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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행전

사도행전(48) 26:1-32 바울의 마지막 항변 - 성경에 나온 것밖에는 말한 것이 없다.

이제 드디어 바울의 항변도 끝이 난다.

- 본문 이후 바울은 천신만고 끝에 로마에 도착하고, 로마에서 많은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했다는  소식을 전하며 사도행전이 끝난다.

- 그러니까 이번 본문이 바울의 복음을 들을 수 있는 마지막이다.

따라서 본문은 바울의 항변을 완결한다.

 

바울의 논리 구조 전체를 정리하겠다.

먼저 바울이 항변을 시작하게 된 계기는 무엇이냐?

- 유대 사람들의 공격이다.

그들은 어떻게 공격했는가?

- 두 가지다.

- 첫째로, 바울이 민족, 율법, 성전을 부정한다고 했다.

- 둘째로, 바울이 로마 황제를 부정한다고 했다.

[행 24:5~6] 우리가 본 바로는, 이 자는 염병 같은 자요, 온 세계에 있는 모든 유대 사람에게 소란을 일으키는 자요, 나사렛 도당의 우두머리입니다. (6) 그가 성전까지도 더럽히려고 하므로, 우리는 그를 붙잡았습니다.

유대 사람들이 고소한 두 가지 죄는 사실상 굉장히 심각하다.

- 민족, 율법, 성전을 부정하는 것은 이스라엘의 법정인 산헤드린 공의회에서 사형을 구형할 수 있는 유일한 죄다.

- 이는 산헤드린 공의회의 사형 구형을 금지하는 로마가 허락해준 유일한 죄다.

- 게다가 로마 황제 부정은 말할 것도 없이 사형이다.

- 그것도 가장 고통스러운 방법으로 집행하는 사형이다.

그러니까 유대 사람들의 고소 중에 일부만이라도 사실로 확인되면, 곧바로 사형이 집행될 수 있는 긴박한 상황이다.

- 유대 사람들도 참 똑똑하다.

- 단순하게 한 가지로 바울을 고소한 것이 아니라, 바울을 죽일 수 있는 모든 방법을 총동원했다.

- 본문에서는 유대 사람들의 고소를 부정하고, 그들의 논리를 희화화하여 의도적으로 어리석어 보이게 표현했지만, 실상은 굉장히 치밀하고 전략적이며 가혹했다.

- 바울을 충분히 궁지에 몰아 죽일 수 있었다.

- 바울을 죽이려 했던 유대 사람들은 일반인이 아니라 이스라엘 전체를 좌지우지했던 닳고 닳은 노련한 정치꾼들이었다.

그러니 바울이 얼마나 무서웠을까.

- 말 한마디 잘못하면 바로 죽을 수 있는 위태로운 상황이다.

- 이스라엘에서 제일 똑똑하고 노련한 정치꾼들이 힘을 모아 바울을 매장하려 하는데, 어떻게 견딜 수 있겠는가.

- 오히려 본문의 표현 때문에 바울이 겪고 있는 긴박함이 희석된다.

- 물론 그것이 복음의 강력함을 드러내려는 본문의 의도였을 테지만 말이다.

 

그래서 바울의 항변 포인트도 언제나 두 가지이다.

첫째로, 자신은 민족, 율법, 성전을 부정하지 않았고, 둘째로, 황제를 거스르지 않았다고 말한다.

[행 25:8] 바울은 "나는 유대 사람의 율법이나 성전이나 황제에 대하여 아무 죄도 지은 일이 없습니다" 하고 말하여 자신을 변호하였다.

그런데 두 가지를 똑같은 비중으로 항변하지 않는다.

- 첫째 고소만 항변하고 둘째 고소는 항변하지 않는다.

- 왜냐하면 첫째 고소만 방어가 되면, 둘째 고소는 자동으로 방어되기 때문이다.

- 그래서 본문에서 바울이 자신을 항변할 때 황제 이야기는 하지 않는다.

 

왜 그렇냐면,

- 유대 사람들이 말하길, 바울은 예수가 그리스도, 곧 새로운 메시야라며, 그가 민족, 율법, 성전을 대체하는 유일한 주님이라고 주장한다.

- 이는 민족, 율법, 성전을 부정하는 것이다.

- 그런데 그로 인해 유대 민족 안에 분란이 일어나고, 그 분란 때문에 로마의 평화가 깨진다.

- 게다가 그 메시야는 황제에 버금가는 정치적 왕이라는 것이다.

