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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린도전서

고린도전서(18) 10:1~13 평범한 악의 위험성

<미양교회 팟캐스트 양따양>

미양교회에서 했던 설교를 바탕으로 진솔하게 신앙 경험을 이야기합니다.

팟캐스트도 많이 들어주세요.

https://www.podbbang.com/channels/1790233/

 

어린양을 따르는 어린양

예배 대신 예수님, 설교 대신 성경, 건물 대신 사람을 중심으로 하는 미양교회가 만드는 방송입니다.토끼와 개구리가 진솔하게 신앙에 대해 이야기합니다.어린양과 같이 십자가에 죽고 부활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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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린도 교회 사람들은 명백하게 우상 숭배 의식에 참여했다.

- 우상 신전에서 식사했다.

[고전 8:10] 지식이 있는 당신이 우상의 신당에 앉아서 먹고 있는 것을 어떤 사람이 보면, ・・・・

그런데 그 행위에 대해 아무런 죄책감이 없었다.

- 우상 숭배 의식에 참여하는 것은 자신의 자유이며 권리라고 믿었다.

- 근거는 우상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 이는 바울도 인정하는 바이다.

[고전 8:4] 그런데 우상에게 바친 고기를 먹는 일을 두고 말하면, 우리가 알기로는, 세상에 우상이란 것은 아무것도 아니고, 오직 하나님 한 분 밖에는 신이 없습니다.

게다가 고린도 교회는 침례 의식을 통해 완전한 구원에 이르렀다고 믿었다.

- 아무리 우상 숭배 의식에 참여해도 자신은 여전히 의롭다고 여겼다.

- 그래서 자유롭게, 마음껏, 죄책감 없이 우상 제사 의식에 참여할 수 있었다.

이 때문에 바울은 고린도 교회에게 이스라엘의 본보기를 제시한다.

- 출애굽 과정을 통해 침례 의식을 행한 이스라엘 백성도 멸망한 것처럼 침례 의식을 행한 고린도 교회도 멸망할 수 있다는 것이다.

[고전 10:2] 이렇게 그들은 모두 구름과 바다 속에서 침례를 받아 모세에게 속하게 되었습니다.

[고전 10:5] 그러나 그들의 대다수를 하나님께서는 좋아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들은 광야에서 멸망하고 말았습니다.

 

이를 통해 바울이 전하는 바는 단순하다.

- 우상 숭배하지 말라는 것이다.

- 계속 우상 숭배하면 멸망할 것이라고 경고한다.

[고전 10:7] ・・・・ 여러분은 그들과 같이 우상 숭배자가 되어서는 안됩니다.

[고전 10:12] 그러므로 서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넘어지지 않도록 조심하십시오.

그러면서 바울은 우상 숭배로 인한 죄 세 가지를 경고한다.

- 그것은 간음, 그리스도를 시험, 불평이다.

여기까지가 본문의 표면적인 내용이다.

 

그런데 이렇게만 해석하면, 본문을 제대로 이해할 수 없다.

- 바울이 왜 우상 숭배 의식에 참여하지 말라고 말하는지 이해할 수 없다.

- 우상 숭배가 나쁘다는 것을 누가 모르겠는가.

- 분명히 바울은 이전에 고린도 교회에게 우상 숭배하면 안 된다고 말했을 것이다.

- 그래서 고린도 교회도 이미 우상 숭배가 나쁘다는 것을 알았을 것이다.

그렇다면 도대체 왜 바울은 우상 숭배하지 말라고 말했을까?

- 고린도 교회가 이미 알고 있는 말을 왜 다시 했을까?

 

본문은 우상 숭배를 하면 안 되는 이유를 말한다.

- 간음하고, 그리스도를 시험하며, 불평하게 되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이는 본문의 핵심이 아니다.

- 본문의 핵심은 숨겨져 있다.

- 우리는 본문을 통해 우상 숭배의 해악을 아는 것에 머물면 안 된다.

- ‘우상 숭배를 하면 안 되겠구나.’라는 다짐으로 끝나면 안 된다.

우리는 한 걸음 더 나아가야 한다.

- ‘바울이 우상 숭배하지 말라고 말했구나.’라고 결론 맺지 말고,

- ‘왜 바울이 우상 숭배하지 말라고 말했을까?’라고 질문해야 한다.

- 바울의 표면적인 말뿐만 아니라, 바울의 심층적인 의도까지 들어가야 한다.

 

물론 본문은 이 질문에 직접적으로 대답하지 않는다.

- 그래서 완벽한 답을 찾을 수는 없다.

- 숨겨진 바울의 속마음을 글만 보고 어떻게 다 알 수 있겠는가.

- 하지만 맥락을 통해 최대한 답을 향해 나아가야 한다.

- 본문에 근거하되, 본문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야 한다.

이렇게 바울의 말이 아니라 말의 심층에 있는 의도까지 알려고 노력해야 한다.

- 그럴 때만 본문을 통한 성령의 가르침을 들을 수 있다.

 

바울이 우상 숭배하지 말라고 말한 이유

바울이 이렇게 말한 이유는 고린도 교회가 우상 숭배를 했기 때문이다.

- 더 정확하게 말해서, 실제로 우상을 믿고 숭배한 것은 아니다.

- 고린도 교회도 우상이 없다는 것을 알았다.

- 우상 숭배는 거짓이고 헛되다는 것을 알았다.

그런데 오히려 그 지식 때문에 더욱 거침없이 우상 숭배 의식에 참여했다.

- 우상 숭배 의식에 아무런 해악이 없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 우상을 믿지 않았기 때문에 우상 숭배 의식에 더 빠지게 된 아이러니한 상황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을까?

- 우상을 믿지 않으면, 우상 숭배 의식에 참여하지 않는 것이 상식인데 말이다.

이유는 당시 고린도 지역에서 우상 숭배 의식이 일상 생활의 일부였기 때문이다.

- 고린도 사람들에게 우상 신전은 식당의 역할을 겸했다.

