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예레미야서

예레미야(75) 43:1-13 하나님께 살해 위협을 느낀 이스라엘

<미양교회 팟캐스트 양따양>

미양교회에서 했던 설교를 바탕으로 진솔하게 신앙 경험을 이야기합니다.

팟캐스트도 많이 들어주세요.

https://www.podbbang.com/channels/1790233/

 

어린양을 따르는 어린양

예배 대신 예수님, 설교 대신 성경, 건물 대신 사람을 중심으로 하는 미양교회가 만드는 방송입니다.토끼와 개구리가 진솔하게 신앙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어린양과 같이 십자가에 죽고 부활하

www.podbbang.com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하였다.

[렘 43:4] 가레아의 아들 요하난과 모든 군지휘관과 온 백성은, 유다 땅에 머물러 살라는 주님의 말씀을 듣지 않았다.

[렘 43:7] ・・・・ 이처럼 그들은 주님께 순종하지 않았다. ・・・・

하나님은 이스라엘에게 유다 땅에 머물라고 말씀하셨지만,

- 이스라엘은 이집트 땅으로 들어갔다.

[렘 43:5~7] 마침내 가레아의 아들 요하난과 모든 군지휘관은 여러 나라에 흩어져 살다가 유다 땅에서 살려고 돌아온 유다의 살아 남은 사람들을 모두 데리고, (6) 남자와 여자와 어린 아이들과 공주들과, 근위대장 느부사라단이 사반의 손자요 아히감의 아들인 그달리야에게 맡겨 놓은 모든 사람과, 예언자 예레미야와 네리야의 아들 바룩까지 데리고서, (7) 이집트 땅으로 들어갔다. ・・・・ 

 

이스라엘은 왜 하나님 말씀을 거역하고 이집트 땅으로 갔는가?

- 본문은 이스라엘의 마음을 정확하게 말한다.

- 이스라엘은 이스라엘 땅에 머물라는 하나님의 말씀에서 ‘살해 위협’을 느꼈기 때문이다.

-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이스라엘 땅에 머물면, 죽을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렘 43:2~3] 호사야의 아들 아사랴와 가레아의 아들 요하난과 고집이 센 모든 사람이, 예레미야에게 말하였다. “당신은 거짓말을 하고 있소. 주 우리의 하나님께서 당신에게, 우리가 이집트로 가서 머무르게 해서는 안 된다는 말씀을 전하게 하셨을 리가 없소. (3) 이것은 틀림없이, 네리야의 아들 바룩이 우리를 바빌로니아 사람의 손에 넘겨 주어서 그들이 우리를 죽이거나 바빌로니아로 잡아가도록 하려고, 당신을 꾄 것이오.

- 이스라엘 땅에 머물라는 하나님 말씀은 바룩이 자신을 죽이려고 만든 거짓 속셈이라는 것이다.

살해 위협이 하나님 말씀을 거역하고 이집트 땅으로 간 결정적인 이유이다.

- 아무리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해도, 죽으라는 말씀에 순종할 사람이 얼마나 있겠는가.

- 살기 위한 선택은 인지상정이다.

그런 점에서 이스라엘이 불순종을 선택한 것은 지극히 자연스럽고 합리적이다.

 

그러나 많은 사람이 하나님의 말씀을 정면으로 거역하는 이스라엘을 이해하지 못한다.

- 어떻게 선명하게 선포된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할 수 있냐고 묻는다.

- 얼마나 신앙을 하찮게 여겼으면, 그랬겠냐며 비웃는다.

그러면서 자신과 이스라엘을 구분한다.

- 만약 자신에게 이스라엘처럼 하나님의 말씀이 선명하게 선포되었다면,

-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할 것이라고 말한다.

- 현재 자신이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지 못하는 것은 이스라엘처럼 하나님의 말씀이 선명하게 선포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한다.

이렇게 이스라엘을 악마화한다.

- 이를 통해 자신은 이스라엘과 다르다고 주장한다.

- 자신이 선하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이스라엘처럼 악하지도 않기 때문에,

- 이스라엘처럼 멸망 심판을 받지 않을 것이라고 기대한다.

- 은연중에 순종하지 않는 자신을 합리화하고 긍정한다.