[행 17:7] 그 사람들은 모두 예수라는 또 다른 왕이 있다고 말하면서, 황제의 명령을 거슬러 행동을 합니다.

- 그러니 바울의 주장은 로마 황제까지 부정한다.

- 이것이 유대 사람들이 바울을 고소하는 논리이다.

그런데 이 논리에는 약점이 있다.

- 만약 메시야가 오셨다는 바울의 주장이 새로운 것이 아니라면,

- 그 주장이 구약에서 이미 예언된 것이라면,

- 그래서 바울의 주장이 민족, 율법, 성전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면,

- 그리고 바울의 주장이 로마 황제가 인정한 유대교 교리 안에 이미 있는 주장이라면,

- 유대 민족 안에 있는 분란은 로마의 평화를 깨뜨리는 심각한 문제가 아니라, 단순한 교리 논쟁이며,

- 그 논쟁에서 나온 메시야 주장은 정치적 문제가 아니라, 유대교 안에서 일어난 종교적 문제가 된다.

따라서 바울의 주장이 유대교 교리 안에 있다는 것만 밝히면, 바울이 민족, 율법, 성전을 부정한다는 논리뿐만 아니라 로마 황제를 부정한다는 논리가 동시에 깨진다.

- 그래서 바울은 자신의 마지막 항변 기회에 자신의 주장이 예언자들과 모세에 근거한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행 26:22] 그러나 내가 이 날까지, 하나님의 도우심을 받아서, 낮은 사람에게나 높은 사람에게나 이렇게 서서 증언하고 있는데, 예언자들과 모세가 장차 그렇게 되리라고 한 것밖에는 말한 것이 없습니다.

- 이렇게만 결론이 나면, 유대 사람들의 두 가지 고소를 모두 방어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바울의 논증 포인트는 자신과 자신의 주장이 유대교에서 한치도 벗어나지 않았다는 것이다.

바울은 자신이 정통 유대인 중에서도 가장 엄격한 바리새파라고 주장한다.

[행 26:4-5] 내가 젊었을 때부터 살아온 삶을 모든 유대 사람이 알고 있습니다. 곧 그들은 내가 내 동족 가운데서, 그리고 예루살렘에서, 처음부터 어떻게 살았는지를 알고 있습니다. (5) 그들은 오래 전부터 나를 알고 있었으므로, 증언하려고 마음만 먹으면, 그들은 내가 우리 종교의 가장 엄격한 파를 따라 바리새파 사람으로 살아왔다는 것을 인정할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자신의 주장 역시 하나님께서 주신 약속에 근거한다고 말한다.

[행 26:6-7] 지금 나는, 하나님께서 우리 조상들에게 주신 약속에 소망을 두고 있기 때문에, 여기에 서서 재판을 받고 있습니다. (7) 우리 열두 지파는 밤낮으로 열심히 하나님을 섬기면서, 그 약속이 이루어지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전하, 나는 바로 이 소망 때문에 유대 사람에게 고발을 당한 것입니다.

게다가 유대교에 대한 열정 또한 그리스도인을 죽일 만큼 컸음을 밝힌다.

[행 26:9-11] 사실, 나도 한때는, 나사렛 예수의 이름을 반대하는 데에, 할 수 있는 온갖 일을 다 해야 한다고 생각하였습니다. (10) 그래서 나는 그런 일을 예루살렘에서 하였습니다. 나는 대제사장들에게서 권한을 받아 가지고 많은 성도를 옥에 가두었고, 그들이 죽임을 당할 때에 그 일에 찬동하였습니다. (11) 그리고 회당마다 찾아가서, 여러 번 그들을 형벌하면서, 강제로 신앙을 부인하게 하려고 하였습니다. 나는 그들에 대한 분노가 극도에 다다랐으므로, 심지어 외국의 여러 도시에까지 박해의 손을 뻗쳤습니다.

이것이 전부 다 바울 자신이 유대교에 깊이 뿌리박혀 있음을 주장하기 위한 밑밥이다.

- 괜히 아무 때나 자신의 구원 과정을 자랑삼아 간증하는 것이 아니다.

- 살기 위한 유일한 방법이었다.

 

그런데 유대 사람들이 고소한 바울 주장의 핵심이 뭐였냐?

- 예수님이 그리스도라는 것이다.

- 이 결론은 구약에 안 나온다.

- 그리스도에 대한 설명만 나오지, 그 그리스도가 예수라는 말은 없다.

그런데 이 결론을 도출하는 전제는 모두 구약에 나온다.

- 바울은 그것을 23절에서 짧게 요약한다.