- 그래서 결혼, 장례식과 같은 가족 행사부터 연회, 사교, 사업 등 사회적 활동의 중심지였다.

따라서 우상 숭배 의식 참여는 일상 그 자체였다.

- 오히려 의식에 참여하지 않으면, 사회에서 배척되고 고립될 수 있었다.

 

이러한 사정 때문에 바울도 우상 숭배 의식을 완전히 거부할 수 없었다.

- 8장에서 바울은 우상의 신당에서 식사하는 행위 자체를 죄악시하지 않는다.

- 바울도 일상 생활을 위해 우상 신당에서 제사 음식을 먹는 것이 불가피하다는 것을 알았다.

- 그리고 그 행위의 동기가 우상을 숭배하기 때문이 아니라, 단순히 밥 먹기 위해서라는 것을 알았다.

그래서 행위 자체는 문제 삼지 않고, 행위로 인한 결과를 근거로 말한다.

- 우상의 신당에서 제사 음식을 먹는 것 자체는 문제가 없지만,

- 그 행위를 약한 사람이 보고 걸림돌에 걸려 넘어질 때가 있다.

- 그러니 우상 숭배 의식에 참여하지 말라고 말한다.

[고전 8:10] 지식이 있는 당신이 우상의 신당에 앉아서 먹고 있는 것을 어떤 사람이 보면, 그가 약한 사람일지라도, 그 양심에 용기가 생겨서, 우상에게 바친 고기를 먹게 되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10장은 다르다.

- 바울이 우상 숭배 의식 자체를 거부한다.

- 고린도 교회가 우상 숭배 의식에 참여하는 것을 명확하게 우상 숭배라고 규정하고,

- 우상 숭배하지 말라고 단호하게 말한다.

왜 이런 차이가 생겼을까?

- 왜 8장에서는 우상 숭배 의식을 허용했지만,

- 왜 10장에서는 우상 숭배 의식을 금지했을까?

 

엄밀하게 말해서, 바울은 두 가지를 구분한다.

- 우상 숭배 의식과 그중의 일부인 식사를 구분한다.

- 바울은 우상 제물 식사는 우상 숭배가 아니라고 선을 긋는다.

- 우상 제물 고기를 시장에서 사서 먹는 것은 물론이고,

- 우상 신전에서 식사하는 것까지 문제없다고 말한다.

물론 유대인은 우상 제물 음식을 먹는 것까지 우상 숭배로 간주했다.

- 시장에서 음식을 살 때나 식사에 초대받았을 때, 음식 출처가 어딘지 물었다.

- 그래서 만약 음식 출처가 우상 제사라면, 음식을 먹지 않았다.

- 그리고 유대인의 영향을 받은 교회의 신자 중 일부도 그렇게 생각했다.

하지만 바울은 음식의 출처가 어디든지 전부 하나님의 것이라며,

- 자유롭게 모든 음식을 먹을 수 있다고 말한다.

- 그래서 8장에서 바울은 우상 제물 고기 먹는 것을 문제 삼지 않는다.

- 단, 우상 제물 고기를 먹는 것으로 약한 사람에게 피해를 줄 때만 절제하라고 권고한다.

- 그것이 8장에 나온 바울의 태도이다.

[고전 10:26] ‘땅과 거기에 가득 찬 것들이 다 주님의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10장에서 바울이 다루는 문제는 다르다.

- 단지 우상 숭배 의식의 일부인 식사 시간이 아니라,

- 우상 숭배 의식에 참여하는 문제이다.

고린도 교회 사람 중 일부가 식당에서 식사하듯 우상 신전에서 식사만 한 것을 넘어서,

- 우상 숭배 의식에 참여한 것이다.

- 바울은 이를 단지 먹고 마시는 것을 넘어 ‘일어서서 춤을 추었다’라고 이스라엘 백성의 예를 통해 표현한다.

- 즉, 고린도 교회 사람 일부가 우상 신전에서 식사 시간을 지나서 ‘일어나서 춤추는’ 의식까지 참여한 것이다.

[고전 10:7] 그들 가운데 얼마는 우상을 숭배했습니다. 성경에 기록하기를 “백성들이 앉아서 먹고 마셨으며, 일어서서 춤을 추었다” 하였습니다. 여러분은 그들과 같이 우상 숭배자가 되어서는 안됩니다.

참고로, 바울이 인용한 구절은 출애굽기 32장 6절인데,

- 이는 모세가 십계명을 받으러 시내 산에 올라갔을 때, 

- 이스라엘 백성이 송아지 우상을 만들어 숭배 의식을 행하는 구절이다.

- 따라서 ‘춤을 추었다’는 표현은 단순히 잔치에 참여하여 즐기는 모습이 아니라,

- 직접적으로 우상 숭배 행위를 뜻한다. 

[출 32:4~6] 아론이 그들에게서 그것들을 받아 녹여서, 그 녹인 금을 거푸집에 부어 송아지 상을 만드니, 그들이 외쳤다. “이스라엘아! 이 신이 너희를 이집트 땅에서 이끌어 낸 너희의 신이다.” (5) 아론은 이것을 보고서 그 신상 앞에 제단을 쌓고 “내일 주님의 절기를 지킵시다” 하고 선포하였다. (6) 이튿날 그들은 일찍 일어나서, 번제를 올리고, 화목제를 드렸다. 그런 다음에, 백성은 앉아서 먹고 마시다가, 일어나서 흥청거리며 뛰놀았다.

 

이를 통해 고린도 교회 사람은 세 부류로 나뉜다.

- 첫째로, 우상 제물 고기를 전혀 먹지 않는 사람이다.

- 본문에서 바울은 이들을 ‘약한 사람들‘이라고 했다.

- 바울은 이들이 걸림돌에 걸려 넘어지지 않도록 배려해야 한다고 하는 동시에,

- 이들도 시장에서 파는 음식이 비록 우상 제물이더라도 먹어야 한다고 권면한다.

