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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베소서

에베소서(12) 6:10-24 하나님의 무기로 무장하십시오. - 신앙 생활의 힘든 이유

우리는 왜 신앙 생활을 하는가?

- 사실 명제로서, 우리는 신앙 생활을 하도록 지어졌다.

- 당위 명제로서, 그래서 사람이라면 마땅히 신앙 생활을 해야만 한다.

- 가치 명제로서, 따라서 신앙 생활을 할 때 사람은 가장 큰 행복을 얻는다.

왜 신앙 생활할 때 가장 행복하냐?

- 신앙을 통해서 사람은 온 우주보다도 더 높은, 존재하는 모든 것 중에서 가장 높은 존재가 되기 때문이다.

- 즉, 하나님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 이는 오직 신앙을 통해서만 가능하다.

성경은 그러한 상태를 정말 다양하게 표현한다.

- 구원, 천국, 의로움, 기쁨, 영광, 영생, 혼인 잔치, 해방, 사랑, 생명, 부활 등.

- 각 단어가 강조하는 것은 다르지만, 하나님(God) 혹은 하나님 같이(God-like) 되는 것을 의미한다.

여기서 '하나님'과 '하나님 같이'를 동일시 했는데, 

- 하나님의 속성은 너무나 순수해서 아무리 작은 불순물로도 본질이 완전히 훼손된다.

- 그래서 '하나님 같이'가 '하나님'과 완전히 일치하지 않는다면, '하나님 같이'는 아무런 가치도 없는 것이다.

- 따라서 사람이 '하나님 같이' 된다는 것은, 하나님과 완전히 같은 속성과 본질을 갖는 것이다.

- 너무 같아서 구분할 수 없지만, 그러나 동시에 하나님의 인격과 사람의 인격은 분명하게 구분되는 신비한 상태이다.

- 이러한 신비는 어떠한 비유로도 설명할 수 없는, 그래서 사람이 이해하고 상상할 수 없는, 말 그대로 신비한 상태이다.

- 이러한 신비에 대해서는 그동안 충분히 다뤘다.

게다가 내가 생각하는 신앙의 최대 매력은,

- 신앙이 주는 보상 뿐만 아니라, 보상을 얻는 방법이다.

- 세상에서 보상을 받는 방법은 경쟁이다.

- 다른 사람보다 한 발자국이라도 더 가야한다.

- 다른 사람을 이겨야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있다.

- 그래서 다른 모든 사람은 경쟁자 혹은 적이 된다.

- 반면에 내가 가진 페널티를 전혀 인정해주지 않는다.

- 내가 팔이 없고, 다리가 없어도 같은 트랙에서, 같은 조건에서 뛰어야 한다.

-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 발 더 나가야 보상이 주어진다.

그래서 세상에서 성공하는 사람은 어느 정도 정해져 있다.

- 건강해야 하고, 똑똑해야 하고, 성실해야 하는 등.

- 물론 시대마다 성공하는 인물상에는 차이가 있지만 말이다.

- 따라서 자신이 가진 조건에 의해 성공 여부가 어느 정도 결정 된다.

- 마치 기본적으로 키가 커야 프로 농구에서 성공할 수 있는 것처럼 말이다.

반면에 신앙은 경쟁이 없다.

- 철저하게 개인전이다.

- 게다가 각 개인마다 보상을 받을 수 있는 커트라인도 다르다.

- 내가 가진 조건에 맞게 커트라인이 조정된다.

- 만약 나에게 팔, 다리가 없으면, 몸통으로 한 바퀴 구르는 것만으로도 커트라인을 넘을 수 있다.

- 그러니 다른 사람에게 신경 쓸 필요 없이, 오로지 나에게만 집중할 수 있다.

- 또한 다른 사람과 비교하고 경쟁할 필요 없으니, 주변 사람을 적이 아닌 동료로 생각할 수 있다.

- 온전히 사랑할 수 있다.

- 그래서 나에 대한 이해와 다른 사람에 대한 사랑이 함께 올라간다.

이러니 신앙 생활이 우리에게 행복을 줄 수 밖에 없지 않겠는가!

- 신앙은 나를 완전한 '나'로 만들어 준다.

- 그리고 신앙은 주변 사람을 경쟁자가 아닌 있는 그대로 그 사람으로 사랑하게 해준다.

- 게다가 신앙을 통한 보상 또한 어떤 것과도 비교할 수 없이 크다.

