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본문에서 빵을 먹은 사람들은 예수님을 믿지 않고 이용하려고만 했다.
- 생명의 빵이신 예수님을 눈 앞에 두고도 예수님을 믿지 않았다.
우리는 어떠한가?
- 우리도 똑같이 기적을 경험하고도, 예수님을 눈 앞에 두고도, 핑게를 대며 믿지 않고 있다.
- 믿어지지 않는 나를 탓하며, 기적을 더 주시지 않는 예수님을 탓하며, 예수님께 집중할 수 없는 상황을 탓하며.
그런 우리에게 본문은 <믿어라!>고 말한다. 왜냐?
- 생명의 빵이신 예수님께서 지금 이 시간에도 사랑의 손길로 우리를 부르고 계시기 때문이고,
- 예수님이 이 세상 어떤 것과도 비교할 수 없이 특별하고 강력하며 유익하기 때문이다.
- 예수님은 무력한 나도, 세상 어떤 기적도, 어떤 상황도 거뜬히 뛰어 넘는다.
- 예수님을 믿어야 할 이유는 우리 앞에 충분히 있다. 더 알아볼 필요도 없다.
문제는 우리의 어리석음이다.
- 본문은 확실한 증거 앞에서 또 다시 증거를 구하는 사람들을 통해 우리의 어리석음을 고발한다.
6장 강화 전체 개관 - 7차례 문답
22-24절: 기적에 대한 맹신으로 사람들이 예수님을 찾아 만난 상황.
|
절 |
사람들의 질문 |
예수님의 대답 |
① |
25-27 |
선생님, 언제 여기에 오셨습니까? |
기적 따위에 눈 돌리지 말고 참된 일에 초점 둬라. |
② |
28-29 |
하나님의 일을 위해서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합니까? |
하나님의 일은 하나님께서 보내신 이를 믿는 것이다. |
③ |
30-33 |
우리가 믿도록 당신이 하시는 표징은 무엇입니까? |
내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빵을 주시는 것이다. |
④ | 34-40 |
주님, 그 빵을 언제나 우리에게 주십시오. |
그 빵이 나다. 하나님께서는 나를 통해 영생을 준신다. 나는 이를 위해 하늘에서 내려왔다. |
⑤ |
41-51 |
이 사람이 어떻게 하늘에서 내려온 빵인가? |
하나님께(하늘로부터) 듣고 배운 사람은 다 내게로 오기 때문이다. 내가 줄 빵은 나의 살이다. |
⑥ |
52-59 |
이 사람이 어떻게 우리에게 자기 살을 먹으라고 줄 수 있을까? |
내 살과 피를 먹는 것은 나와 교제하는 것이다. |
⑦ |
60-65 |
이 말씀이 이렇게 어려우니 누가 알아들을 수 있겠는가? |
생명을 주는 것은 영이다. 육은 아무 데도 소용이 없다. 내가 너희에게 한 이 말은 영이요 생명이다. 그래서 어려운 것이다. |
주고 받는 대화를 통해, 생명의 본질이 무엇이며, 그 생명이 왜 예수님이신지 점차 구체적으로 밝힌다.
반면에 사람들은 예수님의 말씀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생명이 아닌 기적만 구한다.
- 이는 니고데모와의 대화 패턴과 비슷하다.
내용 정리
22-24절: 배경 설명 - 예수님을 찾아 가버나움으로 떠나는 사람들
지난 본문에서 갈릴리 바다 동편에 있었던 예수님과 제자들은 바다를 다시 건너 바다 서편인 갈릴리 지역 가버나움에 도착했다.
- 갈릴리 바다 동편에서 예수님은 사람들의 호응을 피해 산으로 도망갔다.
- 남겨진 제자들은 배를 타고 가버나움으로 가는 도중에 기적적으로 예수님을 만났다.
- 결과적으로 갈릴리 동편에는 예수님과 제자들도 없고, 타고 갈 배도 없는 상황이다.
하룻밤이 지나고 사람들은 상황을 파악했다.
- 어젯밤에 배가 하나 있었는데, 분명히 예수님 없이 제자들만 그 배를 타고 갔었다.
- 따라서 타고 갈 배가 없으신 예수님은 이곳 어딘가에 남아계실 것이라고 추측했다.
