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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복음

요한복음(3) 1:35-51 예수님의 정체성과 제자의 정체성

요한복음의 의도, 목적, 주제를 알기 위해 고군분투, 시행착오 중

- 더 정확하게 말해서, 여러 해설집에서 말하고 있는 요한복음의 다양한 주제 중에 뭐가 맞는 것인가를 본문을 통해 계속 확인 중

- 그래서 자료도 많이 읽고 있고, 본문을 자세히 살펴보고 있다.

- 모호한 본문 때문에, 여러분도 저도 고생이 많다.

- 지금은 요한복음 속에서 방황하고 있지만, 이렇게 두드려보고 고민하다보면, 요한복음의 주제, 핵심을 확인할 수 있을 것이란 기대를 갖자.

- 비록 요한복음의 핵심을 알아내지 못했다고 할지라도, 고군분투했던 우리의 노력은 하나님께 기억될 것이다.

- 결과도 중요하지만, 그 결론을 알기까지의 과정이 훨씬 더 중요하다는 것을 기억하며, 힘내자! 라고 스스로에게 되뇌입니다.

성경 해석에서 나(우리)가 특별히 강조해야 하는 부분

① 우리가 가진 상식, 지금까지 들은 설교, 성경 배경 지식 등 '사전 지식'이 아닌 본문 자체를 통해 본문을 해석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 최선을 다해 본문을 객관적으로, 낯설게, 편견 없이 보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 우리가 가진 사전 지식을 전부 배제할 수는 없지만, 비판적으로 수용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 49절에, 나다나엘이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 이스라엘의 왕이라고 고백했는데, 사전 지식에 따라, '당연하지.'라고 넘겨짚지 말고, 본문 안에서 다시 확인해보자.

② 본문 표면의 내용을 아는 것은 당연히 중요하지만, 표면적인 내용 내면에 뭐가 있을까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

- 특히 요한복음은 중의적인 문장 많이 사용한다.

- 38절에, '예수님이 질문을 했구나'가 아니라, '예수님이 왜 저런 질문을 했을까?', '제자들은 예수님의 질문에 왜 다시 저런 질문을 했을까?'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

③ 이런 과정을 통해 해석을 했으면, 반드시 본문 전체를 아우르는 핵심을 이론화, 체계화, 조직화, 신학화 해야한다.

- 조직화 과정을 통해, 각 구절의 해석이 앞뒤 구절의 해석과 조화를 이루는지 확인할 수 있다.

- 적절한 해석은 잘 짜여진 천처럼 자연스럽게 조직화될 것이다.

- 조화롭게 조직되지 않는 해석은 잘못되었을 가능성이 높다. 재고해야 한다.

요한복음 해석 단계 제안 

① 표면적 내용 ② 비판적 질문 ③ 내면적 내용 ④ 조직화 ⑤ 주제 ⑥ 결론 밎 적용


표면적 내용

① 예수님의 제자 무리가 만들어지는 과정: 무명의 제자, 안드레, 베드로, 빌립, 나다나엘까지 총 5명

② 예수님의 정체성: 하나님의 어린 양, 메시아, 모세가 율법책에 기록하였고 또 예언자들이 기록한 그분, 하나님의 아들, 이스라엘의 왕, 인자

- 영화로 만든다면, 총 8개 신(scene)으로 만들 것 같다.


비판적 질문

36: 1 요한은 예수님에 대해 왜 하나님의 어린 양이라고 증언했을까?

37: 2 요한의 말을 들은 두 제자는 어떤 생각으로 따라갔을까?

38: 3 예수님은 두 제자를 보시고 왜 "너희는 무엇을 찾고 있느냐?"라고 질문했을까? 목적과 의도

4 예수님의 질문에 두 제자는 왜 "어디에 묵고 계십니까?"라고 질문했을까? 목적과 의도

39: 5 "와서 보아라"는 예수님의 초청의 의미는 무엇일까?

6 두 제자들은 예수님을 따라가서, 묵고 계시는 곳을 보고, 그와 함께 지냈는데, 이것이 가리키는 의미는 무엇일까?

7 오후 네 시라는 시간의 의미는 무엇일까?

41: 8 안드레는 예수님에 대해 왜 메시아라고 증언했을까?