여기까지가 신앙 생활이 쉽고, 재밌고, 좋은 이유이다.

하지만 신앙 생활이 힘든 이유도 있다.

- 이것이 이번 본문의 핵심 전제이다.

본문은 신앙 생활을 하기 위해서 하나님의 무기로 무장하라고 권면한다.

- 만약 신앙 생활이 쉽고 재밌기만한 놀이라면, 무장할 필요가 왜 있겠는가.

- 무장하라는 권면에는, 신앙 생활이 놀이나 취미가 아니라 전쟁이라는 전제가 깔려있다.

- 어렵고, 힘들고, 위험하며, 생명의 위협이 있을 수 있다는 전제가 깔려 있다.

- 따라서 본문의 권면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신앙 생활이 왜 힘든지 알아야 한다.

- 신앙의 밝은 면을 통해 신앙 생활을 해야 할 동기를 얻는다면, 신앙의 어두운 면을 통해 신앙 생활 하는 과정 속에 있을 위험에 대비해야 한다.

비유로 말하면, 신앙 생활은 마치 전 재산 10억을 투자해서 창업을 하는 것과 같은 것이다.

- 성경에서는 밭에 숨겨 놓은 보물로 비유했는데, 그것을 시대에 맞게 창업으로 바꿨다.

[마 13:44] "하늘 나라는, 밭에 숨겨 놓은 보물과 같다. 어떤 사람이 그것을 발견하면, 제자리에 숨겨 두고, 기뻐하며 집에 돌아가서는, 가진 것을 다 팔아서 그 밭을 산다."

- 10억이면 작은 연립주택 하나 사서 월세 받아 살면 편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힘들게 도전을 하는 것이다.

- 왜 도전을 하냐면, 나의 능력과 내가 가진 아이템이 성공한다는 확신이 있기 때문이다.

- 위험도 크지만 보상도 클 것이란 기대 때문이다.

- 건물주는 원금도 안정적이고, 1년에 수천 만원씩 월세도 보장된다.

- 그러나 창업은 잘 되면 대박, 안되면 원금까지 날릴 수 있다.

- 현재의 안정성을 뿌리치고 미래에 있을 더 큰 안정성을 위해 불안정성 속으로 뛰어 드는 것이다.

이런 상황이 되면 어떤 문제가 있냐?

- 만약 창업을 하고 1년 안에 사업이 잘 되면, 아무 문제가 없다.

- 문제는 1년, 2년, 5년, 10년 계속해서 사업은 안되고 빚만 늘어날 때 생긴다.

- 문제는 내적, 외적 문제로 나뉜다.

외적 문제는, 자신에 대한 다른 사람들의 의심이다.

- 주변 사람들이 나의 선택을 의심한다.

- 과연 내가 창업을 할 수 있는 능력이 있는지 의심한다.

- 또한 내 아이템이 과연 성공할 수 있는 것인지 의심한다.

- 게다가 그 의심은 시간이 지날수록 확신으로 굳어진다.

- 그러면서 창업을 포기하라고 조언 아닌 조언을 한다.

- 의도는 악의일 수도 있고, 선의일 수도 있지만 말이다.

동시에 내적 문제가 일어난다.

- 나도 나를 의심하는 것이다.

- 내가 과연 성공할 수 있을지 스스로 의심한다.

- 의심은 주변 사람들의 조언으로 강화된다.

- 그래서 포기할지를 고민하게 된다.

이것이 신앙이 가진 가장 어두운 면이다.

- 이런 일이 생기는 본질적인 원인은 신앙으로 인한 보상이 바로 나오지 않는다는 것이다.

- 죽어 봐야 안다는 것이다.

- 생전에 보상을 받는다고 해도, 자기 자신 밖에 모른다는 것이다.

- 주변 사람들이 알아도, 일부만이 공감할 수 있다는 것이다.

- 그래서 신앙 생활을 하면 죽을 때까지 내적, 외적 문제를 겪을 수 밖에 없다.

바울도 같은 문제를 겪었다.

- 주변 사람들이 바울을 의심했다.

- 바울이 창업(신앙 생활)한 것 때문에 망할 것이라고 모두 예상했다.

- 게다가 실제로 바울은 갖히고, 매맞고, 욕먹고, 결국 투옥되었다.

- 그런 바울을 선의에서 불쌍해했고, 악의로 부끄러워했다.

