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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예레미야(21) 10:17-25 짐을 꾸려라. - 멸망 심판의 현실적 의미
    예레미야서 2022. 2. 26. 02:02

    사람이 하나님을 의지하기 위해 세 가지를 인정해야 한다.

    ① 인간은 근원적으로 불안과 불만족이 있다.

    ② 그런데 인간 스스로는 불안과 불만족을 절대로 해결할 수 없다.

    ③ 게다가 이 문제를 해결하지 않으면 생존조차 어렵다.

    - 이것을 인정할 때 사람은 하늘을 바라본다.

    - 아니면 자살할 수밖에 없으니까.

    사람이 자살하는 이유는 죽임당하는 비참함을 견딜 수 없기 때문이다.

    - 특히 사회적 죽음의 비참함 앞에 더욱 자살을 선택한다.

    - 언뜻 보면 어리석은 선택으로 보이지만, 사실상 합리적인 선택이다.

    - 어차피 죽음이 확정되었다면, 죽임당하는 것보다 자살하는 것이 고통을 줄이기 때문이다.

    - 만약 우리가 십자가에 발가벗긴 채 매달려서 일주일 동안 고통에 절어 서서히 죽는 것과 혀 깨물고 단번에 죽는 것 중에 반드시 하나만 고르라면 무엇을 고르겠는가.

    - 이것이 자살을 선택하는 사람의 심정이다.

    그래서 위의 세 가지를 인정하여 자신의 죽음이 확정되었음을 깨달으면,

    - 조금 더 편하게 죽기 위해 자살을 선택한다.

    - 아니면 생명의 주관자이신 하나님을 바라보던지.

     

    하지만 사람은 훨씬 영악하다.

    - 하늘을 보며 신을 찾지도 않고, 자살도 하지 않을 방법을 찾아낸다.

    - 그것은 위의 세 가지 조건을 부정하는 것이다.

    그래서 어떻게 생각하냐면,

    ① 자신은 일시적인 불안과 불만족을 갖지만, 나름 만족하며 살고 있다고 세뇌한다.

    ② 불안과 불만족이 있지만, 돈, 성공, 명예, 인정, 안정이 주어지면 스스로 극복할 수 있다고 세뇌한다.

    ③ 불안과 불만족이 있고, 스스로 해결할 수 없지만, 인생은 원래 그런 거라고 자포자기하며 소소한 행복에 만족하려고 애쓴다.

    - 이런 방식으로 사람은 자신을 속인다.

    - 그러면 불안과 불만족을 외면할 수 있기 때문이다.

    - 문제 해결을 일단 뒤로 미룰 수 있기 때문이다.

    - 특히 자신을 속이는 대표적인 수단이 지난 본문에 나온 우상숭배이다.

    - 그리고 우상은 현 시대에 돈이나 인정, 안정 욕구 충족으로 모습을 바꿔서 활개 치고 있다.

     

    그러나 더 큰 문제는 문제 해결을 언제까지 미룰 수 없다는 것이다.

    - 그 시점은 언제 오냐?

    ① 심각한 병에 걸리거나 재기 불가능한 실패 때문에 아무리 노력해도 현재를 낙관할 수 없을 때.

    ② 성공해서 돈, 명예, 인정, 안정을 다 가졌어도, 여전히 불안과 불만족이 있을 때.

    ③ 소소한 행복을 찾으려 아무리 애써도 실패했을 때.

    누가 이런 생각을 하냐면,

    - ①의 경우, 실패를 반복하여 재기의 가능성을 완전히 잃은 사람,

    - ②의 경우, 성공을 반복하여 앞으로 있을 성공의 기대가 낮은 사람,

    - ③의 경우, 큰 성공도, 큰 실패도 없는 그저 그런 인생을 사는 사람이다.

    즉, 성공한 사람도, 실패한 사람도, 둘 다 하지 않은 사람도 결국 근원적인 문제를 맞닥뜨릴 때가 온다.