- 그러나 갈릴리 동편 어디서도 예수님을 찾을 수 없었다.
때마침 배 몇 척이 들어왔고, 사람들은 그 배를 타고 예수님을 찾아 갈릴리 서편 가버나움으로 갔다.
25절: 질문 ① - 예수님에 대한 사람들의 탐욕
사람들은 가버나움에 도착해서 예수님을 드디어 만났다.
- 만난 장소는 회당으로 추정된다.(59)
사람들은 예수님을 보자마자 언제 왔냐고 묻는다.
- 이 질문 안에는 예수님에 대한 사람들의 반가움과 기다림 그리고 애탐이 절절하게 묻어난다.
- 이는 예수님을 믿음이 아니라, 왕 삼아 이용하고 싶은 탐욕이 그만큼 컸기 때문이다.
- 이렇게 예수님께 호의를 가지고 열광하는 사람 중에도 믿음이 없어 지옥 가는 사람이 많다.
대화는 이렇게 사람들의 탐욕으로 시작한다.
26-27절: 대답 ① - 사람들의 탐욕을 정죄하시고 바른 방향을 제시하시는 예수님
예수님께서는 사람들의 열정을 탐욕으로 규정하신다.
- 사람들이 열정적으로 예수님을 찾은 이유는, 표징 때문이 아니라, 즉 기적을 통해 예수님을 알았기 때문이 아니라, 빵 때문에, 즉 더 배부르기 위한 탐욕 때문이라고 지적하신다.
- 우리가 예수님을 찾는 이유도 되돌아보자. 예수님이 정말 하나님이심을 믿기 때문인지, 아니면 빵 하나 더 얻어서 세상에 안주하기 위함인지.
예수님은 사람들의 탐욕이 <썩어 없어질 양식을 얻으려는 일>이기 때문에, 그와는 반대되는 <영생에 이르도록 남아 있을 양식을 얻으려는 일>을 행해야 한다고 말씀하신다.
- '빵 먹고 배부름'이 상징하는 것은, 영과 반대되는 육이다. 세상에서 기뻐하고 만족하여 안주하게 하는 모든 것이다. 세상은 썩어 없어질 것이기 때문이다.
- [6:63] 생명을 주는 것은 영이다. 육은 아무 데도 소용이 없다.
- 부, 명예, 권력, 자유, 행복, 기쁨 뿐만 아니라, 예수님을 배제한 신앙 행위, 즉 예배, 찬양, 기도, 성경 공부, 봉사, 전도, 선교, 교제 등도 아무 데도 소용 없는 육이다. 썩어 없어질 배부름이다.
따라서 썩지 않고 영생에 이르는 양식을 얻으려는 일을 행하라고 말씀하시는 것이다.
- 그것이 무엇인지는 차차 설명하신다.
그런데 이 양식은 하나님에 의해 확증된 인자를 통해서만 주어진다.
- 주도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시고, 실질적으로 수행하시는 분은 예수님이다.
- 이는 하나님의 뜻을 그대로 행하시는 예수님의 태도를 설명하는 37-40절에서 상술된다.
따라서 예수님은 아무도 알 수도 행할 수도 없는 하나님의 뜻을 알고 행하시는 유일한 분이다.
28절: 질문 ② - 하나님의 일에 대한 사람들의 질문
사람들은 하나님의 일을 행하기 위해 무엇을 해야하냐고 묻는다.
- 사람들의 속셈은 하나님의 일이 무엇인지 알아서, 그것을 통해 탐욕을 채우겠다는 것이다.
- 우리도 항상 하는 생각이다. 또한 많은 교회가 제시하는 가르침이다.
우리는 탐욕을 채우기 위해, 하나님의 일 행하기를 불사한다.
- 하나님의 일이란 명목으로 예배, 말씀, 기도, 봉사, 전도, 선교를 통해, 영과 육이 평안하여 세상에 안주하려는 탐욕을 채운다.
또한, 많은 교회는 하나님의 뜻이 예배, 말씀, 기도, 봉사, 전도, 선교이니, 이것들을 행하면 세상의 평안을 얻을 수 있다고 속인다.
- 모두 탐욕을 채우기 위해 하나님의 일을 이용하는 것이다.
