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양교회 팟캐스트 양따양>
미양교회에서 했던 설교를 바탕으로 진솔하게 신앙 경험을 이야기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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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양을 따르는 어린양
예배 대신 예수님, 설교 대신 성경, 건물 대신 사람을 중심으로 하는 미양교회가 만드는 방송입니다.토끼와 개구리가 진솔하게 신앙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어린양과 같이 십자가에 죽고 부활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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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의 핵심은 바울의 말에 잘 드러난다.
- 한마디로, “결혼하는 것은 잘하는 것이다.
- 그런데 결혼하지 않는 것은 더 잘하는 것이다.”이다.
[고전 7:38] 그러므로, 자기의 약혼녀와 결혼하는 사람도 잘하는 것이지만, 결혼하지 않는 사람은 더 잘하는 것입니다.
이 말의 배경에는 고린도 교회의 변질된 신앙이 있다.
- 그들은 결혼하지 않는 것이 더 거룩하고 결혼은 죄라고 주장했다.
- 주장의 근거로 바울의 독신까지 언급했다.
하지만 고린도 교회의 이러한 주장은 예수님을 부정한다.
- 거룩해질 수 있는 유일한 근거는 예수님의 죽음 부활뿐인데,
- 고린도 교회는 결혼 여부도 미약하게나마 거룩함의 근거가 된다는 것이다.
- 이는 유일무이하며 독보적인 예수님의 권위를 훼손한다.
따라서 바울의 일차 목표는 훼손된 예수님의 권위를 회복하는 것이다.
- 거룩함은 오직 예수님을 믿음으로만 가능하며,
- 다른 어떤 것으로도 불가능하다는 것을 재확인하는 것이다.
- 결혼 여부는 거룩함에 이르는데 일말의 가능성도 없으며,
- 구원은 오직 예수님만이 가지신 독보적인 권위라는 것이다.
- 예수님의 독보적 권위를 결혼이 빼앗으면 안 된다는 것이다.
- 이것이 바울의 궁극적인 목적이다.
그래서 바울은 결혼을 좋다고 말한다.
- 이를 통해 결혼을 죄악시하고 독신을 숭배하는 고린도 교회를 정죄한다.
- 왜냐하면 고린도 교회는 결혼을 죄라고 하며, 수많은 결혼 예정자를 혼란스럽게 했기 때문이다.
- 그런 고린도 교회를 향해 바울은 결혼이 죄가 아니며 결혼은 좋은 것이라고 단언한다.
[고전 7:28] 그러나 결혼한다고 할지라도, 죄를 짓는 것이 아닙니다. 그리고 처녀가 결혼을 하더라도, 죄를 짓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그들이 살림살이로 몸이 고달플 것이므로, 내가 아껴서 말해 주는 것입니다.
[고전 7:36] ・・・・ 결혼하는 것이 죄를 짓는 것이 아니니, 그런 사람들은 결혼하십시오.
반복해서 말하지만, 바울은 단지 결혼에 대해 말하는 것이 아니다.
- 모든 인류가 쉽게 빠지는 유혹인 이분법과 율법주의 사고 방식 전체를 지적한다.
- 결혼하지 않는 단번의 선택으로 거룩함을 지속적으로 소유하고 싶은 인류의 어리석은 탐욕을 정죄한다.
- 이를 통해 구원의 근거를 자신의 행위에 두어 자신이 구원의 주체가 되려는 죄를 정죄한다.
- 이는 곧 예수님이 구원자라는 것을 부정하고, 자신이 하나님이 되려는 인류 전체의 원죄이다.
이렇게 바울은 ‘결혼은 좋다.’라는 말로 원죄를 드러낸다.
- 본문은 고린도 교회에 단순히 결혼하지 않는 유행 때문에 기록된 것이 아니다.
- 단지 결혼이 좋은 것이니, 결혼 많이 하라고 권면하기 위한 것이 아니다.
- 결혼 많이 해서 자녀 많이 낳고 행복하게 살라는 것이 아니다.
본질은 그들 마음에 하나님이 되려는 의도가 있었다.
- 예수님이 유일한 구원자라는 믿음이 흔들렸다.
- 자신의 선한 행위 역시 구원에 도움이 된다고 믿었다.
- 이는 자신이 구원자가 되려는 죄이다.
- 그들은 예수님이 아닌 자신을 믿었다.
- 그래서 결혼이 죄라며 독신을 통해 의로움을 스스로 이뤄내려고 했다.
여기까지가 바울이 편지를 쓴 일차적, 근원적 목적이다.
그런데 바울은 하고 싶은 말이 하나 더 있었다.
- 고린도 교회를 정죄하고 그들의 주장을 반박하기 위해서라면, 결혼이 좋다는 말로 바울은 끝내야 했다.
- 만약 그랬다면, 바울의 편지를 훨씬 단순하게 이해할 수 있었을 것이다.