    - 특히 나이를 먹을수록 그때는 더 가까워진다.

    그래서 우리 입장에서 볼 때, 나이 많은 사람이 대체로 어리석어 보이는 것이다.

    - 근원적 문제에 직면했지만, 해결 방법을 전혀 모르기 때문이다.

    - 그래서 언제나 생명의 위협을 느끼며, 생존 본능이 극대화되어, 치졸하게 보일 만큼 자기 것만 챙긴다.

    - 여유 있게 상황을 장기적으로 보지 못하여 소탐대실한다.

    - 대표적인 예가, 지하철 문이 열리는 순간이다.

    - 문이 열리는 순간 쏟아져 나오는 사람을 비집고 먼저 들어가는 사람은 대부분 같은 사람이다.

    - 이것이 생존 본능 극대화가 일상화된 모습이다.

     

    이런 모습을 무작정 비판하려는 것이 아니다.

    - 우리가 그들을 어리석게 보는 이유는 우리가 문제를 해결했기 때문이 아니다.

    - 우리도 똑같은 문제를 가지고 있다.

    - 그러나 차이는 우리에게는 문제를 회피할 여유 시간이 있고, 그들에게는 없다는 것뿐이다.

    - 그리고 그 여유는 우리의 능력에서 온 것이 아니라, 전적으로 나이에서 온다.

    따라서 우리도 나이가 많아지면 결국 똑같이 될 것이라는 뜻이다.

    - 근본 문제를 회피만 하고 해결하지 못하면 말이다.

    - 우리가 혐오하는 고집불통의 그들처럼 말이다.

    이렇게 생존 본능이 극대화된 인간은 반드시 인간다움을 잃는다.

    - 특정한 사람의 문제가 아니라 바로 우리의 문제이다.

    - 우리도 긴급한 문제가 생기고 문제 해결에 초점이 맞춰지면, 두려움으로 인한 생존 본능이 극대화되고, 반드시 소탐대실하는 어리석은 선택을 한다.

    - 다르게 표현해서, 짐승으로 돌변한다.

     

    그렇다면 해법은 무엇인가?

    우리처럼 문제를 회피하지도 않고, 그들처럼 문제 해결에 급급하지도 않을 방법은?

    - 우리는 세 가지 방법으로 문제를 회피하려 한다.

    - 우리에게는 문제를 회피할 여유 시간이 있기 때문이다.

    - 그러나 그들은 문제를 회피할 시간이 없다. 

    - 그래서 문제를 해결하려고 경거망동하고 소탐대실한다.

    - 그러나 애초부터 해결할 수 없는 문제였다.

    - 그러니 헛수고만 하고 어리석은 선택만 할 뿐이다.

    결국 방법은 딱 하나이다.

    - 회피하지도 않고, 해결하려 하지도 않는 것이다.

    - 대신에 하나님께 해결해달라고 애원하는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의 사랑으로 충만하여, 

    - 현재에 대한 불만족 없이, 있는 그대로 자신을 충분히 사랑하게 되고,

    - 미래에 대한 불안감 없이, 영원토록 하나님의 보호 안에 있을 그 날을 확신하는 것이다.

    이것이 신앙의 본질이고,

    - 이것 때문에 신앙 생활하는 것이며,

    - 그렇기 때문에 신앙으로 우리 인생이 새롭게 변하는 것이다.

    - 불만족과 불안이라는 인간의 근원적 문제로부터 벗어나기 때문이다.

    생존 본능이 잠들고 , 여유있게 상황을 멀리 보며, 

    - 소탐대실하지 않고, 근원적인 문제 해결을 위해 사소한 문제는 감수할 줄 알며,

    - 경거망동하게 시급한 문제 해결에 쫓기지 않고, 차분하게 상황을 통제할 줄 알며,

    - 언제나 하나님의 도우심을 믿으며 평안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정말 인생이 이렇다면, 얼마나 살만한 인생이겠는가.

