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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레미야서

예레미야(12) 6:16-30 화려한 제사 - 거래로 얻으려는 거짓 평안

<미양교회 팟캐스트 양따양>

미양교회에서 했던 설교를 바탕으로 진솔하게 신앙 경험을 이야기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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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양을 따르는 어린양

예배 대신 예수님, 설교 대신 성경, 건물 대신 사람을 중심으로 하는 미양교회가 만드는 방송입니다.토끼와 개구리가 진솔하게 신앙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어린양과 같이 십자가에 죽고 부활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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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은 나라의 안위가 예루살렘 성전의 제사에 달렸다고 생각했다.

- 그래서 더 귀한 것으로 제사를 드리면 하나님은 더 기뻐하실 것이고,

- 그러면 하나님이 더 든든하게 이스라엘을 지키실 것이라고 믿었다.

- 그래서 제사는 갈수록 화려해졌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 화려한 제사를 비판하신다.

[렘 6:20] 스바에서 들여 오는 향과 먼 땅에서 가져 오는 향료가, 나에게 무슨 소용이 있느냐? 너희가 바치는 온갖 번제물도 싫고, 온갖 희생제물도 마음에 들지 않는다.

 

그런데 본문은 이스라엘이 이러한 비판을 여러 번 들었지만, 모두 거부했다고 한다.

- 하나님께 나아가는 '가장 좋은 길'을 알려 주셨지만, 이스라엘은 '가지 않겠다고' 하였다.

[렘 6:16] 나 주가 말한다. 나는 너희에게 일렀다. 가던 길을 멈추어서 살펴보고, 옛길이 어딘지, 가장 좋은 길이 어딘지 물어 보고, 그 길로 가라고 하였다. 그러면 너희의 영혼이 평안히 쉴 곳을 찾을 것이라고 하였다. 그런데도 너희는 여전히 그 길로는 가지 않겠다고 하였다.

- 또 파수꾼까지 세워 놓고 알려주셨지만, 이스라엘은 듣기를 거부했다.

[렘 6:17] 나는 또 너희를 지키려고 파수꾼들을 세워 놓고, 나팔 소리가 나거든 귀담아 들으라고 가르쳐 주었으나, 너희는 귀담아 듣지 않겠다고 하였다.

이렇게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인도, 가르침, 경고를 모두 무시했다.

- 그리고 모든 힘을 화려한 제사에만 집중했다.

- 그것이 자신을 구원할 것이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결과 이스라엘에게 주어진 것은 구원이 아니라 '내버려짐'이었다.

[렘 6:30] 이제 그들은, 불순물을 제거할 수 없는 ‘내버린 은’일 뿐이다. 나 주가 그들을 내버렸기 때문이다.

- 이스라엘이 구원받기 위해 드린 바로 그 제사 때문에,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버린다고 말씀하신다.

이것이 이스라엘 비극의 핵심이다.

구원을 위한 제사가 심판의 원인이 되었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났을까?

이스라엘은 왜 제사에 그토록 집착했을까?

- 그것이 구원이 아닌 멸망으로 가는 길이라는 경고를 들었으면서도 왜 무시했을까?

- 왜 제사만 잘 드리면 구원받을 것이라는 착각에서 벗어날 수 없었을까?

 

결론부터 말해서, 거래하려 했기 때문이다.

- 더 정확하게 말하면, 거래밖에 몰랐기 때문이다.

- 필요한 것을 얻는 방법으로 거래 외에는 알지 못했고,

- 그래서 하나님께 구원을 얻기 위한 방법으로 거래밖에 생각하지 못했다.

- 하나님은 사랑의 관계를 원하셨고, 하나님과 관계 맺는 것 자체가 구원인데도 말이다.

- 마치 옛날 드라마에서 원빈이 '얼마면 돼, 얼마면 살 수 있어?'라며 사랑을 사려 했던 것처럼 말이다.

- 그도 재벌 아들이라 거래밖에 몰랐고, 사람 마음도 거래하려 했다.

- 하지만 송혜교는 '마지막 자존심이에요.'라며 절대로 마음을 팔지 않았다.

