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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복음

요한복음(6) 3:1-15 니고데모의 흑심으로 드러난 예수님의 진심

좋은 집의 조건

- 누구나 쉽게 들어갈 수 있는 집? 아니면 들어가기 어려운 집?

- 절대로 내 집에 누구나 마음대로 들어오면 안된다.

- 아무리 노력해도 들어오기 어려워서, 주인의 허락 없이는 아무도 들어올 수 없어야 한다.

- 허락 받지 않은 사람이 들어올 수 있는 집에서는 편하게 쉬지도, 샤워도, 잠도, 아무 것도 할 수 없다. 이는 집이 아니다.

천국의 조건

- 누구나 노력하면 들어갈 수 있는 곳? 아니면 특별한 사람만 들어갈 수 있는 곳?

- 천국은 일생의 수고를 끝내고 안식하는 곳이다. 따라서 방해꾼이 한 명도 있으면 안되는 곳이다.

- 따라서 들어가기 쉬운 곳은 천국일 수 없다. 

- 들어가기 쉽고 싼 휴양지는 파라다이스일 수 없다. 너무 비싸서 아무나 갈 수 없는 리조트에 가야 천국을 누릴 수 있다.

- 노력으로는 절대 갈 수 없어야 하며, 오직 주인이신 하나님의 허락으로만 들어갈 수 있어야 한다.

교회의 조건

- 누구나 원하면 들어갈 수 있는 곳? 아니면 테스트를 통해 검증된 사람만 들어갈 수 있는 곳?

- 교회는 세상에서의 영적 싸움에서 빠져나와 무장해제하고 치유, 회복 그리고 재무장해서 세상으로 돌아갈 준비를 하는 곳이다.

- 무장한 사람이 한 명이라도 있는 한, 참 교제는 불가능하고 교회 자체가 무너진다. 예) 게임이론

- 주인은 하나님이신데, 하나님의 허락은 알 수 없다. 그래서 공동체가 함께 들어올 사람을 결정한다.

정리하면, 천국이나 교회는 누구나 갈 수 있는 곳, 들어가기 쉬운 곳이어야 한다고 쉽게 생각하는데, 들어가기 어려우면 어려울수록 좋다.

- 그런 의미에서, 이번 본문은 천국, 구원, 하나님의 나라, 영생, 거듭남, 하나님을 아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것인지 말하는 것이 핵심이다.

지난 본문에서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의 표징을 보고 믿는다고 말했지만, 실상은 제대로 믿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 그 이유를 말해주는 것이 이번 본문이다. 이유는 그만큼 예수님을 믿는 것이 어렵다는 것이다.

- 바리새파 사람이면서, 유대인의 지도자이자, 이스라엘의 선생이라 불리는 사람조차 못 갈만큼 어려운 곳이다.

- 현대적으로, 장로, 목사, 신학 교수라도 못 간다.

그렇다면 어려운게 나쁜거냐? 모두 다 지옥 보내려고 일부러 어렵게 만든거냐?

- 아니다! 어려운 것은 좋은 것이다! 진짜 제대로 구원하시려고 어렵게 만든 것이다.

- 천국다운 천국, 구원다운 구원을 위해서는 반드시 어려워야 한다. 어렵지 않으면 천국이 아니다.

본문은 니고데모를 통해서 이중적인 메시지를 전달한다.

① 나고데모 같은 사람도 이해못하는 하나님 나라라면, 나는 글렀네. 라는 절망을 전하는 동시에

② 얼마나 좋길래 그렇게 어려워? 진짜 가고 싶다. 라는 소망을 전한다.


내용 정리

세 번의 대화

대화가 오갈수록 어조가 격해진다.

- 니고데모의 어조 변화: ①앎 --> ②무지 --> ③짜증, 거부

- 예수님의 어조 변화: ①대화 --> ②가르침 --> ③짜증, 책망

니고데모의 1차 대화: 표징을 근거로 예수님을 '하나님께로부터 오신 선생님'이라고 고백한다.

그는 가나의 혼인잔치와 성전 정화 사건을 비롯하여 기록되지 않은 여러 표징을 듣고 보았을 것이다.

