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론부터 말해서, 본문이 말하고자 하는 것은,
- 교회 안에서 죄에 대한 엄격한 판결이 중요한데,
- 왜냐하면 그것이 내부 결속과 외부 확장을 동시에 이루기 때문이다.
- 반대로, 교회가 죄에 대해 방종하면, 내부 와해와 외부 단절이 일어나기 때문이다.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관계'의 관점에서 설명할 것이다.
- 즉, 판결의 기준이 '관계'라는 것이다.
- 이런 틀에서 본문을 설명할 것이다.
본문의 이야기는 너무나 충격적이다.
- 단순하게 말해서, 거짓말 한 번 했다고 죽여버린 것이다.
- 무슨 조폭도 아니고, 어떻게 이렇게 무식한 일이 교회에서 일어날 수 있는가.
- 교회 돈을 훔친 것도 아니고, 자기 소유를 팔아 헌금하면서 그 중 일부만 해놓고 전부 했다고 과장만 했을 뿐인데 이렇게까지 해야 했을까?
- 없는 말을 지어냈으면 모를까, 있는 말에 조금 덧붙인 것이 죽을만큼의 죄일까?
- 이런 일은 왜 이러난 것이며, 굳이 이런 일까지 적어 놓은 이유는 뭘까?
이야기는 너무 충격적이어서 계속 이렇게 딴지를 걸고 싶다.
- 하지만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믿는 우리로서는 어쩔 수 없이 딴지를 멈춰야 한다.
- 이 역시 하나님의 뜻으로 결론짓고, 하나님의 의도를 살펴야 한다.
- 하나님은 틀렸다고 정죄하고 싶은 마음을 진정시키고, 하나님의 뜻을 이해하지 못하는 나를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
세 가지 질문으로 본문을 해석하겠다.
① 부부는 왜 죽었는가? - 판단의 기준
② 부부는 반드시 죽어야만 하는가? - 죽음의 의미
③ 이러한 죽음은 우리에게도 일어날 수 있는가? - 죽음의 판단의 지속성
- 일단, 부부가 왜 죽었는지 알아야 죽음의 의미를 평가할 수 있다.
- 그리고 이 죽음이 당시 사람들에게 어떤 의미를 가졌는지 알아야 죽음의 가치를 이해할 수 있다.
- 끝으로 그 죽음이 현재를 살고 있는 우리에게도 적용되는지 알아야 본문이 우리에게 미치는 영향력을 알 수 있다.
- 이 세 가지 질문이 해결되면, 어느정도 본문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부부는 왜 죽었는가? - 판단의 기준
본문의 표현은 다음과 같다.
- 소유의 일부를 따로 떼어놓고 난 나머지만을 사도들에게 갖다 놓았다.(2)
- 마음이 사탄에게 홀렸다.(3)
- 성령을 속였다.(3)
- 땅 값의 일부를 몰래 떼어놓았다.(3)
- 사람을 속인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속였다.(4)
- 주님의 영을 시험하려고 했다.(9)
부부의 죄를 정리하면,
- 부부는 소유가 있었고, 그것을 전부 교회에 줄 것이라고 약속했다.
- 하지만 의도적으로 소유의 일부를 몰래 챙겼다.
- 이는 표면적으로 사도들과 교회 공동체를 속인 것이었는데, 결과적으로는 성령님과 하나님을 속이게 된 것이다.
- 게다가 하나님을 속일 수 있다고 생각한 것은 하나님 존재의 본질 중 전지함을 부정한 것이다.
- 이를 통해 부부의 무의식 속에 하나님을 부정하는 마음이 있음을 드러낸 것이다.
- 따라서 부부의 죄는 거짓말이라는 사소한 것으로 시작했지만, 실제로는 하나님을 부정하는 가장 큰 죄까지 이르게 된 것이다.
특히 죄의 삯은 사망이다.
[롬 6:23] 죄의 삯은 죽음이요, 하나님의 선물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누리는 영원한 생명입니다.
- 죄를 지었다면, 그 죄의 경중과 상관 없이 죽어야 하는 것이 마땅하다.
- 그런데 이 부부는 죄 중에서도 가장 무거운 죄를 지었다.
- 하나님을 부정한 죄를 지었다.
- 따라서 이 부부가 죽은 것은 마땅하며 합리적인 결과이다.
- 원칙이 적절하게 적용된 것이다.
- 오히려 죄를 짓고도 죽지 않고 살아 있는 것이 비합리적인 현상이다.
- 마치 조두순이 곧 출소하는 것이 이상한 것처럼, 우리가 멀쩡하게 살아있는 것은 이상한 일이다.