- “아, 고린도 교회는 결혼을 죄라고 하는데,
- 그래서 결혼을 앞두고 혼란스럽고 염려가 되는데,
- 바울의 말을 들어보니, 결혼은 좋은 것이라네.
- 이제 고민하지 말고 결혼해야겠다.”라고 반응했을 것이다.
- 이를 통해 염려 없이 마음껏 결혼했을 것이다.
그런데 바울이 한마디 말을 덧붙여서 다시 혼란을 일으킨다.
- 결혼은 좋은 것인데, 결혼하지 않는 것이 ‘더’ 좋다고 말이다.
[고전 7:37] 그러나 결혼하지 않기로 마음을 굳게 먹은 사람이, 부득이한 일도 없고, 또 자기의 욕망을 제어할 수 있어서, 자기 약혼녀를 처녀로 그대로 두기로 마음에 작정하였으면, 그것은 잘하는 일입니다.
[고전 7:38] 그러므로, 자기의 약혼녀와 결혼하는 사람도 잘하는 것이지만, 결혼하지 않는 사람은 더 잘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또 다시 고민이 시작된다.
- 고린도 교회가 결혼이 죄라고 해서 결혼하지 않으려고 하다가,
- 바울이 결혼은 좋은 것이라고 해서 결혼하려고 했더니,
- 또 다시 바울이 결혼하지 않는 것이 더 좋다고 해서 결혼을 망설이게 된다.
바울은 ‘염려 없이 살도록’ 하려 한다고 말하지만,
- 오히려 고린도 교회보다 더 가혹한 염려를 하도록 한다.
- 고린도 교회의 말은 결혼하지 않기로 선택하면 염려가 사라지지만,
- 바울의 말은 결혼하지 않아도, 결혼해도 염려가 계속된다.
[고전 7:32] 나는 여러분이 염려 없이 살기를 바랍니다. ・・・・
바울은 왜 이렇게 말했을까?
- 바울은 왜 결혼하라고 했다가, 하지 않은 것이 더 좋다고 말할까?
- 이렇게 말한 바울의 의도는 무엇일까?
- 이 점을 염두에 두며 본문을 보자.
25~28절: 결혼하지 말아야 하는 이유 - 현재 상태로 살아가라.
이 단락에서 바울의 말은 혼란스럽다.
- 우선 바울은 현재 상태대로 살아가라고 말한다.
- 결혼했으면 결혼한 상태로, 결혼하지 않았으면 하지 않은 상태로 살라는 것이다.
[고전 7:26~27] 지금 닥쳐오는 재난 때문에, 사람이 현재 상태대로 살아가는 것이 좋다고, 나는 생각합니다. (27) 아내에게 매였으면, 그에게서 벗어나려고 하지 마십시오. 아내에게서 놓였으면, 아내를 얻으려고 하지 마십시오.
그런데 바로 다음에는 다른 말을 한다.
- 결혼은 죄가 아니니, 결혼해도 괜찮다고 말한다.
[고전 7:28] 그러나 결혼한다고 할지라도, 죄를 짓는 것이 아닙니다. 그리고 처녀가 결혼을 하더라도, 죄를 짓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그들이 살림살이로 몸이 고달플 것이므로, 내가 아껴서 말해 주는 것입니다.
도대체 바울은 결혼하라는 것일까, 하지 말라는 것일까?
- 왜 결혼하지 말라고 하면서, 또 결혼은 죄가 아니니 해도 괜찮다고 할까?
- 혼란스러운 말 이면에 있는 바울의 의도를 알아야 본문을 이해할 수 있다.
결혼이 죄가 아니라고 말한 이유는 명확하다.
- 앞에서 말했듯이, 결혼하지 않는 것으로 하나님 없이 스스로 거룩함을 이뤄내려는 고린도 교회를 정죄하려는 것이다.
- 그런 이유로 결혼하지 않고 하나님을 부정하는 것보다,
- 차라리 홀로 살지 못하는 자신의 연약함을 인정하고 결혼해서 하나님을 주로 고백하는 것이 낫다는 뜻이다.
결혼하지 말아야 하는 이유 - 닥쳐오는 재난 때문
그렇다면 결혼하지 말라고 말한 이유는 무엇일까?
- 왜 현재 상태로 살아가는 것이 좋다고 말할까?
- 아내에게서 놓였으면, 왜 아내를 얻으려고 하지 말라는 것일까?
바울은 그 이유를 두 번 말한다.
- ‘지금 닥쳐오는 재난 때문에’, ‘살림살이로 몸이 고달플 것이므로’ 결혼하지 말라고 말한다.
[고전 7:26] 지금 닥쳐오는 재난 때문에, 사람이 현재 상태대로 살아가는 것이 좋다고, 나는 생각합니다.
[고전 7:28] ・・・・ 그러나 그들이 살림살이로 몸이 고달플 것이므로, 내가 아껴서 말해 주는 것입니다.
이를 통해 드러나는 것은 바울의 현실 인식이다.
