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왜 예수님을 믿는가?’ 이건 정말 중요한 질문이다.
하지만 많은 그리스도인이 이 질문에 제대로 답을 하지 않은 채 신앙생활을 하고 있는 것 같다.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찾지 못하면 이제껏 신앙생활을 한 것이 한 순간에 물거품이 되어버릴지도 모른다.
예수님을 믿는 목적이 돈이나 성공 또는 인정이나 안정을 위한 것이라면 그 목적이 이뤄지지 않았을 때 사람은 예수님에 대한 회의가 든다. 그래서 이 질문에 대한 답은 반드시 스스로 찾아내야한다.
다른 누군가가 절대 찾아줄 수가 없다.
만약 내가 예수님을 믿는 이유가 돈이나 명예, 성공을 얻기 위한 것이라면, 그 사람은 신앙생활을 할 것인지에 대해 다시 잘 생각해봐야한다.
분명한 것은 예수님은 내가 원하는 것을 이뤄주시는 지니같은 신이 아니라는 점이다.
오히려 예수님을 믿으면 내가 원하던 부와 성공 명예와는 거리가 멀어진다. (세상의 수많은 간증들이 ‘나는 예수님을 믿어서 ~이러이렇게 잘됐다‘라며 사람들에게 이런 오해를 조장한다.)
예수님과 제자들의 삶만 봐도 알 수 있다.
그리스도인의 삶은 결코 꽃길이 아니다.
사람들로부터 칭송받는 길도 아니다.
오히려 사람들로부터 조롱받고 비난받는 길일 수 있다.
예수님이 그러셨고, 제자들도, 예언자들도 그랬다.
예수님을 믿으면, 예수님이 당신에게 당신이 필요로하는 돈, 명예는 주시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당신 안에 깊숙이 숨겨져있는 필요인 ‘사랑’을 채워주실 것이다.
‘사랑 만’을 주실 것이다.
‘사랑만’을 주셔서 다른 무언가는 필요없게 만드실 것이다.
사랑만이 아닌 다른 무언가를 예수님께 더 원하는 것이라면, 그것은 내가 살면서 제거해야할 부분이다.
만일 나를 점검해봤을 때 사랑 외에 더 바라는 것이 있는데(모든 사람이 그렇다. 사랑만 바라는 사람은 1명도 없다.) 그걸 절대 포기하고 싶지 않고 포기해지길 원하지 않는다면, 그 사람은 차라리 신앙을 포기하는게 나을지도 모른다.
(이런사람은 세상의 부와 명예도 예수님도 둘다 얻지 못하는 가장 비극적이 삶을 살테니 말이다. 차라리 예수님을 포기하고 떠나면 탕자같이 다시 돌아오고싶은 깨달음이라도 얻을지 모른다.)
하지만 사랑 외에 내가 바라는 것을 포기하긴 싫지만 그래도 포기해지길 원한다면, 하나님은 그 사람이 사랑외에 나머지 것들을 포기하도록 도와주실 것이다. 그것이 신앙의 과정이다. 예수님 외에, 사랑 외에 모든 것을 포기하게 되더라도 당신은 예수님을 믿겠는가?
내가 예수님을 믿는 이유가 누군가에게 인정을 받기 위한 것이었다면, 그 사람은 다른 사람이 아닌 내 안에서 다시 이유를 찾아야한다.
부모님이 교회를 다니라해서,(혹은 실망시키고 싶지 않아서) 그런데 그냥 그게 맞는 것 같아서 다니고 있다면, 그 이유만으론 신앙의 길에서 반드시 낙오하게 될 것이다.
그 이유는 그 사람의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다른 모든 삶을 포기하고라도 내가 왜 예수님을 믿는지, 무엇이 두려워서 그런지, 무엇이 필요해서 그런지 다시 생각해보고 찾을 때까지 고민하고 기도해봐야한다.
이것이 다른 무엇보다 중요한 문제이기 때문이다.
이 이유가 없다면, 내가 신안생활을 한 시간은 모두 헛수고, 낭비한 시간이 되어버릴 것이다.
다행인건 그 사람이 진정으로 예수님을 왜 믿는지 찾기를 원한다면, 예수님은 그 사람이 반드시 이유를 찾도록 도와주실 것이다.
예수님이 예수님을 찾는 자를 버리시는 일은 결코 없다.
내가 돈이나 명예까진 아니라도 안정된 삶을 위해 예수님을 믿는 것이라면, 이 사람도 생각을 고칠 필요가 있다.
예수님은 안정된 삶을 주시는 분이 아니다.
예수님을 믿어도 사업이 망할 수 있고, 예수님을 믿어도 병에 걸릴 수 있다. 망하고, 병걸리는 것은 사람의 관점에서 나쁜 일일 뿐이다.
하나님은 사람의 관점이 아닌 사랑(관계)의 관점에서 모든 것을 보신다.
아파도 아파서 사랑하게 되면 잘된일, 아파서 불안감으로 더 사랑과 먼 삶을 살게되면 나쁜일이다.
사업이 망해서, 가족이 소중함을 알게되고 더 사랑하게 되면 잘된 일, 사업이 망해서 돈에 더 집착하고 사랑을 버리게되면 나쁜일이다.
예수님의 관점에선 우리에게 일어나는 나쁜 일들이 나쁜일이 아닐 수 있다.
다시 말하면, 예수님은 사랑을 위해 우리에겐 나빠보이는 일을 주실 수 있는 분이다.
안정된 삶을 잃을 수 있다는 말이다.
그래도 예수님을 믿겠는가?
안정된 삶을 잃을 수 있다는건 누구에게나 두려운 일이다.
하지만 예수님은 그 두려움을 극복할 사랑을 주실 것이다.
두렵지 않아서 선택하는 것이 아니다.
두렵지만 그래도 예수님을 선택하면 예수님은 두려운 대상을 없애주시는 것이 아니라 두려움을 이길 힘을 주신다.
우리는 여러 가지 세상 욕심들에 눈이 멀어 우리 스스로가 바르게 살고 있는지조차 알 수가 없다.
우리가 뭘 원하는지 조차 알지 못하고 사람들이 사는대로 살아간다.
다른 사람들처럼 살아야 내 두려움이 잠시나마 덜어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건 눈가리고 아웅일 뿐이다.
정말 내가 무엇을 원하는지 다시 점검하고, 예수님께 구하고, 바른 신앙을 갖도록 힘을 써야한다.
이전과 같이 그냥 살아지는대로 산다면, 훗날 나는 후회하는 삶으로 삶을 마감할 것이다.
예수님께 구하자. 내가 뭘 원하는지 알 수 있도록, 예수님 외에 내가 바라는 모든 것, 사소한 것까지 모두 포기할 수 있는 용기를 주시도록.
그래서 비록 내 삶에 사람들에게 부러움을 살만한 것이 단 하나도 없더라도, 내 삶이 하나님 사랑으로, 사랑하는 사람들과의 사랑으로 가득할 수 있도록.
'토끼의 생각' 카테고리의 다른 글
죄는 무엇인가? (0) | 2024.12.07 |
---|---|
나는 정말 죄인인가? (1) | 2024.11.24 |
예수님을 믿으면 어떻게 사랑할 수 있나? (0) | 2024.11.14 |
나는 왜 예수님을 믿는가? (0) | 2024.10.27 |
토끼입니다. (0) | 2024.09.2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