- 이러한 인식의 전환이 필요하다.
그렇다면 부부는 왜 이런 짓을 했을까?
- 본문은 이에 대해 아무런 정보도 주지 않는다.
- 전적으로 상상의 영역이다.
- 그래서 다양한 사람들이 다양한 상상을 한다.
가장 일반적인 이유 하나만 소개하면,
- 부부는 바나바를 비롯하여 재산을 포기하는 사람들이 얻는 명예를 얻고 싶었다.
- 그러한 구제를 한 사람들이 교회 안에서 뿐만 아니라 교회 밖에서도 칭찬받았기 때문이다.
- 왜냐하면 기독교 뿐만 아니라 유대교에서도 구제를 한 사람에게 상당한 명예가 주어졌다.
- 그런데 명예는 얻되, 재산도 어느 정도 챙기고 싶었기 때문에 이런 사단이 벌어진 것이다.
- 한 마디로, 거짓말을 통해 교회 안과 밖으로부터 모두 명예를 얻으려는 시도였다.
- 차라리 솔직하게 말하지...
부부는 반드시 죽어야만 하는가? - 죽음의 의미
두 가지로 나눠서 보면, 하나님과의 관계와 사람과의 관계로 볼 수 있다.
① 하나님과의 관계
전형적인 설명이다.
- 하나님을 속였다는 것이다.
- 더 정확하게 말하면, 하나님을 속이려고 한 것이다.
- 왜냐하면 하나님은 실제로 속지 않으시기 때문이다.
- 이는 '하나님은 모를거야' 혹은 '하나님은 속일 수 있어' 또는 '하나님은 속여도 상관 없어'라는 마음이 전제되어 있다.
- 또 이는 하나님을 수평 관계로서 나와 같은 것을 아는 동등한 존재가 아닌, 수직 관계로서 내가 아는 것조차 모르는 하등한 존재라는 마음이 전제되어 있다.
- 물론 이는 의식의 차원이 아닌 무의식의 차원에서 이뤄진다.
이런 마음은 결과적으로 관계를 파괴한다.
- 하등한 존재를 어떻게 믿겠는가, 어떻게 존중하겠는가, 어떻게 의지하겠는가.
- 하등한 존재는 결국 이용할 뿐이고, 이용 가치가 없어지면 버려진다.
② 사람과의 관계
- 먼저 이 관점이 본문의 의미를 더 잘 전달한다.
교회 공동체의 관계를 파괴했다는 것이다.
- 여러 번 말했다.
- 단 한 사람의 이기심과 거짓말만으로도 공동체 전체가 얼마나 순식간에 파괴되는지.
- 제일 단명한 설명으로 '게임 이론'의 예를 들었었다.
- 모두 정직하면 모두가 상당한 이익을 얻을 수 있는데, 단 한 사람이라도 조금 더 큰 이익을 얻기 위해 거짓말을 하면, 그 즉시 공동체 전체가 거짓말을 하기 시작하게 되고, 결국 극소수 외에 전부가 상당한 손해를 입게 된다.
- 게임 이론에서 가장 핵심적인 결론은, 거짓말로 인한 불신은 결국 공동체가 얻는 유익의 총합을 급락시킨다는 점이다.
- 즉, 한 사람이 이익을 조금 더 얻게 되는 결과 공동체 전체 이익이 폭락해버린다.
- 이것이 현실에서 부익부 빈익빈 현상이 일어나는 원인을 단순하게 설명하는 방법이다.
그만큼 공동체 안에서 거짓말은 공동체에 심각한 타격을 준다.
- 이익은 적지만 손해는 크다.
- 결과적으로 공동체는 손해만 끼치는 존재가 되고, 파괴만이 유일한 해법이 된다.
- 이것이 교회가 처한 현실이다.
게다가 본문에서 거짓말이 더 심각한 문제였던 이유는 시점 때문이다.
- 교회가 잉태된 직후였기 때문이다.
- 그래서 아직 교회의 정체성이 확립되고 공유되기 전이다.
- 그래서 교회의 순수성이 더 절실하게 확보되어야 할 시점이다.
- 왜냐하면 지금 시점에 교회가 한끗만 엇나가도, 10년, 100년, 1000년, 2000년 후의 교회는 완전히 다른 길로 가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 마치 1cm 갔을 때 1도 틀어진 것은 보이지 않지만, 그것이 1km가 지나면 완전히 다른 길이 되는 것처럼 말이다.
- 또한 마치 태아 상태에서 세포 하나에 생긴 문제는 작아 보이지만, 그 세포 하나 때문에 팔 혹은 다리 혹은 심장이 없는 아이가 태어날 수 있는 것처럼 말이다.