- 하나님이 이스라엘에 그러셨던 것처럼 말이다.

그래서 이스라엘이 제사에 집착한 것이다.

- 하나님께 돈을 투입할 수 있는 유일한 통로가 제사였기 때문이다.

- 적어도 이스라엘에게는 그랬다.

- 그 방법 말고는 아무것도 몰랐다.

 

혹자는 이스라엘이 악한 마음을 품고 제사를 통해 하나님을 종처럼 부리려 했다고 말한다.

- 화려한 제사로 하나님께 구원을 '구매'했다는 것이다.

- 자신은 '갑'이고 하나님을 '을'로 두고서 말이다.

- 그러나 이 말을 당시 이스라엘 사람이 들었다면, 놀라서 펄쩍 뛸 것이다.

- 만약 내가 정말 그런 생각을 했다면 벼락이 떨어져도 좋다며, 자신의 무결함을 주장했을 것이다.

이스라엘은 '순수한 마음'으로 구원을 원했다.

- 그런데 그 마음을 표현할 방법으로 거래밖에 생각하지 못했던 것일 뿐이다.

- 결과적으로 하나님을 종 취했지만, 그럴 의도는 전혀 없었다.

- 단지 몰랐을 뿐이다.

 

그럼 왜 거래밖에 몰랐을까?

- 하나로 특정하기는 어렵다.

- 진화의 결과로 거래하는 사람만 살아남아서, DNA 속에 선천적으로 들어있을 수도 있다.

- 또한 후천적인 교육이나 시장 경제의 경험 때문일 수도 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거래가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있는 가장 쉬운 방법이라는 점이다.

- 마치 자판기처럼 말이다.

- 적합한 가치를 투입하기만 하면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 더하기 빼기처럼 직관적이고 명확하다.

그러나 관계는 복잡하고 모호하며, 결과를 보장할 수 없다.

- 예를 들어, 새벽에 배가 고픈데, 요리할 줄을 모른다.

- 그러면 가족 중 한 명을 깨워서 밥을 해달라고할 것인가,(관계)

- 아니면 배달 어플로 밥을 주문할 것인가?(거래)

- 밥을 주문하면 투입할 돈도, 받을 수 있는 음식도 확실하다. 예상 가능하다.

반면에 가족을 깨우면, 투입할 노력도, 받을 수 있는 음식도 불확실하다. 예상이 안 된다.

- 배고파하는 나를 불쌍히 여기며, 때마침 남았던 미역국과 밥을 맛있게 받아먹을 수 있다.

- 그러나 새벽에 깨운다고 욕만 바가지로 먹고, 아무것도 못 먹을 수도 있다.

- 또한 밥을 차려줬다는 이유로 얼마나 많은 대가를 치러야 할지 예상할 수 없다.

이러한 '쉬움', '예상 가능함' 때문에 우리는 거래를 선택한다.

- 이것이 거래의 매력이다.

- 단순 명쾌함이 그것이다.

 

이스라엘이 제사에 집착한 이유도 똑같다.

- 가장 쉽고, 결과를 예상할 수 있기 때문이다.

- 주머니에 있는 돈으로 화려한 제물을 사서, 제사상에 놓는 것만큼 쉽고 확실한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 얼마의 가치를 투입했는지가 눈으로 확실하게 보이기 때문이다.

- 그러니 그 가치만큼의 결과가 생길 것이라고 명확하게 예상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랬기 때문에 이스라엘은 제사를 드린 후 엄청난 마음의 평안을 얻을 수 있었다.

- 자판기에 동전을 넣었고, 음료수 버튼을 눌렀다.

- 이제 나올 일만 남았다.

- 그러니 바벨론에 의해 멸망 위기에 있지만, 하나님이 구원해주실 확신 속에 있으니, 얼마나 평안했겠는가.

- 밀린 방학 숙제를 다 끝내놓고 개학을 기다리는 아이처럼 후련했을 것이다.

그래서 시장에서 돈을 주면 필요한 것을 받는 것이 당연한 것처럼, 하나님도 같은 마음을 가지고 계실 것으로 생각했다.

- 하나님을 무시해서가 아니다.