29절: 대답 ② - 하나님의 일은 하나님께서 보내신 이를 믿는 것이다.
예배, 말씀, 기도, 봉사, 전도, 선교는 하나님의 일이 아니다. 세상과 교회가 만들어낸 속임수다.
- 이런 것들은 하나님의 일을 위한 수단일 뿐이다.
하나님의 일은 하나님께서 보내신 이(예수님)을 믿는 것(관계 맺는 것) 외에는 없다.
- 표적 중에 기적에 관심을 버리고, 메시지이신 예수님께 초점을 두라는 말씀이다.
30-31절: 질문 ③ - 또 다시 기적을 구하는 사람들
기적에 관심 버리고 예수님 믿으라는 말씀에, 사람들은 믿을 수 있도록 기적을 달라고 또 구한다.
그러면서 사람들은 한 마디를 더 얹는다. 우리 조상들은 모세가 만나 줘서 먹었다는데, 넌 뭐 줄래?
- 이것도 우리와 똑같다.
- 기적이 아니라 예수님을 믿어야 하고 예수님과 관계 맺어야 한다는 말을 들으면, 우리는 또 다시 그 믿음을 위한 기적을 달라고 구한다.
- 내 얘기다. 나에게도 믿음이 생기는 기적을 달라고, 우리 교회 식구들에게도 믿음이 생기는 기적을 달라고 여전히 기도한다. 참 어리석다.
기적이 있으면 믿음이 생길까? 아니면 믿음이 생겨야 기적이 일어날까?
- 둘 다 아니다. 기적에 관심 버리고 에수님 믿자.
그럼 믿는게 정말 뭘까? 차차 생각해보자. 6장이 다 끝나야 대답할 수 있을 것 같다.
32-33절: 대답 ③ -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빵을 주실 것이다.
또 다시 기적을 구하는 사람들은 만나에 대해서 두 가지를 오해하고 있었다.
① 기적의 주체 - 모세가 만나를 주었다.
② 기적의 목적 - 배고픔을 해결하기 위해 만나가 내렸다.
그런데 이 두 가지 오해는 결국 하나다.
- 기적의 목적은 기적의 주체를 알리는 것이다.
- 만나는 배고픔을 채우려는게 아니라 하나님을 알리려는 것이다.
그런데 사람들은 기적의 목적을 몰랐기 때문에 기적의 주체가 누구신지도 몰랐다.
- 그래서 광야에서 이스라엘 민족은 만나를 먹고도 하나님을 몰랐다. 그 결과 광야에서 죽었다.
- 똑같은 오해를 하고 있는 예수님 시대의 사람들도 오병이어를 먹고도 예수님을 몰랐다. 똑같이 심판 받아 죽었다.
- 따라서 똑같은 오해를 하고 있는 현시대의 사람들도 똑같이 심판 받아 죽을 것이다.
그래서 오해를 바로 잡기 위한 예수님의 대답도 두 가지다.
① 빵(=만나)을 주시는 주체는 모세가 아니라 내 아버지 하나님이다.(32)
② 빵을 주시는 목적은 배불리기 위한 것이 아니라 생명을 주시기 위한 것이다.(33)
그렇다면 빵이 주는 생명은 무엇일까? 우리는 이것을 알아야 한다.
34절: 질문 ④ - 여전히 빵만 구하는 사람들
사람들은 여전히 빵 기적에만 초점을 두고 있다.
- 세상의 안주에서 한 치도 벗어나지 못했다.
특히 그 빵을 '언제나' 달라고 요구한다.(현재와 미래)
- 원어에서도 '언제나'를 문장 제일 앞에 둬서 강조한다.
여기에는 두 가지 의미가 담겨있다. ① 아직 받지 못했다.(현재) ② 받아도 다시 배고플 수 있다.(미래)
이는 당연한 반응이다. ① 지금 배가 고프니까. ② 지금 밥을 먹어도, 내일은 분명히 배가 고플테니까.
① 모든 사람은 '배고픔'을 느낀다.
- 그래서 돈, 명예, 권력, 자유, 행복, 기쁨이 필요하다. 그래서 빵을 구한다.
② 게다가 사람은 본능적으로 안다. 지금 가진 빵이 배고픔을 완전히 해결하지 못한다는 것을.