 

하지만 이는 전적으로 오해이다.

- 이스라엘이 남달리 악하기 때문에 순종하지 않은 것이 아니다.

- 이스라엘은 우리와 전혀 다르지 않았다.

- 어떤 면에서 우리보다 우월했다.

- 적어도 본문에서 이스라엘은 하나님께 말씀을 구한다.

그러나 우리는 중요한 결정에 앞서 하나님의 뜻을 구하지도 않는다.

- 우리 눈에 옳다고 판단하면, 지체 없이 실행한다.

- 특히 생명이 걸린 문제는 고민도 하지 않는다.

- 살아남는 것을 무조건 선이라고 여기며, 

- 당연히 하나님도 자신의 선택을 지지하실 것이라고 착각한다.

 

따라서 하나님 말씀을 거역한 이스라엘의 잘못을 하나만 꼽자면, ‘생존본능’ 뿐이다.

- 죽기 싫었을 뿐이다.

- 이스라엘 땅에 머물면, 죽을 것이 뻔하기 때문이다.

- 바벨론이 세운 총독 그달리야를 죽인 죄로 처벌당할 것이 자명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집트로 도망가면, 적어도 목숨은 건질 수 있다.

- 이스라엘도 알았다. 

- 이집트로 도망간다고 해도 엄청난 부귀영화를 얻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 이집트로 도망가면, 이집트에 속박될 수밖에 없다는 것을.

- 이집트 살이가 녹록치 않다는 것을.

- 집 떠나면 고생이라는 것을 왜 몰랐겠는가.

하지만 아무리 고생스러워도 죽는 것보다 낫기 때문에 이집트로 간 것이다.

- 이스라엘이 사리 분별하지 못하고,

- 어리석게 이집트로 가기만 하면, 풍요롭고 안락하게 살 수 있다고 착각했기 때문이 아니다.

살 수 있다면, 노예가 되어도 좋다는 생존본능 때문이다.

- 이를 누가 비난할 수 있겠는가.

- 당장 칼끝이 이스라엘을 향하고 있는데, 달리 무슨 선택을 하겠는가.

- 일단 살기 위해 도망가야지.

 

생존본능 비판

그런데 본문은 생존본능을 비판한다.

- 죽더라도 하나님 말씀을 따라야 한다고 말한다.

- 살고자 했기 때문에 죽을 것이라고 예언한다.

[마 10:39] 자기 목숨을 얻으려는 사람은 목숨을 잃을 것이요, 나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잃는 사람은 목숨을 얻을 것이다.

풀어 말하면, 이스라엘은 살고 싶었다.

- 가장 쉽고 편한 방식으로 위험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 그래서 문제를 직면하고 근원적으로 해결하기보다,

- 문제를 회피하고 싶었다.

그것을 위한 최적의 수단이 이집트였다.

- 이집트로 도망가면, 아무 문제를 해결하지 않아도, 자신을 전혀 바꾸지 않고 가만히 있어도,

- 이집트가 나서서 바벨론을 막아주기 때문이다.

 

물론 이집트가 공짜로 보호해 주는 것은 아니다.

- 바벨론을 막아주는 대가로 이스라엘의 지배권을 요구할 것이다.

- 이스라엘은 이집트에 속박되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게 될 것이다.

- 원하지 않는 이집트 우상을 섬겨야 하고, 과도한 조공을 바쳐야 할 것이다.

- 그래서 결국 이스라엘은 목숨만 건질 뿐, 모든 것을 잃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나중 일이다.

- 지금 당장은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된다.

- 이집트로 도망가서 이집트를 의지하기만 하면 된다.

따라서 이스라엘은 쉽고 편하게 살고 싶었다.

- 그래서 문제 해결보다 문제 회피를 선택했다.

- 그래서 문제는 눈덩이처럼 불어나, 이스라엘을 뒤덮는다.

그것이 멸망으로 드러난다.

- 그렇게 이스라엘은 살고자 했기 때문에 죽는다.

- 생존본능이 오히려 이스라엘을 죽게 한다.

 

그렇다면 이스라엘이 선택해야 할 정답은 무엇일까?

이스라엘이 죽지 않고 살 방법은 무엇일까?

- 문제를 회피하지 않고 해결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문제의 핵심은 바벨론과의 관계이다.