- 보통 유대인 지도자들은 예수님의 표징을 부정했다. 자신의 생각과 달랐고 자신에게 사회적, 경제적 손해를 주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니고데모는 예수님께 관심을 가졌다. 손해를 감수하고 예수님이 하나님으로부터 왔음을 인정했다.

- 이러한 인정은 대단하다. 우리도 쉽게 할 수 없는 것이다. 

하지만 예수님은 그를 믿음 없다고 단언하신다.(12)

- 이러한 니고데모와 예수님 간의 간극을 이해하는 것이 본문의 핵심이다.

많은 손해를 감수하고 쉽지 않은 결단을 한 니고데모를 응원하고 싶은 생각이 있다.

- 그리고 그런 니고데모를 믿음 없다고 단정짓는 예수님이 매몰차게 느껴진다.

그러나 실상은 니고데모가 교묘히 악한 속임수이고, 예수님은 사랑 많은 선생님이다.

- 우리가 실상을 제대로 보지 못하는 이유는, 우리에게도 니고데모와 같은 문제가 있기 때문이다.

- 본문을 통해, 니고데모의 문제도 알고, 니고데모를 통해 우리의 문제도 깨닫게 되길 바란다.

니고데모의 문제 ①: 예수님을 '선생님'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니고데모 입장에서는 나름 굉장한 존칭을 사용한 것이지만, 예수님께는 완전 빗나간 호칭이다.

분명한 것은, 니고데모는 예수님을 특별한 분으로 생각했지만, 그리스도라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 교회들은 이런 사람을 믿음 있다고 판단하지만, 예수님은 믿음 없다고 판단하신다.

게다가 선생님이라고 부르면서 배우려는 마음도 없었다. 

- 예수님 말씀의 의미를 알려고 질문하지 않고, 부정하려고 질문한다.

- 나중에는 예수님의 말씀이 말도 안된다고 따진다.(9)

니고데모의 문제 ②: "하나님으로부터 오신 분만이 그런 표징을 행할 수 있다."는 판단 전제다.

니고데모는 예수님을 인정하며 예수님을 높이는 것처럼 말했지만, 실상은, 예수님을 알아본 자신을 높이고 있다. 무의식적이었겠지만 말이다.

- 그는 자신이 표징의 출처가 하나님인지 아닌지 판단하는 능력이 있다는 교만에 빠져 있었다.

- 이러한 자신의 능력을 확인 받고 과시하기 위해 예수님을 찾아온 것이다.

- 예) 나 너 알아봤어. 나 대단하지?

이러한 니고데모의 속셈, 흑심, 전략은 우리도 일상 생활에서 자주 한다.

- 우리는 다른 사람의 문제를 지적할 때, 상대방의 문제가 해결되길 바라는 마음에서가 아니라, 자신의 우월함을 과시하고 자신을 높이기 위해 말한다.

- 마찬가지로, 우리가 다른 사람의 장점을 칭찬할 때도, 상대방을 치켜세우려는 의도가 아니라, 그 장점을 알아본 자신의 능력, 안목, 통찰력을 과시하여 자신을 높이고 상대를 깍아 내리려고 한다.

우리는 정말 대단한 사람을 만나면 함부로 칭찬 못한다.

- 예를 들어, 만약 아인슈타인을 만나면 상대성 이론을 칭찬하지 못한다.

- 함부로 아인슈타인에게 상대성 이론을 가르쳐달라고 묻기도 힘들다.

- 따라서 니고데모의 멘트는 예수님을 인정한 것이 아니라, 자신을 높이고 예수님을 낮춘 것이다.

그렇다면 질문: 정말 니고데모가 예수님을 하나님으로부터 오신 분이라고 생각했다면, 뭐라고 말했을까?

니고데모의 2차 대화: 니고데모는 예수님의 선문답을 이해하지 못하고 되묻는다.

이해하지 못한 핵심 이유는 예수님 말씀의 표면적 의미만 생각했기 때문이다.

- 대화는 계승과 초월이 필요하다. 니고데모처럼 자구 의미를 초월하여 행간의 의미를 알지 못하면 대화가 안된다.

니고데모의 3차 대화: 말도 안된다며 예수님의 가르침을 거부한다.