    - 그리고 영원토록 이렇게 살 수 있다면, 그 영생이 얼마나 가치 있겠는가.

    - 우리가 영생을 바라지 않는 것은 지금과 같은 의미 없는 인생이 지속될 것이란 착각 때문이다.

    - 현재 인생을 사람답게, 나답게 살며 생명을 누릴 때, 영생의 가치를 알고 영생을 바랄 수 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그런 인생을 어떻게 만드실까?

    결론은 단순하다.

    -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되면 된다.

    - 그러면 하나님의 사랑으로 불만족과 불안에서 벗어난다.

    - 그래야 비로소 긴급한 문제 해결에서 벗어나 정말 중요한 문제를 고민하게 된다.

    - 나는 누구인지, 사람은 무엇인지 묻고, 해답을 찾아가는 과정에 드디어 들어설 수 있다.

    그것만이 참 인생이다.

     

    그런데 문제는 사람이다.

    - 하나님이 필요하다는 것을 부정하기 때문이다.

    - 그것도 아주 교묘하고 복잡하며 은밀하게 회피하기 때문이다.

    회피 방법은 위에 말했던 세 가지 유형이 대표적이다.

    - 하나님이 필요하다는 것 자체를 부정하는 사람,

    - 하나님이 필요하다는 것은 인정하지만, 자신의 힘으로도 어느 정도 해결할 수 있다는 사람,

    - 하나님이 필요하고 자신의 힘으로도 해결할 수 없지만, 자포자기하는 사람.

    - 사람은 이런 교묘한 방법으로 하나님과의 관계 회복을 은밀하게 거부한다.

    - 입으로는 신앙을 고백하는 사람조차 말이다.

    그래서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되는 방법도 복잡하고 어려운 것이다.

     

    신앙이 어렵다고 느껴지는 이유는 다 이것 때문이다.

    - 신앙 자체는 단순하다.

    - 하나님과 관계를 회복하여, 하나님과 공감하며 사랑하는 것이 전부이다.

    - 관계 회복, 공감, 사랑이 무엇인지 모르는 사람은 없다.

    - 신앙은 쉽고 간단하다.

    하지만 우리 마음 안에 신앙에 접근하는 것을 막는 여러 개의 장벽이 있다.

    - 장벽이 생긴 원인은 다양하다.

    대표적으로, 아담과 같이 스스로의 힘으로 신이 되고자 하는 어리석은 욕망이다.

    - 쉽게 말해서, 남 도움받지 않고, 내가 주도권을 갖고 원하는 대로 선택하고 싶은 욕망이다.

    - 이를 또 다르게 말하면, 자유에 대한 욕망이다.

    - 이것 때문에 아담은 선악과를 먹었다.

    - 우리에게도 하나님 믿으면 자유가 제약되는 것을 두려워하는 마음이 있다. 

    - 그 마음이 신앙을 방해한다.

    다음 장벽은 세상이다.

    - 단순하게 말해서, 세상은 돈 없고 성공하지 못한 사람을 무시한다.

    - 사람 취급하지 않고, 죽은 자 취급한다.

    - 그래서 돈과 성공에 몰입하게 만든다.

    - 그 결과 사람은 신앙에서 멀어진다.

    마지막으로, 우리 마음과 세상에 영향력을 가진 영적 세력이다.

    - 길게 말하지 않겠다.

    - 영의 존재를 우리는 상상하고 표현할 수 없기에 말하는 것조차 의미 없다.

    - 성경이 그렇다고 하니 그런가 보다 하는 것이다.

    - 신경 안써도 된다.

    이런 장벽이 복잡하게 얽혀서 신앙을 방해한다.

     

    게다가 사람이 신앙을 거부하는 또 다른 행태가 있다.

    - 비유로 먼저 말하면, 마치 바퀴벌레가 도망 다니는 것과 같다.