[고전 10:25] 시장에서 파는 것은, 양심을 위한다고 하여 그 출처를 묻지 말고, 무엇이든지 다 먹으십시오.

둘째로, 우상 제물 고기를 먹고 우상 신전에서 식사를 하지만,

- 우상 숭배 의식에 참여하지 않는 ‘강한 사람’이다.

- 이들은 자유롭게 우상 제물 고기를 먹는 행위를 통해 약한 사람들을 걸려 넘어지게 한다.

- 그래서 바울은 우상 제물 고기 먹는 행위 자체는 문제없다고 말하는 동시에,

- 하지만 약한 사람들을 위해 우상 제물 고기 먹을 자유를 절제해야 한다고 말한다.

[고전 8:9] 그러나 여러분에게 있는 이 자유가 약한 사람들에게 걸림돌이 되지 않도록 조심하십시오.

셋째로,우상 신전에서 식사를 하면서 우상 숭배 의식까지 참여하는 사람이다.

- 분명히 해야 할 것은 애초부터 이들에게 우상에 대한 믿음을 가지고 우상 숭배 의식에 참여한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 만약 그랬다면 바울은 이들을 우상 숭배자라고 정죄하며,

- 당장 교회에서 나가라고 했을 것이다.

- 그러나 바울은 이들을 ‘형제’라고 부른다.

- 즉, 이들이 우상 숭배 의식에 참여한 것은 적극적, 의식적이라기보다 수동적, 무의식적이다.

 

그런데 바로 이것이 10장을 이해하기 어려운 점이다.

- 첫째 부류가 우상 제물 고기를 먹지 않는 행위와 둘째 부류가 먹는 행위는 적극적, 의도적이다.

- 이들이 그렇게 행동하는 이유가 명확하다.

- 그래서 이들에 대한 처방도 명확하다.

- 우상 제물 고기를 먹지 않는 이유는 우상에 대한 두려움 때문이다.

- 따라서 하나님이 우상보다 더 강하고, 우상 제물조차 하나님이 만드셨다는 믿음만 제공하면 해결된다.

- 또한 우상 제물 고기를 먹는 이유는 약한 사람을 간과했기 때문이다.

- 따라서 우상 제물 먹는 행위 자체는 문제없지만, 약한 사람을 배려해달라는 권고만 하면 해결된다.

하지만 세 번째 부류에 대해서는 처방이 어렵다.

- 의도가 분명하지 않기 때문이다.

- 만약 바울이 이들에게 무작정 우상 숭배하지 말라고 말하면,

- 이들은 자신이 우상 숭배를 한 적이 없다며 펄쩍 뛸 것이다.

- 단순한 식사였을 뿐이라고 말할 것이다.

- 자신으로 인해 걸려 넘어지는 약한 사람도 없었다고 항변할 것이다.

- 오히려 바울의 말을 우상 제물을 먹지 말라는 것으로 오해하고,

- 바울의 믿음 없음을 정죄할 것이다.

왜 이렇게 반응하냐면, 무의식적인 행위였기 때문이다.

- 의도와 목적으로 가지고 우상 숭배에 적극적으로 참여한 것이 아니라,

- 우상 신전에서 합법적인 식사를 한 후 자연스럽게 이어진 우상 숭배 의식에 자기도 모르게 무의식적으로 참여한 것이기 때문이다.

- 이렇게 자신이 우상 숭배 의식에 참여했다는 기억이 없기에,

- 바울의 처방을 받아들이기 어려웠을 것이다.

 

우리에게는 우상 숭배 의식에 자연스럽게 참여한다는 것을 이해하기 어렵다.

- 우상 숭배 의식과 일상이 구분되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고린도 사회는 그렇지 않았다.

- 단순한 식사와 우상 숭배 의식 사이에 구분이 어려울 만큼 우상 숭배 의식이 일상적으로 숨 쉬듯 일어났다.

- 너무 일상적이어서 의식조차 어려웠다.

- 그래서 무의식적으로 우상 숭배 참여가 가능했다.

 

우상 숭배 의식이 일상적이었던 고린도 교회

그렇다면 고린도 교회 사람이 어떻게 우상 숭배 의식에 참여했을까?

- 이에 대한 단서는 본문에 전무하다.

- 하지만 범위를 한정할 수 있는 두 가지 조건이 있다.

- 하나는 우상 신전 식사와 연결되는 의식이라는 것이고,

- 다른 하나는 적극적, 의식적으로 숭배 의식에 참여한 것은 아니라 소극적, 무의식적이라는 점이다.

만약 우상 신전 식사와 상관없이 숭배 의식에 참여했다면, 

- 그리고 만약 우상 숭배 의식에 적극적, 의식적으로 참여했다면,

- 그것은 명백한 우상 숭배이고, 이는 논의할 필요가 없다.

- 당장 교회에서 나가야 마땅하다.

 

이를 토대로 상상해 보면,

- 우상 신전에서 식사를 하는 중에 언제나 그렇듯 흥겨운 노래가 나왔을 것이다.

- 마치 식당에 가면 노래가 나오는 것처럼 말이다.

그런데 문제는 그 노래가 우상 숭배 노래였다.

- 그 노래는 고린도 지역에서 자란 사람이라면 누구나 따라 부를 만큼 익숙하고 유명했다.

- 고린도는 우상 숭배가 난무하는 지역이었기 때문에, 우상 숭배 노래도 익숙했다.

- 식사로 인한 기쁨이었는지, 식사 때 곁들인 음주 때문이었는지 알 수 없지만,

- 흥에 겨워 노래를 따라 부르며 춤까지 추었다.

- 춤 역시 불특정한 동작이 아니라,

- 어렸을 때부터 우상 제사에서 보고 배운 춤이었다.

노래와 춤 때문에 감정은 더욱 고조되었다.

- 이미 하나님을 믿음으로 우상의 존재를 부정했지만,

- 입에서 맴도는 노랫말과 몸이 자동으로 반응하는 춤 동작은 우상을 숭배하는 내용이었다.