- 이스라엘이 바벨론의 총독 그달리야를 죽여서, 바벨론에 저항했다.

- 그래서 바벨론은 이스라엘이 반역 의지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했다.

- 그랬기 때문에 바벨론은 이스라엘을 공격하려는 것이고,

- 그것 때문에 이스라엘은 바벨론을 피해 이집트로 도망가려는 것이다.

따라서 문제를 직면하는 방법은 바벨론을 마주하는 것이다.

- 그래서 바벨론에게 있는 그대로 이야기하는 것이다.

- 이스라엘은 반역 의지가 없다.

- 그달리야가 죽은 것은 이스마엘 개인의 만행이었다.

- 지금은 이스마엘도 떠났고 없다.

- 이스라엘은 바벨론의 지배를 거역하지 않고 수용할 것이다.

따라서 그달리야가 죽은 것에 대해 적절한 보상을 할 것이고,

- 바벨론이 요구하는 세금도 정확하게 지불할 것이다.

- 그러니 그달리야가 죽기 전처럼 평화와 안정을 보장해달라. 라고 말이다.

그렇게 바벨론을 직접 만나 얽힌 관계를 푸는 것이다.

 

물론 이렇게 말한다고 바벨론이 수긍할 것이냐.

- 그것은 아무도 알 수 없다.

- 수긍하기는 커녕, 남은 이스라엘 백성을 모조리 잡아 죽일 수도 있다.

- 그달리야를 죽인 대가로 이스라엘을 멸망시킬 수 있다.

- 이스라엘이 문제에 직면하여 바벨론을 대면하더라도 전혀 문제가 해결되지 않을 수 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이집트로 도망가는 것도 죽는 것은 마찬가지라는 점이다.

- 왜냐하면 이집트의 세력은 기운지 오래이고,

- 이미 바벨론과 전쟁에서 패배한 전력이 있다.

- 바벨론이 쳐들어오면, 이집트도 대항할 힘이 없다.

그렇기 때문에 이스라엘이 이집트로 도망가도 바벨론은 끝까지 추격할 것이다.

- 오히려 도망갔다는 괘씸죄 때문에, 더 가혹한 공격을 받을 수 있다.

당장의 죽음을 피하기 위해 이집트로 도망가도 죽는 것은 매한가지이다.

 

정리하면, 이스라엘의 선택지는 두 가지이다.

- 이집트로 가느냐, 이스라엘 땅에 머무느냐인데,

- 이집트는 당장은 안전하지만, 결국 죽을 수 밖에 없는 선택이고,

- 이스라엘 땅은 당장 죽을 수 있지만, 회복할 가능성이 있는 선택이다.

즉, 어떤 선택을 해도 시점의 차이만 있을뿐, 죽는다는 것은 똑같다.

- 그러나 회복 가능성이 있는 선택과 없는 선택이라는 차이가 있다.

그런데 이스라엘은 당장의 안전을 위해 이스라엘 땅을 떠나 죽음의 길로 갔다.

- 생존본능에 매몰되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하나님은 이스라엘에게 이스라엘 땅에 머물라고 하신 것이다.

- 그 선택만이 회복될 수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하나님은 회복의 가능성을 보장하겠다고 약속하신다.

- 이스라엘 땅에 머물면, 바벨론이 이스라엘을 용서하고 구원할 것이라고 예언하신다.

- 지금은 바벨론이 이스라엘을 죽일까봐 두려워하고 있지만, 두려워할 필요 없다고 말이다.

[렘 42:11~12] 너희가 지금 두려워하고 있는 그 바빌로니아 왕을 두려워하지 말아라. 내가 너희와 함께 있으면서 너희를 구원하여 주고, 그의 손에서 너희를 건져내려고 하니, 너희는 그를 두려워하지 말아라. 나 주의 말이다. (12) 내가 너희에게 자비를 베풀어서, 바빌로니아 왕이 너희를 불쌍히 여겨, 너희를 고향 땅으로 되돌려 보내게 하겠다.

반면에 만약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지 않고 이집트로 도망가면, 

- 오히려 바벨론에 의해 멸망할 것이라고 경고하신다.