- 바울이 결혼을 부정적으로 본 것은 결혼 행위가 부정적이기 때문이 아니라 결혼을 둘러싼 현실 상황을 부정적으로 봤기 때문이다.
- 그래서 결혼은 죄가 아니기에 결혼해도 좋지만, 결혼하지 않는 것이 더 좋다고 말한 것이다.
그렇다면 바울이 현실을 부정적으로 인식한 이유는 무엇일까?
- 도대체 어떤 재난이 닥쳐오고 있기에 결혼하면 몸이 고달플 것으로 판단했을까?
- 답은 종말론적인 관점 때문이다.
- ‘때가 얼마 남지 않았고’, ‘이 세상의 형체는 사라질 것’이라는 인식 때문이다.
[고전 7:29] 형제자매 여러분, 내가 말하려는 것은 이것입니다. 때가 얼마 남지 않았으니, 이제부터는 아내 있는 사람은 없는 사람처럼 하고,
[고전 7:31] 세상을 이용하는 사람은 그렇게 하지 않는 사람처럼 하도록 하십시오. 이 세상의 형체는 사라집니다.
29~31절: 바울의 현실 인식 - 때가 얼마 남지 않았다.
바울은 현실을 부정적으로 인식했다.
- 단순히 현실을 부정하는 회의주의나 염세주의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 오히려 바울은 현실에서 삶의 중요성을 언제나 강조했다.
- 현실에서 삶의 태도가 구원을 결정한다고 믿었다.
- 그랬기 때문에 현실에서 하나님을 부정하는 태도를 가진 고린도 교회를 정죄하는 것이다.
하지만 바울이 현실을 어떻게 인식했는가?
- ‘재난이 닥쳐올 것이고’, ‘몸이 고달플 것이며’, ‘때가 얼마 남지 않았고’, ‘세상의 형체가 사라질 것으로’ 인식했다.
- 부정적인 현실 인식 때문에 결혼도 부정적으로 봤다.
- 결혼으로 인해 부정적인 현실에 더 큰 영향을 받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바울이 현실을 부정적으로 인식한 원인은 무엇인가?
- 많은 주석처럼 이를 단지 바울이 종말론적 관점을 가졌다고 결론짓는 것은 게으른 태도이다.
- 물론 틀린 말은 아니다.
- 하지만 동어 반복이고, 아무것도 해석하지 않은 것이다.
- 종말론적 관점을 갖게 된 원인까지 한 단계 더 깊게 들어가야 한다.
따라서 바울의 궁극적 목적은 오직 하나이다.
- 하나님이 절대 가치이며, 나머지 다른 어떤 것에 아무 가치 없다는 것을 전하는 것이다.
- 하나님의 독보적 지위를 인정하기 위해 세상 모든 것의 지위를 박탈하는 것이다.
바울 종말론의 근원
그런데 바로 여기에서 현실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이 생긴다.
- 실제로 현실이 어떤지는 중요하지 않다.
- 현실은 무조건 죄악이 넘쳐난다는 뜻이 아니다.
- 현실에는 악도 있지만, 선도 있다.
- 하지만 하나님이 절대 가치기에 어쩔 수 없이 다른 모든 가치가 부정된다는 것이 중요하다.
근본적으로 바울은 세상의 현실에 관심이 없다.
- 결혼하건 말건, 울든 울지 않든, 기쁘던 기쁘지 않던, 갖건 가지지 않건 세상에서 일어나는 일을 중요하게 여기지 않는다.
- 실제로 세상 현실이 하찮기 때문이 아니다.
- 세상과 비교할 수 없이 하나님이 크시기 때문이다.
[고전 7:29~30] 형제자매 여러분, 내가 말하려는 것은 이것입니다. 때가 얼마 남지 않았으니, 이제부터는 아내 있는 사람은 없는 사람처럼 하고, (30) 우는 사람은 울지 않는 사람처럼 하고, 기쁜 사람은 기쁘지 않은 사람처럼 하고, 무엇을 산 사람은 그것을 가지고 있지 않은 사람처럼 하고,
바로 이 관점에서 바울의 종말론을 생각해야 한다.
- 바울은 종말론을 주장하며 세상의 끝을 기대하지만,
- 정작 바울은 세상의 끝에 관심이 없다.
- 바울의 관심은 하나님이 독보적 지위를 회복하여 세상 전부가 그 권위를 인정하고 찬양하는 것에 있다.
- 그런데 그로 인해 하나님 없이 자기만의 독단적 지위를 주장했던 세상 모든 가치가 사라지는 것이다.
- 이것이 종말론의 핵심이다.
그래서 바울은 ‘세상의 형체가 사라질 때가 얼마 남지 않았다.’고 말하는 것이다.
- 세상의 종말이 아니라 하나님의 회복을 강조하는 의도로 말이다.