- 이렇게 무의식적으로 우상을 숭배하게 되었다.

 

그렇다면 이 사람은 우상 숭배를 한 것일까 아닐까?

- 우상 숭배 의식에 참여한 것일까,

- 아니면 식사의 일부로서 흥겨운 감정에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춘 것일까?

- 여전히 우상의 존재를 부정하고 있기에 우상 숭배가 아닐까,

- 아니면 노래와 춤으로 우상 숭배를 고백했기에 우상 숭배일까?

- 무의식적으로 했기 때문에 죄가 아닐까,

- 무의식적으로 했어도 죄는 죄일까?

 

이것을 명확하게 규정하기가 어렵다는 것이 본문을 이해하기 위한 핵심 전제이다.

- 확실하게 우상 숭배가 아닌 우상 신전 식사와

- 확실하게 우상 숭배인 우상 숭배 의식 참여 사이에 간극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 이 간극 안에 있으면 자신이 우상 숭배를 한다고 의식하기 어렵고,

- 그래서 다른 사람이 우상 숭배라고 지적하기도 어렵다.

- 그렇다고 지적하지 않고 놔두면, 적극적으로 우상 숭배에 빠질 가능성이 높다.

- 그래서 더 깊이 빠지기 전에 경고해야 한다.

- 하지만 스스로 의식하지 못하는 상태이기 때문에 경고를 받아들이기 어렵다.

이러한 상황이기 때문에 바울의 경고가 쉽게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 고린도 교회 입장에서 바울의 경고가 오해로 인해 생사람 잡는 것으로 여겨졌다.

- 그래서 바울과 고린도 교회의 갈등이 깊어졌고,

- 이렇게 절박하게 편지를 쓸 수밖에 없는 지경에 이른 것이다.

 

그림으로 보면 다음과 같다.

- 의와 죄의 영역이 있고,

- 그 사이를 나누는 기준이 있다.

- 그런데 여기에서 우상 숭배 의식에 능동적으로 참여하는 것은 확실한 죄이다.

- 본문은 이런 사람을 논외로 한다.

반대로 우상 신전에서 식사만 하는 것은 바울이 허용하기에 확실한 의이다.

- 우상 제물 고기라고 해도 하나님의 것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바울의 권면을 듣고 우상 신전에서 식사조차 절제하는 것은 당연히 의롭다.

- 절제를 통해 사랑을 실천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논의의 핵심은 우상 숭배 의식에 수동적으로 참여하는 것이다.

- 죄에서 의로 전환되는 영역이고,

- 그래서 죄나 의로 명확하게 구분 짓기 어려운 모호한 영역이다.

예를 들어, 우상 신전에서 식사 중에 자기도 모르게 우상 숭배 노래를 한 구절 따라 불렀다.

- 혹은 우상 숭배 노래 한 곡, 두 곡, 세 곡을 따라 불렀다.

- 그런데 그러다가 춤까지 췄다.

- 그 춤에 일부로서 우상에게 절하는 자세를 취했다.

분명히 이들 중에 일부는 죄라고 보기 어렵고, 나머지 일부는 충분히 죄라고 볼 수 있다.

- 그런데 그 기준이 모호하고 근거로 불확실하다.

물론 그렇다고 죄나 의가 아닌 미지의 영역으로 단정할 수도 없다.

- 구분하기 어렵다는 것이지 구분할 수 없는 것은 아니다.

- 완벽할 수 없을지라도 구분하기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한다.

 

모호한 영역에 있는 사람을 구분하는 방법

그중에 모호한 영역에 있는 사람을 죄나 의로 명확하게 구분하는 가장 단순한 방법이 있다.

- 지금 하는 행동을 멈추라고 권면하는 것이다.

- 그 권면에 어떻게 반응하냐에 따라 그 사람의 무의식적인 의도가 인식된다.

예를 들어, 우상 숭배 춤을 추다가 우상에게 절하는 자세까지 취한 사람이 있다.

- 이 행위는 상당히 우상 숭배에 가깝다.

- 모호한 사람 중에 확실한 쪽에 가깝다.

- 죄인으로 볼 여지가 충분하다.

- 그런데 그 사람에게 우상 숭배 의식 참여를 절제하라고 말했다면, 어떻게 반응할까?

만약 즉시 자신의 무의식적인 행동에 문제가 있다는 것을 의식하고,

- 행동을 멈춘 후 우상 신전에서 나왔다면,

- 이 반응을 통해 이는 말 그대로 무의식적인 행동이었음이 드러난다.

- 따라서 이 사람은 모호한 죄의 영역에 있었지만,

- 이를 자각한 즉시 확실한 의의 영역으로 돌아섰다.

- 그렇기 때문에 이 사람의 의도는 죄가 아니다.

반면 만약 우상에게 절하는 자세를 취했지만, 잘못이 없다고 주장하고,

- 계속해서 우상 신전에 머물며 자기 태도를 고집했다면,

- 이 반응을 통해 이는 무의식적인 행동이 아니었음이 드러난다.

- 무의식적인 행동을 인식한 후에도 지속하는 것은 의식적이다.

- 따라서 이 사람은 우상 숭배를 원했다.

- 이 사람은 모호한 죄에서 확실한 죄의 영역으로 나아갔다.

- 그렇기 때문에 이 사람의 의도는 확실히 죄이다.

 

바로 이 때문에 바울은 본문에서 이렇게 권면하는 것이다.

- 우상 신전 식사에 참여한 모든 고린도 교회 사람을 우상 숭배자로 매도하려는 것이 아니다.

- 앞으로 절대로 우상 신전 식사조차 참여할 수 없도록 금지하려는 것이 아니다.

- 8장에서 바울은 약한 사람을 위해 우상 신전 식사를 절제하라고 말했지만,

- 걸림돌에 걸려 넘어질 사람이 없을 때는 바울조차 우상 신전 식사에 참여했다.