[렘 43:11~13] 그가 와서 이집트 땅을 치면, 염병에 걸려 죽을 자는 염병에 걸려 죽고, 포로로 끌려갈 자는 포로로 끌려가고, 칼에 맞아 죽을 자는 칼에 맞아 죽을 것이다. (12) 그리고 그는 이집트의 신전들에 불을 놓아서 신상들을 태우거나 전리품으로 가져 갈 것이다. 그는 마치, 목동이 자기 옷에서 벌레를 잡아내듯이 이집트 땅을 말끔히 털고, 아무런 저항도 받지 않고, 그 곳에서 평안히 떠나갈 것이다. (13) 그는 이집트 땅에 있는 태양 신전의 돌기둥들을 부수고, 이집트의 신전들을 불살라 버릴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스라엘 땅에 머무는 선택만이 이스라엘이 살 수 있는 유일한 길이다.

- 물론 당장의 안전을 포기하고 죽음의 위협을 마주해야 한다.

- 용솟음치는 생존본능에 저항하며, 이스라엘 땅에 머물러여 한다.

사람이 생존본능에 저항하는 것은 불가능할 만큼 어려운 일이다.

- 믿음과 성령 없이 불가능한 선택이다.

- 믿음과 성령의 눈으로 죽음 이후에 있는 생명을 본 사람만 할 수 있는 선택이다.

그만큼 어려운 일이기 때문에 예언을 주셔서 격려하고 위로하고 이끄시는 것이다.

- 그래서 하나님은 죽음의 골짜기를 통과했을 때 있을 생명과 평화를 계속해서 말씀하시는 것이다.

[렘 42:12] 내가 너희에게 자비를 베풀어서, 바빌로니아 왕이 너희를 불쌍히 여겨, 너희를 고향 땅으로 되돌려 보내게 하겠다.

 

하지만 이스라엘은 이집트를 선택한다.

- 당장의 안전을 선택하고, 죽음 이후의 생명을 포기한다.

이 선택의 결정적인 이유는 바로 생존본능 때문이다.

- 당장 살기 위해 결국 죽음을 선택한다.

- 하나님의 구원 약속과 멸망 경고를 들었음에도 말이다.

 

따라서 올바른 선택을 하고, 하나님 말씀이 순종하기 위한 필수 조건은 생존본능에 저항하는 것이다.

- 많은 사람이 당장 죽는 것이 너무 두렵고, 목숨을 건지는 것에 급급해서,

- 실상은 손해가 되는 선택을 한다.

- 죽음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죽음을 선택한다.

- 자살하는 이유가 바로 이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생존본능에 저항하고,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조절하는 사람만 올바른 선택을 한다.

- 죽음의 위협이 있지만, 살 수 있는 선택을 한다.

물론 그렇다고 죽음의 위협이 완전히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 죽음의 위협이 현실이 될 수 있다.

- 생존본능에 저항하여 죽음을 감수한 올바른 선택 때문에, 정말 죽을 수 있다.

- 예수님도 죽음을 감수하고 복음을 전하다가, 실제로 죽었다.

그러나 그런 상황이라면, 어떤 선택을 해도 죽는다.

- 이스라엘이 이스라엘 땅을 선택해도, 이집트를 선택해도 죽을 수 있는 것처럼 말이다.

- 오히려 죽음을 감수할 때만 그나마 회복 가능성이 생긴다.

- 그래서 예수님은 죽음을 감수하여 죽으셨지만, 

- 죽음 때문에 부활하셔서 회복되셨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은 이스라엘이 죽음의 길을 선택하라고 하시는 것이다.

- 죽음의 길에서 죽은 이후에 다시 회복할 계획을 가지고 계시기 때문이다.

 

하나님에 대한 오해 - 죽음 이후에만 있는 부활

많은 사람이 하나님을 오해한다.

- 하나님은 인류를 사랑하셔서, 언제나 살리기만 원하신다는 것이다.

- 하나님은 절대로 인류가 죽도록 놔두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는 반은 맞지만, 반은 틀리다.

- 하나님은 인류를 살리길 원하신다.

- 그런데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은 ‘단순한 생존’이 아니다.

- 하나님은 인류가 ‘배부른 돼지’가 되는 것을 원하지 않으신다.

