 관계를 멀어지게 하면 나쁜 것이다.
- 질병 역시 긍휼한 마음을 이끌어 공동체가 서로 돕고 사랑하게 하면 좋은 것이지만,
- 질병을 핑계로 나태함을 합리화하여 공동체를 분열하게 하면 나쁜 것이다.
이렇게 신비한 경험과 질병을 장단점으로 구분할 수 없다.
- 좋아 보이는 것이던, 나빠 보이는 것이던, 그것은 단순한 사람의 특징일 뿐이다.
- 그 특징이 장점인지 단점인지 구분하지 않는다.
그런데 그 특징이 단점이라 하더라도 공동체를 더욱 사랑하게 하면 의로운 것이고,
- 반대로 장점이라 하더라도 공동체를 분열하게 하면 죄인 것이다.
- 기준은 오직 사랑이다.
- 사랑을 촉발하는 것과 그렇지 않은 것만 구분한다.
- 그 외 나머지는 아무것도 구분하지 않는다.
그래서 바울은 자랑스러운 신비한 경험을 부끄러워한 것이다.
- 그리고 부끄러운 질병을 자랑스러워한 것이다.
- 자랑스러움과 부끄러움의 기준을 파괴하기 위해서이다.
- 소유, 능력, 성과를 기준으로 장단점을 나누는 것이 얼마나 잘못된 것인지 입증하기 위해서이다.
동시에 오직 사랑만이 유일한 기준이라는 것을 입증하기 위해서이다.
- 그래서 신비한 경험을 부끄러워한 것이다.
- 왜냐하면 신비한 경험은 바울을 교만하게 하고,
- 교만은 자기를 높이고 상대방을 무시하게 하기 때문이다.
- 그래서 공동체를 분열하게 한다.
- 바울은 사랑을 기준으로 신비한 경험을 부끄러워했다.
[고후 12:7] 내가 받은 엄청난 계시들 때문에 사람들이 나를 과대평가 할는지도 모릅니다. 그러므로 내가 교만하게 되지 못하도록, 하나님께서 내 몸에 가시를 주셨습니다. 그것은 사탄의 하수인이라고 할 수 있는데, 그것으로 나를 치셔서 나로 하여금 교만해지지 못하게 하시려는 것이었습니다.
반대로 바울은 부끄러운 질병을 자랑스러워했다.
- 왜냐하면 질병은 바울을 겸손하게 하고,
- 겸손은 서로 공감하고 존중하게 하기 때문이다.
- 그래서 공동체를 사랑하게 한다.
- 바울은 사랑을 기준으로 질병을 자랑스러워했다.
[고후 12:10] 그러므로 나는 그리스도를 위하여 병약함과 모욕과 궁핍과 박해와 곤란을 겪는 것을 기뻐합니다. 내가 약할 그 때에, 오히려 내가 강하기 때문입니다.
바로 이것이 바울의 궁극적 목적이다.
- 세상은 소유, 능력, 성과의 유무로 장단점을 구분하고,
- 장점을 자랑스러워하고, 단점을 부끄러워한다.
- 그래서 신비한 경험은 자랑하고, 질병은 조롱한다.
하지만 바울은 소유, 능력, 성과를 기준으로 한 장단점의 구분을 파괴한다.
- 대신 사랑을 새로운 기준으로 제시한다.
- 그래서 단점이지만 사랑하도록 하는 질병 자랑한다.
- 반대로 장점이지만 분열하도록 하는 신비한 경험을 부끄러워한다.
이것 때문에 바울은 자신의 신비한 경험과 질병을 언급한 것이다.
- 자기를 높이고 거짓 사도를 낮추기 위해서가 아니다.
- 신비한 경험이나 질병과 상관없이 모두 동등하다는 것을 입증하기 위해서이다.
- 동등한 관계에서만 서로 내면의 매력을 발견할 수 있고,
- 그럴 때만 진정한 사랑의 관계를 맺을 수 있기 때문이다.
즉, 바울의 궁극적인 목적인 사랑을 이루기 위해서이다.
11~13절: 결론 - 나 바울을 인정하라!
바울은 끝까지 일관성을 유지한다.
- 일관성 있게 바울과 거짓 사도의 동등함을 주장한다.
- 절대로 자기가 거짓 사도보다 우월하다고 주장하지 않는다.
- 끝까지 수직 구조를 부정하고 수평 구조를 전제한다.
[고후 12:11] 나는 어리석은 사람이 되어버렸습니다. 여러분이 나를 억지로 그렇게 만들었습니다. 그러나 여러분은 나를 인정해 주었어야 마땅합니다. 내가 비록 보잘것없는 사람일지라도, 저 우두머리 사도들보다 부족한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그러니 고린도 교회가 바울 자신도 인정해 달라고 간청한다.
- 고린도 교회도 일관성을 갖고 거짓 사도를 인정한 것처럼 자신도 인정해 달라는 것이다.
- 자신에게도 사도라는 증거가 충분하기 때문이다.
[고후 12:12] 나는 여러분 가운데서 일일이 참고 견디면서, 놀라운 일과 기적을 표징으로 삼아 사도가 된 표징을 행하였습니다.