니고데모의 실체가 드러난다. 

애초부터 예수님을 인정할 생각도, 높일 생각도, 배울 생각도 없었음이 밝혀진다.

니고데모는 손해를 감수하고 예수님께 나아오기까지 하지만, 진짜 목적은 자신이 인정 받고, 자신을 높이고, 자신이 가르치길 위한 것이었다.

이는 믿음 없는 사람의 전형적인 모습이다.

- 남 일이 아니다. 우리의 모습이다.

예수님의 1차 대화: 니고데모의 말에 대한 응답임과 동시에 니고데모에게 가장 필요한 말씀이다.

① 하나님에 대해 안다고 말하는 니고데모가 하나님 나라에 대해 아무 것도 모른다고 응답하신 것이다.

- 니고데모는 자신이 하나님에 대한 무엇인가를 안다고 말했지만, 예수님은 하나님에 대한 것, 다른 말로, 하나님의 나라(통치, 영향력)는 아무나 알 수 없다고 말씀하신다.

- 즉, 표징 그 자체로는 그것이 하나님으로부터 온 것인지 아닌지 판단할 수 없다는 뜻이다.

② 니고데모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위로부터/다시 낳는 것이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 니고데모의 첫 멘트와 상관 없이, 니고데모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하나님 나라를 보고 들어가는 것이다.

- 그 방법은 위로부터/다시 나는 것 뿐이다.

- 그러니 니고데모도 다시 태어나길 바라는 사랑의 마음으로 말씀하신 것이다.

예수님의 2차 대화: 위로부터/다시 낳는 것의 구체적인 의미와 왜 꼭 그 방법이어야 하는지 그 이유를 설명한다.

니고데모는 예수님 말씀의 뜻과 목적을 전혀 이해하지 못했다.

그래서 뜻을 자세히 말씀해주신다.(5)

- 위로부터 낳는다는 것은 물과 성령으로 낳는 것이다.

- 물과 성령의 관계에 대한 논쟁이 많이 있었는데, 이제 어느 정도 일단락 되었다.

- 문법으로 보나, 문맥으로 보나, 요한복음 전체로 보나, 물과 성령은 같은 것을 의미한다. 

- 성령에 의해서만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있고, 하나님 나라로 들어갈 수 있다.

그렇다면 왜 성령으로만 하나님 나라를 알 수, 볼 수, 들어갈 수 있는가?(6-7)

- 육에서 난 것은 육만 알고, 영에서 난 것은 영만 안다.

- 그만큼 육과 영은 완전히 단절된 것이다.

- 그러니, 영인 하나님 나라는 성령으로 난 사람만 알 수, 볼 수, 들어갈 수 있다.

그런데, 육에서 태어난 사람이 영으로 태어난 사람이 되려면, 위로부터/다시/성령으로 태어나야만 한다. 

따라서,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려면, 당연히 다시 태어나야 하는 것이다.

- 이러한 예수님의 말씀은, 육과 영이 얼마나 단절된 것인지만 알면, 곧바로 나오는 결론이다.

- 반대로 말하면, 니고데모가 이해하지 못한 것의 핵심은 육과 영의 단절성이다.

- 그런데, 육과 영의 단절성은 기본 중의 기본이다.

- 선과 악, 의와 불의, 빛과 어둠, 하늘과 땅이 단절된 것처럼 말이다.

- 그래서 기본도 모르는 니고데모에게 예수님은 슬슬 짜증이 나기 시작한다.

마지막으로 (성)영과 육의 관계를 설명해주신다.(8)

- 참고로 원문에서 영, 성령, 바람은 다 같은 단어 프뉴마(πνεῦμα)다.

- 영은 불고 싶은 대로, 즉 스스로 선택하여 동작한다. 

- 그런데 육은 영의 소리(말, 증언)만 듣는다.

- 하지만 육은 영의 기원과 목적, 즉 본질을 모른다.

정리하면, 육과 영은 단절된 것이어서, 육은 영의 본질을 절대로 알 수 없다.(초월, 단절성)

- 하지만, 육은 영의 증언은 듣는다.(계승, 연관성)

- 이는 육은 영이 될 수 있는 가능성은 전무하지만(단절성), 육은 영의 증언, 즉 예수님의 증언을 듣고 믿으면, 다시 태어나서 영이 될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놓고 있다(연관성).