- 그런 아이가 태어나 장애인으로라도 살 수 있으면 다행이지만, 태어나자마자 죽을 수도 있다.
- 마치 현실에서 많은 교회가 죽어있는 것처럼 말이다.
그랬기 때문에 더 엄격했던 것이다.
- 이 사건 때문에 2000년이 지난 현재에도 교회가 파괴되지 않고 남아 있을 수 있는 것이다.
- 그래서 우리도 교회의 진실함을 지키기 위해 목숨 걸고 노력해야 하는 것이다.
이러한 죽음은 우리에게도 일어날 수 있는가? - 죽음의 판단의 지속성
다르게 말하면, 우리도 교회에서 거짓말하면 죽는가?
- 부부를 죽인 원칙은 현재에도 지속적으로 유효한가?
답은 안타깝게도 'yes'이다.
- 말했다시피, 죄의 삯은 '무조건' 사망이다.
- 죄를 지으면 처벌 받는 것은 당연하다.
- 만약 우리 사회가 죄를 처벌하지 않는다면 어떻게 될까?
- 조두순이 누구의 감시도 받지 않고 거리를 활보할 수 있다면?
- 생각하기도 싫다. 끔찍하다.
- 그 끝은 결국 동물의 왕국이 될 것이다.
마찬가지로 하나님께서 교회 안의 거짓말을 처벌하지 않으신다면?
- 역시 그런 교회는 생각하기도 싫다. 추하고 더럽다.
- 물론 이미 많은 교회가 그런 상태에 있지만 말이다.
이런 현실이 우리에게 의문을 갖게 한다.
- 교회 안에서 벌어지는 추하고 더러운 일은 왜 계속되는가?
- 하나님은 왜 처벌하지 않으시는가?
- 많은 사람들이 부부처럼 거짓말을 하는데, 왜 그들은 살아있는가?
두 가지로 설명할 수 있다.
① 하나님의 은혜 때문이다.
- 하나님께서 죽여서 없애버리셔야 하지만, 돌이켜 회개하도록 기다려주시는 것이다.
- 우리는 처벌 받지 않는 죄인을 보며, 하나님이 무능하시다며 속상해한다.
- 하지만 이는 하나님을 몰라서 그러는 것이다.
- 반대로 처벌 받지 않는 죄인을 보며, 죄인을 참고 기다리시는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을 느끼며 찬양해야 한다.
② 교회가 아니기 때문이다.
- 하나님은 세상에서 일어나는 모든 죄에 똑같이 엄격하시지 않다.
- 교회에 대해서만 더 엄격하시다.
- 왜냐하면 교회가 하나님을 드러내 보이는 유일한 대상이기 때문이다.
- 교회가 지켜져야, 사람들이 바르게 하나님을 알 수 있기 때문이다.
- 그렇기에 교회다운 교회에 더 엄격한 처벌이 일어나는 것이다.
그런데 애초부터 하나님을 드러내지 않는 교회가 있다.
- 교회가 아닌 교회가 있다.
- 그런 곳에서는 죄를 엄히 처벌하시지 않는다. 그럴 필요가 없다.
- 그래서 추하고 더러운 일이 교회에서 계속 일어난다.
- 애초부터 교회의 자격을 잃었기 때문이다.
- 마치 세면대에 먼지 하나만 있어도 바로 닦지만, 변기에 먼지 있다고 바로 닦지 않는 것처럼 말이다.
- 하지만 때가 되면 변기 물을 한 번에 내려버리는 것처럼, 그런 교회들을 쓸려내려가 사라질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 교회에서 거짓말하면 죽을까?
- 알다시피, 죽은 사람은 없다.
- 따라서 이유는 ①거짓말했던 사람이 없었거나, ②우리 교회가 교회가 아니거나, ③하나님의 은혜 때문이다.
- ①은 말도 안되고, ②는 너무 슬프고, ③은 우리가 바랄 것이 아니다.
- 단지, 거짓말이 목숨을 잃게 할 수 있다는 믿음으로, 교회 안에서 목숨 걸고 서로 정직하게 대하여, 하나님께서 우리 교회를 교회 되게 해주실 은혜를 소망하는 것 뿐이다.
- 이 메시지를 깨닫는 것이, 정말 죽냐 안죽냐를 아는 것보다 더 중요하다.
끝으로, 그렇게 교회의 교회됨이 지켜질 때에만 교회가 제 기능을 발휘할 수 있다.
첫째로, 내부 결속이다.
- 거짓말 했다는 이유로 부부가 죽었다.