- 하나님을 특별히 존중했기 때문에, 아마 필요한 것 대비 훨씬 큰 가치를 투입하려 했을 것이다.

- 그 때문에 제사는 더욱 더 화려해졌을 것이다.

도대체 이것이 왜 문제가 되는 것일까?

 

왜 이런 고민을 해야 하냐 하면,

- 우리도 셀 수 없이 같은 상황에 처하기 때문이다.

- 필요한 것이 생기고, 스스로 구할 방법이 없을 때, 하나님을 떠올린다.

- 그러면서 하나님께 필요한 것을 받을 방법을 고민한다.

- 고민 끝에 선택하는 것은 결국 거래이다.

대표적으로, 서원 기도이다.

- '이번 문제만 해결해주시면, 평생 교회에 헌신할게요.'라며 절박하게 기도한다.

- 그랬더니 정말 하나님께서 주셨더라.

- 그래서 평생 이렇게 헌신하며 살고 있다. 는 간증 많이 들어봤을 것이다.

그러한 기도와 화려한 제사는 완전히 같다.

- 내가 이 정도 가치를 하나님께 투입하면, 하나님을 만족시킬 수 있고, 필요한 것을 주실 것이라는 '자판기 믿음'에서 나온 것이기 때문이다.

- 하나님을 자판기처럼 동전 넣고 누르면 음료수를 내밀어주실 분으로 믿는 것이다.

그러한 믿음을 본문은 비판하고 있다.

 

문제의 본질은 하나님을 자판기 취급하는 것이다.

자판기의 특징은 이것이다.

- 내가 100원을 넣으면 100원짜리 상품을 준다.

- 즉, 나와 자판기의 가치 기준이 똑같다.

- 이것이 거래의 기본이고, 그것 때문에 거래는 쉽고 예상 가능하다.

- 그래서 사람이 거래에 매몰된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의 가치 기준도 나와 같다고 생각하는 것에서 문제가 시작한다.

- 내가 큰 돈을 들여 화려한 제사를 드렸으면, 하나님도 그 가치를 인정하시고, 그 가치에 합당한 반응을 보이실 것이라는 믿음이다.

- 그 믿음으로 화려한 제사를 드리는 것이고, 같은 믿음으로 서원 기도를 하는 것이다.

 

그런데 정말 그렇냐?

- 하나님은 사람과 가치 기준이 전혀 다르다.

- 더 확장해서 말해서, 사람 사이에서도 가치 기준이 같은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것이 바로 꼰대이다.

- 내가 좋아하는 것을 다른 사람도 좋아하리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 내가 신입 사원 때 야근 많이 해서 일도 빨리 배우고 성과도 좋아서 진급도 빨리 했으니까, 부하 직원들한테 야근 많이 시키면 좋아하겠지!

- 나는 회식하면서 동료 직원과 친해지고 그러면서 업무도 배우고 좋으니, 모두 회식을 좋아하겠지!

- 나는 힘들게 일했으니까, 집안일은 배우자가 해주겠지?

- 나는 힘들게 육아했으니까, 나머지 일은 배우자가 해주겠지?

이렇게 생각하면, 100% 갈등이 생긴다.

- 자신의 기준을 상대방에게 암묵적으로 강요했다.

- 생각해보지도 않고, 상대방이 나와 같은 기준을 가졌을 것으로 생각했다.

- 상대방의 기준을 이해하려 하지도 않았고, 자신의 기준을 설명하려 하지도 않았다.

 

갈등의 해결 방법을 이렇게 오해하면 안 된다.

- 모든 사람이 전부 같은 가치 기준을 가져야 하는 것도 아니다.

- 또한 서로의 가치 기준을 완전히 알아야 하는 것도 아니다.

- 물론 만약 모두가 같은 가치 기준을 갖고, 그것을 서로 다 알면, 정말 갈등은 확 준다.

- 하지만 이는 불가능하다.

유일한 갈등 해결 방법은 서로 가치 기준이 다르다는 것을 기억하는 것이다.

- 그래서 상대방의 가치 기준을 알려고 노력하고, 자신의 가치 기준을 설명하려 노력하는 것이다.