- 이는 13-15절에서 자세히 다뤄진다.

예수님의 3차 대화: 몰이해를 넘어 거부까지 하는 니고데모를 책망하고, 성령으로 다시 태어나는 방법을 정확하게 알려주신다.

먼저 책망: 예수님 말씀을 거부하는 니고데모에게 자신의 증언을 받아들이지 않는다고 책망한다.(11)

- 니고데모는 하나님을 '안다'고 말했지만, 실상은 전혀 알지 못했다. 왜냐하면 거듭나지 않았으니까.

- 그래서 예수님께서 가르쳐주셨다. 

- 하지만 니고데모는 그조차 받아들이지 않는다.

다음 짜증: 기본 중의 기본도 모르는 니고데모에게, 믿지도 않을텐데 말해서 뭐하냐시며 짜증내신다.(12)

- 지금까지 예수님의 말씀은 육이 영이 되는 방법(거듭남)이었다. 이는 땅에서 일어나는 일이다.

- 하지만 니고데모는 땅의 일조차 이해하지 못했다. 거부했다.

- 그렇기 때문에 하늘의 일, 즉 영의 세계 안에서 일어나는 일은 말해봤자 소용 없다는 것이다.

- 우리에게 진짜 중요한 것은 영의 세계(하나님 나라)이고, 그곳에서 누리게 될 영광, 생명, 하나님 바로 그분인데, 이 하늘의 단계로 대화가 넘어갈 수 조차 없으니, 짜증이 날 법도 하다.

마지막 참 가르침: 가장 중요한 것인 다시 태어나는 방법에 대해 말씀하신다.(13-15)

- 니고데모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이다.

-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유일한 방법은 위로부터/다시/성령으로 태어나는 것인데, 다시 태어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인자를 믿는 것이다.

왜냐?

- 위로부터/다시 태어나 하늘(하나님 나라)에 올라간 사람은 인자가 유일하기 때문이다.

- 13: 인자만이 위로부터 태어나 하늘(하나님 나라)로 올라간 유일한 사람인데,

- 14: 그래서 인자도 곧 하늘로 들려 올라갈 것이다.

- 15: 따라서 그 인자를 믿을 때, 인자와 함께 거듭나서 영생을 얻게 되는 것이다.

이것이 영생을 얻는 일련의 과정이다.

① 육과 영의 단절성을 근거로 육은 영을 절대로 볼 수, 알 수, 들어갈 수 없다.

② 육이 영을 볼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육이 영으로 다시 태어나는 것이다.

③ 그런데, 영으로 다시 태어나서 하늘로 올라간 이는 인자, 즉 예수님 뿐이다.

④ 따라서 예수님을 통해서만, 예수님을 믿음으로만 영의 세계(하나님 나라, 영생)에 들어갈 수 있는 것이다.

한 가지 더: 예수님께서 하늘로 올라간다는 표현의 두 가지 의미

- 13절에 '하늘로 올리간 이'가 14절에서는 '인자도 들려야 한다'로 바뀐다.

- 이 표현은 위로부터 다시 태어나서 하나님 나라로 들어가는 모습을 가리키는 것과 동시에 십자가에 매달려 죽는 모습을 가리킨다.

- 따라서 이번 본문에서 말하는 '거듭남'은 '십자가 죽음'을 의미한다.


주제

① 니고데모의 문제: 모든 것을 다 가졌지만, 딱 하나가 없었다. 그것은 믿음이다.

바리새파이기에 신앙에 대한 열정도 있고, 지도자이기에 사람들의 인정도 있으며, 이스라엘의 선생이기에 성경 지식도 있었다.

- 게다가, 사회적, 경제적 손해를 감수하고 예수님께 찾아가는 헌신도 있었다.

하지만 믿음이 없었다. 예수님을 높일 생각도, 배울 생각도 없었다.

- 여전히 자신을 높이려 했고, 가르치려 했다.

게다가 더 끔찍한 것은, 자신의 문제를 몰랐다는 것이다.