    - 부엌에 약을 뿌리면, 안방으로 도망가고,

    - 안방에 약을 뿌리면, 건너방에 모이고,

    - 부엌, 안방, 건너방에 다 뿌리면, 위층이나 래층에 모인다.

    - 건물 전체에 다 뿌리면, 옆 건물로 가고,

    - 모든 건물에 다 뿌리면, 옆 마을로 간다.

    - 따라서 바퀴벌레를 죽일 방법은 지구를 파괴하는 것뿐이라는 우스갯 소리도 있다.

    사람도 이와 같다.

    - 신앙을 방해하는 장벽을 돈이라고 지적하면, 사람은 명예로 숨는다.

    - 명예를 지적하면, 행위로 숨는다.

    - 또 행위를 지적하면, 자유로 숨는다.

    풀어 말하면, 신앙 때문에 좋은 직장을 포기한 사람은 교회에서라도 한 자리 차지하려고 한다.

    - 또 신앙 때문에 교회 직분 포기한 사람은 포기한 행위를 자랑삼는다.

    - 또 행위 자랑을 막으면, 자신은 어디에서 매여있지 않다며 자유를 자랑한다.

    - 여기서 자유를 막으면 또 다른 곳으로 숨는다.

    신앙을 방해하는 장벽을 지적하는 것은 하나님께 나아가라는 것이다.

    - 그러나 사람은 결코 하나님께 나아가지 않겠다는 다짐을 한 것 같다.

    - 하나님 외에 모든 수단을 총동원하여 그리로 숨는다.

    - 미꾸라지처럼, 바퀴벌레처럼 말이다.

     

    이것이 신앙이 어려운 이유이다.

    - 신앙 자체의 문제가 아니라, 신앙을 대하는 사람의 태도가 문제이다.

    - 이러한 현상이 자신에게는 관찰하기 어렵지만, 남들을 보면 너무 쉽게 보인다.

    신앙 생활을 한다면서 여전히 자기 욕망 충족에 혈안이 되어있는 사람을 많이 본다.

    - 하나님이 주신 자유와 복으로 부동산 투자를 한다는 사람도 있고,

    - 하나님이 주신 사명 따라 사업에 매진한다는 사람도 있다.

    - 그런 생각이 얼마나 어리석은지 이런 긴 설명 없이도 우리는 충분히 잘 안다.

    - 정작 본인만 모른다.

    이를 뒤바꾸면 우리도 마찬가지이다.

    - 우리도 그들과 똑같이 어리석다.

    - 신앙을 명분 삼아 욕망 충족을 한다.

    - 분명히 나 외에 다른 사람들은 우리의 어리석음을 다 알 것이다.

    - 나만 모를 것이다.

     

    이것이 하나님을 거부하는 인간의 실상이다.

    - 로마서 3장에서 '의인은 없다. 한 사람도 없다. 깨닫는 사람도 없고, 하나님을 찾는 사람도 없다. 모두가 곁길로 빠져서, 쓸모가 없게 되었다. 선한 일을 하는 사람은 없다. 한 사람도 없다.'는 말씀과 같다.

    - 우리는 하나님을 거부하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

    - 몸부림을 친다.

    - 어떻게든 하나님을 거부하는 자신을 합리화하기 위해서 말이다.

    왜 이런 이야기를 길게 하냐면, 이것을 인정해야 하나님의 해법이 납득되기 때문이다.

    - 이제부터 진짜 하나님의 해법을 이야기하겠다.

     

    이러한 인간에 대한 하나님의 해법은?

    바퀴벌레 잡는 방법과 같다.

    - 단계적 접근으로는 불가능하다.

    - 전방위적 접근만이 해법이다.

    - 부엌만, 안방만 다뤄서는 불가능하다.

    - 동시에 집 전체를, 건물 전체를, 지구 전체를 다뤄야 가능하다.

    - 그렇게 바퀴벌레가 숨을 곳을 완전히 없애야 가능하다.