물론 고린도 교회는 바울의 간청을 완전히 수용하지 않는다.
- 추정하건대, 여전히 고린도 교회의 일부는 바울을 인정하지 않는다.
- 인식 체계가 수직 구조에서 수평구조로 쉽게 전환되기 어렵기 때문이다.
그러나 상당수가 바울을 인정한 것만으로도 바울은 충분히 기뻤을 것이다.
- 그 전환이 그만큼 어렵다는 것을 잘 알았기 때문이다.
바울의 용서 요청 - 값없는 복음
마지막으로 바울은 거짓 사도와 차별성을 언급한다.
- 그것은 값없이 복음을 전한 것이다.
- 거짓 사도는 돈을 받고 복음을 전해줬지만,
- 바울은 끝까지 거절했다.
[고후 12:13] 내가 여러분에게 폐를 끼치지 않았다는 것을 제외하고 여러분이 다른 교회들보다 못난 점이 무엇입니까? 이렇게 한 것이 불공평한 처사라고 하면, 용서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고린도 교회는 그것을 빌미로 바울을 평가절하했다.
- 바울이 전한 값없는 복음을 가치 없는 복음으로 판단했다.
- 바울을 돈조차 받을 자격이 없는 존재로 평가했다.
이것이 거짓 사도와 차별화하는 바울의 유일한 특징인데,
- 이 때문에 바울과 고린도 교회의 관계는 더욱 멀어졌다.
- 그래서 바울은 용서를 구한다.
- 고린도 교회 입장에서 이를 불공평하다고 느낄 수 있고,
- 그랬다면 바울에 대한 불만이 생길 수 있음을 공감한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용서 요청은 바울의 부족함 때문이 아니라 고린도 교회의 부족함 때문이다.
- 이전에 말했듯, 값없이 복음을 전한 이유는 결국 수평 구조 때문이다.
- 왜냐하면 복음 전도에 대한 돈을 받는다는 것은 복음을 기준 삼아 수직 구조를 전제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 복음을 소유한 바울은 높고, 소유하지 못한 고린도 교회는 낮다고 판단하는 것이다.
- 그래서 높은 자가 낮은 자에게 수고한 대가로 낮은 자가 높은 자에게 돈을 지불한 것이다.
- 이는 전형적인 수직 구조의 작동 방식이다.
그래서 바울은 돈을 받지 않은 것이다.
- 이로써 바울은 복음의 소유를 기준으로 한 수직 구조를 파괴하려 했다.
- 돈을 거부함으로 복음을 소유한 자신이 높은 자이고 그렇지 않은 고린도 교회가 낮은 자라는 수직 구조를 부정하려 했다.
- 대신에 복음을 중심에 둔 동등한 관계를 맺으려 했다.
- 그래야만 복음을 통해 사랑이 성취될 수 있기 때문이다.
- 그것이 바울의 궁극적 목적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고린도 교회는 바울의 뜻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
- 여전히 수직 구조로 바울을 대했다.
- 복음을 소유한 높은 자로 바울을 인식하려 했다.
- 그러나 돈을 받지 않자, 이번에는 반대로 돈을 받을 만큼의 가치를 소유하지 못한 낮은 자로 인식했다.
- 그래서 바울을 무시하고 거부했다.
그런 고린도 교회까지 바울은 공감한다.
- 그들에게 용서를 구하며 자신을 용납해달라고 간청한다.
- 자신이 바르게 전한 수평 구조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해 생긴 오해까지 바울은 자신의 탓으로 돌린다.
- 그렇게라도 바울은 고린도 교회의 마음을 얻고자 한다.
과연 바울의 일관성은 어디까지일까?
- 이렇게 바울은 끝까지 사랑을 성취하는 데 몰두한다.
결론 - 우리는 무엇을 자랑하고 무엇을 부끄러워하는가?
바울은 자랑스러움을 부끄러워하고, 부끄러움을 자랑스러워한다.
- 이를 통해 세상에서 높다고 판단하는 기준과 낮다고 판단하는 기준을 모두 파괴한다.
- 그래서 수직 구조를 파괴하고 수평 구조를 이루려 한다.
- 그래야만 다른 사람의 사랑스러움을 발견할 수 있고,
- 진정한 사랑의 관계를 맺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떠한가?
- 무엇을 자랑스러워하고, 무엇을 부끄러워하는가?
- 무엇을 드러내려 하고, 무엇을 감추려 하는가?
- 무엇이 드러났을 때 기뻐하고, 무엇이 드러났을 때 슬퍼하는가?
- 반대로 무엇이 숨겨졌을 때 기뻐하고, 무엇이 숨겨졌을 때 슬퍼하는가?
이는 우리가 추구하는 바를 추측할 수 있게 하는 질문이다.
- 우리의 가치 기준을 드러낸다.
- 우리가 수직 구조 인식 체계를 갖는지 수평 구조 인식 체계를 갖는지 드러낸다.
대부분이 사랑이 최고라고 말한다.
- 특히 교회를 다니는 사람이라면 더욱 그렇다.
- 하지만 그렇게 말하면서 동시에 사랑이 너무 어렵다고 말한다.
