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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복음

요한복음(7) 3:16-21 진리를 행하는 사람의 특징은 예수님께 나아감이다.

대화 중 있었던 일

상황 요약

- 나: 설교의 결론은 수로보니게 여인, 혈루증 여인처럼 예수님께 간청하고 구걸하는 것으로만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있다.

- 그: 바디매오나 베드로가 구한 것은 영이니 이해되지만, 이들이 구했던 것은 육인데, 과연 잘한 것인가?

- 나: 육과 영은 구분되는데, 축귀, 치료 뿐만 아니라 불쌍히 여김, 회개 모두 영이 아니라 육이다. 

- 나: 육을 구하는 것 차제는 문제가 아니다.

- 나: 핵심은 이들이 육을 구하는 태도, 즉 믿음이다. 이들은 예수님을 정말 믿고 구했다.

- 그: 그럼, 내가 가족의 잘됨을 구하는 것이 왜 문제인가? 수로보니게 여인과 나는 똑같은 것 아닌가?

- 나: 너는 예수님에 대한 믿음이 없었다. 구했지만 믿지 않았다.

- 그: 과연 그렇게 말할 수 있을까? 

이슈 정리: 신앙의 본질은 어디에 있냐? ①구하는 대상에 있냐(무엇을 구하느냐), ②구하는 태도에 있냐(어떻게 구하느냐)?

일반적인 생각: 무엇을 구하느냐가 중요하다. 육적인 것을 구하면 나쁘고, 영적인 것을 구하면 좋다.

- 나와 우리 가족의 건강, 부, 명예 등을 구하는 것은 나쁜 것이고, 신앙적인 것, 믿음, 교회 공동체, 죄 깨달음, 예수님을 구하는 것은 좋은 것이다.

- 어머니의 문제는 육적인 것만을 구했기 때문이다.

일반적인 생각에 대한 나의 비판

- 우리가 구하는 것은 모두 육적이다. 회개하는 것조차 육적이다. 육적인 것을 구하는 것은 문제가 아니다.

- 그리고 육적인 것을 구하는 것이 문제라면, 수로보니게 여인, 혈루증 여인도 다 문제다.

-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이들을 믿음 있다고 판단하셨다.

- 예수님의 판단 기준은 뭐였을까? 일단, 무엇을 구했느냐는 판단 기준이 아니다.

나의 생각: 어떻게 구하느냐가 중요하다. 구하는 태도가 중요하다.

- 물론 그렇다고 아무거나 구해도 된다는 것은 아니다.

- 내가 잘하는 말: 무엇이든지 구할 수 있지만, 아무거나 구해서는 안된다. 자유와 방종은 구분되어야 한다.

- 여기서 말하는 태도란, 구해서 주어진 것이 나의 노력 때문이 아니라, 예수님께서 100% 은혜로 주신 것이라고 믿는 것이다.

- 나는 그것을 받을 자격이 전혀 없고, 그것을 받기 위해 한 일이 아무 것도 없지만, 길 가다가 갑자기 벼락 맞듯 주어졌다고 믿는 것이다. 내가 노력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하지만 나는 기도 응답을 받았을 때 이렇게 생각한다.

- 제일 유치한 반응: 아, 내가 기도를 잘했구나. 내가 믿음이 좋구나. 내가 착하게 잘 살았구나. 그래서 응답되었구나.

- 좀 덜 유치한 반응: 아, 하나님께서 나를 정말 특별히 사랑하시는구나. 내가 하나님의 뜻을 잘 알았구나. 내가 올바른 기도를 했구나. 그래서 응답되었구나.

- 한 마디로, 인과응보이다.

사람마다 비율은 다르지만, 기도 응답의 원인에 나의 노력과 하나님의 은혜의 비율이 10대 90, 혹은 1대 99 등, 어쨌든, 기도 응답 원인에 '나'가 반드시 있다.

- 사람은 8백만분의 일 확률의 로또에 당첨되어도, 당첨 원인에 '나'를 둔다.

- 내가 꿈을 꿨기 때문에, 내가 용하다는 로또 가게에서 샀기 때문에, 내가 착하게 살았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믿음은 기도 응답 원인에 '나'가 없는 것이다. 전부 하나님의 은혜라고 믿는 것이다.