- 예를 들어, 내가 회사에서 정말 힘든 일이 있었어. 그래서 집안일 하기가 많이 힘들다.

- 들어보니 너도 육아하느라 많이 힘들었구나. 그래서 쉬고 싶구나.

- 그러면 이 일은 꼭 해야 하는 일이니 함께 빨리 끝내고, 나머지 일은 내일로 미루자. 와 같은 방식으로 서로 조정하고 합의할 수 있기 때문이다.

 

사람 사이도 이런데, 하물며 하나님과 사람의 관계에서는 가치 기준 차이가 얼마나 크겠는가.

- 그러면 그 차이로 인한 오해와 갈등은 또 얼마나 크겠는가.

- 그러니 본문과 같은 갈등이 생길 수밖에 없다.

 

그런데 사람 사이의 갈등과 하나님과 사람의 갈등에는 결정적인 차이가 있다.

- 가치 기준 차이에 대한 무관심에서 생기는 것은 동일하다.

- 그러나 사람 사이의 갈등은 언제나 쌍방 과실이다.

- 반면에 하나님과 사람 사이의 갈등은 언제나 사람 잘못이다.

이런 차이가 왜 생기냐면,

- 하나님은 모두에게 최고의 가치는 가진 기준을 가지셨고, 그 기준을 명확히 아시며, 그것을 정확하고 쉽게 이미 설명하신다.

- 반면에 사람은 자신에게만 좋은 기준을 가졌고, 그 기준조차 정확히 알지 못하며, 아는 부분도 제대로 설명하지 못한다.

그래서 사람 사이에는 언제나 상호 합의, 상호 조정이 필요하다.

- 절대적으로 옳은 기준은 없으니까.

- 서로 조금씩 양보해야 한다.

- 옳고 그름의 문제는 없다.

- 상호 존중의 문제이다.

반면에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는 사람의 노력만 필요하다.

- 하나님은 이미 태초부터 우리를 너무 사랑하셔서, 하나님뿐만 아니라 우리에게도 최고의 가치가 무엇인지 알려주셨고, 그 길로 인도하셨기 때문이다.

[렘 6:16] 나 주가 말한다. 나는 너희에게 일렀다. 가던 길을 멈추어서 살펴보고, 옛길이 어딘지, 가장 좋은 길이 어딘지 물어 보고, 그 길로 가라고 하였다. 그러면 너희의 영혼이 평안히 쉴 곳을 찾을 것이라고 하였다. 그런데도 너희는 여전히 그 길로는 가지 않겠다고 하였다.

- 하나님은 가치 기준을 조정하실 필요가 없다.

하나님께서 해야 하실 일은 오직 가치 기준을 설명하는 것뿐이다.

- 그 부분에서조차 하나님은 완벽하셨다.

- 처음에는 십계명이라는 말씀으로, 다음으로 선지자라는 사람으로, 이후에는 예수님이라는 육신을 입은 신으로, 지금은 성령이 우리 마음에 직접 하나님의 가치 기준을 설명하셨기 때문이다.

- 점점 더 구체적이고 명확하게 설명하셔서, 지금은 언어의 장벽을 초월하여 우리 안에 계신다.

이렇게 하나님은 언제나 최선을 다하셨다.

- 그리고 앞으로도 여전히 최선을 다하실 것이다.

- 그래서 남은 것은 우리의 노력이다.

- 하나님의 가치 기준을 이해하는 것이다.

- 이해하기만 하면 그 가치의 매력이 너무 커서, 그것에 헌신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그런데 화려한 제사는 그러한 노력과 정반대이다.

하나님의 말씀에는 귀를 닫고, 사람의 가치 기준을 하나님께 강요한 형태이다.

- 나에게 정말로 가치 있는 것이 무엇인지 고민하지 않고,

- 나에게 지금 당장 필요한 것을 달라고 하나님께 아우성치는 것이다.

- 그것이 얼마나 가치 없는 것인지 알려 하지 않고 말이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필요한 것을 안 주시는 것이다.

- 필요 없으니까.

- 오히려 해악만 주니까.

- 마치 마약 중독자가 아무리 마약이 필요해도 줄 수 없는 것처럼 말이다.