[딤후 1:8] 그러므로 그대는 우리 주님에 대하여 증언하는 일이나 주님을 위하여 갇힌 몸이 된 나를 부끄러워하지 말고, 하나님의 능력을 힘입어 복음을 위하여 고난을 함께 겪으십시오.

[딤후 1:12] 그러므로 나는 이런 고난을 당하면서도 부끄러워하지 않습니다. 나는, 내가 믿어 온 분을 잘 알고 있고, 또 내가 맡은 것을 그분이 그 날까지 지켜 주실 수 있음을 확신합니다. 

[딤후 1:16] 주님께서 오네시보로의 집에 자비를 베풀어 주시기를 빕니다. 그는 여러 번 나에게 용기를 북돋아 주었고, 내가 쇠사슬에 매인 것을 부끄러워하지 않았고,

- 이렇게 바울은 외적 갈등을 겪고 있었다.

반면 바울의 내적인 갈등이 구체적으로 나온 본문은 없다.

- 하지만 바울이 죽기 얼마 전까지 자신을 '죄인 중에 괴수'라고 칭한 것을 보아, 복음의 능력을 의심하는 마음이 있었을 것이다.

- 바울 역시 많은 내적 갈등이 있었지만, 그래서 신앙을 포기하고 싶은 생각도 있었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무기로 무장해서 끝까지 신앙을 지킬 수 있었던 것이다.

우리도 마찬가지이다.

- 교회가 작은 것 때문에, 다른 사람의 의심스러운 눈총을 받는다.

- 그래서 괜히 움츠러들고, 교회를 숨기려 한다.

- 동시에 그런 의심 때문에 내 안에서도 의심이 생긴다.

- 내가 제대로 교회 다니고 있는지 의심이 든다.

- 이러한 위험한 교회 말고 안정적인 교회 다녀야 하나 고민이 된다.

그래서 바울은 우리에게 같은 권면을 하는 것이다.

- 우리도 똑같이 내적, 외적 갈등을 겪을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 이 갈등은 우리로 하여금 신앙을 포기하게 만들기 충분하기 때문이다.

본문은 이러한 갈등을 '악한 영들과의 싸움'이라고 말한다.

[엡 6:12] 우리의 싸움은 인간을 적대자로 상대하는 것이 아니라, 통치자들과 권세자들과 이 어두운 세계의 지배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한 영들을 상대로 하는 것입니다. 

- '인간을 적대자로 상대하는 싸움'이 아니라고 말한다.

- 반면에 나는 주변 사람들(외적)과 나 자신(내적)과의 갈등이라고 표현했다.

- 즉, 인간을 적대자로 상대하는 싸움처럼 표현했다.

왜 이런 차이가 있냐면?

- 기본적으로 두 가지가 다 맞다.

- 신앙의 어려움은 직접적으로 사람이 준다.

- 그러나 동시에 사람을 통해 우리의 신앙을 뒤흔드는 주체는 악한 영이다.

- 그래서 따지고보면 어떻게 표현해도 상관 없다.

예를 들어, 예수님을 십자가에서 죽인 주체는 누구인가?

- 직접적으로는 병사들이고, 병사들 뒤에 있는 빌라도며, 빌라도를 선동한 바리새인들이다.

- 동시에 그 모든 것을 주도한 악한 영이기도 하다.

- 이렇게 신앙으로 인한 고난은 사람과 악한 영으로부터 동시에 온다.

바울도 마찬가지이다.

- 본문에서는 악한 영을 적대자로 정했다.

- 그러나 사람을 적대자로 정하는 본문도 있다.

[갈 1:9] 여러분이 이미 받은 것과 다른 복음을 여러분에게 전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가 누구이든지, 저주를 받아야 마땅합니다.

그렇다면 왜 본문은 '사람'이 아니라 '악한 영'이라고 특정해서 표현했냐?

- 이를 통해 교회를 하나 되게 하기 위한 것이다.

- 교회 안에서 알 수 없는 상황 때문에 갈등이 생겼고, 그 갈등으로 인해서 사람들의 신앙이 흔들리는 상태가 된 것이다.

- 그런데 그 갈등을 일으킨 사람들이 교회에서 배제되어야 할만큼 신앙에서 벗어난 사람들이 아니었다.

- 바른 신앙 안에서 사소한 오해로 인한 갈등이었다.

- 그럴 때 이 갈등을 사람이 아닌 악한 영이 교회를 분열시키기 위한 '악마의 간계'라고 부른다.