42: 9 예수님께서는 왜 베드로에게 '게바'라는 별명을 지어주셨을까?

43: 10 35, 43절에 '다음 날'이라고 시간을 말하고 있는데, 이 시간 텀의 의미는 무엇일까?

11 예수님께서는 베다니에 계시다가 왜 갈릴리고 떠나시려고 할까?

12 예수님께서 빌립에게 "나를 따라오너라."고 부르시는데, 예수님의 의도는 무엇일까?

45: 13 빌립은 예수님에 대해서 왜 율법책과 예언서에 기록된 분이라고 증언했을까?

46: 14 나다나엘이 나사렛에 대한 편견을 말하는 장면은 어떤 메시지가 담겨 있을까?

47: 15 예수님이 나다나엘에게 참 이스라엘이라고 말씀하시며, 무화과나무 아래에서 보셨다는 말씀의 의도는 무엇일까?

49: 16 나다나엘이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 이스라엘의 왕이라고 증언한 의도는 무엇일까?

50: 17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더 큰 일', 즉 천사들이 인자 위에 오르락내리락하는 것은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


내면적 내용

36-39절: 예수님과 제자들이 맺는 개인적, 친밀한 관계

두 제자는 요한의 증언을 듣고 예수님을 따라갔다. 이때는 헌신보다는 호기심이 컸을 것이다.(2)

이들을 향한 예수님의 질문은 두 가지 의미를 가지고 있는 것 같다.(3)

① 표면적: 너희 어디 가느냐? 나 찾으러 가느냐? 지금 무엇을 찾고 있는지에 대한 질문

② 내면적: 너희가 진정으로 추구하는 것이 뭐냐? 생명과 신앙의 본질에 관한 질문

예수님의 질문에 제자들은 예수님의 거처를 묻는데, 이 역시 두 가지 의미를 가지고 있다.(4)

① 표면적: 제자들이 찾는 것이 예수님의 거처란 뜻이다. 예수님을 만나보고 싶다는 것이다.

② 내면적: 예수님의 영적인 출처, 즉 예수님이 정말 하나님으로부터 오신 분이냐고 묻는 것이다.

- 요한복음에서 묵다, 지내다, 머물다(meno, abide)는 영적인 소속, 하나님과의 관계를 나타내는 단어로 쓰인다.(15:1-10)

제자들은 예수님의 초대를 받고, 예수님의 거처에서 예수님과 함께 지낸다. 이 역시 두 가지 의미를 갖는다.(5, 6)

① 표면적: 단순히 육적인 교제를 했다는 의미다.

② 내면적: 예수님의 거처이신 하나님 안에서, 예수님과 함께 지내며, 예수님의 그리스도 되심을 깨닫고 믿게 되었다는 뜻이다.

- 예수님의 초대 멘트부터, 예수님과의 교제 멘트까지 개인적이고 친밀한 관계를 나타내는 표현이 사용되었다.

마지막으로, 요한은 제자들에게 예수님을 증언할 때 어린 양이라고 말한다.

- 이어지는 관점에서 보면, 요한은 제자들이 예수님과 개인적, 친밀한 관계를 맺도록 예수님을 어린 양에 비유한 것이다.

40-42절: 제자의 공동체적인 신앙 생활

예수님께서 베드로에게 반석이라는 별명을 붙이신 이유는 교회 공동체의 시작을 염두하신 것이다.(9)

- 별명대로 베드로는 오순절에 성령 강림 후 첫 번째 전도를 통해 교회를 탄생시킨다.

- 베드로를 통해 교회를 암시한 것은 개인적인 신앙과는 구분되는 공동체적인 신앙을 암시하는 것 같다.

예수님의 호칭은 사람과의 연결성이 있는 어린 양과는 구분되는 메시야를 사용하여, 하나님과의 연결성을 강조한 것 같다.

43-46절: 참 이스라엘이신 예수님

'다음 날'은 29, 35, 43절에, 그리고 2:1에 '사흘째 되는 날이라고 나온다.(7, 10)

- 여기에 39절에 오후 네 시, 즉 하루가 끝내고 새로운 날이 시작된다고 말한다.

- 따라서, 이를 종합할 때, 2:1에서 시작하는 가나안 혼인잔치는 7일째 되는 날이다. 즉 안식일이다.