- 이것이 의미하는 것은, 살아 있는 사람은 아무도 거짓말을 하지 않았다는 것을 반증한다.
- 따라서 교회 내부 사람들은 서로의 진실함을 더욱 확고하게 믿게 되었고, 그래서 서로 더 의지하게 되었고, 그래서 서로 더 헌신하게 되었다.
- 그렇게 서로가 더 필요해졌으니, 더 자주 모이게 된 것이다.
[행 5:12] 사도들의 손을 거쳐서 많은 표징과 놀라운 일이 백성 가운데서 일어났다. 그들은 모두 한 마음이 되어서, 솔로몬 행각에 모이곤 하였다.
둘째로, 외부 확장이다.
- 교회 밖 사람들은 충격을 받았을 것이다.
- 첫째로, 거짓말 때문에 사람이 죽었다는 것에 놀랐을 것이고, 둘째로, 교회 사람들이 아무도 거짓말을 하지 않았다는 것에 놀랐을 것이다.
따라서 반응도 두 가지였을 것이다.
- 첫째로, 거짓말만 해도 죽여버리는 교회가 너무 두려워 감히 들어갈 생각을 못했을 것이다.
- 둘째로, 그렇게 진실한 공동체에 대한 동경 역시 생겼을 것이다.
- 그래서 사람들은 교회 모임에 끼어들지는 못하면서 칭찬은 했던 것이다.
[행 5:13] 다른 사람들은 누구 하나, 감히 그들의 모임에 끼여들지 못하였다. 그러나 백성은 그들을 칭찬하였다.
그렇다면 마지막으로 우리 교회는 우리에게 그리고 다른 사람에게 어떻게 생각될까?
- 우리는 서로가 완전히 진실하다고 믿는가?
- 그리고 다른 사람들은 우리 교회를 두려워하며 동경할까?
그렇게 될 때에야 비로소 우리 교회가 정말 교회가 된 순간일 것이다.
- 그렇게 되도록 노력하는 것이 우리 교회가 에너지를 쏟아야 할 바른 방향이다.
- 서로 진실함으로 사랑하여 한 마음 되는 것이다.
- 단순히 전도하겠다고 여기 저기 쑤시고 다니며 에너지를 낭비하는 것이 교회의 역할이 아니다.
내용 정리
본문은 세 부분으로 나뉜다.
① 1-6절: 아나니아의 죽음 - 하나님을 속인 것이다.
② 7-11절: 삽비라의 죽음 - 주님의 영을 시험하려 하였다.
③ 12-16절: 교회 내부 결속과 외부 확장 - 많은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 이야기 자체는 설명할 필요 없이 단순하다.
- 부부가 거짓말을 했고, 그래서 죽었고, 그것을 보고 사람들이 놀랐는데, 그 결과 내부 결속과 외부 확장이 일어났다.
이야기 전후 맥락 역시 본문의 메시지를 더욱 한정한다.
- 전-문맥은 베드로가 죽음의 위협 속에서도 끝까지 복음을 전했고, 그러자 교회 공동체의 공동 소유가 일어났다.
[행 4:18~20] 그런 다음에, 그들은 그 두 사람을 불러서, 절대로 예수의 이름으로 말하지도 말고 가르치지도 말라고 명령하였다. [19] 그 때에 베드로와 요한은 대답하였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것보다, 당신들의 말을 듣는 것이, 하나님 보시기에 옳은 일인가를 판단해 보십시오. [20] 우리는 보고 들은 것을 말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 후-문맥은 또 다시 사도들은 투옥되어 전도 금지 명령을 받지만, 계속해서 죽음을 감수하고 복음을 전한다.
[행 5:27~29] 그들이 사도들을 데려다가 공의회 앞에 세우니, 대제사장이 신문하였다. [28] "우리가 그대들에게 그 이름으로 가르치지 말라고 엄중히 명령하였소. 그런데도 그대들은 그대들의 가르침을 온 예루살렘에 퍼뜨렸소. 그대들은 그 사람의 피에 대한 책임을 우리에게 씌우려 하고 있소." [29] 베드로와 사도들이 대답하였다. "사람에게 복종하는 것보다, 하나님께 복종하는 것이 마땅합니다.”
이렇게 본문은 긍정적인 두 사건 사이에 끼인 부정적인 사건이다.
- 샌드위치 구조로 본다면, 긍정적인 사건을 강조하기 위해 양념처럼 부정적인 사건을 삽입한 것이다.
- 즉, 작은 이익을 챙기기 위해 하나님까지 부정하다가 죽은 부부 이야기를 통해 죽음까지 감수하며 예수님을 전하는 사도들의 믿음을 부각하는 것이다.