    그래서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전멸'시키신 것이다.

    - 그래서 재기 가능성조차 없애신 것이다.

    [렘 10:19~20] 아! 우리가 이렇게 심하게 다쳤으니, 우리의 상처가 나을 것 같지 않구나. 이런 고통쯤은 참을 수 있다고 생각하였는데! (20) 우리의 장막이 부서졌다. 장막을 잡고 있던 줄도 모두 끊어졌다. 우리의 자녀들도 모두 떠나가고, 아무도 남아 있지 않아서, 우리의 장막을 다시 칠 사람도 없고, 휘장을 달 사람도 없다.

    - 하나님은 이스라엘이 상처가 나을 가능성, 무너진 장막을 새로 칠 자녀조차 남기지 않으셨다.

    - 재기 가능성도 도망갈 구멍이 되기 때문이다.

    - 그러면 재기 가능성을 믿고 현재의 멸망 앞에서 하나님께 나아가지 않고 끝까지 버티며 재기할 날을 기다리기 때문이다.

     

    누군가는 이러한 하나님을 이해할 수 없다고 말한다.

    - 어떻게 긍휼과 자비의 하나님, 노하기를 더디 하시며 끝까지 인내하시는 하나님이 전방위적 공격을 하실 수 있냐고 말한다.

    - 훈계, 책망이 필요하다는 것은 알지만, 정도가 지나치다고 말한다.

    - 마치 자녀를 훈육할 때도 어느 정도 수준을 넘어가면 안 되는 것처럼 말이다.

    - 그러면서 하나님의 사랑을 의심하고 부정한다.

    그러나 하나님이 처음부터 전방위적 접근을 하지 않으셨다.

    - 처음에 아담에게는 아주 작은 규범 하나 빼고는 모든 것을 용납하셨다.

    - 선악과 먹기 금지 규범이 그것이다.

    -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규범은 늘어나서 율법이 생기고,

    - 거기에 성전이 덧붙여지고,

    - 그것도 모자라 예언자가 나타난다.

    - 이렇게 하나님은 단계적으로 접근하신다.

     

    그러나 결과는 어땠는가.

    - 선악과부터 시작해서, 율법, 성전, 예언자까지 전부 소용이 없었다.

    - 이것으로 이스라엘의 죄를 막을 수 없었다.

    - 오히려 하나님 관계 회피 수단으로 전락한다.

    - 바퀴벌레가 약을 피해 다른 곳으로 숨듯이 말이다.

    하나님은 율법, 성전, 예언자를 통해 이스라엘이 하나님과 관계 맺기를 바라셨다.

    - 하지만 이스라엘은 율법을 지키고, 성전 의식을 행하고, 예언자의 예언을 통해 하나님과의 관계 없이도 살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하려 했다.

    - 물론 의식적으로, 대놓고 그러진 않았다.

    - 하나님을 위해 율법과 성전 규범을 지킨다고 말했다.

    - 하지만 실상은 율법과 성전 규범을 지켰서 해야 할 일은 다 했으니,

    - 이제는 더 이상 하나님께 매달리지 않아도 원하는 것을 다 얻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 즉, 율법과 성전이 하나님 없이도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있는 요술램프로 전락했다.

     

    이는 우리도 마찬가지이다.

    - 종교 의식인 예배, 헌금, 구제, 봉사, 말씀 기도 시간 등은 우리 인생 전체가 하나님과 관계 맺도록 하는 장치이다.

    - 그러나 우리는 그것을 다르게 사용한다.

    - 해야 할 일 다 했으니, 하나님께 더 이상 내 인생에 참견하지 말라고 한다.

    - 숙제 끝낸 초등학생이 마음껏 놀듯, 하나님을 머리에서 지워버리고 마음대로 산다.

    물론 의식적으로, 대놓고 하진 않는다.