- 인류가 배고프더라도 ‘사람’이 되길 원하신다.

여기서 말하는 ‘사람’은 능동적, 주체적으로 자기 정체성을 지키며, 자기답게 사는 존재이다.

- 본문의 이스라엘처럼 자기 문제를 스스로 해결하지 못하고 이집트를 의지하며,

- 직면하기보다 회피하는 존재와 달리,

- 문제에 직면하여 스스로 해결하려고 노력하는 존재이다.

- 그 과정에서 능동적, 주체적으로 선택하며,

- 그로 인해 자기 정체성을 발견하고, 의지적으로 자기답게 살아가려는 존재이다

물론 그 과정에 배고픈 순간이 있다.

- 문제에 직면하기 위해 문제 안으로 들어가면,

- 문제를 회피할 때보다 문제가 심각해지는 것처럼 보인다.

 

예를 들어, 예수님이 성육신하시기 전에는 이스라엘의 죄가 예수님을 죽일만큼 심각한지 몰랐다.

- 그러나 예수님이 세상에 오시니, 이스라엘의 죄가 얼마나 극심한지 더욱 드러났다.

- 이스라엘은 자신에게 방해된다면, 하나님도 죽일만큼 심각한 상태였다.

- 그래서 문제를 해결하려 오신 예수님은 문제 때문에 죽임당하신다.

하지만 예수님은 그 죽음 때문에 오히려 그리스도라는 것이 확증된다.

- 즉, 예수님의 예수님다움이 더욱 드러난다.

- 이렇게 예수님도 ‘배부른 돼지’에서 ‘배고픈 사람’으로 전환되는 과정을 거치신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이 원하시는 ‘배고픈 사람’이다.

- 하나님은 예수님을 죽여서라도 예수님을 예수님답게 만들고 싶으셨다.

- 이스라엘을 멸망시켜서라도 이스라엘답게 만들고 싶으셨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우리가 생존하기만을 바라시지 않기 때문이다.

- 생존하지 못하더라도, 죽더라도, 자기답게 죽기를 바라시기 때문이다.

- 그것만을 진정한 생명이라고 생각하시기 때문이다.

 

그러나 많은 사람이 배부른 돼지로 전락한다.

- 본문의 이스라엘처럼 당장의 안전을 위해 자기 자신을 포기하고 다른 존재를 의지한다.

- 능동성과 주체성을 포기하고 수동적인 존재가 된다.

인류가 배고픈 사람을 포기하고 배부른 돼지가 되는 이유는 무엇인가?

- 바로 생존본능이다.

- 살기 위해, 조금 더 풍요롭기 위해, 조금 더 안전하기 위해, 죽음에서 조금 더 멀어지기 위해 말이다.

- 자기 자신을 지불하고, 생존을 구입한다.

게다가 그것을 하나님의 뜻이라고 합리화한다.

- 하나님도 당연히 생존하길 원하신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 그래서 예레미야의 예언을 거짓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 하나님은 이스라엘이 이집트로 도망가서 생존하길 원하시는데,

- 중간에 예레미야가 이스라엘을 죽이기 위해 거짓말을 해서, 

- 이스라엘 땅에 남아서 죽으라고 예언했다고 오해한다.

[렘 43:3] 이것은 틀림없이, 네리야의 아들 바룩이 우리를 바빌로니아 사람의 손에 넘겨 주어서 그들이 우리를 죽이거나 바빌로니아로 잡아가도록 하려고, 당신을 꾄 것이오.

 

생존본능이 발동한 이스라엘에게 하나님은 어떻게 반응하시는가?

당장의 생존을 위해 문제를 회피하는 이스라엘에게 하나님은 어떻게 하시는가?

- 이게 생각보다 어려운 문제이다.

- 만약 하나님이 가만히 계신다면, 이스라엘은 당장의 생존은 얻지만, 결국 죽는다.

- 그러나 만약 하나님이 문제에 직면하게 하신다면,

- 그래서 이스라엘이 이집트로 도망가지 않고 이스라엘 땅에 머물게 하신다면,

- 이스라엘은 하나님이 왜 자신을 죽이려 하냐고 아우성을 칠 것이다.

- 하나님은 가만히 계셔도 문제, 가만히 계시지 않아도 문제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선택은 분명하다.