- 그래서 계속해서 빵을 구한다. 필요 이상으로 구한다.
- 돈이 있으면 명예를, 명예가 있으면 권력을, 권력이 있으면 자유를. 계속 바꿔가면서.
- 어떤 사람은 새롭게 구하는 빵이 배고픔을 완전히 해결해줄 것이란 믿음으로 구하고, 어떤 사람은 해결해주지 않을 것을 알면서도 구한다. 적어도 구하는 동안은 마음이 편하니까.
단언하지만, 아무 것도 우리를 배부르게 할 수 없다.
- 이는 신앙을 배제해도, 세상 철학과 역사가 이미 증명했다.
예수님만이 배고픔으로부터 완전히 해방시키셔서 영속적인 배부름을 주신다.
예상컨데, 사람들에 대한 예수님의 대답도 두 가지일 것이다.
① 빵을 이미 줬다. - 지금 배고프지 않다.(현재)
② 빵은 영속한다.. - 다시는 배고프지 않을 것이다.(미래)
35-40절: 대답 ④ - 내가 생명의 빵이다.
① 내가 생명의 빵이란 선포는, 나와 함께 있는 너희에게 이미 빵이 주어졌다는 뜻이다.(현재)
- 이는 빵을 아직 받지 못했다는 사람들에 대한 반박이다.
② 또한 '내게로 오는 사람' 과 '나를 믿는 사람'은 주리지도 목마르지도 않을 것을 선포한다.(미래)
- 빵을 갖는 것은 예수님께로 가서 예수님을 믿는 것이다.
- 이 역시, 빵을 받아도 배고플 수 있다는 사람들에 대한 반박이다.
이 말씀은 한번 믿으면 다음부터 믿음이 필요 없다는 뜻이 아니다.
- 세상의 배부름, 즉 돈, 명예, 권력, 자유, 행복, 기쁨은 가져도 여전히 배고파서 계속해서 다른 것이 가지고 싶다. 특히 죽음 앞에 아무런 가치를 갖지 못한다.
- 하지만 예수님의 배부름, 즉 예수님께 나아가 예수님을 믿으면 더 이상 배고프지 않아 다른 것을 가지고 싶지 않다. 특히 죽음 이후에도 영속하여 영원토록 살도록 한다.
- 따라서 예수님의 빵을 먹으면, 다른 것을 구하지 않고, 예수님만을 더욱 구하게 된다는 뜻이다.
이를 다르게 말하면, 예수님 이외에 또 빵을 구한다는 것은, 예수님의 빵을 받지 못했다는 것이다.
- 사람들에게 이미 예수님은 주어졌다. 사람들은 이미 예수님을 보고 있다.(36)
-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적을 구하는 것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거부하여 믿지 않는 것이다.(36)
우리도 똑같은 상황에 있다. 우리에게도 예수님의 빵은 주어졌다. 성경을 통해 이미 예수님을 들었다.
- 간혹 예수님 당시의 사람들을 부러워하며, 그들은 예수님을 실제로 보았으니 우리와 다르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다.
- 그렇기 때문에 믿지 않은 죄가 그들이 우리보다 더 크다고 말한다.
- 하지만, 그들은 예수님을 파편적으로만 알았다. 예수님을 다각적, 총체적으로 알지 못했다.
- 우리는 네 가지 복음서를 통해, 수십 개의 편지를 통해, 완결된 예수님을 총체적으로 알 수 있다.
- 그렇기 때문에 오히려 그들보다 우리가 예수님을 알고 믿기에 훨씬 유리하다.
- 따라서 우리가 여전히 배고프다며 기적을 구하는 것은 본문에 나온 사람들처럼 우리가 예수님을 믿지 않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예수님의 말씀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 예수님께서는 사람들에게 빵을 이미 주셨다. 그래서 더 이상 빵을 구하지 않아야 마땅하다.
- 하지만 사람들이 계속 빵을 구한하고 있다.
- 이렇게 된 이유는 사람들이 예수님을 보고도 믿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 빵 배달 사고가 있었는데, 원인이 사람의 믿음 없음이라는 뜻이다.
그런데 이 말은 이런 오해를 살 수 있다.
- 하나님의 뜻에 따라, 예수님께서 수행하셔서 생명의 빵을 받은 사람 중에도 영생을 얻지 못하는 사람이 있을 수 있다는 것이다.