- 즉, 갈등의 원인을 '악한 영'에게 돌려서, 갈등을 일으킨 사람을 포용하고, 갈등으로 분열된 교회를 하나로 회복시키려는 것이다.

반면에, 교회의 대적자를 '악한 영'이 아니라 '사람'으로 표현할 때는 어떤 상황이냐?

- 교회 안에서 어떤 사람에 의해 갈등이 생겼는데,

- 물론 그 갈등도, 크게 보면, 악한 영으로 인한 것이다.

- 그런데 그 사람이 교회에서 배제되어야 할만큼 신앙에서 벗어난 사람이기 때문이다.

- 그런 사람은 반드시 교회에서 내쫓아야만 교회가 교회로 유지될 수 있기 때문이다.

- 그럴 때에는 갈등의 원인을 두루뭉실하게 '악한 영'이라고 말하지 않고, 정확하게 그 '사람'을 지목하는 것이다.

- 그런 예가 대표적으로 갈라디아서이다.

- 갈라디아 교회 안에서 강하게 할례를 주장하며 신앙에서 벗어난 사람이 있었고, 그 사람으로 인해 교회 전체가 혼란에 빠졌기 때문에, 그런 사람을 교회에서 내쫓으라고 권면한다.

그러나 에베소 교회는 그런 심각한 상황이 아니었다.

- 신앙의 본질적인 문제는 없었다. 진리의 문제가 아니었다.

- 사소한 관계 문제가 있었던 것으로 생각된다.

하지만 사소하다고 해서 하찮은 것은 아니다.

- 사소한 문제로도 교회는 충분히 분열될 수 있기 때문이다.

- 사소한 문제로도 우리는 신앙이 흔들려 떠날 수 있다.

- 사소한 말 한마디 실수 때문에 칼부림이 일어나는 것이 현실이다.

게다가 사소한 실수는 '언제든' 일어날 수 있다.

- 그래서 더 무섭다.

- 즉, 칼부림이 언제나 교회 안에 도사리고 있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 실수는 없에려고 아무리 노력해도 없어지지 않는다.

또 게다가 사소한 실수가 일어나는 틈을 악한 영은 집요하게 노린다.

- 그래서 사소한 문제로 교회를 심각한 분열에 이르게 한다.

- 그래서 사람들에게 내적, 외적 갈등을 일으킨다.

- 그래서 사람들이 신앙을 의심해서 떠나게 만든다.

- 시작은 사소한 오해였지만, 그로 인해 결국 신앙의 본질까지 뒤흔들게 된다.

- 이것이 본문에서 말하는 '악마의 간계'이다.

그렇기 때문에 더욱 더 '무장'이 필요한 것이다.

- 실수에도 흔들리지 않는 토대를 마련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

- 마치 아기 돼지 삼형제에서 짚으로 만든 집은 쉽게 무너지지만, 벽돌로 만든 집은 무너지지 않는 것처럼 말이다.

- 그 토대가 바로 진리(허리띠), 정의(가슴막), 복음(신발), 믿음(방패), 구원(투구), 말씀(검)이다.(14-17)

- 그리고 마지막으로, 그 토대가 세워지게 하는 것이 기도이다.(18)

바로 이것이 하나님의 무기로 무장하는 것이다.

- 이런 관점에서 본문을 보자.


내용 정리

본문은 두 단락으로 나뉜다.

① 10-20절: 마지막 권면 - 분열되지 않기 위한 방법 제시

- 10절: 하나님의 능력으로 굳세게 되십시오.

- 11-13절: 하나님의 무기로 완전히 무장하십시오.

- 14-17절: 하나님의 무기 종류

- 18-20절: 늘 깨어서 기도하십시오.

② 21-24절: 마지막 인사

- 21-22절: 두기고를 보내는 이유

- 23-24절: 축복

그 동안 바울의 권면은 '하나 되기 위한 방법'이었다.

- 부부 관계, 부모 자식 관계, 종 주인 관계가 교회에서 어떻게 하나 되는지 제시했다.

반면에 마지막 권면은 '분열 되지 않기 위한 방법'이다.

- 교회를 분열시키는 악마의 간계에 대비하는 방법이다.

- 즉, 이전 본문에서는 하나됨을 위한 적극적 방법이었다면, 이번 본문은 수동적 방법이다.

- 두 가지 방법 모두 필요하기에, 마지막에 짧지만 강하게 수동적 방법을 제시한다.

10-20절: 마지막 권면 - 분열되지 않기 위한 방법 제시

권면의 큰 틀은 '굳세게 되는 것'이다.