[행 26:22~23] 그러나 내가 이 날까지, 하나님의 도우심을 받아서, 낮은 사람에게나 높은 사람에게나 이렇게 서서 증언하고 있는데, 예언자들과 모세가 장차 그렇게 되리라고 한 것밖에는 말한 것이 없습니다. (23) 그것은 곧, 그리스도는 고난을 당하셔야 한다는 것과, 그는 죽은 사람들 가운데서 가장 먼저 부활하신 분이 되셔서, 이스라엘 백성과 이방 사람들에게 빛을 선포하시리라는 것입니다.

- 즉, 구약에서 예고한 그리스도는 고난을 당하셔서 죽는다.

- 그리고 부활하신다.

-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과 이방 사람들, 곧 인류 전체에게 구원을 주신다.

- 이 사실은 예언자와 모세를 믿는 사람이라면 모두 인정하는 바이다.

그런데 바울은 예수라는 사람이 고난 당해 죽고, 부활하며, 인류 전체에게 구원을 주신 것을 기적적으로 경험한 것이다.

- 그것을 설명하는 것이 12-18절이다.

- 바울은 예수님 만난 경험을 상당히 자세하게 설명한다.

- 죽으셨던 예수님이 다시 살아나셔서 바울에게 나타나셨다.

- 바울은 '해보다 더 눈부신 빛'을 보았다.

[행 26:13] 임금님, 나는 길을 가다가, 한낮에 하늘에서부터 해보다 더 눈부신 빛이 나와 내 일행을 둘러 비추는 것을 보았습니다.

- 그리고 그 빛이 '주님', 곧 그리스도이심을 직관적으로 깨달았다.

[행 26:15] 그래서 내가 '주님, 누구십니까?' 하고 물었더니, 주님께서 '나는 네가 핍박하는 예수이다.

- 이를 통해 바울은 예수님이 죽고 부활하셨다는 것을 경험했다.

- 그리고 그 경험을 이렇게 논증하는 것이다.

결국 이 논증은 구약의 논증과 결합하여 예수가 그리스도라는 결론을 도출하는 핵심이 된다.

- 물론 이 경험은 너무 개인적이라서 객관적인 근거가 되기 부족할 수 있다.

- 하지만 같은 경험을 한 유대인 일행이 있기 때문에 상당한 효력을 갖는다.

- 베스도도, 아그립바 왕도 함부로 부정할 수 없을 만큼 말이다.

 

이렇게 바울은 예수가 그리스도라는 주장이 예언자들과 모세에 근거하고 있음을 논증했다.

- 이 논증은 바울이 민족, 율법, 성전을 부정한 것이 아니라,

- 유대교 안에 있다는 것을 논증한다.

- 게다가 이는 바울의 주장이 유대 민족 안에 분란을 일으켰다는 주장을 반박한다.

- 이를 통해 바울이 로마의 평화를 깨뜨렸으며, 

- 특히 로마 황제를 부정하는 정치적 입장을 가졌다는 주장도 반박한다.

이로써 바울은 모든 혐의에서 벗어나게 된 것이다.

[행 26:30~32] 왕과 총독과 버니게 및 그들과 함께 앉아 있는 사람들이 다 일어났다. (31) 그들은 물러가서 서로 말하였다. "그 사람은 사형을 당하거나, 갇힐 만한 일을 한 것이 하나도 없소." (32) 그 때에 아그립바 왕이 베스도에게 말하였다. "그 사람이 황제에게 상소하지 않았으면, 석방될 수 있었을 것이오."

- 바울의 항변을 들은 베스도, 아그립바 왕 모두 바울의 무죄를 인정한다.

 

뿐만 아니라 바울의 항변은 전도의 역할까지 겸했다.

- 특히 예언자와 모세를 믿는 아그립바 왕에게는 더욱 그러했다.

[행 26:28~29] 그러자 아그립바 왕이 바울에게 말하였다. "그대가 짧은 말로 나를 설복해서, 그리스도인이 되게 하려고 하는가!" (29) 바울이 대답하였다. "짧거나 길거나 간에, 나는 임금님뿐만 아니라, 오늘 내 말을 듣고 있는 모든 사람이, 이렇게 결박을 당한 것 외에는, 꼭 나와 같이 되기를 하나님께 빕니다."

- 구약의 예언과 바울의 경험을 결합하면 예수님이 그리스도라는 결론이 나올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 결론을 부정하기 위해서는 구약과 바울의 경험 중 하나를 부정해야 하는데,

- 구약을 부정할 수는 없고, 바울의 경험 역시 증인이 있기 때문에 쉽게 부정할 수 없었다.