- 죽음을 매개로 한 사람은 하나님을 부정하고, 한 사람은 예수님을 전하고 있다.
- 따라서 본문은 단독의 이야기로서의 의미도 있지만, 그보다 사도들의 헌신을 부각하는 것에 더 큰 의미를 갖는다.
이러한 큰 맥락 속에서 본문을 보자.
1-6절: 아나니아의 죽음 - 하나님을 속인 것이다.
세부적인 내용 중에 특별히 다룰 것이 없다. 간단하게 보겠다.
먼저 남편과 아내가 공범이었음이 강조된다.
[행 5:1~2] 그런데 아나니아라는 사람이 그의 아내 삽비라와 함께 소유를 팔아서, [2] 그 값의 얼마를 따로 떼어놓았는데, 그의 아내도 이것을 알고 있었다. 그는 떼어놓고 난 나머지를 가져다가, 사도들의 발 앞에 놓았다.
- 이를 통해 돈을 가져간 남편의 죽음 뿐만 아니라 아내의 죽음도 설명이 된다.
베드로의 정죄에서 특이한 부분은, 땅의 소유권이 부부에게 있음을 강조한 점이다.
[행 5:4] 그 땅은 팔리기 전에도 그대의 것이 아니었소? 또 팔린 뒤에도 그대 마음대로 할 수 있었던 것이 아니었소? 그런데 어찌하여 이런 일을 할 마음을 먹었소? 그대는 사람을 속인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속인 것이오."
- 이 부분에서 부부의 죄가 좀 더 명확해진다.
- 즉, 부부의 죄는 소유의 일부만 냈기 때문이 아니다.
- 소유의 전부를 내든, 반만 내든, 하나도 안내고 다 갖든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다.
- 왜냐하면 그 소유는 원래부터 부부의 것이기 때문이다.
- 부부 마음대로 사용하는 것은 아무 문제가 되지 않는다.
따라서 부부의 죄는 돈이 전부냐 일부냐의 문제가 아니라, '거짓말'에 있다.
- 일부를 내고 전부를 냈다고 '거짓말' 했기 때문이다.
- 일부만 내고 일부 냈다고 말했으면 아무런 문제가 없었을텐데 말이다.
게다가 베드로는 이 거짓말을 '하나님'을 향한 것으로 봤다.
- 물론 베드로도 부부가 처음부터 하나님을 속일 의도로 거짓말을 했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 세상에 그런 멍청한 사람은 없으니까.
- 특히 교회에 속해있는 유대인 중에서는 더 없다.
- 베드로도 부부가 속이려는 대상이 사람, 즉 교회 공동체라는 것을 알았을 것이다.
- 하지만 거짓말하는 마음 속 '무의식'에 하나님을 속이려는 의도가 숨겨져 있다는 것을 지적하는 것이다.
- 이렇게 하나님은 우리의 의도, 의식 뿐만 아니라, 무의식, 즉 숨겨진 의도까지도 심판의 대상으로 삼고 계신다.
이러한 심판은 정말 무서운 것이다.
- 왜냐하면 우리도 언제나 '무의식' 속에서 거짓말을 끊임없이 하고 있기 때문이다.
- 우리의 의도는 큰 욕심 없이 적당히 평범한 삶을 사는 것이라고 의식 속에서 생각한다.
- 이러한 의도를 가지고 있다고 죄의식을 갖는 사람은 없다.
- 하지만 그 의도 이면에는, 우리가 의식하기 힘들지만, 하나님을 내 인생에서 배제하고 싶은 마음이 숨겨져 있다.
- 우리가 원하는 '평범함'이란, 하나님 없이 마음대로 사는 대부분의 불신자를 목표로 하기 때문이다.
- 그게 아니라면, 적어도 우리는 예수님이나 바울의 삶을 '평범함'이라고 말하지는 않는다.
- 쉽게 말해서, 우리의 '선한 의도' 속에는 언제나 '악한 본심'이 숨겨져 있다는 것이다.
- 바리새인이 그랬고, 회개 이전의 바울도 그랬으며, 우리가 매일매일 그러고 있는 것처럼 말이다.
- 따라서 우리 역시 언제나 죽음의 위기 속에 있기 때문에 무서운 것이다.
게다가 아마도 이 부부는 죽는 순간까지 자신이 왜 죽는지 몰랐을 것이다.
- 자신들은 단 한 번도 하나님을 속이려는 생각을 해본적조차 없었기 때문이다.
- 베드로가 하나님을 속였다며 정죄할 때에도 전혀 이해하지 못했을 것이다.
마찬가지로 같은 일이 우리에게도 벌어지고 있다.