[엡 6:10] 끝으로 말합니다. 여러분은 주님 안에서 그분의 힘찬 능력으로 굳세게 되십시오.

왜 이런 권면을 하냐?

- 굳셈을 위협할 상황이 너무나 많기 때문이다.

- 복음을 심각하게 위협하는 율법주의, 신비주의 등은 대처하기 훨씬 쉽다. 

- 잘못되었다는 것이 너무 분명해서 쉽게 구분이 된다.

- 게다가 에베소 교회에는 심각한 문제가 없다.

- 있었다면 이미 언급했을 것이다.

굳셈을 특히 위협하는 것은, 사소한 문제이다.

- 예를 들어, 종과 주인이 교회에서 함께 있을 때 생기는 알수 없이 묘한 불편함과 같은 것이다.

- 누구 하나 특별히 잘못한 것 없어서 꺼내서 말하기도 어렵지만, 그냥 참고 넘기기에도 너무 어려운 불편함 같은 것이다.

- 허심탄회하게 꺼내놓고 얘기하면 해결될 수 있는데, 그렇게 하자니 너무 사소한 문제 같아 망설이게 되는 경우이다.

- 이런 경우 보통 한 사람이 조용히 자리를 뜨게 된다.

그런데 바울은 이러한 상황에도 굳셈을 가지라고 말한다.

- 어찌보면 이단과의 대결보다 더 굳셈이 필요한 상황인 것 같다.

- 왜냐하면 악마의 간계가 더 깊고 은밀하고 침투할 수 있는 계기가 되기 때문이다.

- 이단은 옳고 그름을 정확하게 판단할 수 있다. 답이 있다.

- 반면에 관계 문제는 답이 없다. 

- 그래서 오해가 생기면 쉽게 가라앉지 않고 증폭되기 쉽다. 

- 그래서 더 굳셈이 필요하다.

대처 방안으로 '하나님이 주시는 갑옷'(11), '하나님이 주시는 무기'(13)로 무장하라고 권면한다.

- 이것이 무엇인지는 14-17절에서 말한다.

그런데 11-13절에서 더 강조하는 것은 '적대자'를 명시하는 것이다.

- 대적자의 속성은 '인간'이 아닌 '악한 영'이라는 점이다.

- 왜 이렇게 표현했는지는 이미 설명했다.

- 한 마디로 말하면, 교회에서 배제되어야 할 심각한 문제가 아니라, 교회가 포용해야 할 사소한 문제를 염두하고 '악한 영'이라는 표현을 썼다고 말했다.

- 문제는 문제시하되, 사람은 용서하고 포용하기 위한 것이다.

- 바울은 이 악한 영에 대항할 수 있어야 종말에 구원 받을 수 있다고까지 말한다.

[엡 6:13] 그러므로 하나님이 주시는 무기로 완전히 무장하십시오. 그래야만 여러분이 악한 날에 이 적대자들을 대항할 수 있으며 모든 일을 끝낸 뒤에 설 수 있을 것입니다.

바울은 왜 사소한 문제를 이렇게까지 중요하게 다루고 있을까?

- 그 이유는, 정말로 교회를 망가뜨리는 것은 심각한 문제가 아니라 사소한 문제이기 때문이다.

- 여기서 심각함과 사소함의 차이는, 복음에서 너무 많이 벗어나서 절대로 함께 할 수 없는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의 차이이다.

- 예를 들어, 구원을 받으려면 할례를 받아야 한다는 율법주의는 심각한 문제이다.

- 반면, 종과 주인이 교회에서 동등하게 이야기할 때 생기는 어색함은 사소한 문제이다.

그런데 심각한 문제는 그만큼 쉽게 드러난다.

- 그래서 고치기도 쉽다.

- 문제가 명확하고 단순하기 때문이다.

반면에 사소한 문제는 너무 사소해서 쉽게 드러나지 않는다.

- 그래서 해결하기가 더 어렵다.

- 문제가 미묘하고 복잡하기 때문이다.

종과 주인의 관계 문제를 생각해보면,

- 만약 둘 다 바르게 예수님을 믿는다고 해보자.

- 둘 다 각각 다른 사람과는 아무 문제도 없다고 해보자.

- 그런데 주인은 종이 집에서처럼 고분고분하지 않는 것이 뭔가 찝찝하다.

- 그리고 종도 주인이 집에서처럼 자신에게 명령하는 것이 불편하다.