- 자신에게 예수님을 믿지 않고, 거부하며, 무시하고, 예수님을 낮출 의도가 있었다는 것을 스스로는 몰랐다.

이는 우리의 문제이기도 하다.

- 우리도 많은 손해를 감수하고 교회에 온다.

- 하지만 교회에 와서 자신을 높이려 하고 가르치려 한다.

그러나 진짜 문제는, 우리에게 문제가 있다는 것을 모르는게 문제다.

- 절대로 착각하지 말아야 할 한 가지는, 지금 이 시간에 너도 나도 모두 자신을 높이려 하고, 남을 가르치려 하며, 예수님을 깍아 내리고, 남을 무시하고 있다는 것이다.

- 이것만 안까먹으면, 니고데모와 같이 몰이해와 거부의 지경에는 이르지 않는다.

- 예수님이 말씀해주시면, 알아들을 가능성이 있다.

② 예수님 응답의 특징: 묻는 말에 답해주시지 않고 들어야 할 말을 해주신다. 원하는 것을 주지 않으시고 필요한 것을 주신다.

니고데모는 원하는 말을 듣지 못하자, 예수님을 부정하고 짜증내기까지 한다.

- 상상컨데, 니고데모는 예수님께 인정받고 싶었을 것 같다.

- 예수님 찾아 온 것을 칭찬 받고 싶었을 것 같다.

- 그것도 아니라면, 고쳐야 할 것이 무엇인지 지적이라도 받고 싶었을 것이다.

- 하지만 예수님은 듣기 원하는 말은 한 마디도 안해주신다.

이러한 예수님 때문에 우리도 짜증이 나고 답답할 때가 많다. 

- 지금 우리가 예수님께 듣고 싶은 말은, 이런 말들이다.

- 너희 신앙 생활 잘 하고 있어. 힘들지? 조금만 참고 기다려. 

- 혹은, 너희 신앙 다 좋은데, 이런 부분은 고쳤으면 좋겠어. 그러면 훨씬 좋아질거야.

- 지금 우리가 잘하는지 못하는지, 뭘 못하는지 항상 알고 싶다.

하지만, 예수님은 이런 말씀 안하신다. 

- 단지, 예수님이 누구신지 말해주실 뿐이다.

우리는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모른다.

- 우리는 궁굼한 것을 알면 우리 문제가 해결될 것 같지만, 그렇지 않다.

- 예를 들어, 기다리던 십자가 죽음 부활을 깨달으면 문제가 다 해결될 것 같지만, 그렇지 않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믿음이다.

- 지금 현재 우리에게 주어진 상황이 예수님께서 주신 최고의 상황이라는 것을 믿고, 기다리자.

- 계속해서 예수님이 누구신지 알아가며, 예수님만 바라보자. 그것이 우리에게 진짜 필요한 것이다.

③ 육과 영의 단절성

기본 중의 기본이다.

하지만, 니고데모가 결정적으로 잊어버린 것이다.

우리도 자주 잊는 개념이다.

- 대표적인 예가, 육의 세계에서 일어나는 기적을 보고 영의 세계에서 하나님께서 하신 것이라고 착각하는 것이다.

이러한 착각이 확장되어 세속주의 신앙도 나온다.

- 육의 세계에 있는 사람이 좋게 생각하는 것을 영의 세계에 계신 하나님도 좋게 생각하실 것이라는 착각.

- 육의 세계인 일상 생활에 영의 세계에 계신 하나님이 개입하신다는 착각.

육은 육이고, 영은 영이다. 두 가지를 섞지 말자.

④ 육과 영의 연결성

두 가지로 설명된다.

첫째, 육과 영은 철저히 단절되어 있어서 육은 영의 실체를 절대로 알 수 없지만, 육은 영의 소리, 즉 증언은 들을 수 있다.

- 이것이 증언의 역할이다. 

- 증언은 굉장히 제한적인 역할을 가지고 있다.(제한성) 육은 증언으로 영의 실체를 절대로 알 수 없다.