- 종말하여 모든 가치가 사라질 세상에 관심 갖지 말고,
- 영원토록 독보적 지위와 절대 가치를 가지신 하나님께만 관심 갖도록 말이다.
- 이것이 바울 종말론의 목적이다.
[고전 7:29] 형제자매 여러분, 내가 말하려는 것은 이것입니다. 때가 얼마 남지 않았으니, ・・・・
[고전 7:31] ・・・・ 이 세상의 형체는 사라집니다.
그러나 많은 사람이 종말론을 반대로 이해한다.
- 종말론은 세상에 관심 갖지 말라고 말하는데,
- 종말론을 듣고 종말할 세상에 관심을 갖는다.
- 언제 세상이 끝나는지, 어떻게 끝나는지, 무엇이 남는지, 무엇이 사라지는지 온통 세상에 대한 관심뿐이다.
고린도 교회의 태도도 똑같다.
- 바울이 결혼하지 않은 이유는 결혼이 나쁘기 때문이 아니다.
- 결혼과 비교할 수 없이 하나님이 좋기 때문이다.
- 결혼에 관심 갖지 않고 하나님께만 관심 갖기 위해서이다.
그러나 고린도 교회는 그런 바울을 보고 결혼에만 관심 가졌다.
- 결혼하는 것이 좋냐 나쁘냐는 논쟁에 빠졌다.
- 결혼하지 않는 것을 자랑삼았다.
- 결혼한 사람을 정죄했다.
- 그러면서 정작 하나님을 외면했다.
그래서 바울이 결혼은 죄가 아니라고 단언한 것이다.
- 정말 결혼이 좋은 것이고 적극적으로 권장하려는 것이 아니다.
- 바울은 결혼이 좋은지 나쁜지 관심 없다.
바울의 의도는 결혼이 너무 좋아서 계속 결혼에 대해 논쟁하고 있을 바에는
- 차라리 빨리 결혼해 버리고 결혼 논쟁에서 벗어나라는 것이다.
- 그래서 하나님께만 초점을 두라는 것이다.
- 왜냐하면 세상의 형체가 사라질 때가 얼마 남지 않았다고 볼 만큼 하나님의 가치가 독보적이기 때문이다.
결혼하지 말라는 이유도 정확하게 같다.
- 하나님의 독보적 지위 앞에 세상의 가치는 결국 파괴되어 사라질 것이다.
- 물론 세상에는 평생 호의호식하며 번영과 안락함에 파묻혀 사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 아무도 미래를 예측할 수 없다며 종말에 의문을 제기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 그러나 분명한 것은 믿음이란 하나님의 독보적 지위만 믿고 나머지 모든 것을 부정하는 것이다.
그런 믿음을 가진 사람에게 미래는 어떤 세상일까?
- 번영과 안락함이 보장된 장밋빛 세상일까,
- 아니면 재앙과 멸망만 남은 잿빛 세상일까?
- 하나님을 믿는 사람에게 미래는 하나님만 남기고 모든 것이 파괴된 세상이다.
그랬기 때문에 바울은 미래를 ‘닥쳐오는 재난 때문에 몸이 고달플’ 것으로 예상했다.
- 이는 바울이 미래 세상에 관심이 있기 때문에 한 말이 아니다.
- 바울은 미래 세상이 장밋빛이건 잿빛이건 상관없다.
- 제대로 알지도 못한다.
- 장밋빛이어도 잿빛처럼 살 것이고, 잿빛에서도 장밋빛으로 살 것이다.
[고전 7:26] 지금 닥쳐오는 재난 때문에, 사람이 현재 상태대로 살아가는 것이 좋다고, 나는 생각합니다.
[고전 7:28] ・・・・ 그러나 그들이 살림살이로 몸이 고달플 것이므로, 내가 아껴서 말해 주는 것입니다.
바울의 관심은 오직 하나님이다.
- 세상 모든 것이 사라진 것처럼 보일 만큼 하나님의 지위가 독보적으로 높아지기를 기대한다.
- 하나님의 지위가 낮았다가 점점 높아진다는 뜻이 아니라,
- 하나님의 지위는 그대로인데, 세상이 하나님의 독보적 지위를 인정할 수밖에 없는 상태가 된다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바울에게 세상의 미래는 재앙과 고달픔뿐이다.
- 세상에 정말 재앙과 고달픔이 있어서가 아니라,
- 세상이 재앙과 고달픔으로 느껴질 만큼 하나님의 독보적 지위에 압도되기 때문이다.
그런 믿음을 가진 사람이 결혼을 어떻게 느끼겠는가?
- 평안과 행복이 아니라 재앙과 고달픔일 것이다.
- 다시 말하지만, 결혼 행위가 나쁘기 때문이 아니라,
- 결혼을 둘러싼 세상이 나쁘기 때문이다.
- 또 다시 말하지만, 세상이 나쁘기 때문이 아니라,
- 세상 전부를 사라지게 할 만큼 하나님의 지위가 독보적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결혼하지 말라고 말한 것이다.