- 하나님은 이스라엘에게 이스라엘 땅에 머물라고 명확하게 요청하신다.

- 그래서 당장의 생존을 포기하더라도, 문제에 직면하여 문제를 해결하라고 하신다.

- 그러면서 하나님이 상황에 적극적으로 개입하셔서, 이스라엘이 살도록 하겠다고 하신다.

- 바벨론이 이스라엘을 파괴하지 않고 보호하고 구원하도록 하겠다고 하신다.

[렘 42:12] 내가 너희에게 자비를 베풀어서, 바빌로니아 왕이 너희를 불쌍히 여겨, 너희를 고향 땅으로 되돌려 보내게 하겠다.

왜 이렇게 하시냐?

- 이것만이 유일한 길이기 때문이다.

- 이스라엘이 살 수 있는 방법은 이것 뿐이다.

 

하나님이 이런 선택을 하실 때, 피해를 보는 대상은 딱 하나이다.

- 이스라엘은 유익만 얻는다.

- 하지만 하나님은 아무런 유익 없이 피해만 본다.

- 하나님이 자신을 죽이려한다고 이스라엘에게 비난받는다.

하지만 하나님은 비난을 두려워하지 않으신다.

- 비난을 감수하고 하나님답게 선택하신다.

- 하나님은 문제를 회피하지 않고 직면하신다.

-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살리는 최선의 선택을 하신다.

- 하나님은 비난받지 않는 안전한 길에서 ‘배부른 돼지’로 남아계시지 않고,

- 비난 속에서 바른 길로 가는 ‘배고픈 사람’이 되신다.

그것이 하나님이 가신 길이고, 예수님이 가신 길이었다.

- 그리고 하나님이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길이다.

 

결론 - 결국 죽음 그리고 부활

우리를 문제에 빠뜨리고, 하나님 말씀을 거역하게 만드는 딱 하나의 원인은,

- 바로 생존본능이다.

- 살아야 한다는 압박감 속에서, 생존을 무조건 가치있다고 여기는 믿음이 결국 우리를 파괴한다.

따라서 관건은 생존본능에 저항하는 것이다.

- 생존을 포기하고 죽고자 하는 것이다.

- 생존보다 더 가치있는 것을 발견하는 것이다.

 

생존보다 더 가치있는 것이 무엇이냐?

딱 하나로 정의하기 어렵다.

- 만물 존재의 근원에 해당하는 개념이기 때문이다.

- ‘생명’으로 표현할 수도 있고,

- ‘하나님 그 자체’로 표현할 수도 있으며,

- ‘자기 정체성’ 혹은 ‘온 인류’라고도 할 수 있고,

- ‘사랑의 관계’라고도 할 수 있다.

이를 예수님의 삶에 빗대어 표현해보면,

- 예수님은 왜 성육신 하셨고, 십자가에 죽으셨는가?

- 참 ‘생명’을 전하기 위해서이고,

- ‘하나님’께 순종하기 위해서였으며,

- 그리스도라는 ’자기 정체성‘을 찾기 위해서였고,

- ’온 인류‘를 구원하기 위해서였으며,

- 사람과 하나님 그리고 자기 자신과 ’사랑의 관계‘를 맺기 위해서였다.

그것을 위해 예수님은 생존본능에 저항하고 십자가에 죽으셨다.

- 이유는 단순하다.

- 그것이 생존보다 더 가치 있다고 여기셨기 때문이다.

- 합리적인 판단으로 생존을 지불하고, 생명을 구입하셨다.

 

그렇다면 생존본능에 저항한 결과가 무엇인가?

예수님이 생명을 위해 생존을 포기하고 무엇을 얻으셨냐?

- 바로 부활이다.

이 역시 다양하게 정의할 수 있다.

- 부활을 통해 배부른 돼지같이 안락하게 숨만 쉬는 생존이 아닌,

- 배고프지만 사람답게 사는 ‘생명’을 얻으셨고,

- 하나님께 순종하여 ‘하나님’을 진정으로 깨닫고 경험했으며,

- 만방에 그리스도라는 ‘자기 정체성’을 확립하였고,

- 온 인류에게 구원자가 되어 ‘온 인류’에게 찬양을 받으셨으며,

- 사람, 하나님, 자신과 진정한 ‘사랑의 관계’를 맺으셨다.