- 금단 증상 때문에 소리를 지르며 자해를 해도 말이다.

마약 중독자에게 필요한 것은 금단 증상이 사라지기를 기다리는 것뿐이다.

- 몸 안에 마약이 완전히 빠져나가고, 그 상태로 안정이 될 때까지 말이다.

- 그 과정 중에는 불안함과 두려움에 자살 시도도 하기에 침대에 묶어놓기까지 한다.

- 침대에 묶여 발악하는 모습이 너무 끔찍하지만, 

- 그래서 마음 같아서는 얼른 풀어주고 마약 딱 한대만 놔주고 싶지만,

- 정말 그 사람을 사랑한다면, 발악하는 중독자의 손을 잡고 함께 고통당하며 우는 것뿐이다.

- 너무 슬픈 일이지만, 이 슬픔을 이겨내지 않으면, 사랑하는 사람을 아예 잃어버리게 된다.

- 그것을 위안 삼아 견디는 것이다.

 

하나님도 똑같다.

- 우리는 중독자이다.

- 우리는 당장 필요한 것을 달라고 발악하지만, 정말로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모른다.

그래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묶임'이다.

- 묶여서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상태가 되는 것이다.

- 당장 필요한 것을 찾아 헤매는 시도를 멈추도록 말이다.

- 금단 증상이 지나가고 해독되도록 말이다.

그것이 바로 본문이 말하는 '멸망'이다.

- 이스라엘이 바벨론에 끌려가 아무것도 못 하는 상태로 묶어두는 것이다.

- 이스라엘 속에 있는 마약을 완전히 빼버리고, 그 상태에 적응할 때까지 말이다.

- 출애굽 이후 40년 광야 생활도 같은 의미가 있다.

 

그러니 그 과정이 얼마나 고통스럽겠는가.

- 우리도 마약 중독자가 발악하듯이 발악할 것이다.

- 자신을 묶은 하나님을 죽일 듯 원망할 것이며,

- 금단 증상의 고통을 견디지 못하고 자살하려 할 것이다.

- 하지만 묶여 있어서 자살조차 할 수 없을 것이다.

- 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음에 절망할 것이다.

그런데 그 절망을 지나야 한다.

- 그래야 중독에서 벗어날 수 있다.

- 이것이 우리가 거쳐야 할 과정이다.

그 과정을 하나님은 바로 옆에서, 그리고 우리 안에서 함께 겪으실 것이다.

- 그것이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이 갖는 또 다른 의미이다.

- 예수님은 우리가 겪어야 할 고통을 십자가에서 우리와 함께 겪으셨다.

 

어떤 관점에서 보면, 예수님이 우릴 위해 하신 일은 없다.

- 마치 사랑하는 마약 중독자가 고통에 발악할 때, 우리가 그에게 할 수 있는 일이 없는 것처럼 말이다.

- 자살하지 못하도록 줄을 더 단단히 묶고, 옆에서 마음으로 응원하며, 함께 고통을 느끼며 우는 것뿐이다.

- 사랑하는 사람이 고통당하는 고통을 함께 고통스러워하는 것이 전부이다.

하지만 마약 중독자는 옆에서 함께 고통스러워하는 우리를 보며 고통을 견딘다.

- 함께 있는 것에서 힘을 얻으며, 

- 우리의 고통을 덜어주기 위해, 자신의 고통을 삼킨다.

- 나를 사랑하여 나와 함께 고통을 함께 겪고 있는 저 사람을 사랑하기 위해 금단 증상을 이겨내고 마약을 끊는다.

예수님이 하신 일도 이와 같다.

-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고통당하신 것이 내 고통을 해결하는 데 실질적으로 아무 도움이 안 된다.

- 하지만 함께 고통당하시는 예수님의 사랑 때문에 과정의 고통을 견딜 힘을 얻는다.

- 예수님을 고통에서 벗어나도록 하기 위해 고통의 과정을 견디며 기다린다.

- 그래서 세상의 마약으로부터 완전히 벗어나, 건강한 상태로 예수님과 사랑을 나눌 수 있는 그 날을 기대하며 말이다.