- 내가 기도했기 때문도, 내가 간절했기 때문도, 내가 특별히 하나님의 사랑을 받아서도, 바르게 구했기 때문도 아니라 바람이 불고 싶은 대로 불 듯, 하나님께서 하고 싶으신대로 하신 것 뿐이다. 우리는 절대로 원인을 알 수 없다.

이러한 태도에 대한 일상적인 예를 찾고 싶었는데, 일상에서는 전무한 것 같다.

- 그만큼 사람이 하기 어려운 생각 같다.

- 그러나, '상 아래 개가 자녀들이 흘리는 부스러기를 먹을' 때 그 원인에 '개'가 없듯이, 수로보니게 여인은 자신에게 주어진 축귀의 원인에 '나'는 없고, 오로지 예수님만 있다고 믿었다.

- 어머니의 문제도, 육적인 것을 구하신 것도 아니고, 간절함 없이 대충 구하셨기 때문도 아니고, 기도 응답 원인에 '나'가 있기 때문이지 않을까?

결론: 참 믿음은 기도 응답의 원인 중에 '나'는 없고, 전부 예수님이라고 믿는 것이다.

- 99.9% 순수한 물에 0.1% 똥만 섞여도 똥물이듯, 기도 응답 원인 중에 99.9% 예수님이라 하더라도 0.1%가 '나'라면, 결국 기도 응답 원인은 '나'다.

그런 사람도 기도가 응답되면 감사를 드리며 예수님을 높인다.

- 하지만 그 말의 실제 의미는 자신을 높이고 예수님을 낮추는 것이다.

- 예수님께서 99% 도와주셨지만, 나의 1% 때문에 응답되었다는 의미다.

- 나의 1%가 있었기 때문에, 오히려 예수님의 99%가 더 빛을 발했다는 것이다.

- 지난 본문의 니고데모가 그랬다.

'나'가 없는 사람만이 예수님을 바르게 높일 수 있다.

- 그런 사람만이 '개'가 된 현실 속에서도 예수님을 믿을 수 있지 않을까? 

이렇게 인생의 모든 원인에 '나'는 없고 오직 예수님 때문이라고 믿을 때, 즉 인생에서 내가 한 일은 아무 것도 없다고 믿을 때, 쉬지 않고 예수님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 인생 중 쉬운 일은 내가 스스로 해결할 수 있고, 내가 해결할 수 없는 일에 대해서만 예수님께서 개입하셔서 해결해주실 것을 믿는다면, 우리는 절대로 '항상' 예수님을 구하고 찾지 않을 것이다.

- 인생 중에 단 하나의 일도 내가 해결할 수 없다는 믿음 속에서만 예수님을 '항상' 구할 수 있다.

따라서, 올바른 믿음의 척도는, 인생에 대한 나의 영향력이 너무 적어서 얼마나 자주 무력함을 느끼는가? 그래서 얼마나 자주 많이 예수님께 나아가는가? 가 될 것 같다.

- 그래서 이번 본문의 핵심은, 진리를 행하는 사람을 구분하는 기준이 얼마나 자주 예수님께 나아가는가? 이다.


내용 정리

이전 문맥: 영에서 육이 되는 방법

- 육과 영은 완전히 구분된다.

- 영만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 영생할 수 있는데, 육이 영이 되려면 다시 태어나야 한다.

- 하지만, 인자 외에는 다시 태어난 사람이 없다.

- 따라서 인자를 믿은 사람만 영생을 얻을 수 있다.

16-17절: 하나님께서 인자를 주신 이유와 목적

이유: 사랑

목적: 심판 받아(17) 멸망하지 않고(16), 구원하셔서(17) 영생을 얻도록(16) 하시려는 것

16, 17절은 15절의 반복이다.

- 그러나 15절과 달리 16, 17절의 특징은 '믿지 않는 사람'이 거론된다는 것이다.

- 이는 믿지 않는 사람을 다루기 위한 초석 같다.

- 그러한 내용을 18-21절에서 본격적으로 다룬다.

또한 16절과 17절도 같은 내용을 반복하고 있다.

- 그러나 차이는 16절은 사람 입장에서, 17절은 하나님 입장에서 설명한다.

- 이렇게 같은 내용을 다른 관점으로 반복해서 설명하는 것이 요한복음의 특징이다.