 

이것이 성경이 제시하는 유일한 궁극의 가치이다.

- 하나님의 유일한 목적이고,

- 예수님이 성육신 하시고, 십자가에 죽으신 이유이며,

- 하나님이 예수님을 통해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성경은 이것을 위해 모든 것을 포기하라고 요구한다.

- 생존까지 말이다.

- 생존을 포기할 때만, 생명을 얻을 수 있다고 말이다.

 

그런 점에서 성경의 요구는 어렵지만 쉽다.

왜 어렵냐?

- 성경은 우리에게 죽으라고 말한다.

- 생존을 포기하라고 말이다.

- 이스라엘에게는 죽음을 감수하고 이스라엘 땅에 머물라고 말하고,

- 예수님께는 십자가에 죽으라고 말한다.

하지만 왜 쉬우냐?

- 성경은 죽음보다 더 가치 있는 생명을 약속한다.

- 생존을 지불하는 대가로, 더 귀한 생명을 준다고 약속한다.

- 그래서 이스라엘이 이스라엘 땅에 머물면, 바벨론이 살려줄 것이라고 예언하고,

- 예수님도 십자가에 죽은 이후 부활할 것이라고 예고한다.

 

그러나 우리는 두 가지 반대 극단에 휩쓸린다.

- 성경의 요구는 너무 어려워서 아무도 할 수 없다고 왜곡하거나,

- 성경의 요구는 너무 쉬워서 누구나 할 수 있다고 왜곡한다.

- 하나님을 지나치게 어려운 조건을 제시하는 폭군으로 왜곡하거나,

- 하나님을 아무 조건도 제시하지 않는 유약한 부모로 왜곡한다.

그래서 아무도 할 수 없으니, 아무것도 하지 않는 자신을 합리화하거나,

- 누구나 할 수 있으니, 아무것도 할 필요 없다고 합리화한다.

 

그런데 성경은 우리에게 명확하게 요구한다.

- 생존을 포기하고 죽으라고 말한다.

- 생존본능에 저항하라고 말한다.

- 그렇지 않고 여전히 생존하려 발버둥 치면, 반드시 죽을 것이라고 경고한다.

그러나 생존을 포기하면, 조건 없이 생명을 줄 것이라고 약속한다.

- 아무 노력 없이 완전한 생명 안에서 충만함을 경험할 것이라고 약속한다.

- 예수님처럼 죽으면, 아무 노력 없이 예수님처럼 부활하여 완전한 회복을 경험할 것이라고 말이다.

 

결국 선택은 우리 몫이다.

- 생존을 얻기 위해 생명을 지불할지,

- 생존을 지불하고, 생명을 얻을지.

생존을 지불한다는 것은 사람이 할 수 있는 것 중에 가장 어려운 일이다.

- 여기서 중요한 것은 ‘할 수 있는 것 중에’라는 점이다.

- 즉, 할 수 있다는 것이다.

- 하지만 가장 어려운 일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생존을 지불하고 얻을 생명은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을 넘어선다.

- 아무리 노력해도 얻을 수 없는 것이다.

- 하지만 우리에게 반드시 필요한 것이다.

 

합리적으로 잘 계산해서 판단해야 한다.

- 생존과 생명 중에 무엇을 선택할지.

그리고 선택했으면, 선택과 일치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

- 생존을 선택했으면, 어떤 것도 배려하지 말고 잔인하리만큼 생존만을 위해 살길.

- 반대로 생명을 선택했으면, 당장이라고 죽을 것처럼 생명만을 위해 살길.

 

 

<미양교회 팟캐스트 양따양>

미양교회에서 했던 설교를 바탕으로 진솔하게 신앙 경험을 이야기합니다.

팟캐스트도 많이 들어주세요.

https://www.podbbang.com/channels/1790233/

 

어린양을 따르는 어린양

예배 대신 예수님, 설교 대신 성경, 건물 대신 사람을 중심으로 하는 미양교회가 만드는 방송입니다.토끼와 개구리가 진솔하게 신앙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어린양과 같이 십자가에 죽고 부활하

www.podbb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