 

이렇게 바울의 마지막 항변이 끝난다.

- 바울은 무죄라는 결론을 얻는다.

그런데 이 결론은 굉장히 무서운 것이다.

- 왜냐하면 바울이 무죄가 되는 즉시 바울의 주장은 참이 되기 때문이다.

- 즉, 예수님이 그리스도라는 결론까지 동시에 내려진다.

게다가 그 결론을 바울이 혼자 떠든 것이 아니라, 베스도와 아그립바 왕 그리고 그들을 보좌하는 로마와 이스라엘에서 제일 똑똑한 정치가, 행정가들이 그 결론을 인정한 것이다.

[행 26:30~31] 왕과 총독과 버니게 및 그들과 함께 앉아 있는 사람들이 다 일어났다. (31) 그들은 물러가서 서로 말하였다. "그 사람은 사형을 당하거나, 갇힐 만한 일을 한 것이 하나도 없소."

- 바울의 항변은 이렇게 큰 파급 효과를 가져왔다.

 

결론 -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우리는 믿지 못할까?

이 정도면 믿을 만한 충분한 근거가 있다고 볼 수 있지 않을까?

- 많은 증거 중에 딱 하나만 집중해서 보면,

- 베스도 총독, 아그립바 왕, 그들의 보좌관은 바울과 유대 사람들의 논쟁에서 가장 객관적인 입장이다.

- 엄밀하게 보면, 이들은 오히려 살짝 유대 사람들 편이다.

- 왜냐하면 이들은 바울보다 유대 사람들의 환심을 사는 것이 훨씬 더 이득이기 때문이다.

- 그래서 바울을 예루살렘에 보내려 했던 사람들이다.

- 그렇기 때문에 이들이 바울에 대해 내린 무죄 판정은 정황적으로 객관적일 수밖에 없다.

- 이 판정은 이들에게 유대 사람들의 환심을 잃어서 손해를 끼치기 때문이다.

- 손해를 감수한 판정은 옳을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즉, 이스라엘 지역에서 가장 똑똑한 십수 명의 사람들이 모여서 객관적일 수밖에 없는 결론을 내렸다.

- 그런데 그 결론이 예수가 그리스도라는 것이다.

 

여기에 더하여, 같은 결론이 2000년 동안 반박되지 않았다.

- 아무도 관심 가질 필요 없는 하찮은 사건이기 때문이 아니다.

- 기독교는 때때로 국가의 통치 수단으로 보호받았지만, 상당 기간 동안 국가 전복 수단으로 박해를 받았다.

- 당대의 가장 똑똑한 사람들이 기독교를 부정하기 위해 온갖 계략을 꾸몄다.

- 2000년 동안 말이다.

불교와 이슬람교의 태동은 사실이 아닌 교주의 신화적 일생을 기반으로 한다.

- 게다가 신화적 일생이 교리 전체에 큰 영향을 주지 않는다.

- 교리는 교주의 가르침에 기반한다.

- 그러기 때문에 그 신화적 일생의 사실 여부를 두고 크게 논쟁하지 않는다.

- 교주의 일생이 일부 허구라고 해도 그 종교의 기반을 흔들지 못한다.

하지만 기독교의 태동은 기독교 교리 전체를 떠받치는 교리의 핵심이다.

- 다른 종교와 다르게, 태동이 흔들리면 교리 전체가 무너진다.

-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이 부정되면, 기독교는 무너진다.

- 게다가 태동이 신화가 아니라 사실이라 주장한다.

- 그래서 훨씬 더 취약하다.

- 반증이 나올 수 있는 가능성이 더 높다.

-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너지지 않았다.

따라서 기독교는 참일 가능성이 높다.

 

우리가 성경을 잘 모를 때는 몰라서 믿지 못했다.

- 하지만 이제는 그렇게 말할 수도 없다.

- 많은 성경을 남 부끄럽지 않게 열심히, 자세하게, 진지하게 봤다.

- 그래서 성경의 논리가 얼마나 탄탄하고, 매력적인지 충분히 느꼈다.

- 우리 중 누구도 성경이 틀렸다고 말하기는 어려운 상황이다.

그럼에도 왜 믿지 못할까?

- 왜 헌신하지 못할까?

여러 가지 이유 중에 딱 하나만 집중해서 보면,

- 믿기 싫어서이다.

- 감정과 의지의 문제이다.

- 믿고 싶은 의지도 없고, 믿으면 큰 손해를 볼 것 같은 감정 때문이다.