- 정확하지 않지만, 앞의 6일은 예수님의 제자를 모으는 일하는 시간, 7일째 날은 모든 것이 회복되는 구원의 날을 상징한다.

빌립은 예수님을 구약에 근거한 분으로 증언한다.(13)

- 이는 예수님의 정체성이 구약에 기록된 이스라엘 민족의 정통성과 연결된 분임을 강조한다. 즉, 예수님은 참 이스라엘이다.

47-51절: 참 이스라엘을 초월하신 예수님

예수님께서 나다나엘에 대해 하신 말씀은 '참 이스라엘'과 '무화과나무 아래'이다.(15, 16)

- 무화과나무는 참 이스라엘, 이스라엘의 정통성을 상징한다.

- 마가복음에서 예수님께서 무화과나무를 저주하셔서 죽이시고, 바로 이어서 성전 파괴를 예고하시는 장면이 나온다.

- 여기서 무화과나무 저주는 성전 파괴를 의미하는 것으로, 무화과나무는 성전, 즉 이스라엘의 정통성을 상징한다.

따라서 예수님의 이러한 말씀은 나다나엘이 이스라엘 민족의 본질과 신앙을 잘 지키고 있는 사람이라고 평가한 것이다.

- 동시에, 이러한 예수님의 말씀은 나다나엘로 하여금 예수님이 참 이스라엘이심을 깨닫게 한다. 고수라 고수를 알아본 것이다.

- 그래서 나다나엘은 이스라엘의 정통성을 회복하실 이스라엘의 왕이라고 고백하는 것이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나다나엘의 고백을 부정하시는듯 말씀하신다. "더 큰 일을 볼 것이다."

더 큰 일이란 "하나님의 천사들이 인자 위에 오르락내리락하는" 것인데, 이는 야곱을 상징하는 것이다.

- 야곱은 형 에서 분장을 해서 아버지 이삭의 축복을 받은 속임수가 들통이 났다.

- 그것을 듣고 자신을 죽이려는 에서를 피해 도망가다가 날이 저물어 잠을 자는데 꿈을 꾼다.

- 꿈에 하나님의 천사들이 오르락내리락하는데, 하나님께서 자손이 티끌처럼 많아질 것이라는 약속을 재확인시켜주신다.

- 꿈을 깬 야곱은 말하길, "이 곳은 하나님의 집이다, 하늘로 들어가는 문이다." 라고 한다.

- 따라서, 하나님의 천사들이 오르락내리락하는 것은, 야곱, 즉 이스라엘의 정통성을 상징하는 하나님의 집, 성전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더 큰 일이란, 그 동안 이스라엘의 정통성을 상징했던 것은 성전이었는데, 그 성전을 예수님이 대체하신다는 것이다.

- 이를 다르게 말하면, 예수님이 이스라엘의 정통성을 대체, 초월하신 분이라는 뜻이다.

그 동안 이스라엘의 정통성은 성전이라는 건물, 장소에 한정되어 있었는데, 성전이 예수님으로 대체 됨으로 인해, 장소를 초월하는 개념으로 확대되었다.

- 따라서 예수님은 참 이스라엘을 초월하신 참 참 이스라엘이시다.

정리하면, '그냥' 큰 일은, 예수님께서 참 이스라엘을 계승하셨다는 것이다.

- '더' 큰 일은, 예수님께서 참 이스라엘을 초월하셨다는 것이다.

간단하게만 더 설명하면, 계승은 예수님께서 율법을 완성하셔서 이스라엘의 왕으로 오셨다는 것이고, 초월은 예수님께서 율법을 폐하시고 십자가에 죽고 부활하여 인류의 왕으로 오셨다는 것이다.


조직화

 35-39

 안드레

제자의

정체성

개인적 신앙 

 제자는 개인적으로 친밀하게 예수님 안에 거하며 교제하는 것이다.

 40-42

 베드로

 공동체적 신앙

 제자는 결국 개인적인 신앙을 넘어서 공동체를 이룬다.

 43-46

 빌립

예수님의

정체성

참 이스라엘이신 예수님 

 예수님은 구약에 예언된 분으로서, 참 이스라엘을 계승하신다. 이스라엘의 왕이시다.