 

우리에게 마약은 무엇이냐?

돈, 명예, 안정, 인정이다.

- 마약 중독자가 마약을 찾듯, 그것을 위해 모든 것을 희생한다.

- 그리고 만약 그것이 없으면, 죽을 듯 두려워한다.

그런데 정말 그것 없으면 죽냐?

- 죽을 듯 두려운 것이지, 죽지 않는다.

또한, 그것이 우리에게 정말 필요한 것 맞냐?

- 그것만 있으면, 아무것도 없어도 좋냐?

- 돈, 명예, 안정, 인정을 다 얻고, 주변에 사랑하는 사람이 하나도 없어도 좋냐?

- 주위 모든 사람이 자신을 이용해먹으려고 달콤한 말로 유혹하거나 무섭게 협박한다면, 그래도 좋냐?

 

우리에게 정말 필요한 것은 '사랑'이다.

- 주변 사람들에게 사랑받는 것이고, 그 사람들을 사랑하는 것이다.

- 그것만 있으면 사실상 아무것도 필요 없다.

그런데 그 사랑을 얻을 방법을 모르는 것이 문제이다.

- 그래서 가장 쉽고 확실한 '거래'를 사용한다.

- 이스라엘이 화려한 제사를 드리면 하나님이 만족하실 것이라고 착각했던 것처럼, 우리도 돈, 명예, 안정, 인정이 있으면 사람들이 우리를 사랑할 것이라고 착각한다.

- 그래서 이스라엘이 화려한 제사에 집착했듯이, 우리도 돈, 명예, 안정, 인정에 집착한다.

- 그것이 있어야 사랑받을 수 있다고 착각하기 때문이다.

그러면 어떻게 되냐?

- 자기 꾀에 자기가 넘어가며, 믿는 도끼에 발등 칙히고, 자기 무덤을 자기가 판다.

- 돈, 명예, 안정, 인정 얻으려고 인생 전부를 쏟아붓는 대신에, 사랑하는 사람들을 전부 잃는다.

- 결국 남는 사람은 나를 이용해먹으려는 사람뿐이다.

- 마치 마약이 사람의 생명을 빼앗는 것처럼 말이다.

 

그러니 돈, 명예, 안정, 인정에 집착하면, 얼마나 불행해지겠는가.

- 그런 우리가 기도한다고 하나님께서 돈, 명예, 안정, 인정을 주시겠는가.

- 있던 것도 빼앗아가실 것이다.

- 우리를 너무 사랑하시기 때문이다.

-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것을 주시기 위해서이다.

물론 우리가 의지하던 돈, 명예, 안정, 인정을 빼앗기면, 죽도록 고통스러울 것이다.

- 마약 중독자가 마약을 빼앗길 때처럼 말이다.

- 금단 증상으로 절망감 속에서 자살을 생각할만큼 말이다.

 

그런데 하나님은 그 고통조차 가볍게 여기시지 않는다.

- 우리는 마약 중독자를 어리석게 여긴다.

- 그 나쁘고 위험한 것을 굳이 목숨 걸고 왜 할까 의아해한다.

- 중독이 되었어도, 금단 증상이 아무리 커도, 마약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사람들을 조롱한다.

- 옆에서 공감하며 손잡아주기는커녕, 벌레 보듯 피한다.

하지만 하나님은 그 고통조차 공감하시고, 우리와 함께 고통당하신다.

- 돈, 명예, 안정, 인정 중독에서 벗어날 때까지 항상 옆에 계신다.

- 우리에게 사랑한다고 끊임없이 고백하시며, 중독에서 벗어나 참 사랑을 할 그날을 소망하게 하신다.

- 그래서 십자가에서 우리와 함께 죽고 부활하신다.

 

그 결과 우리에게 가장 필요하고, 우리가 가장 원하는 그 사랑을 얻게 되니, 얼마나 행복하겠는가.

- 그것이 바로 구원이며 천국이다.

- 그것이 바로 하나님께서 만물을 창조하시고, 사람을 창조하신 이유이다.

- 그것이 인생의 본질이다.

- 그렇게 살 때만 우리는 행복할 수 있다.