이를 어떻게 해결할 수 있겠는가?

-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명확한 방법이 없다.

- 단지 이론적인 원리만 있을 뿐이다.

- 서로 사랑하여, 자신의 역할에 충실하되, 서로에게 주께 하듯 하는 것 뿐이다.

- 그래서 많은 부딪힘과 불편함을 감수하고 끊임없이 접촉하여, 나름의 접점을 찾아가는 것이다.

- 이것을 하게 해주는 힘이 신앙의 힘이고, 이것을 하지 않는 이유는 그만큼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기 때문인 것이다.

- 종과 주인 간의 갈등의 접점을 찾는 것은 정말 신앙의 힘 아니면 절대로 할 수 없는 것이다.

- 그래서 이러한 문제가 교회를 더 심각하게 어지럽힌다.

비슷한 예를 또 하나 들면,

- 복음서에서 예수님께서 비판하신 바리새인의 문제 역시 사소하고 미묘하다.

- 만약 바리새인들이 율법을 아예 안지켰으면, 바리새인의 문제를 쉽게 드러낼 수 있었을 것이다.

- 문제는 바리새인들이 율법을 '너무나' 철저하게 지킨다는 것이었다.

아무 미묘한 차이이다.

- '그냥' 철저하게 지키는 것과 '너무나' 철저하게 지키는 것의 차이이다.

- 이러한 차이 이면에는 율법을 통해 하나님을 높이는 것과 율법을 통해 자신을 높이는 것의 차이이다.

- '그냥'과 '너무나'의 미묘한 차이지만, 그 이면에는 심각한 본질의 차이가 있다.

- 그러나 이 미묘한 차이가 쉽게 드러나지 않기 때문에 더욱 더 심각한 문제를 일으키는 것이다.

- 그래서 예수님은 바리새인을 상대로 죽도록 싸우신 것이다. 

- 그만큼 중요하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악한 영은 이러한 미묘하고 사소한 틈을 후벼 파는 것이다.

- 너무나 사소해서 쉽게 넘겨버리기 때문에 너무나 심각한 약점이 되는 것이다.

- 그렇기 때문에 이러한 사소한 문제를 극복하고, 이 문제를 후벼 파는 적대자를 대항할 때에야 비로소 구원에 이를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예를 들어, 종과 주인이 어색한 관계를 어떻게든 해결할 때에만, 종과 주인 모두 복음을 바르게 이해했다는 것이 확증될 수 있는 것이다.

- 마찬가지로 우리 교회에도 알 수 없는 어색하고 불편한 기류를 해결할 때에야 비로소 복음의 능력을 경험할 수 있는 것이다.

반대로 말해서, 복음의 능력을 경험하는 순간이 심각한 문제를 해결할 때, 예를 들어, 전도나 선교나 구제를 할 때가 아니라는 것이다.

- 좀 시시해 보이지만, 우리 교회가 정말 한 마음 한 뜻 되는 것이 정말로 복음의 능력이 드러나는 순간이다.

- 그래서 이렇게 바울이 사소한 문제에 열을 올리고 있는 것이다.

대항할 수 있는 방법은 뭐냐?

- 진리, 정의, 복음, 믿음, 구원, 말씀이다.

- 이것은 두루뭉실하게 신앙을 이루는 여러 가지 중요한 개념인 것이지, 각각 어떤 차이를 의도하고 기록했는지 알 수 없다.

- 또한 허리띠, 가슴막이, 신발, 방패, 투구, 검이 각각 어떤 역할을 하는지도 알 수 없다.

- 우리는 많은 설교에서 이것을 설명하려 애쓰는 목사님들의 노고를 봤는데, 쓸모 없다.

- 본문의 핵심은 신앙의 본질을 지키는 것이 그만큼 중요하다는 것이다.

- 신앙의 본질이 전쟁에서 무기처럼 우리의 생명을 지키는데 필수적이라는 뜻이다.

- 그 이상으로 확대 해석하면 안된다.

마지막으로 기도를 권면한다.

- 신앙의 본질을 지키고, 그것을 통해 사소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힘은 결국 기도를 통해서 얻기 때문이다.

특히 '모든 성도를 위하여' 기도하라고 한다.

[엡 6:18] 온갖 기도와 간구로 언제나 성령 안에서 기도하십시오. 이것을 위하여 늘 깨어서 끝까지 참으면서 모든 성도를 위하여 간구하십시오.