32~35절: 결혼하지 말라는 권면 - 염려 없이 살기를 바란다.
그런데 바울이 결혼하지 말라는 이유는 고린도 교회와 완전히 다르다.
- 고린도 교회는 결혼하지 말라는 말로 ‘염려하게 만들고’ ‘올가미를 씌웠다.’
- 결혼을 죄라고 하여 결혼하고 싶은 사람이 결혼하는데 염려하도록 했다.
[고전 7:32] 나는 여러분이 염려 없이 살기를 바랍니다. ・・・・
[고전 7:35] 내가 이 말을 하는 것은 여러분을 유익하게 하려고 그러는 것이지, 여러분에게 올가미를 씌우려고 그러는 것이 아닙니다. ・・・・
그러나 바울은 염려 없이, 올가미 없이 자유롭게 살도록 한다.
- 어떻게 가능한가?
- 오직 주님만 섬기게 함으로 가능하다.
[고전 7:35] ・・・・ 오히려 여러분이 품위 있게 살면서, 마음에 헛갈림이 없이, 오직 주님만을 섬기게 하려는 것입니다.
바울이 결혼하라고 말한 이유도 주님만 섬기게 하려는 것이었다.
- 고린도 교회처럼 결혼하지 않는 자신을 자랑하며 하나님을 외면하는 것보다
- 결혼해서 염려 없이 하나님께 초점을 두는 것이 낫기 때문이다.
그런데 결혼하지 말라고 말한 이유도 주님만 섬기게 하려는 것이다.
- 결혼하면 배우자를 기쁘게 하기 위해 세상 일에 마음을 쓰기 때문이다.
- 그것보다는 결혼하지 않고 하나님께만 마음을 쓰는 것이 낫기 때문이다.
[고전 7:32~33] 나는 여러분이 염려 없이 살기를 바랍니다. 결혼하지 않은 남자는, 어떻게 하면 주님을 기쁘게 해 드릴 수 있을까 하고, 주님의 일에 마음을 씁니다. (33) 그러나 결혼한 남자는, 어떻게 하면 자기 아내를 기쁘게 할 수 있을까 하고, 세상 일에 마음을 쓰게 되므로,
그렇다면 결혼을 하라는 것인가, 말라는 것인가?
- 결혼에 신경 쓰지 말고, 하나님께만 마음을 쓰라는 것이다.
- 그런데 결혼에 너무 신경이 쓰여서 하나님께 마음을 쓰기 어려우면,
- 결혼해서 하나님께만 마음을 쓰라는 것이다.
- 물론 결혼하면 배우자 때문에 마음이 하나님과 배우자로 나뉠 수 있다.
- 그렇지만 결혼에 신경 쓰느라 하나님께 마음 쓰지 못하는 것보다 낫다.
그러나 결혼에 신경이 쓰이지 않는다면,
- 결혼하지 말고 하나님께만 마음을 쓰라는 것이다.
- 그러면 온 마음을 전부 하나님께만 쏟을 수 있기 때문이다.
- 바울이 그런 것처럼 말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결혼에 신경을 쓰냐 쓰지 않느냐는 사람이 선택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 하나님이 주시는 은사이다.
- 바울은 은사를 받아 독신으로 살았지만,
- 베드로는 은사를 받지 못하여 결혼했다.
[고전 7:7] 나는 모든 사람이 다 나와 같이 되기를 바랍니다. 그러나 각 사람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은사가 있어서, 이 사람은 이러하고 저 사람은 저러합니다.
따라서 바울의 권면은 사람을 자유롭게 한다.
- 결혼하냐 하지 않느냐에 신경 쓰지 않게 한다.
- 하나님의 부르심에 맞게, 자기ㅇ답게 선택하면 된다.
- 결혼하냐 하지 않느냐는 전혀 중요하지 않다.
선택할 수 있는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독보적 지위를 인정하느냐 마느냐이다.
- 인정을 선택한 사람은 세상 모든 가치를 부정하고 하나님을 섬길 것이다.
- 결혼해도, 결혼하지 않아도 하나님만 섬길 것이다.
- 그러나 인정하지 않기로 선택한 사람은 하나님을 외면한 채 세상의 가치를 섬길 것이다.
- 그래서 결혼하지 않은 자신을 자랑하며 하나님을 외면할 것이다.
따라서 본문에서 바울은 하나님을 섬기는 것에만 집중하고,
- 염려 없이, 자유롭게, 자기답게, 부르심 받은 대로 살라는 것이다.
36~40절: 결론 - 결혼하지 않는 것이 더 잘하는 것이다.
결국 결론인 이것이다.
- 결혼하는 것은 잘하는 것이지만, 결혼하지 않는 것은 더 잘하는 것이다.
[고전 7:38] 그러므로, 자기의 약혼녀와 결혼하는 사람도 잘하는 것이지만, 결혼하지 않는 사람은 더 잘하는 것입니다.