- 성경은 우리에게 예수님을 죽인 죄인이라고 정죄하는데, 우리는 여전히 이해하지 못한다.
- 나는 예수님을 죽인 적이 없는 것은 당연하고, 미워한 적도 없으며, 예수님에 대해 깊이 생각해 본 적조차 없다고 항변하고 있다.
- 마치 삽비라가 죽는 순간까지 자신의 무죄를 주장하는 것처럼 말이다.
[행 5:8] 베드로가 그 여자에게 물었다. "그대들이 판 땅값이 이것뿐이오? 어디 말해 보시오." 그 여자가 대답하였다. "예, 그것뿐입니다."
만약 우리도 그렇게 죽는다면, 지옥에 갈 것은 분명하다.
- 하나님을 부정한 것은 물론이고, 마지막으로 주어진 회개의 기회조차 잡지 못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 아내가 그랬던 것처럼 말이다.
따라서 천국에 가기 위해서는 우리가 하나님을 속이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 하나님을 속이고, 예수님을 죽였으며, 그 악행을 지금도 반복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 그럴 때에만 올바른 회개를 할 수 있고, 올바른 믿음을 가질 수 있고,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를 가질 수 있기 때문이다.
딱 하나만 더 말하면, 이러한 원리는 사람과의 관계에서도 동일하다.
- 상대방을 향해 아무리 '선한 의도'를 갖고 있다고 하더라도, 그 이면에는 '무의식적으로' 이기적인 마음이 항상 깔려 있다.
- 우리는 '선한 의도'만 의식하고, 숨겨진 '악한 의도'는 의식하지 못한다.
- 그런데 문제는 내가 의식하지 못한 의도를 상대방은 훨씬 쉽게 느낀다는 것이다.
- 왜냐하면 내 눈의 들보는 보지 못하면서 남의 눈에 티끌은 쉽게 보이기 때문이다.
- 물론 상대방은 굳이 나의 악한 의도를 굳이 들추려하지 않는다.
- 젠틀하게 넘어간다. 그리고 속으로 욕한다.
- 그래서 겉으로는 좋은 관계가 유지되지만, 속으로는 둘 중의 한 사람의 마음은 상처 받고 있을 것이다.
- 만약 관계 속에서 내가 상처 받지 않고 만족스러웠다면, 상대방이 상처 받았을 것이다.
- 왜냐하면 신앙 없이는 모두가 만족하는 관계란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사람과 올바른 관계를 맺기 위해서도 죄의 자각과 회개는 필수적이다.
- 상대방을 배려하려는 의도 속에도 이기심이 있다는 것을 인정해야만 상대방에게 진짜 배려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 그럴 때에만 사랑하는 사람에게 사랑을 전할 수 있는 것이다.
- 따라서 자신의 죄를 자각하지 못하는 사람은 누구와도 관계를 맺을 수 없다.
- 죄를 자각하고, 회개하여, 용서 받은 사람끼리만 온전한 관계를 경험할 수 있다.
7-11절: 삽비라의 죽음 - 주님의 영을 시험하려 하였다.
이 단락의 목적은 남편 뿐만 아니라 아내에게도 죽을만한 죄가 있음을 밝히는 것이다.
- 남편은 부족한 돈을 가지고 오는 거짓된 '행동'으로 자신의 죄를 드러냈다.
- 반면 아내는 그 상황에 없었기 때문에 아직 죄가 불분명하다.
그러나 대화 중의 거짓된 '말'을 통해 죄가 있음이 드러난다.
[행 5:8] 베드로가 그 여자에게 물었다. "그대들이 판 땅값이 이것뿐이오? 어디 말해 보시오." 그 여자가 대답하였다. "예, 그것뿐입니다."
- 아내는 '행동'에 동참하진 않았지만, '말'을 통해 동참했다.
그래서 남편의 경우와 다르게 아내는 대화 내용이 나온 것이다.
- 아내의 죄를 확정하기 위해서 말이다.
이렇게 아내의 말을 통해 아내의 죄가 확정되고, 죽음의 타당성이 밝혀진 것이다.
12-16절: 교회 내부 결속과 외부 확장 - 많은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멀쩡한 사람이 죽었으니, 얼마나 난리가 났겠는가.
- 어떤 소문보다 더 빨리 퍼졌을 것이다.
- 일종의 '노이즈 마케팅'과 같다.
- 그로 인해 교회에 대한 다양한 소문, 오해, 억측이 난무했지만, 다행히 진실이 드러났던 것이다.
- 그만큼 교회 공동체가 진실하며, 교회 공동체를 다스리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크다는 것이 알려졌을 것이다.