- 왜냐하면 모든 문제가 모든 성도와의 관계에서 생기기 때문이다.

- 다른 사람을 위해서 뿐만 아니라 자신을 위해서 그리고 교회 전체를 위해서 모든 성도에 대해 기도해야 한다.

그러면서 바울 자신을 위해서도 기도 부탁한다.

- 왜냐하면 바울 역시 내적, 외적 갈등 속에 있기 때문이다.

외적 갈등은 투옥이다.

- 지금 바울은 유대인들의 모함으로 로마에 투옥된 상태이다.

- 동족으로부터 신앙을 의심 받고 비난 받고 있는 상태이다.

- 그로 인해 로마로부터까지 박해 받고 있는 상태이다.

그러다보니 스스로에 대해서도 의심할 수 있는 상태이다.

- 그래서 내적 갈등과도 싸우고 있는 상태이다.

그래서 '담대함'을 위해 기도 부탁한다.

[엡 6:19-20] 또 나를 위하여 기도하기를, 내가 입을 열 때에, 하나님께서 말씀을 주셔서 담대하게 복음의 비밀을 알릴 수 있게 해 달라고 하십시오. [20] 나는 사슬에 매여 있으나, 이 복음을 전하는 사신입니다. 이런 형편에서도, 내가 마땅히 해야 할 말을 담대하게 말할 수 있게 기도하여 주십시오.

- 그만큼 바울이 주변 사람의 의식하고, 스스로를 의심하여 위축되고 있기 때문이다.

- 이러한 위축이 심해지면 복음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다는 것을 바울 스스로도 알기 때문이다.

21-24절: 마지막 인사

바울은 두기고 편에 편지를 전달했다.

- 바울이 투옥되어 있으니 당연하다.

그렇다면 바울은 왜 굳이 편지를 보내야 했을까?

- 바울의 투옥 때문에 사람들이 걱정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어떤 걱정을 했냐면,

- 순수하게 바울을 걱정하는 사람들도 있었을 것이다.

- 복음을 전해준 바울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바울의 안위를 걱정한 것이다.

그러나 바울의 투옥을 보고 자신을 걱정하는 사람이 더 많았을 것이다.

- 그래서 편지 쓴 목적을 '위로'라고 말한 것이다.

[엡 6:22] 우리의 사정을 알리고, 또, 여러분의 마음을 위로하게 하려고, 나는 그를 여러분에게 보냅니다.

이들은 왜 자신을 걱정했냐?

- 두 가지로 나뉜다.

- 첫째로, 바울이 잡혔다는 것은 자신도 언제든 잡힐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 신앙 때문에 자신도 바울처럼 투옥될까바 걱정했다.

- 둘째로, 바울이 잡혔다는 것 때문에 바울을 구해주시지 않은 하나님의 능력을 의심했다.

- 그래서 자신도 어려운 일이 있을 때 하나님께서 구해주시지 않을까봐 걱정했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바울은 편지를 쓴 것이다.

- 첫째로, 투옥될 것을 걱정하는 사람들에게 더욱 더 굳세게 믿으라고 말하는 것이다.

- 믿음은 투옥된다고 해서 흔들리는 것이 아님을 바울 자신을 통해 증명한다.

- 둘째로, 하나님의 능력을 의심하는 사람에게도 마찬가지이다.

- 투옥된다고 하나님의 능력이 막히는 것이 아니라, 투옥으로 인해 복음은 더욱 널리 전파되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바울은 마지막 축복으로 편지를 마친다.

- 성도들에게 평화, 믿음, 사랑, 은혜가 있기를 바란다.


주제

신앙 생활은 힘들다.

- 얼마나 힘드냐면, 전쟁 한 가운데 있는 것만큼 힘들다.

- 쉴새 없이 불화살이 휘몰아치는 곳에 있는 것과 같다.

- 그래서 여러가지 무기로 무장하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없다.

왜 힘드냐?

- 내적, 외적 갈등을 겪을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 다른 사람으로부터 그리고 나 자신으로부터 의심을 받을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 전 재산을 걸고 신앙에 투자했는데, 그것이 틀렸을 것같은 불안감 때문이다.

- 다른 사람들도 그리고 나도 나의 선택이 어리석어 보이기 때문이다.

왜 이런 의심이 드냐?

- 보상이 즉시 주어지지 않기 때문이다.

- 내 선택이 옳다는 것이 결코 확증되지 않기 때문이다.