여기서 ‘잘한다’의 기준은 하나님만 섬기는 것이다.
- 결혼하지 않는 자신을 자랑하며 하나님을 외면하는 것보다
- 결혼해서 하나님만 섬기는 것이 잘하는 것이다.
- 또한 결혼해서 하나님과 배우자에게 마음이 나뉘는 것보다
- 결혼하지 않고 하나님만 섬기는 것이 잘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더’는 무슨 뜻인가?
- 결혼해서 하나님만 섬길 때보다 결혼하지 않고 하나님만 섬길 때 하나님을 더 많이 섬길 수 있다.
- 배우자가 없으니 더 많은 시간과 힘을 하나님께 쏟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이 ‘더’를 사람이 선택할 수 없다는 점이다.
- 하나님이 주시는 은사이다.
- 부르심 받은 대로 사는 것이다.
- 그렇기 때문에 ‘더’를 가져서 결혼하지 않았다고 해서 자랑할 수 없고,
- ‘더’를 가지지 못하고 결혼했다고 해서 부끄러워할 필요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만약 ‘더’가 없었다면?
- 그래서 ‘결혼하는 것도 잘하는 것이고, 결혼하지 않는 것도 잘하는 것이다.’라고만 말했다면 어땠을까?
- 그러면 ‘더’를 가지지 못하고 결혼한 사람이 조금 더 마음이 편하지 않았을까?
- 왜냐하면 나를 비롯하여 결혼한 많은 사람이 배우자에게 마음이 나뉜 것에 대한 죄책감이 있기 때문이다.
- 바로 이 ‘더’ 때문에 말이다.
그러나 그럴 수 없다.
- ‘더’가 반드시 필요하다.
- ‘더’는 사람에게 자기 은사가 무엇인지 확인할 기회를 준다.
- 예를 들어, 결혼하지 않은 사람이 있는데 결혼할 나이가 되었다.
- 그런데 ‘더’가 빠진 바울의 말을 들었다.
- 그래서 결혼도 좋고 결혼하지 않는 것도 좋다는 것을 배웠다.
- 그러면 잠시 스쳐 지나가는 성적 욕망 때문에 깊이 고민하지 않고 결혼을 선택할 가능성이 높다.
- 결혼은 무조건 좋은 것이라는 생각 때문이다.
- 그래서 자신에게 독신의 은사가 있는지 확인해 볼 기회를 얻지 못한다.
하지만 ‘더’가 포함된 바울의 말을 들으면,
- 그래서 결혼하지 않는 것이 더 좋다고 배우면, 고민하기 시작한다.
- 결혼하지 않는 것이 더 좋다고 하니 결혼하지 않겠다고 결심한다.
- 스쳐 가는 성적 욕망에 흔들리지 않고 하나님께만 집중하려 한다.
- 그런데 이렇게 독신으로 살아도 충분히 만족스럽다면,
- 독신의 은사를 받았다고 믿고 하나님만 섬기며 살 수 있다.
- 그러면 ‘더’ 좋은 삶을 살 수 있다.
- ‘더’ 한 글자 때문에 자기 은사를 확인할 기회를 얻는다.
그러나 독신으로 살다가 평생을 함께하고 싶은 사람을 만난다면,
- 자신에게 독신의 은사가 없다는 것을 믿고 결혼하면 된다.
- ‘더’ 좋은 삶을 살 수 없지만, 그냥 좋은 삶을 살면 된다.
- 배우자에게 마음이 나뉘지만, 남은 모든 마음을 하나님께 쏟으면 된다.
- 이것이 부르심 받은 삶이다.
이 때문에 바울은 ‘더’를 넣은 것이다.
- 결혼에 대한 부르심을 진지하게 고민해 보도록 말이다.
- 그래서 가장 자기다운 선택을 하도록 말이다.
그래서 바울은 꼭 결혼해야하는 상황이라면, 결혼하라고 말한다.
- 그러나 결혼하지 않을 수 있다면, 결론하지 말라고 말한다.
[고전 7:36~37] 어떤 이가 결혼을 단념하는 것이 자기의 약혼녀에게 온당하게 대하는 일이 못 된다고 생각하면, 더구나 애정이 강렬하여 꼭 결혼을 해야겠으면, 그는 원하는 대로 그렇게 하십시오. 결혼하는 것이 죄를 짓는 것이 아니니, 그런 사람들은 결혼하십시오. (37) 그러나 결혼하지 않기로 마음을 굳게 먹은 사람이, 부득이한 일도 없고, 또 자기의 욕망을 제어할 수 있어서, 자기 약혼녀를 처녀로 그대로 두기로 마음에 작정하였으면, 그것은 잘하는 일입니다.
이는 남자도 여자도, 결혼하지 않았던 사람도 결혼했던 사람도 마찬가지이다.
- 고린도 교회는 남편과 사별한 아내가 다시 결혼하는 것을 처음 결혼하는 것보다 더 악한 것으로 본 것 같다.