    - 그러나 무의식적으로 우리는 열심히 종교 의식 다 끝냈으니, 마음껏 돈 벌어도 아무 상관 없다고 생각한다.

    - 그것을 더욱 포장하여, 종교 의식 열심히 했으니 하나님도 돈 벌게 도와주실 것이라고 생각한다.

    - 종교 의식을 하나님과 관계 맺는 도구가 아니라,

    - 하나님과 관계 맺길 거부하는 자신을 합리화하는 도구로 사용한다.

    이런 사고 방식이 전부 이스라엘과 똑같다.

     

    그랬던 이스라엘은 결국 어떻게 되었냐?

    멸망 심판을 받았고, 그 예고대로 멸망하였다.

    - 멸망당했다는 사실 그 자체는 별로 중요하지 않다.

    - 우리랑 별로 상관없는 민족에 대한 이미 지난 일이다.

    멸망의 의미가 중요하다.

    - 멸망이 2022년을 사는 우리에게 뜻하는 바가 중요하다.

     

    이스라엘 멸망이 전하는 메시지는 또 다시 관계이다.

    - 이스라엘이 숨을 수 있는 모든 것을 제거한 것이다.

    - 하나님은 율법, 성전, 예언자로 이스라엘과 관계 맺으려 하셨지만,

    - 그럼에도 이스라엘은 계속 어딘가로 숨었다.

    - 그래서 어디로도 숨을 수 없도록 모든 것을 제거하셨다.

    이스라엘이 죽어 없어지라는 뜻이 아니다.

    - 이스라엘의 죄에 대한 형벌의 의미도 아니다.

    - 형벌이 관계 회복에 아무런 도움이 안 되는 이유는 이미 설명했다.

    이스라엘이 하나님과 관계를 회복하는 것 외에는 아무런 선택지가 없는 상황을 만드신 것이다.

    - 그래서 이스라엘이 자발적으로 하나님과의 관계를 선택하도록 말이다.

     

    그러나 누군가는 이렇게 반문할 수 있다.

    -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이 왜 이렇게 일을 복잡하게 해결하시냐고 말이다.

    - 더 빠르고, 더 단순하고, 더 효과적이고, 더 피해가 적은 방법도 있지 않냐고 말이다.

    - 이러한 의문의 숨은 뜻은, 멸망 없이 회복될 수 없냐는 반박이다.

    - 왜냐하면 자신이 멸망 없이 구원받고 싶기 때문이다.

    물론 있다.

    - 단순하게 말해서, 하나님이 모든 사람의 꿈에 나타나서, '너 나 안 믿으면 죽는다. 믿어야 산다.'라고 무섭게 말씀하시면 된다.

    - 즉, 어떤 방법이건 간에, 강압적으로 사람을 하나님 앞에 굴복시키면 된다.

    - 협박하던, 회유하던, 세뇌하던 하나님을 믿도록 주입하면 된다.

    - 그것이 전지전능자만이 할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렇게 하시지 않는다.

    - 이유는 이미 다 알 것이다.

    - 그렇게는 바른 관계는 맺을 수 없기 때문이다.

    - 바른 관계는 완전한 자유와 자유로운 선택을 통해서만 가능하기 때문이다.

    - 하나님 자신의 능력을 제한하셔서라도 바른 관계를 맺고자 하신다.

    그러나 사람은 하나님이 지켜주신 자유를 마음껏 사랑하는 것이 쓰지 않고, 육체의 욕망을 만족시키는 것만을 위해 썼다.

    - 그래서 이 난리가 난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은 멸망을 통해 이스라엘의 상황을 통제하신 것이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멸망시키셔서, 하나님께 도움을 구하고 관계 회복을 선택할 수밖에 없는 상황을 만드셨다.

    - 그래서 이스라엘에게 하나님의 사랑을 제대로 맛보게 하셨다.

    - 그런 이스라엘은 다음을 깨닫는다.