- 그렇게 이방인을 위해 이방인같이 되었다.

- 고린도 교회 사람들에게 우상 신전 식사를 허용하는 것은 당연하고 말이다.

[고전 9:21] 율법이 없이 사는 사람들에게는, 내가 하나님의 율법이 없이 사는 사람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율법 안에서 사는 사람이지만, 율법 없이 사는 사람들을 얻으려고 율법 없이 사는 사람같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바울은 모호한 영역의 위험성을 알았다.

- 우상 신전에서 우상 숭배 노래를 한 소절 따라 부르다 보면 노래 전체를 부르게 되고,

- 그러면 노래에 반응하여 몸이 움직이고,

- 자기도 모르게 우상 숭배 자세를 취하게 된다.

- 그렇게 몸이 먼저 우상을 향해 다가가면 마음도 따라가고,

- 그러면 우상이 주는 달콤한 매력에 빠져 하나님을 멀리할 수밖에 없게 된다.

- 고린도 교회는 다른 교회와 달리 평생을 우상 숭배 노래와 춤에 빠져 살았던 사람이었기 때문에,

- 더욱 쉽게 우상 숭배에 빠졌다.

그래서 바울은 고린도 교회에게 우상 숭배하지 말라고 경고한 것이다.

- 지금 당장 고린도 교회가 우상 숭배에 빠져있기 때문이 아니라,

- 모호한 영역에 있을 때 미리 경고하여 확실한 의의 영역에 안전하게 머물도록 하려는 것이다.

 

현재도 여전히 위험한 모호한 영역

우리는 우상 숭배와 전혀 상관없는 삶을 산다고 생각하지만, 그렇지 않다.

- 이러한 일은 우리에게도 일어난다.

돈이 대표적인 예이다.

- 돈에 대한 탐욕이 얼마나 나쁜지 말할 필요도 없다.

- 성경에서 돈을 맘몬이라 하며 우상으로 보는 것은 말할 것도 없고,

- 세상에서조차 속물, 졸부, 돈벌레라 부르며 돈에 집착하는 사람을 비판한다.

- 물론 현재는 돈에 대한 집착이 점점 더 널리 퍼지고 있지만 말이다.

하지만 세상에서 사는 한 돈과 완전히 분리될 수 없다.

- 최소한의 의식주를 위해 돈을 벌고 쓰는 일을 탐욕으로 정죄할 수 없다.

- 생명을 유지하기 위해 숨을 쉬어야 하듯, 의식주를 위한 최소한의 돈은 필요하다.

그런 점에서 바울이 우상 신전 식사를 허용한 것처럼 돈을 벌고 쓰는 것도 허용할 수밖에 없다.

 

그런데 문제는 여기에도 모호한 영역이 있다.

- 확실하게 탐욕이 아닌 돈의 사용과

- 확실하게 탐욕인 돈의 집착 사이에 간극이 존재한다.

예를 들어, 소박한 옷, 음식, 집을 넘어 남부럽지 않은 옷, 음식, 집을 원한다.

- 혹은 월세나 전세로 매번 이사 다니는 것이 힘드니, 작더라도 자가를 원한다.

- 또는 자가 중에 안정적인 거래를 위해 유명 건설사 아파트를 원한다.

- 그러다가 아파트 중에 장기적인 수익을 보장하는 수도권 아파트를 원한다.

분명히 이들 중에 일부는 탐욕이라고 보기 어렵지만, 일부는 탐욕이라 볼 수 있다.

- 그런데 그 기준과 근거가 무엇일까?

- 특정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만약 타고나길 머리가 좋고 공부를 잘해서 유망한 직업을 갖고 연봉 10억인 사람이 있다.

- 그 사람이 돈 모아서 서울에 수십억짜리 아파트를 산다면,

- 과연 탐욕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반대로 평범하게 태어나 평범한 삶을 산 사람이 평범한 직장에서 연봉 3,000만 원을 받는다.

- 그 사람이 5억짜리 소박한 자가를 사려고 한다면,

- 탐욕이 아니라고 단정할 수 있을까?

이렇게 한 사람의 마음과 의도를 아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숨겨진 의도가 시간이 지나면 드러난다는 것이다.

- 처음에는 모호한 영역에 있었던 사람도 시간이 지나면 확실한 영역으로 옮겨간다.

- 정말 돈을 원했던 사람은 돈 외의 다른 모든 것을 잃게 된다.

- 반면에 돈을 벌고 썼지만 신앙을 원했던 사람은 결국 돈을 희생하며 신앙을 선택한다.

그렇기 때문에 모호한 영역에 있어서 돈에 대한 탐욕이 드러나지 않는 사람에게도 경고가 필요하다.

- 돈을 추구하면 신앙을 잃을 수밖에 없기에 돈을 멀리해야 한다.

- 지금의 삶이 아무리 소박하더라도, 돈의 세계 안에 있는 한 언제나 위험하다.

- 게다가 돈이 전부라는 인식이 퍼져 있는 현실에서 무의식적으로 돈에 휩쓸리지 않기 위해 반드시 의식적으로 돈을 멀리해야 한다.

 

따라서 본문은 단지 우상 숭배에 빠진 어리석은 고린도 교회를 향한 것만이 아니다.

- 모호한 영역에서 무의식적으로 돈이라는 우상을 숭배하는 우리 모두를 위한 것이다.

- 고린도 교회 사람이 우상 신전 식사를 하지 않을 수 없듯, 우리도 돈을 쓰지 않고 살 수 없다.

- 그러나 우상 신전에서 식사를 하면, 자기도 모르게 우상 숭배 의식에 참여할 수 있다.

- 마찬가지로 세상에서 돈을 쓰고 살면, 무의식적으로 돈을 숭배할 수 있다.

- 자기는 아니라고 누구도 말할 수 없다.

- 왜냐하면 인식할 수 없는 무의식에서 일어나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바울은 경고한다.

- 우상 숭배하면 멸망한다고.