- 그래서 바울은 특별히 남편과 사별한 아내도 독신의 은사가 없으면 결혼할 자유가 있다고 말한다.
그러나 결혼하지 않는 것이 ‘더’ 행복할 것이라고 말한다.
- 이를 통해 자신의 은사를 확인할 기회를 갖도록 한다.
- 이는 남편과 사별한 아내만이 아니라 모든 사람에게 해당하는 권면이다.
[고전 7:39~40] 아내는, 남편이 살아 있는 동안에는, 그에게 매여 있습니다. 그러나 남편이 죽으면, 자기가 원하는 사람과 결혼할 자유가 있습니다. 다만, 주님 안에서만 그렇게 해야 할 것입니다. (40) 내 의견으로는, 그 여자는 그대로 혼자 지내는 것이 더 행복할 것입니다. 나도 하나님의 영을 받았다고 생각합니다.
결론 - 결혼해야 할 것인가, 말아야 할 것인가?
지금까지 결혼에 대한 바울의 주장을 충분히 들었다.
- 해도 좋지만, 안 하면 더 좋다는 것이다.
- 해도 주님을 위해서, 하지 않아도 주님을 위해서 하라고 한다.
- 결혼 유무는 거룩함과 상관없고,
- 결혼 유무와 상관없이 하나님을 섬기는 것만 거룩하다.
- 그러니 독신의 은사가 없는 사람은 자기답게 결혼하는 것이 좋고,
- 독신의 은사가 있는 사람은 자기답게 결혼하지 않는 것이 좋다.
그런데 이렇게만 들으면, 바울의 말이 일관되고 명료해서 따르기 쉬울 것 같다.
- 결혼하고 싶은데, 사랑하는 사람이 있으면, 결혼하면 되고,
- 결혼에 관심 없고, 사랑하는 사람도 없으면, 혼자 살면 된다고 쉽게 생각한다.
하지만 이것이 말처럼 쉽지가 않다.
- 바울의 말을 따르려면, 또 다시 죽음을 감수한 믿음이 필요하다.
- 결혼해서 주를 위해 사는 것도, 결혼하지 않고 주를 위해 사는 것도 십자가 죽음 부활의 은혜가 필요하다.
다시 고린도 교회의 상황으로 돌아가 보자.
- 그들은 결혼을 죄로 여겼다.
- 그래서 결혼하는 사람을 믿음 없고 부정하다고 정죄했다.
- 공동체 안에서 결혼한 사람을 암묵적으로 차별했다.
그 차별이 얼마나 심했는지, 약속한 결혼까지 파혼하는 사람이 있었다.
- 그로 인해 약혼자를 곤란하게 만드는 일도 있었다.
- 추정하건대, 약혼한 신부가 파혼하면, 나쁜 평판 때문에 다시 결혼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 그것을 감수하면서까지 파혼하는 사람이 있었다.
[고전 7:36] 어떤 이가 결혼을 단념하는 것이 자기의 약혼녀에게 온당하게 대하는 일이 못 된다고 생각하면, 더구나 애정이 강렬하여 꼭 결혼을 해야겠으면, 그는 원하는 대로 그렇게 하십시오. 결혼하는 것이 죄를 짓는 것이 아니니, 그런 사람들은 결혼하십시오.
따라서 그런 분위기에서 결혼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 자신의 인생과 생명까지 담보한다고 믿는 교회 공동체에서 퇴출당할 각오가 있어야 결혼할 수 있다.
- 그래서 많은 사람이 약혼자에게 심각한 타격을 주면서까지 파혼한 것이다.
- 왜냐하면 파혼하지 않으면 교회에서 퇴출당하여 생명을 위협받기 때문이다.
- 따라서 결혼하기 위해서는 죽음을 감수해야 했다.
그렇다면 반대로 결혼하지 않는 것은 쉬울까?
- 교회에서 하라는 대로 독신으로 살면 기쁘고 평안하기만 할까?
- 교회에서 인정받으니까 마냥 좋을까?
교회에서는 인정받겠지만, 교회를 나가서 세상을 마주하면 또 차별을 받는다.
- 남성이라면, 결혼하지 않은 남자는 어른이 아니라고 차별하고,
- 여성이라면, 배우자 없이 혼자서 사회 생활 자체가 불가능하다.
- 결혼하지 않은 성인에 대한 불편한 시선이 지금도 있는데,
- 2000년 전 고린도 교회 당시에는 얼마나 심했겠는가.
- 따라서 독신으로 살기 위해서는 사회에서 퇴출당할 위협을 감수해야 했다.
이렇게 바울의 말을 따르는 것은 어렵다.
- 하나님이 자기 생명을 책임지실 것이라는 믿음 없이는 불가능하다.
- 결혼하는 것도, 결혼하지 않는 것도 죽음을 감수한 믿음이 필요하다.
그런데 만약 믿음이 없으면 어떻게 될까?