    [렘 10:23] 주님, 사람이 자기 운명의 주인이 아니라는 것을, 제가 이제 깨달았습니다. 아무도 자기 생명을 조종하지 못한다는 것도, 제가 이제 알았습니다.

    이스라엘은 자신의 문제를 스스로 해결하려 했다.

    - 그렇다고 하나님을 완전히 배제한 것은 아니다.

    - 단지 부탁한 문제에 한정해서, 의도한 방향으로만 해결해주시기를 바랬을 뿐이다.

    - 우리는 현실에서 이런 존재를 '을' 또는 '종업원', '직원' 등으로 부른다.

    - 그러면서 이스라엘 자신은 인생에서 '갑', '사장'이 되려 했다.

    그러나 결국 실패했다.

    - 이스라엘이 사장이고 하나님이 직원이었던 업체는 망했다.

    - 그냥 망한 것이 아니라, 재기 가능성조차 사라졌다.

    그러고 나서 이스라엘은 깨달았다.

    - 자기는 사장 하면 안된다는 사실을.

    - 그리고 하나님을 사장 시켜야 한다는 것을.

     

    이러한 깨달음을 위해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상황을 통제하신 것이다.

    -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찾는 것 외에 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는 상황으로 말이다.

    - 하나님이 가혹해서가 아니라, 이 방법밖에 없기 때문이다.

    - 바퀴벌레가 그렇듯, 이스라엘은 아무리 작은 기회라도 있으면 그 틈을 파고들며, 

    - 끝까지 하나님을 거부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야만 하나님 없이 사는 것이 얼마나 비극적인지 깨닫기 때문이다.

     

    그래서 예레미야는 '채찍질'을 하나님께 구한 것이다.

    [렘 10:24] 주님, 형벌로 주님의 백성을 채찍질하여 주시되, 주님의 진노대로 하지 마시고, 너그럽게 다스려 주십시오. 우리가 죽을까 두렵습니다.

    - 이 번역이 좀 부족해서 영어 직역을 보면,

    [렘 10:24, NRSV] Correct me, O LORD, but in just measure;

    not in your anger, or you will bring me to nothing.

    - 예레미야는 공정하게(just measure) 고쳐달라고(correct me) 요청한다.

    - 그 방법을 통해서만 이스라엘이 스스로 문제 해결할 수 없음을 깨닫고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기 때문이다.

    24절 뒷부분도 단지 하나님께 화내지 말라는 뜻이 아니라,

    -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완전히 없애실 능력이 있지만,

    - 결코 그렇게 하지 않고, 고쳐서 관계를 회복시키실 것이라는 믿음의 고백이다.

     

    이런 관점에서 17절을 보자.

    [렘 10:17] 포위된 성읍에 사는 자들아, 이제 이 땅을 떠날 터이니 짐을 꾸려라.

    - '짐을 꾸리라'는 하나님의 명령은 자발적으로 숨을 곳을 없애라는 뜻이다.

    -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거부하고 숨기 위한 수단으로 율법과 성전을 이용하기 때문에,

    - 숨을 곳이 없는 상황으로 자신을 몰아가라는 뜻이다.

    - 율법과 성전을 생각조차 할 수 없는 곳으로 떠나라는 뜻이다.

    마치 아브라함이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듯이 말이다.

    - 그리고 출애굽한 이스라엘이 광야에 머물듯이 말이다.

    - 그런 상황에서만 하나님과 관계 회복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짐을 꾸리라는 하나님의 명령은 관계를 회복하자는 외침이다.

     

    그러나 만약 자발적으로 짐을 꾸리지 않는다면, 하나님은 짐을 꾸릴 수밖에 없는 상황을 만드신다.

    - 그것이 재기 가능성 없는 멸망이다.

    - 그렇게라도 해서 하나님은 관계 회복을 이루고자 하시는 것이다.

     

    결론 - 지금 우리는 어떤 상황에 있는가?