- 하지만, 육이 영을 인식할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이기 때문에 굉장히 중요하다.(특수성)

- 이 증언을 통해서 육은 영이 존재한다는 것을 알 수 있지만, 증언이 있다고 해도, 육은 영을 볼 수, 알 수, 들어갈 수 없다.

둘째, 육이 영을 알 수, 볼 수, 들어갈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거듭남인데, 거듭난 유일한 분은 인자, 즉 예수님 뿐이다.

- 따라서, 예수님을 통해서만, 예수님을 믿음으로만, 육은 영을 볼 수, 알 수, 들어갈 수 있는 것이다.

- 예수님만이 육으로 하여금 영을 볼 수, 알 수, 들어갈 수 있도록 한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에 대한 증언이 더욱 더 중요하다.

- (육) --> (증언) --> (예수님) --> (영) 

- 이러한 연결을 통해서만 육에서 영으로 넘어갈 수가 있기 때문이다.

- 그래서 요한복음에서 침례 요한과 제자들의 증언이 중요한 것이다.

- 그래서 삶에서 우리가 예수님을 증언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다.


결론 밎 적용

만약 우리가 니고데모처럼 예수님을 만난다면, 니고데모와 달리 어떤 말을 해야할까?

먼저 오답: 예수님 당신은 누구십니까? 예수님을 보여주세요. 예수님을 알려주세요.

- 우리가 자주 하는 기도이다.

이번 본문에 근거하여 우리의 물은에 대한 예수님의 대답을 상상해보면?

- 너 따위는 절대로 예수님을 알 수도, 볼 수도 없다. 육으로는 절대로 영을 볼 수 없다.

- 너는 아직도 나의 말을 받아들이지 않고 있다.

- 제발 정신 차리고 예수님 믿어라!

정답: 이것은 상상할 필요가 없다. 성경에 많이 나와 있다.

- 십자가 강도: (눅 23:42) "예수님, 주님이 주님의 나라에 들어가실 때에, 나를 기억해 주십시오."

- 수로보니게 여인: (막 7:26-28) 자기 딸에게서 귀신을 쫓아내 달라고 예수께 간청하였다. 예수께서 그 여자에게 말씀하셨다. "자녀들을 먼저 배불리 먹여야 한다. 자녀들이 먹을 빵을 집어서 개들에게 던져 주는 것은 옳지 않다." 그러나 그 여자가 예수께 말하였다. "주님, 그러나 상 아래에 있는 개들도 자녀들이 흘리는 부스러기는 얻어먹습니다."

- 거지 바디매오: (막 10:46-48) 디매오의 아들 바디매오라는 눈먼 거지가 길 가에 앉아 있다가 나사렛 사람 예수가 지나가신다는 말을 듣고 "다윗의 자손 예수님, 나를 불쌍히 여겨 주십시오" 하고 외치며 말하기 시작하였다. 그래서 많은 사람이 조용히 하라고 그를 꾸짖었으나, 그는 더욱더 큰소리로 외쳤다. "다윗의 자손님, 나를 불쌍히 여겨 주십시오."

- 혈루병 여인: (막 5:26-29) 여러 의사에게 보이면서 고생도 많이 하고 재산도 다 없앴으나, 아무 효력이 없었고 상태는 더 악화되었다. 이 여자가 예수의 소문을 듣고서, 뒤에서 무리 가운데로 끼여 들어와서는, 예수의 옷에 손을 대었다. 그 여자는 "내가 그의 옷에 손을 대기만 하여도 나을 터인데!" 하고 생각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곧 출혈의 근원이 마르니, 그 여자는 몸이 나은 것을 느꼈다.

- 베드로: (눅 5:8) 시몬 베드로가 이것을 보고 예수의 무릎 앞에 엎드려서 말하였다. "주님, 나에게서 떠나 주십시오. 나는 죄인입니다."

아무도 질문하지 않는다.

- 간청한다. 매달린다. 거지같이 구걸한다. 붙잡는다. 회개한다.

우리도 이렇게 기도하자.

- 아무런 질문을 하지 말자는 것이 아니라, 질문으로 위장하여 예수님을 거부하지 말자는 것이다.

- 이러한 말과 태도만이, 예수님에 대한 믿음만이 예수님을 볼 수, 알 수 있도록 하고,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 영생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