- 사랑하려 노력하지만 자주 실패한다고 고백한다.
당연히 이런 태도는 바람직하다.
- 이런 사람은 성경이 제시하는 목표를 공유하고 있고,
- 그 목표를 자신의 것으로 삼아 노력하고 있으며,
- 하지만 현실에서 그 목표에 이르지 못하는 자신의 죄를 자백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많은 교회는 이 정도 고백만으로도 바람직한 신앙으로 인정한다.
- 신앙의 길은 멀고도 험하며, 사랑은 어려운 것이니, 노력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 목표를 이루지 못했다고 너무 자책하지 말라고 위로한다.
- 하나님은 마음의 중심을 보시니, 사랑하려 했던 마음을 하나님은 충분히 아실 것이고,
- 그 마음만으로도 하나님은 기뻐하실 것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이러한 교회의 태도에 전적으로 반대한다.
- 물론 위로와 격려가 필요하다는 것에는 공감한다.
- 하지만 이런 위로는 틀렸다.
- 왜냐하면 문제를 제대로 지적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신앙과 사랑이 어려운 것은 맞다.
- 그러나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 불가능하다는 결론을 정해두고 노력만으로 칭찬하는 것은 잘못된 태도이다.
- 사랑이 왜 어려운지 원인까지 파고들어야 한다.
사랑이 왜 어려울까?
- 왜 다른 사람이 사랑스러워 보이지 않을까?
- 워낙 그 사람에게 사랑스러움이 없기 때문일까?
- 하나님이 그 사람을 그렇게 지으셨기 때문일까?
- 만약 하나님이 사랑이시고, 그 하나님이 사람을 지으셨으면,
- 모든 사람을 사랑스럽게 만들지 않으셨을까?
- 그럼에도 왜 우리는 사랑스러움을 발견하지 못하는 것일까?
이러한 질문을 통해 그 사람의 내면으로 한 걸음 더 들어가야 한다.
- 그 사람에게 왜 사랑이 어려운지 원인을 분석해야 한다.
이유는 분명하다.
- 그 사람의 가치 기준, 인식 체계가 사랑과 동떨어져 있기 때문이다.
- 사랑에서만 기쁨을 느끼고, 사랑 없음에서 슬픔을 느끼는 인식 체계가 아니라,
- 소유, 능력, 성과에서 기쁨을 느끼기 때문이다.
그러니 상대방의 내면을 볼 수 있는 눈이 없고,
- 그러니 사랑스러움도 발견할 수 없는 것이다.
- 오직 그 사람의 소유, 능력, 성과로만 판단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 사람은 사랑하려 했는데 실패한 것이 아니다.
- 애초부터 마음에 사랑이 없었다.
- 가치 기준이 소유, 능력, 성과를 기준으로 수직 구조 인식 체계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이다.
- 그러니 사랑할 마음이 없고,
- 그러니 사랑에 실패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 어떻게 사랑할 마음을 가질 수 있을까?
- 가치 기준, 인식 체계에서부터 바뀌어야 한다.
- 수직 구조에서 벗어나 수평 구조를 가져야 한다.
- 세상 만물을 수직 배열하는 사고 방식에서 벗어나서, 모든 것을 동등하게 인식하는 연습이 먼저 필요하다.
- 그래야만 사랑할 마음을 가질 수 있다.
바로 이것 때문에 바울이 이번 본문을 기록한 것이다.
- 자랑스러움을 부끄러워하고, 부끄러움을 자랑한 것이다.
- 그것이 우리 안에 틀 지워져 있는 수직 구조를 파괴하기 때문이다.
- 우리가 자랑스러워하고 부끄러워했던 기준을 무너뜨리기 때문이다.
- 이를 통해 사람의 겉모습이 아닌 내면을 볼 수 있는 눈을 갖게 해주기 때문이다.
- 그래서 모든 사람의 사랑스러움을 발견하도록 해주기 때문이다.
물론 사랑스러움을 발견한다고 쉽게 사랑하게 될까?
- 그것도 아니다.
- 당연히 노력과 희생이 필요하다.
- 쉽지 않다.
그러나 이전과는 천지 차이이다.
- 사랑스럽지 않은 사람을 사랑하는 것과
- 사랑스러운 사람을 사랑하는 것은 완전히 다른 것이다.
바울이 본문을 통해 하는 일이 바로 이것이다.
- 모든 사람의 사랑스러움을 발견하게 하는 것이다.
- 그것이 바울이 신비한 경험을 부끄러워하고, 질병을 자랑한 이유이다.
- 우리가 모든 사람의 사랑스러움을 발견하여 사랑할 수 있도록 말이다.
그것이 바울의 일관된 궁극적 목적이다.

<미양교회 팟캐스트 양따양>
미양교회에서 했던 설교를 바탕으로 진솔하게 신앙 경험을 이야기합니다.
팟캐스트도 많이 들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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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양교회
예배 대신 예수님, 설교 대신 성경, 건물 대신 사람을 중심으로 하는 미양교회가 만드는 방송입니다. 토끼와 개구리가 진솔하게 신앙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어린양과 같이 십자가에 죽고 부활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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