그랬기 때문에 교회 내부 결속이 일어났다.
[행 5:12] 사도들의 손을 거쳐서 많은 표징과 놀라운 일이 백성 가운데서 일어났다. 그들은 모두 한 마음이 되어서, 솔로몬 행각에 모이곤 하였다.
- 교회 공동체는 이런 두 가지 생각을 했을 것이다.
- 첫째로, 옆에 있는 사람들이 죽지 않았다는 것은 정말 진실하다는 뜻이구나. 정말 의지할 수 있겠구나. 앞으로 더욱 내 모든 마음을 터놓아야겠다.
- 둘째로, 공동체의 진실함을 위해 하나님께서 정말 애쓰시는구나. 만약 나를 속이는 사람이 있어도 하나님께서 막아주시겠구나. 그러니 더욱 더 걱정없이 옆 사람들을 믿어야겠다.
이러니 공동체 관계가 좋지 않을 수 있겠는가.
- 그러니 매일 모이고 싶지 않겠는가.
- 그렇게 매일 모여 서로 마음을 나누는데, 한 마음이 되지 않을 수 있겠는가.
그러니 자연스럽게 교회 외부로도 확장이 일어났다.
- 맨날 자기네들까지 모여서 쏙닥거리면서, 굶는 사람도 없어지고, 아픈 사람도 없어지면서, 함께 행복해하는데, 주변 사람들이 안궁금할 수가 없다.
- 하지만 또 막상 공동체 안으로 들어가려니 걱정도 컸을 것이다.
- 재산은 재산대로 털리고, 거짓말 한 번 잘못해서 죽으면 어쩌나 하는 생각도 했을 것이다.
- 이렇게 교회는 호감과 신비주의와 경외심이 뒤섞이면서 엄청난 영향력을 발휘했을 것이다.
[행 5:13] 다른 사람들은 누구 하나, 감히 그들의 모임에 끼여들지 못하였다. 그러나 백성은 그들을 칭찬하였다.
그런 사람 중에 절박하거나 애가 타는 사람이 있었다.
- 당장 교회로 달려가서 구걸하지 않으면 굶어 죽기 일보 직전인 사람,
- 당장 치료 받지 못하면 죽기 직전인 사람,
- 귀신에 시달려서 한시도 가만히 있지 못하는 사람,
- 그리고 특히 예수님에 대한 갈급함이 너무 커서 어쩔줄 모르는 사람 등 많은 사람들이 교회로 몰려들었다.
- 그래서 그들은 모두 고침을 받았다.
[행 5:15-16] 심지어는 병든 사람들을 거리로 메고 나가서, 침상이나 깔자리에 눕혀 놓고, 베드로가 지나갈 때에, 그 그림자라도 그들 가운데 누구에게 덮이기를 바랐다. [16] 또 예루살렘 근방의 여러 동네에 사는 많은 사람들이 병든 사람들과 악한 귀신에게 시달리는 사람들을 데리고 모여들었는데, 그들은 모두 고침을 받았다.
이러니 사람들은 교회에 열광할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 그러나 교회의 인기가 많아질수록 동시에 박해도 더욱 거세졌다.
- 그러한 박해가 다시 다음 본문에 시작된다.
주제
진실함만이 하나님과 그리고 사람과 관계를 회복시킨다.
본문은 거짓말을 보여준다.
- 사람이 죽어서 실려나가니까 사건이 심각해보이지만, 사건의 본질은 단순하고 일상적인 거짓말이다.
- 없는 일을 지어낸 것도 아니고, 있는 일에 양념을 살짝 추가한 정도이다.
- 우리가 하루에도 수도 없이 저지르는 일이다.
- 부부가 그랬던 것처럼 의식하지 못하는 것까지 포함하면, 더 많을 것이다.
그런데 본문은 이러한 일상적인 거짓말을 심각한 죄라고 경고한다.
- 이로 인해 우리가 죽을 수도 있고, 우리가 죽지 않으면 교회가 죽을 수 있으며, 교회가 죽으면 하나님도 죽을 수 있기 때문이다.
- 따라서 하나님을 지키기 위해서, 그리고 교회를 지키기 위해서, 게다가 나를 살리기 위해서 우리가 반드시 진실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그렇다면 진실함은 무엇일까?
- 몇 가지 조건이 있다.
첫째로, 내 마음을 있는 그대로 말하는 것이다.
- 이것은 이해하기 쉽다. 당연하니까.
둘째로, 그런데 내 마음을 정확하게 말하려면, 먼저 정확하게 알아야 한다.
- 여기서부터 어려워진다.