- 기적의 경험이 없어서라고 말할 수도 있지만, 돌이켜보면 우리 모두 기적을 경험했다.

- 문제는 그 경험이 우리를 붙잡아주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왜 싫냐?

- 믿음으로 인한 이득은 불분명하고, 손해는 분명하게 느끼기 때문이다.

- 이득은 당장 느껴지지 않고, 손해는 당장 느껴지기 때문이다.

- 그렇기 때문에 믿음에 투자하지 않는 것은 사실상 합리적이다.

 

그런데 이를 비틀어서 비트코인에 비유해보자.

초창기에 비트코인에 대해 들은 사람은 많다.

- 그러나 실제로 비트코인을 산 사람은 적다.

- 아마도 대부분의 사람은 비웃었을 것이다.

게다가 산 사람 중에도 중간에 팔지 않고 끝까지 가지고 있는 사람은 더 적다.

- 몇 차례 급등과 폭락을 보며, 대부분은 더 떨어질 것을 예상하고 팔았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까지 가지고 있는 사람은 말도 안 되게 큰돈을 벌었다.

- 대략 1원이었던 1비트코인이 얼마전  8천만 원까지 올랐었다.

- 즉, 약 10년 만에 8천만 배가 되었다.

- 만약 만원으로 비트코인을 샀다면, 8천억 원의 거부가 되는 것이다.

- 문제는 그런 사람은 극히 일부라는 것이다.

 

이렇게 대박에 투자한 사람이 왜 이렇게 적을까?

- 단순하다.

- 이득은 당장 느껴지지 않고, 손해는 당장 느껴지기 때문이다.

- 누가 1원짜리가 10년 만에 8천만 원이 되리라고 믿었겠는가.

- 비트코인을 아무리 잘 알았어도, 백만 원일 때, 천만 원일 때 팔았을 것이다.

- 그러고는 자신이 얼마나 현명했는지 많은 사람들에게 자랑했을 것이다.

- 결국 그는 당장 느껴지는 천만 원을 얻기 위해 당장 느껴지지 않는 7천만 원을 잃었다.

- 팔 당시에는 투자 천재라는 소리를 들었겠지만, 지금은 바보 취급받는다.

 

신앙도 마찬가지다.

- 이득은 당장 느껴지지 않고, 손해는 당장 느껴진다.

- 그래서 신앙에 투자하지 않는 것이다.

- 그리고 투자했더라도 중간에 빠지는 것이다.

지금은 그런 사람이 현명하다는 평가를 받을 것이다.

- 신앙이 아닌 세상에 투자해서 돈 더 벌고 더 유명해졌을 테니 말이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달라질 것이다.

- 종말이 오면, 투자 천재라는 소리를 듣던 사람들이 바보 취급받을 것이다.

- 그리고 신앙에 투자해서 바보 취급받았던 사람들만이 환호받을 것이다.

 

이러한 신앙을 들은 사람은 많다.

- 하지만 실제로 믿은 사람은 적다.

- 대부분의 사람이 비웃는다.

게다가 믿은 사람 중에 중도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믿은 사람은 더 적다.

- 반복되는 신앙의 기복 중에 세상에서 도태되는 것이 두려운 나머지 대부분 신앙을 포기한다.

- 대놓고 포기하지 않더라도 은근히 변질한다.

그러나 끝까지 믿는 사람은 말도 안 되게 큰 보상을 받는다.

- 보상은 영생이다.

- 이는 비트코인의 8천만 배보다 더 큰 수익률이다.

 

마지막으로, 성령의 계시를 받아 분명히 예언하건대, 비트코인은 폭락할 것이다.

- 종말이 되면, 비트코인은 사라질 것이다.

- 8천만 배에서 얼마 후에 1억 배가 되어도, 결국에는 아무것도 돌려받지 못할 것이다.

- 비트코인뿐만 아니라, 돈, 명예, 권력, 평판 등 세상 전부가 사라질 것이다.

우리가 투자해야 할 것은 종말 이후에도 남아있을 것이다.

- 그래서 만약 우리가 끝까지 믿음을 지킨다면,

- 종말에, 지금 우리가 비트코인을 1원에 샀던 사람들을 바라보듯, 모든 사람들이 우리를 바라볼 것이다.

- 투자 천재라는 칭송을 받을 것이다.

그날을 소망하자.

- 우리에게 스티브 잡스, 워런 버핏, 일론 머스크, 빌 게이츠보다 더 큰 영광이 주어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