18-21절: 믿는 사람과 믿지 않는 사람의 특징

전체 구조는 a - b - a' 이다.

- 양 끝(a, a')에 믿는 사람이, 가운데(b)에 믿지 않는 사람이 배치되어 있다.

- 알다시피, 가운데 부분, 믿지 않는 사람이 본문의 중심이다.

믿는 사람의 특징(18, 21절)

- 18: 심판을 받지 않는다. 즉,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어 죽음으로부터 구원 받는다. 의미 없는 당연한 말이다.

- 21: 빛으로 나아온다. 

빛은 ① 단순히 예수님이기도 하지만, ② 빛의 고유한 속성인 드러냄을 의미하기도 한다.

① 빛으로 나아온다는 의미는 예수님께 나아간다, 사랑한다(19), 믿는다는 것이다.

② 반면에, 본문에서 빛은 밝혀서 드러내는 속성을 갖는다.

- 따라서 빛으로 나아간다는 것은 자신 행위의 실체를 드러낸다는 의미도 있다.

빛으로 나아가는 것이 믿음 있고 없고의 결정적인 차이다.

- 예수님께 나아가는 사람의 특징은, 좋은 행위를 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행위를 드러내는 태도이다.

- 당연히 행위 안에는 좋은 것 뿐만 아니라 나쁜 것도 있을 것이다.

- 좋은 행위를 드러내는 목적은 좋은 행위를 주신 하나님께 드리는 감사일 것이고, 나쁜 행위를 드러내는 목적은 회개일 것이다.

- 드러냄의 목적은 감사와 회개를 통해 '행위가 하나님 안에서 이루어졌음을' 드러내려는 것이다.

- 즉, 나의 행위 안에 '나'는 없고 하나님만 있다는 믿음의 고백이다.

교회 안에는 감사와 회개를 통해서조차 나를 자랑하려는 사람이 많다.

- 감사와 회개의 원인에 하나님이 아닌 '나'가 있기 때문이다. 

- 감사와 회개는 '나'가 없을 때에만 하나님이 드러난다.

결론적으로, 믿는 사람의 특징은 ① 예수님께 나아감과 ② 자신의 행위를 드러냄이다.

- 그래서 자신의 행위, 즉 자신에게 모든 일의 원인에 '나'는 없고 하나님만 계심을 드러내는 것이다.

- 이러한 태도가 수로보니게 여인, 혈루증 여인이 가지고 있었던 믿는 사람의 특징이다.

믿지 않는 사람의 특징(18-20)

18: 심판을 받는데, 중요한 것은, '이미 받았다'는 것이다. already에 완료형 동사까지 쓰였다. 엄청난 강조다.

다음 19-20절에서 이미 심판 받았다는 것의 의미를 설명한다.

한 가지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은, 본문은 죽음 이후에 대해 말하지 않고, 현재 이 세상에서의 삶에 대해 말하고 있다.

- 믿는 사람의 특징은 이 세상에 살면서 자신의 행위를 드러내는 것이었다.

- 믿지 않는 사람의 특징 역시 이 세상에서 이미 심판을 받고 있다는 것이다.

- 이렇게 현실 속에서 믿는 사람과 믿지 않는 사람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요한복음의 특징이다.

그렇다면 그 심판이 뭐냐?

19-20: 빛보다 어둠을 더 좋아한다. 빛을 미워하며, 빛으로 나아오지 않는다.

아까와 마찬가지로, 빛은 ① 예수님과 ② 드러냄을 의미한다.

- 따라서 어둠을 좋아하고 빛을 미워하는 것은 ① 예수님께 나아가지 않고 ② 자신의 행위를 숨기는 것이다.

- 이것이 믿음 없는 사람의 특징이다.

- 역시, 믿음 없는 사람의 특징을 악한 행위 자체에 두지 않고 자신의 행위를 숨기는 태도에 두었다.

- 악한 행위 자체보다 그것을 숨기기 위해 예수님께 나아가지 않는 것이 더 본질적인 문제이다.

믿음 없는 사람은 왜 숨길까?

오답: 악한 행위를 했기 때문에

- 악한 행위를 했기 때문에 자신의 행위를 숨기고, 그래서 예수님께 나아가지 않아 영생을 얻지 못한다면, 세상에 영생 얻을 사람은 아무도 없다.