그것을 얻지 못하면, 우리는 영원토록 돈, 명예, 안정, 인정에 중독되어 죽은 듯 살아갈 것이다.

 

결론 - 거짓 평안 중독에서 벗어나자.

돈, 명예, 안정, 인정이 무서운 이유는 그것이 정말로 우리를 평안하게 한다는 점이다.

- 내가 원하던 것을 얻었을 때의 성취감은 안 먹어도 배부른 만족을 준다.

- 상상만 해도 짜릿하다.

단, 문제는 일시적이다.

- 더 원할 것이고, 필요한 다른 것이 생길 것이다.

- 마치 마약을 투약했을 때처럼 말이다.

- 계속해서 더 원하게 된다.

 

그래서 거짓 평안이다.

- 순간적으로 평안을 주지만, 궁극적으로 멸망시키기 때문이다.

- 마약에 의한 만족에 젖어 들수록, 일상에서의 소소한 행복을 박탈당하고, 결국 삶을 지속할 수조차 없게 된다.

- 돈, 명예, 안정, 인정 역시 참된 나에게서 벗어나게 하고, 참된 인생의 평안에서 멀어지게 하여, 결국 영원한 죽음에 이르게 한다.

우상 숭배도 똑같다.

- 필요한 것이 있는데, 스스로 얻을 수는 없고,

- 하나님께 부탁드렸는데, 응답이 언제 올지 알 수 없으니,

- 만만한 우상을 찾아간다.

- 그런데 우상의 가치 기준을 모르니, 나와 똑같다고 가정을 하고,

- 내가 가치 있다 여기는 잡다한 것을 다 모아놓고 우상 숭배를 한다.

- 그러면 결과와 상관없이 마음이 편해진다.

- 보험을 여럿 들어 놓으면, 마음이 편해지는 것처럼 말이다.

똑같은 원리가 오늘날 예배에도 적용된다.

- 하나님이 누구신지, 성경 말씀이 어떤지 관심 없다.

- 내가 얼마나 열심히 했냐가 중요하다.

- 그래야 자판기에 동전을 넣듯, 하나님께 뭔가를 넣었으니, 내가 필요한 것이 나올 것이란 소망이 생기기 때문이다.

- 그 거짓 평안 때문에 예배에 헌신하는 것이다.

그래서 미양 교회는 예배 대신 예수님이 중심이다.

- 예배가 주는 거짓 평안을 경계하기 위해서이다.

 

똑같은 어리석음을 일상에서도 반복한다.

- 대학에 잘 가면 인생이 나아질 것이란 기대,

- 취업이 잘 되면 행복해질 것이란 기대,

- 결혼하고 아이를 가지면 만족할 것이란 기대,

- 돈이 많아지고 사람들의 인정을 받으면 평안해질 것이란 기대,

- 그것을 위한 우리의 열심은 이스라엘이 화려한 제사를 드린 열심과 똑같다.

- 모두 일상의 우상이다.

그것이 어떻게 우리에게 평안을 줄지 생각해보지도 않는다.

- 우리가 기대를 갖고 열심을 내고 있다는 것 자체에서 우리는 평안을 얻는다.

- 이스라엘이 그랬던 것처럼 말이다.

- 그래서 거짓 평안이다.

- 정작 그 열심으로 인해 우리는 점점 더 평안에서 벗어나고 있는데도 말이다.

 

그래서 하나님은 우리를 멸망시키시는 것이다.

- 우리의 기대를 실망으로 바꾸시고,

- 우리의 열심을 좌절로 바꾸신다.

- 이를 통해 이러한 마약 중독에서 우리를 건지신다.

그런 후에 우리에게 정말 필요한 것을 주신다.

- 바로 사랑이다.

- 아무것도 없어도, 하나님의 사랑으로 만족하게 하신다.

- 거지에, 불명예스럽고, 불안하며, 조롱받아도, 내가 사랑하고 사랑받는 사람이 있기에 평안하게 하신다.

그것이 참 평안이다.

- 하나님은 우리에게 그 평안을 주시기 위해 지금도 일하신다.

- 그것이 바로 실망과 좌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