    누누이 말했지만, 하나님은 우리에게 없던 신앙을 갑자기 만드시지 않는다.

    - 갑자기 믿어지지 않던 부활이 믿어지고, 

    - 없던 헌신의 마음이 갑자기 생기도록 하시지 않는다.

    만약 그것이 필요했다면, 하나님은 이스라엘도 그렇게 만드셨을 것이다.

    - 그러나 그렇게 하지 않으셨다.

    - 따라서 그것은 우리에게 필요하지 않다.

     

    대신에 하나님께서 하신 일은 상황을 바꾸신다.

    - 이스라엘을 멸망시키셔서 하나님 외에는 의지할 것이 아무것도 없도록 만드신다.

    - 그래서 자발적으로 하나님을 선택하고, 하나님과의 관계의 참 기쁨을 맛보게 하신다.

    이것만이 하나님의 유일한 방법이다.

    - 하나님께서 사람의 신앙을 돌보시는 방법이다.

     

    따라서 우리도 자신의 신앙을 돌아보기보다는 우리를 둘러싼 상황을 봐야 한다.

    - 우리가 하나님 외에 의지할 것이 있는 상황이라면, 우리는 결코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을 것이다.

    - 그러면 우리의 신앙은 결코 생기지 않을 것이다.

    우리가 의지할 것을 그대로 두고 믿음을 달라고 기도하는 것은 쓸모없는 짓이다.

    - 마치 돈 내고 사창가에 들어가서 음란하지 않게 해달라고 기도하는 것과 같다.

     

    지금 우리는 우리를 어떤 상황으로 만들고 있는지 자신에게 물어보자.

    - 불안과 불만족을 스스로 해결하기 위해 인정과 안정을 얻을 수 있는 상황을 만드는지.

    - 그것을 위해 돈, 명예, 건강, 지식, 관계를 쌓아가고 있는지.

    - 그래서 점점 자신에게 하나님이 필요 없도록 만드는지.

    그런 우리에게 본문은 짐을 싸라고 말한다.

    - 스스로 인정과 안정을 얻으려는 노력을 멈추라고 말한다.

    - 어차피 불가능하기 때문이며, 그 노력 때문에 하나님과의 관계가 깨지기 때문이다.

    - 불안과 불만족 속에서 하나님을 찾으라고 말한다.

     

    그러나 만약 자발적으로 짐을 싸지 않으면, 하나님께서 어쩔 수 없이 싸도록 만드신다고 말한다.

    - 즉, 하나님 외에 의지할 것이 아무것도 없는 상황을 만드신다는 뜻이다.

    - 돈, 명예, 건강, 지식, 인정, 안정을 전부 빼앗으시겠다는 뜻이다.

    -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멸망시키신 것처럼 말이다.

    이 멸망은 우리의 숙명이고 피할 수 없다.

     

    만약 이러한 멸망이 갑자기 오면, 당황해서 아무것도 못 하게 될 것이다.

    - 그러면 하나님을 원망하며 신앙을 떠나게 될 수 있다.

    그러니 미리 준비하다.

    - 먼저 스스로 의지하는 것을 포기하자.

    - 아무것도 의지할 수 없는 상황을 스스로 만들자.

    - 그래서 하나님밖에 의지할 수 없는 상황을 만들자.

    그러지 않으면, 하나님이 그렇게 하실 것이다.

    - 그래서 자력갱생도 불가능하고,

    - 자포자기, 안빈낙도도 불가능한 상황으로 몰아가실 것이다.

    - 그래서 마침내 그 광야에서 하나님의 사랑을 맛보게 하실 것이다.

    - 그곳에서 세상에서는 결코 얻지 못했던 인정과 안정을 얻을 것이다.

    이것이 이스라엘의 멸망이 2022년에 살고 있는 우리에게 전하는 메시지이다.

     

    우리 모두에게 속히 멸망이 찾아와, 하나님과 깊은 사랑을 나누게 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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