- 영생 얻는 사람은, 악한 행위를 하지 않은 사람이 아니라, 악한 행위를 한 후 숨기지 않고 드러내어 예수님께 나아간다.

정답: 자신에게 일어나는 모든 일의 원인이 하나님이 아니라 '나'라고 믿기 때문이다.

- 특히 악한 일의 원인도 '나'라고 믿기 때문이다. 

- 그렇기 때문에 두렵고, 그렇기 때문에 숨기고,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께 나아가지 않는다. 그래서 멸망당한다.

- 그러나 믿는 사람은 자신의 악한 일도, 진리를 행한 일도 원인이 '나'라고 믿지 않기 때문에 두려워 숨기지 않고 드러내며 예수님께 나아간다.


주제

문제의 핵심은 '나'이다.

- '나'가 있는 사람은 부끄러움에 숨긴다. 그래서 예수님께 나아가지 않는다.

- '나'가 없는 사람은 부끄럽지 않아 드러낸다. 하나님께서 하셨음을 믿는다. 그래서 예수님께 나아간다.

- 니고데모는 '나'가 있었기 때문에, '나'를 근거로 표징을 판단했고, 결국 예수님의 말씀을 이해하지 못했다.

믿음은 일어나는 모든 일의 원인이 '나'가 아님을 믿고 예수님이심을 믿는 것이다.

- 우리는 잘 되도 나 때문에, 안 되도 나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 로또 당첨까지 그 원인을 나에게 찾는 어리석은 존재다.

하지만 현실은, 우리가 우리에게 일어나는 일의 원인을 절대로 파악할 수 없다. 그 어떤 것도.

- 이스라엘 역사도 국내 문제와 국외 문제와 알 수 없는 우연적인 요소가 합쳐져서 나타난다. 그래서 파악이 안된다.

- 이렇게 세상 일의 인과 관계를 완벽하게 분석할 수 있는 방법은 전무하다.

- 예를 들어, 우리가 먹은 밥이 어떻게 소화되어 어떻게 흡수되고 어떻게 배설되는지 의학적으로 완벽하게 알지 못한다.

- 물리학에서조차 불확정성의 원리에 따라 물체의 위치와 운동량을 정확하게 알지 못한다.

우리의 삶의 원인을 나라고 믿는 것과 나가 아닌 하나님이라고 믿는 것 중에 어떤 것이 더 합리적인가?

- 하나님은 아니라고 하더라도, 나라고 믿는 것은 참으로 어리석은 태도이다.

- 따라서, 이 세상의 인과관계에 대해 아무리 사소한 것이라도 우리는 알지 못한다는 것을 인정하고, 특히 이 세상에서 일어나는 일의 원인이 '나'라고 생각하는 교만 또는 어리석음에 빠지지 말자.

그런 태도를 가질 때, 우리의 모든 것을 숨김 없이 예수님께 드러낼 수 있고, 예수님께 나아갈 수 있고, 예수님을 믿을 수 있다.

혹시나 의구심: 이런게 믿음이라면, 이것을 핑게로 방종하지 않을까?

- 내가 하는 악한 행위도 내가 하는게 아니고, 진리를 행하는 것도 내가 하는게 아니라면, 모든 것이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이라는 핑게를 대며, 절제 없이 악한 행위를 하고, 진리를 행하지 않게 되지 않을까?

답1: 그렇게라도 해서 예수님께 나아갈 수만 있다면, 그것도 좋은 것이다.

- 악을 행하고 진리를 행하지 않는 자신을 숨기지 않고 예수님께 드러내며, 예수님께 나아간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다.

- 그 이후에 일은 예수님께 나아갔을 때, 예수님께서 책임져주실 것이다.

답2: 정말 예수님을 믿는다면, 방종하기 어렵다.

- 성경에 예수님께서 하라고 하신게 너무 많다. 그거 다 순종하려면 방종할 시간이 없다.

- 포인트는, '나'의 순종이라는 원인으로 나와 세상의 변화라는 결과를 만들려고 한다면 오답이다.

- 이는 여전히 예수님을 믿지 않고 '나'를 믿는 어리석은 생각이다.