- 결혼하거나 하지 않는 선택 외에 제삼의 대안이 있으면 좋을 텐데, 없다.
- 무조건 둘 중의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
- 결혼을 선택하거나, 아무것도 선택하지 않으면 자동으로 결혼하지 않는 선택을 하게 된다.
답은 단순하다.
- 그 사람이 처한 상황에 의해 결정된다.
- 더 두려운 선택을 피하고, 덜 두려운 쪽으로 기운다.
- 삶의 반경이 교회 공동체와 조금 더 가까워서 세상보다 교회의 정죄가 두려운 사람은 결혼하지 않기로 선택한다.
- 반대로 삶의 반경이 세상과 조금 더 가까워서 교회보다 세상의 정죄가 두려운 사람은 결혼을 선택한다.
- 이렇게 선택할 때 고통이 조금이나마 줄 것으로 믿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러한 선택을 만족할 수 있을까?
- 자기 의지가 아니라 상황의 압박 때문에 한 선택은 절대로 만족할 수 없다.
- 세상의 압박 때문에 결혼한 사람은 교회의 정죄 때문에 괴롭고,
- 교회의 압박 때문에 결혼하지 않은 사람은 세상의 정죄 때문에 괴롭다.
- 이들은 결혼이 좋아서 선택한 것이 아니라,
- 정죄를 피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결혼을 선택했기 때문에 결혼 생활이 불행할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만족할 수 있을까?
- 단순하게도, 결혼 자체가 좋거나, 독신 자체가 좋아서 선택할 때만 만족할 수 있다.
- 그래야 결혼 혹은 독신으로 인해 발생하는 손해를 감수할 수 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결혼 혹은 독신 자체를 좋아할 수 있을까?
- 본질적으로, 두려움이 없어야 한다.
- 교회의 정죄를 두려워하지 않을 때,
- 혹은 세상의 정죄를 두려워하지 않을 때,
- 그래서 교회와 세상의 정죄로 인한 두려움을 피하려 하지 않을 때,
- 교회와 세상이 정죄하는 결혼과 독신을 있는 그대로 볼 수 있다.
- 그래야 결혼 혹은 독신을 있는 그대로 좋아서 선택할 수 있다.
- 그렇게 선택한 사람만이 만족한다.
마지막으로, 그렇다면 어떻게 두려움을 없앨 수 있을까?
- 결국 두려움의 근원은 죽음이다.
- 교회나 세상에서 정죄 받아 퇴출당하면, 육체적, 사회적 생존이 어렵다고 믿기 때문에,
- 그래서 죽을 수도 있다고 믿기 때문에 교회나 세상을 두려워하는 것이다.
따라서 두려움을 없애려면, 교회나 세상이 자신의 생명을 위협할 수 없다고 믿으면 된다.
- 오직 하나님만이 생명의 주관자시며,
-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셔서 나를 지켜주실 것이라는 믿음만이 죽음의 두려움을 극복하게 한다.
그러면 어떻게 이 믿음을 가질 수 있을까?
- 하나님이 성령을 통해 예수님의 죽음 부활의 의미를 깨닫게 하셔야 가능하다.
- 우리의 능력 밖이다.
- 하나님의 은혜를 기다리는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하나님의 독보적 지위를 인정하는 것이다.
- 하나님만이 절대 유일의 가치시고,
- 나머지 세상 모든 것은 하나님의 절대 가치 앞에서 완전히 무가치한 것으로 믿는 것이다.
- 그래서 교회와 세상의 정죄는 무가치하고, 자신에게 아무런 영향력도 줄 수 없다는 것을 믿고,
- 오직 하나님만이 자신에게 영향을 주실 유일한 분으로 믿는 것이다.
그렇게 믿을 때만 죽음의 두려움에서 벗어날 수 있고,
- 그럴 때 교회와 세상의 정죄에 영향받지 않을 수 있으며,
- 그럴 때 결혼과 독신을 두려움에서 피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선택하지 않을 수 있고,
- 그럴 때 결혼과 독신을 있는 그대로 좋아할 수 있으며,
- 그럴 때 결혼과 독신을 하나님의 부르심에 따라 자기답게 선택할 수 있고,
- 그럴 때 결혼하든 결혼하지 않든 만족할 수 있으며,
- 그럴 때 결혼하든 결혼하지 않든 하나님만 섬기며 살 수 있다.
바로 이것이 결혼 문제를 통해서 바울이 전하려는 것이다.
- 단순히 결혼 문제가 아니라,
- 죽음의 두려움이 결혼 문제를 장악하고 있는데,
- 그 두려움에서 벗어나게 하실 유일한 분이신 하나님을 전하려는 것이다.
그 하나님을 믿을 때만 결혼과 독신을 선택하는 것뿐만 아니라,
- 인생의 모든 선택을 바르고 현명하며 합리적으로 할 수 있고,
- 그 안에서 하나님의 사랑을 발견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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