- 죽어야지만 알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어떤 일이 일어나냐?

- 악한 영이 교회를 대적한다.

- 교회의 약점을 집요하게 공격한다.

- 그래서 교회가 신앙을 잃고 분열하게 한다.

교회의 가장 큰 약점이 뭐냐?

- 이단의 공격이나 신앙의 본질의 심각한 위협 같지만, 그렇지 않다.

- 예수님도 이단이나 다른 종교와 싸우지 않으셨다.

- 심각한 문제는 오히려 심각하지 않다.

- 미묘하고 사소한 문제가 교회에 큰 타격을 준다.

- 바리새인이 그랬던 것처럼 말이다.

구체적인 예가 뭐냐?

- 종과 주인이 함께 있을 때 생기는 오묘한 긴장감이다.

- 주인이 집에서 하던대로 종을 은근히 무시하는 태도이다.

- 또한 반대로 종이 신앙을 핑게로 주인에게 대놓고 함부로 하는 것도 문제이다.

- 이런 작고 사소한 행동이 교회 안에서 갈등을 일으킨다.

- 그래서 주인파와 종파가 대결한다.

- 신앙의 본질적인 문제로 싸우면, 정답도 분명하니 해결하기도 쉽다.

- 그러나 이런 미묘한 것으로 싸우면 답이 없으니 해결하기도 어렵고, 결국 교회 분열에까지 이르게 된다.

해법은 뭐냐?

- 구체적인 해법은 없다. 각 경우마다, 각 시대마다, 각 상황마다 다르다.

- 원론적인 답은, 부르심에 합당하게 살아가는 것이다.

- 서로가 서로에게 주님께 하듯이 대하는 것이다.

- 그러기 위해서 신앙을 되돌아보는 것이다.

- 하나님께서 우리를 왜 부르셨는지, 우리를 어떻게 구원하셨는지, 그래서 우리가 지금 어떤 존재가 되었는지 다시 깨닫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부르신 목적은 하나됨이다.

- 창조주 하나님과 모든 피조물의 하나됨이다.

- 만물의 통일이다.

- 교회의 하나됨이다.

- 종과 주인의 하나됨이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무기이다.

- 이러한 지식과 깨달음으로 무장할 때, 어떠한 악마의 간계에도 맞설 수 있는 것이다.

- 아무리 사소한 오해 때문에 분열이 생겨도, 능히 극복하고 하나될 수 있는 것이다.

- 이것이 악한 영을 박살낼 수 있는 우리의 강력한 무기이다.


결론

우리 교회에는 어떤 사소하고 미묘한 문제가 있을까?

- 한편으로, 신앙의 본질은 당연히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에 있다.

-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 신앙의 본질은 교회 안에서 일어나는 사소한 불만을 어떻게 해결하냐에 있다.

- 너무 사소해서 말을 꺼내기도 어려운 일, 내가 참고 말지 했던 바로 그 일, 하지만 은근히 마음 함 구석이 찝찝한 일, 그런 일들을 어떻게 잘 꺼내서, 어떻게 잘 해결하냐가 우리의 영생을 좌우한다는 것이다.

왜 이렇게 신앙의 본질에서 벗어나 사소한 일에 집착하냐?

- 예수님께서도 바리새인과 논쟁하실 때, 대화의 시작은 사소한 일이었다.

- 예를 들어, 요한복음 5장에서 안식일에 병 고침 문제를 시작으로 결국 예수님은 죽임 당할 위협까지 받으시게 된다.

- 안식일에 병 고침 문제가 신앙의 본질과 무슨 상관이 있겠는가.

- 그러나 예수님은 사소하고 생활 밀착형 문제를 통해 신앙의 본질에 접근하셨다.

- 그러니까 단순하게 말해서, 안식일의 병 고침 문제에 구원의 여부가 달려있었던 것이다.

우리도 마찬가지이다.

- 거대 답론은 일상과 동떨어져 있고, 그래서 숨기거나 속이기도 쉽다.

- 하지만 일상의 문제들은 숨기기 어렵다.

- 단순한 대화 속에서도 곧 바로 드러난다.

- 이런 문제를 통해 신앙의 본질에 접근해야 한다.

우리 교회에는 어떤 사소하고 미묘한 문제가 있을까?

- 그 문제에 우리의 구원이 있음을 기억하자.

- 어렵지만 용기있게 문제들을 꺼내보자.

- 그럴 때 구원에 한 걸음 다가갈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