- 그런데 우상 신전은 우상을 숭배할 위험이 언제나 도사리고 있는 곳이라고.

마찬가지로 바울은 우리에게 경고한다.

- 돈에 집착하면 멸망한다고.

- 그런데 세상은 돈에 집착할 위험이 언제나 도사리고 있는 곳이라고.

이런 관점에서 본문을 보자.

 

1~5절: 침례받은 이스라엘의 멸망 - 우상 숭배의 위험성 경고

바울이 가장 먼저 다루는 것은 ‘우상 숭배의 위험성’이다.

- 얼마나 위험하냐면, 하나님이 선택하여 침례를 받은 이스라엘 민족조차 멸망할 만큼 위험하다.

- 다르게 말해서, 모든 인류 중에 하나님의 강력한 보호를 받았던 민족조차 우상 숭배로 인해 멸망했다.

[고전 10:2] 이렇게 그들은 모두 구름과 바다 속에서 침례를 받아 모세에게 속하게 되었습니다.

[고전 10:5] 그러나 그들의 대다수를 하나님께서는 좋아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들은 광야에서 멸망하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이스라엘 민족이 얼마나 신령한 경험을 했는지 반복해서 강조한다.

- 신령함을 통해 얼마나 강력한 하나님의 보호를 받았는지 강조한다.

[고전 10:3~4] 그들은 모두 똑같은 신령한 음식을 먹고, (4) 모두 똑같은 신령한 물을 마셨습니다. 그들은 자기들과 동행하는 신령한 바위에서 물을 마신 것입니다. 그 바위는 그리스도였습니다.

 

이것이 왜 중요할까?

- 바로 고린도 교회가 가장 간과하는 부분이기 때문이다.

- 고린도 교회는 믿음이 ‘너무’ 강해서 우상을 직접 숭배하는 것이 아니라면,

- 우상 숭배 의식에 조금 참여하는 것은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믿었다.

- 그래서 우상 신전에서 식사하다가 우상 제사에 능동적으로 참여하는 것이 아니라면,

- 잠깐씩 의도하지 않게 우상을 위해 노래하고 춤추는 것은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믿었다.

- 그 노래와 춤은 태어났을 때부터 평생을 보고 배운 노래이기에,

- 흥겨운 기분을 표현한 것뿐이지 우상 숭배를 하려는 의도가 없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 다시 말해서, 모호한 영역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바울은 다르게 생각했다.

- 물론 바울도 우상은 없고 우상 숭배 의식이 헛되다는 것을 인정했다.

- 그러나 능동적으로 우상 숭배에 참여하는 것은 말할 것도 없고,

- 무의식적으로 자연스럽게 우상 숭배 의식에 참여하는 것조차 위험하다고 판단했다.

- 그것이 하나님과 반대되는 세상 가치관의 영향력에 휩쓸리도록 하기 때문이다.

- 당장은 아니더라도 말이다.

- 쉬운 예를 들어, 우상 숭배 의식을 통해 서로 사랑하고 희생하는 하나님의 가르침에서 벗어나

- 풍요와 안락함의 매력에 빠지도록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바울은 아무리 무의식적이고, 아무리 무해한 것처럼 보여도

- 사소한 우상 숭배 의식에도 참여하지 말라고 경고하는 것이다.

그 경고를 위해 바울은 우상 숭배로 인해 멸망한 이스라엘을 전면에 내세우고 있다.

 

6~11절: 우상 숭배의 결과

본문은 이스라엘의 죄를 고린도 교회를 위한 본보기로 제시한다.

- 즉, 바울은 이스라엘의 죄를 단순히 나열한 것이 아니라,

- 고린도 교회가 지금 당면한 문제를 이스라엘을 통해 고발하는 것이다.

- 따라서 바울이 지적한 이스라엘의 죄는 고린도 교회의 죄이다.

[고전 10:6] 이런 일들은, 우리 조상들이 악을 좋아한 것과 같이 우리가 악을 좋아하는 사람이 되어서는 안된다는 것을, 우리에게 가르쳐주는 본보기가 되었습니다.

[고전 10:11] 이런 일들이 그들에게 일어난 것은 본보기가 되게 하려는 것이며, 그것들이 기록된 것은 말세를 만난 우리에게 경고가 되게 하려는 것입니다.

 

바울은 이스라엘의 우상 숭배를 언급하며 고린도 교회에게 우상 숭배자가 되지 말라고 경고한다.

- 그러면서 우상 숭배가 일으키는 세 가지 문제를 제적한다.

첫째로, ‘간음’이다.

- 우상 신전에서는 제사 의식의 일부로 풍요를 기원하는 성행위 의식이 있었고,

- 우상 신전에서 식사하던 고린도 교회 사람 중 일부가 여기까지 참여한 것이다.

- 그래서 바울은 이를 간음이라 규정하고 금지를 권고한다.

그런데 어떻게 신도라는 사람이 우상 신전에서 성행위를 할 수 있었을까?

- 그것이 어떻게 죄라는 인식을 할 수 없었을까?

- 어떻게 바울이 힘겹게 지적하기 전까지 자각할 수 없었을까?

우상 신전의 성행위는 사랑하는 사람에게 사랑을 표현하는 수단이 아니다.

- 말 그대로, 의식이다.

- 그래서 이를 용납해 주는 사회 분위기가 있었다.

물론 우리는 이를 이해하기 어렵다.

- 하지만 현재에도 다른 문화권에서 행해지는 이해할 수 없는 행위가 있다.

- 집 안에 신발을 신고 들어와서 침대까지 올라간다든지,

- 총을 소지하는 것이 합법이라든지 말이다.

그래서 고린도 지역에서는 우상 신전의 성행위 의식은 간음이 아니라고 인식했다.

 

따라서 일부 고린도 교회 사람이 우상 신전 식사 중에 성행위 의식에 참여했다.

- 물론 우상을 숭배하려는 의도는 아니었다.