'나'의 순종과 세상의 변화 사이의 인과관계는 알 수 없어서, 내가 순종한다고 나와 세상이 변하는 것은 아니지만, 다른 아무 이유 없이, 예수님이 하라고 했으니까 순종하는 행위만 의미있다. 이것이 주종관계이며, 이것만이 믿음이다.


결론 및 적용

이번 본문의 결론은 <'나'를 없애자!> 이다.

- 왜냐하면, 그래야 자신의 행위를 두려워 숨기지 않고 예수님께 드러낼 수 있고, 예수님께 나아가 영생을 얻을 수 있으니까.

하지만, 진짜 문제는 '나'를 어떻게 없애냐는 것이다.

- '나'가 내 안에 있고, '나'가 나 인데, 내 안에 '나'를 어떻게 없애!

- 아무리 아니라고 생각해도, 지금 자판을 치고 있는 것은 내 손가락이고, 내 머리 속에서 나온 내 명령인데, 화면에 글씨가 나오게 된 원인이 '나'가 아니라니, 그게 뭔 말도 안되는 소리냐! 라고 묻는다면?

곤란한 답변을 회피하기 위해 아마 나는 이렇게 말할 것이다.

- 예수님을 바라봐라. 그러면 '나'를 없앨 수 있다.

- 이런 대답이 얼마나 쓸데없는 대답이냐면, 예수님께 나아가기 위해, '나'를 없애야 한다고 말하고선, '나'를 없애기 위해 예수님께 나아가야 한다고 말하는 순환논리의 오류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더 큰 문제는, 순환논리의 오류가 나만의 문제가 아니라, 성경이 말하고 있다는 것이다.

- 성경은, '나'를 없애야 예수님께 나아갈 수 있고, 예수님께 나아가야 '나'를 없앨 수 있다고 말한다.

- 말하자면, '될놈될 안놈안'이다.

- 순환 논리 안에 들어간 놈은 계속 선순환되어 점점 더 예수님께 나아가고, 순환 논리 밖에 있는 놈은 계속 악순환되어 점점 더 예수님으로부터 멀어진다.

- 이는 마치 육과 영은 완전히 구분되어서, 육은 점점 더 육이 되어 지옥가고, 영은 점점 더 영이 되어 천국간다는 지난 본문과 일치한다.

핵심은, 우리가 있는 육의 악순환 고리에서 영의 선순환 고리 안으로 뚫고 들어가야 한다는 것이다. 

- 정말 어려운 일이다. 아니 불가능한 일이다.

- 그렇다고 손 놓고 하늘만 쳐다볼 수도 없는 상황.

따라서 선순환 고리 안으로 들어가는데 우리에게 주어진 열쇠는 두 개가 전부다.

- 하나는 <나 없애기>이고, 다른 하나는 <예수님 바라보기>이다.

- 적어도 이 둘 중에 하나는 해야 하고, 사실 둘 다 해야 한다.(분산투자)

여기서 <나 없애기>를 전문 용어로 '회개'라고 하고, <예수님 바라보기>는 '믿음'이라고 한다.

- 결국 신앙 생활은 회개와 믿음이라는 것이다.

어짜피 우리가 아무리 노력을 해도, 될 놈은 되고 안될 놈은 안된다. 인과관계는 우리가 파악할 수 없고, 뭐든 하나님 뜻대로 될 뿐이다.

- 하지만, 우리가 '회개'와 '믿음'을 해야하는 이유는, "그렇게 하면 천국 갈 수 있으니까"가 아니라, "성경이 그렇게 하라니까"로 태도가 바뀌어야 한다.

그러니 따지지 말고, 그냥 하자.

- 어떻게든 '나'가 인과관계의 원인이 아니라고 계속해서 생각하고, 오직 예수님만이 진짜 원인이라고 반복해서 생각하자.

- 그리고 그 예수님께 나아가 우리의 모든 것을 숨김 없기 고백하고, 필요한 모든 것을 구하자.

- 그것이 신앙 생활의 전부이지 않을까?

질문: 믿는 사람은 자신의 행위에 대해 사람들에게 많이 공개할까, 그렇지 않을까?

- 자신의 행위 안에 있는 하나님은 더 많이 공개하고, 자신의 행위 안에 있는 '나'는 공개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