- 이는 하나님의 뜻이 성취되지 않는다는 뜻이며, 하나님의 신뢰성에 큰 타격을 준다.
그래서 37절부터 절대 그럴 일 없다고 못 박아 강조한다.
- 다양한 표현으로 반복해서, 하나님의 뜻에 따라 예수님께서 한 사람도 잃어버리지 않고 모두 살리실 것이라고 확언한다.
- 37절: 아버지께서 내게 주신 사람 --> 다 내게로 오고 --> 그들을 내가 물리치지 않고 지킨다.
- 38-39절: 예수님께서 사람들을 얼마나 철저하게 지키시는지 근거로, 내가 온 이유 = 나를 보내신 분의 뜻 행함 = 내게 온 사람을 지켜 살리는 일이다.
- 40절: 아버지의 뜻 = 아들을 믿는 사람에게 영생을 주는 일 = 내가 마지막 날에 할 일
- 따라서 하나님의 뜻이 성취되지 않는 일은 절대로 없고, 예정된 사람은 모두 영생을 얻는다는 뜻이다.
빵은 주어졌고, 빵이신 예수님을 믿는 사람에게 주어질 생명의 강력함이 선포되었다.
그런데, 한 가지 남은 문제는 믿음이 없다는 것이다.
- 믿음만 있으면, 생명의 빵이신 예수님으로 인해 썩지도, 죽지도, 잃어버리지도 않는 확고한 생명이 주어진다.
그러면 당신은 어떻게 할 것인가? 빵을 보고만 있을 것인가? 아니면 믿고 먹고 마실 것인가?
- 다음 본문에서도 계속해서 예수님의 빵의 강력함과 특별함을 선포하여 우리에게 믿음을 독려할 것이다.
주제
① 예수님은 계속해서 기적이 아니라 자신을 보고 믿으라며 사랑의 손길을 내미신다.
사람들은 예수님을 찾지만, 아무도 예수님께 관심이 없다.
- '내'가 세상에 안주할 수 있도록 빵 기적만 찾는다.
그런 사람들을 내치실 법도 한데, 예수님은 계속해서 부르신다.
- 그 따위 빵 기적 아무 쓸데 없고, 내가 진짜 빵이니, 나만 믿으라고 하신다.
- 세상도 썩고, 빵 기적도 썩어 없어지지만, 내 빵을 먹으면 썩지 않고 영생한다고 말씀하신다.
- 계속해서 돌아오라고 외치신다.
② 그러나 사람들은 그런 예수님께 기적을 달라고 또 구한다.
기적 구하지 말고 나 믿으랬더니, 믿을 수 있도록 기적 달라고 한다.
- 이 대목이 본문에서 가장 어이 없다.
- 썩어 없어질 '나'와 썩어 없어질 '세상'에 대한 집착이 뇌를 마비시켰다.
③ 빵은 이미 주어졌다.
사람들은 오병이어 빵 기적도 봤다. 그리고 참 생명의 빵이신 예수님도 눈 앞에 있다.
- 예수님을 믿을 수 있는 모든 조건이 완벽하다. 아무 것도 필요 없다.
④ 게다가 빵이신 예수님은 자신을 믿는 자들을 반드시 지키시고 살리셔서 영생을 얻게 하신다.
- 예수님은 끝까지 자신의 매력을 어필하신다.
- 모든 것이 썩어 없어질 때, 자신에게 있는 영원토록 살리는 능력의 확고함을 선포하신다.
- 오병이어 기적을 일으키신 분의 입에서 나온 발언이기에 허투루 들을 수 없다.
결론
이 메시지를 들은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
- 여전히 헛된 기적을 꿈꾸며 하늘에서 만나가 내리길 기다려야 할까?
이미 만나가 내렸고, 오병이어가 일어났고, 죽은 자가 부활했다. 그 사실이 낱낱이 기록되어 있는 성경이 있고, 그 성경은 허구가 아닌 사실이라는 만만치 않은 증거들이 있다.
- 또 다른 기적을 구하는 것이 얼마나 어리석은지 너무 잘 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믿지 못하고, 여전히 세상에서 희희낙낙하기를 꿈꾸며 세상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세상에 매여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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