- 오히려 단순한 성적 욕구로 인한 충동적 행위일 가능성이 높다.

- 우상 신전 식사 중에 성행위 의식을 봤는데, 그때 성적 욕구가 일어났다.

그런데 성행위 의식이 단지 의식이기에 윤리적으로도 용납되고, 

- 우상이란 애초부터 없기에 영적으로도 문제없다고 판단했다.

- 그래서 거리낌 없이 성행위 의식에 참여한 것이다.

 

하지만 바울은 생각이 달랐다.

- 아무리 의도 없이 무의식적인 참여라 하더라도, 

- 그래서 아직은 모호한 영역에서 일어난 행위더라도,

- 식사를 넘어 의식까지 참여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판단했다.

- 왜냐하면 모호한 영역에 있는 사람이 확실한 죄 영역으로 돌아설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바울은 간음하지 말라고 경고한다.

 

그런데 바울이 간음이 위험하다고 경고한 이유는 무엇일까?

- 단지 윤리적으로 부도덕하기 때문일까?

- 아니면 다른 신을 섬겼기 때문일까?

간음은 성욕의 왜곡된 형태로서 인간의 탐욕 전체를 상징한다.

- 이는 우상 제사에서 성행위 의식이 있는 것과 일맥상통한다.

- 성행위 의식은 풍요를 기원하는 것인데,

- 이 풍요는 단순히 굶지 않을 정도가 아니라,

- 상아 침대에 누워 포도주를 퍼마시며 욕망을 절제 없이 분출하는 풍요이다.

- 그것이 우상 숭배를 통해 이루고자 하는 것이다.

[암 6:4~7] 너희는 망한다! 상아 침상에 누우며 안락의자에서 기지개 켜며 양 떼에서 골라 잡은 어린 양 요리를 먹고, 우리에서 송아지를 골라 잡아먹는 자들, ・・・・ (6) 대접으로 포도주를 퍼마시며, 가장 좋은 향유를 몸에 바르면서도 요셉의 집이 망하는 것은 걱정도 하지 않는 자들, (7) 이제는 그들이 그 맨 먼저 사로잡혀서 끌려갈 것이다. 마음껏 흥청대던 잔치는 끝장나고 말 것이다.

 

그러한 풍요는 반드시 누군가의 희생으로 이뤄진다.

- 특히 강한 자의 풍요를 위해 약한 자가 희생된다.

- 이것이 소위 착취이다.

강한 자는 효과적인 착취를 위해 강자와 약자라는 수직 관계를 강화하고,

- 그렇게 세워진 수직 관계로 인해 사랑으로 맺어져야 할 모든 관계가 끊어진다.

- 오직 지배-피지배 관계만 남고, 서로 착취하는 폭력만 난무하게 된다.

이 때문에 바울은 간음을 경고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탐욕적인 풍요 추구의 결과는 무엇일까?

 

둘째로, ‘그리스도를 시험’이다.

- 탐욕은 필연적으로 결핍감을 유발한다.

- 사람의 욕망은 밑 빠진 독이기 때문이다.

- 그것이 바로 그리스도를 시험하도록 한다.

[시 78:18] 마음 속으로 하나님을 시험하면서, 입맛대로 먹을 것을 요구하였다.

그리스도를 시험한다는 뜻은 ‘하나님께 과도하게 요구하여 응답하시는지 확인한다.’는 뜻이다.

- 이는 민수기 21장에서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께 만나가 싫다며 과도한 요구를 하자,

- 하나님이 불 뱀을 보내셔서 이스라엘 백성을 심판하신 사건에서 유래한다.

 

따라서 고린도 교회는 간음을 통해 탐욕에 사로잡히고,

- 탐욕으로 인해 하나님께 과도하게 요구하며 그리스도를 시험한다.

이것이 우상 숭배의 진정한 비극이다.

 

셋째로, 불평이다.

- 탐욕을 채우기 위해 하나님께 과도하게 요구하여 시험하였기 때문에,

- 하나님은 응답하지 않으신다.

- 그러니 고린도 교회는 결핍감과 욕구 불만으로 하나님을 원망할 수밖에 없다.

이는 풍요를 추구하는 사람의 필연적인 결과이다.

- 풍요 추구는 수직 관계를 강화하고,

- 수직 관계는 모든 사랑의 관계를 파괴하여 서로 착취하는 폭력만 남긴다.

따라서 고린도 교회는 하나님 역시 착취의 대상으로 삼았기에,

- 하나님과 사랑의 관계가 끊어지고, 불만만 남게 된다.

 

우상 숭배의 참 의미

많은 사람이 우상 숭배를 단편적인 행위로만 생각한다.

- 단지 하나님 외의 다른 신, 종교, 혹은 영적인 행위에 참여하지 않으면 우상 숭배가 아니라고 착각한다.

하지만 성경이 말하는 우상 숭배는 범위가 더 넓다.

- 풍요 추구에 기반하여 모든 관계를 수직 관계로 인식하는 것이다.

- 이를 통해 모든 대상을 탐욕을 채우기 위한 착취 수단 삼는 것이다.

- 여기서 우상은 탐욕의 추악한 모습을 치장해 주는 도구에 불과하다.

 

따라서 탐욕의 대상이 되는 모든 것이 우상이다.

- 돈, 학벌, 인맥, 부동산, 성공, 성취, 풍요, 인정, 안정, 안락함 등 모든 것이 우상이다.

- 꼭 무당이 굿을 하고, 사주팔자를 보며, 택일하지 않았다고 충분한 것이 아니다.

진정한 신앙은 하나님과 사람을 사랑하는 것이다.

- 누구도 수직 관계에서 탐욕을 위한 착취의 수단 삼지 않는 것이다.

- 자신의 풍요와 성공을 포기하고, 

- 다른 사람을 자신과 같은 소중한 존재 그 자체로 인정하여

- 모든 사람이 더욱 자기답게 살 수 있도록 돕는 것이다.