 47-51

 나다나엘

 참 이스라엘을 초월하신 에수님

 예수님은 참 이스라엘을 계승하실 뿐만 아니라 초월하신다. 인류의 왕이시다.


이전 문맥과 연결성

1장

 1-18

 프롤로그

 1-2

 a: 말씀의 속성 - 말씀과 하나님과의 관계는 구별&동일 

 예수님 정체성

 

 3-5

 b1: 말씀과 세상의 관계1 - 세상의 근원이신 말씀

 예수님 정체성

 

 

 6-8

 c: 요한의 증언 - 증언 대상이신 말씀

 예수님 정체성

 

 

 

 9-11

 b2: 말씀과 세상의 관계2 - 말씀에 대한 세상의 무지

 예수님 정체성

 

 

 

 

 12-13

 x: 기록 목적 - 하나님의 자녀 됨 

 제자 정체성

 

 

 

 14

 b2': 말씀과 우리의 관계2 - 말씀에 대한 우리의 앎

 예수님 정체성

 

 

 15

 c': 요한의 증언 - 증언 내용은 말씀의 우월성

 예수님 정체성

 

 16-17

 b1': 말씀과 우리의 관계1 - 우리의 근원이신 말씀

 예수님 정체성

 18

 a': 하나님의 속성 - 숨겨짐&드러남 그리고 숨겨진 하나님을 드러내시는 말씀

 예수님 정체성
 19-51 예수님에 대한 증언들
 19-28 요한에 대한 요한의 증언 - 요한은 그리스도를 증언하는 소리일 뿐 그리스도가 아니다. - 특수성/제한성 제자 정체성
 29-34 예수님에 대한 요한의 증언 - 하나님의 어린 양, 하나님의 아들 - 사람과 연결성/하나님과 연결성

 예수님 정체성

1장 전체의 주제는 크게 두 가지 축으로 나눌 수 있다. 예수님의 정체성과 제자의 정체성이다.

- 1-18절의 구조로 볼 때, 예수님의 정체성을 기반으로 제자의 정체성을 밝히는 것이다.

- 예수님이 누구냐를 밝혀서, 예수님의 제자로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말해주는 것이다.

따라서, 1장이 요한복음 전체의 서론이기 때문에, 요한복음은 1장에서의 주제를 구체화시킬 것으로 예상된다.

- 예상컨데, 사람들이 잘못 알고 있는 예수님의 정체성을 비판하고, 잘못된 예수님에 근거해 잘못된 신앙 생활을 하고 있는 사람들을 비판할 것이며, 올바른 예수님의 정체성을 제시하여, 올바른 신앙 생활을 하도록 이끌 것이다.


주제

제자란, 예수님과의 개인적, 친밀한 관계를 맺는 사람이며, 동시에, 예수님 안에서 공동체 관계, 즉 교회를 이루어 가는 사람이다.

예수님은, 구약에서부터 예언된 이스라엘의 왕으로서 참 이스라엘을 계승하시는 분이며, 동시에, 인류의 구주로서 참 이스라엘을 초월하시는 분이다.


결론 밎 적용

올바른 제자로서의 삶은 예수님에 대한 올바른 인식에서 비롯된다.

- 그러니 예수님이 누구신지 바르게 알자.

하지만, 예수님에 대한 올바른 인식이 전부가 아니다. 결국 삶이다.

- 스스로에게 묻자. 나는 무엇을 찾고 있는가? 나는 왜 신앙 생활을 하며, 인생을 왜 사는가? 무엇을 기뻐하고 무엇을 두려워하는가?

- 무엇에 화가 나고, 무엇에 위로 받는가? 언제 침체되고, 언제 회복되는가? 언제 사랑받는다고 느끼며, 언제 인정받는다고 느끼나?

- 그리고 쓸데 없는 것에 기뻐하고, 쓸데 없는 것을 두려워하는 나 자신을 반성, 후회, 혐오, 회개하자. 삶에서 몰아내자.

- 모든 것을 예수님으로 대체하자.

이를 위해 개인적으로 노력하고, 공동체적으로 노력하자.

- 구약을 통해 예수님이 얼마나 참 이스라엘이신지 깨닫고, 신약을 통해 참 이스라엘을 훼손하지 않으면서 초월하시는지 확인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