특히 하나님도 자기 풍요의 도구로 삼지 않고,

- 하나님답게 존재하실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진정한 신앙이다.

그럴 때만 자기 자신도 자기다워질 수 있다.

- 풍요와 성공을 위해 자기를 연료 삼아 태워 없애버리지 않고,

- 하나님이 창조하신 모습을 회복할 수 있도록 도울 수 있다.

이러한 삶이 우상이 아닌 하나님을 숭배하는 삶이다.

 

12~13절: 우상 숭배를 거부하는 삶의 치열함

고린도 교회는 안일했다.

- 침례 의식을 통해 이미 의로움에 이르렀다고 믿었다.

- 그래서 사소한 탐욕을 과소평가했다.

- 소소한 풍요를 누리는 것 정도는 신앙에 영향을 주지 않는다고 착각했다.

- 그래서 우상 신전에서 성행위 의식에 참여하여 성욕을 채우는 정도는 괜찮다고 생각했다.

 

백번 양보해서, 고린도 교회가 정말 성욕 채우는 정도에 만족하고 거기서 멈췄다면,

- 비록 우상 숭배 의식에 참여했지만, 문제없다고도 할 수 있다.

- 성욕 자체는 죄가 아니기 때문이다.

- 물론 부부 외의 성적 관계는 부정하지만,

- 당시 문화에서 우상 신전에서 성관계 의식은 예외로 인정해 줬다.

- 그 문화에서 이 정도는 윤리적으로 용납되었다.

하지만 고린도 교회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 결국 탐욕에 빠졌고, 하나님을 시험하며 불평까지 했다.

- 단지 불평이 문제가 아니라,

- 모든 대상을 착취의 수단으로 보고, 모든 사랑의 관계를 파괴했다.

이는 고린도 교회가 특별히 우상에 취약하기 때문이 아니다.

- 모든 인류가 똑같다.

- 누구라도 성욕 채우는 것에 만족할 수 없을 것이다.

이러한 인류의 나약함을 이스라엘 민족과 고린도 교회를 통해 보여주는 것뿐이다.

 

그래서 바울이 경고하는 것이다.

- 누구라도 넘어지지 않도록 조심하라고.

- 탐욕에 취약할 수밖에 없는 것이 인간의 숙명이라고.

[고전 10:12] 그러므로 서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넘어지지 않도록 조심하십시오.

그래서 바울이 우상 신전 식사조차 절제하라고 말하는 것이다.

- 그곳에서는 서 있는 사람도 넘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 풍요에 휩쓸려 탐욕에 짓눌릴 수 있기 때문이다.

[고전 10:21] 여러분은, 주님의 잔을 마시고, 아울러 귀신들의 잔을 마실 수는 없습니다. 여러분은, 주님의 식탁에 참여하고, 아울러 귀신들의 식탁에 참여할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바울은 현실을 알았다.

- 우상 신전 식사를 거부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 그로 인해 사회적 단절, 경제적 손실, 종교적 추락이 얼마나 극심할지.

- 그 일상을 포기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 우상 신전 식사 자리는 연회, 사교, 사업 등 사회적 활동의 중심지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바울은 위로한다.

- 하나님이 지켜주실 것이라고.

- 풍요로운 일상을 포기하면, 극심한 시련이 올 수밖에 없지만,

- 하나님은 여전히 함께 하셔서 그 시련을 감당할 수 있도록 도와주실 것이라고.

- 그러니 포기하지 말고, 끝까지 신앙을 지키자고.

[고전 10:13] 여러분은 사람이 흔히 겪는 시련 밖에 다른 시련을 당한 적이 없습니다. 하나님은 신실하십니다. 여러분이 감당할 수 있는 능력 이상으로 시련을 겪는 것을 하나님은 허락하지 않으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시련과 함께 그것을 벗어날 길도 마련해 주셔서, 여러분이 그 시련을 견디어 낼 수 있게 해주십니다.

 

결론 - 우상 숭배와 하나님 숭배의 차이

이것이 진정한 믿음이다.

- 원하는 것을 하나님이 주실 것으로 믿는 믿음은 우상 숭배이다.

- 또는 원하는 것을 포기하고 풍요를 거부하여 시련이 왔을 때,

- 그 시련이 해소될 것으로 믿는 것 역시 우상 숭배이다.

진정한 믿음은 그 시련 속에 머무는 것이다.

- 시련을 해결하려 하지 않고,

- 시련을 피하려 하지 않고,

- 시련을 고스란히 당하면서 견디는 것이다.

물론 그 안에 풍요는 없다.

- 그 안에서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없다.

그러나 그 안에만 있는 것이 있다.

- 그것은 하나님의 사랑으로 인해 다른 사람을 사랑하고 자기조차 사랑하는 마음이다.

 

고린도 교회는 여전히 믿음을 가지고 있었다.

- 그러나 사랑을 잃었다.

- 그래서 우상 숭배 의식에 참여하여 간음하게 되었고,

- 다른 약한 성도를 배려하지 않고 우상 제물 고기를 마음껏 먹은 것이다.

바울은 경고한다.

- 그러한 믿음은 결국 우상 숭배이고,

- 우상 숭배하는 사람은 이스라엘 백성처럼 멸망할 것이라고.

 

우상은 속삭인다.

- 원하는 것을 얻을 것이라고.

하지만 우상은 숨긴다.

- 원하는 것 외의 모든 것을 잃는다는 것을.

- 그래서 모든 사랑의 관계가 파괴되고,

- 결국 마지막까지 남은 자기 자신까지 혐오하며 부정하게 될 것을.

 

반면에 하나님은 선포하신다.

- 원하는 것을 얻지 못하는 시련이 올 것이라고.

- 하지만 그 시련 안에 진정으로 원하는 것을 발견할 것이라고.

- 그래서 사랑의 관계가 회복되고,

- 가장 혐오했던 자기 자신까지 용납하고 사랑하게 될 것을.

이것이 우상과 하나님의 극명한 차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