- 우리는 내가 정말 어떤 마음을 가졌는지 제대로 알기 어렵기 때문이다.
- 우리에게는 언제나 드러나고 인식되는 마음 이면에 감춰져서 의식되기 어려운 마음이 또 있기 때문이다.
- 본문에서 부부도 자신에게 하나님을 부정하는 마음이 있는지 알지 못했다.
게다가 특히 부끄럽고 감추고 싶은 마음은 더 알기 어렵다.
- 내보여도 자랑스럽고 칭찬받는 마음은 쉽게 인식되고, 정확하게 있는 그대로 말할 수 있다.
- 그러나 부끄러운 마음은 인식하기도 어렵고, 인식해도 그대로 말하기 어렵다.
- 그것이 바로 우리가 말하는 '죄'이다.
자신의 마음에 대한 부끄럼움을 처음 느꼈을 때, 그래서 그 마음을 의식적으로 숨겼을 때는 적어도 부끄러운 마음을 인식할 수 있다.
- 하지만 시간이 오래 지나 부끄러움을 숨기는 행위가 자동화 습관화되어 무의식적으로 일어나게 되면, 그때는 원래부터 부끄러운 마음이 없었던 것처럼 생각하게 된다.
- 그러면 부끄러운 마음을 있는 그대로 말하려고 해도 할 수 없게 된다.
- 부끄러운 마음이 의식에서 사라지기 때문이다.
- 자신에게는 죄가 없는 것처럼 느끼게 된다.
셋째로, 그렇기 때문에 진실되려면, 먼저 회개를 해야 한다.
- 자신의 죄를 인정하고, 예수님을 믿음으로 하나님께 고백하고, 용서를 받아야 한다.
- 그렇게 용서를 받았을 때에만, 자신의 부끄러움, 즉 죄를 인식할 수 있고,
- 그렇게 인식할 때에만, 자신의 마음을 있는 그대로 말할 수 있다.
이 세 가지를 본문이 빗대어 설명하면,
- 첫째로, 부부는 마음을 있는 그대로 말하지 않았다. 거짓말 했다.
- 둘째로, 왜냐하면 자신들에게 어떤 마음이 있는지 몰랐기 때문이다.
- 그들에게는 명예욕이 있었고, 헌금은 욕망을 이루기 위한 수단에 불과했는데, 그들은 자신들이 '선한 의도'로 헌금을 한다고 착각했다.
- 셋째로, 그들이 자신들에게 명예욕이 있다는 것을 모른 이유는, 자신이 죄인이라는 것을 인정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 그러니 자신의 명예욕을 계속해서 숨겼고, 그래서 습관호, 무의식화 되었고, 그래서 무의식적으로 거짓말을 하게 된 것이다.
- 거짓말을 하면서도 자신이 거짓말을 하는지조차 모르는 지경에 이른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회개하지 않으면 절대로 진실해질 수 없는 것이다.
- 또 진실해질 수 없으면, 누구와도 바른 관계를 맺을 수 없게 되는 것이다.
- 그래서 공동체와도 하나님과도 관계 맺을 수 없게 되는 것이다.
- 그럼 결국 생전에는 아무와도 관계 맺지 못하고 혼자 쓸쓸히 늙어 죽게 되고,
- 죽어서도 하나님과 관계 맺지 못하고 영원토록 외로이 혼자 보내야 한다.
그러나 회개하면 진실하게 관계 맺을 수 있게 된다.
- 그래서 생전에는 회개한 사람들과 함께 자신을 전부 내주어도 아깝지 않은 교제를 하게 되고,
- 죽으면 하나님과 그리고 구원 받은 사람들과 사랑을 나누며 영원토록 충만할 수 있게 된다.
결론
결국 또 '죄'이다.
- 내가 하나님을 부정하고 예수님을 죽였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다.
- 무의식으로 켜켜이 쌓여있는 우리 마음 안의 가장 부끄러운 것을 의식화하는 것이다.
- 그냥 무의식도 의식하기 어려운데, 가장 마주하기 싫은 무의식을 의식하려니 얼마나 어려운 일이겠는가.
- 과연 될까 싶다.
그러나 꼭 해야 된다.
- 안하면 인생의 모든 것을 잃는다.
- 지옥 가는 것은 먼 나중의 일이니까 뒤로 미루더라도,
- 직접적으로 가장 슬픈 것은, 사랑하는 배우자와 사랑하는 자녀와 관계 맺지 못한다는 것이다.
- 가장 사랑하는 사람을 사랑할 수 없다는 것이다.
- 마치 다리가 있어도 걷지 못하고, 손이 있어도 들지 못하는 장애인처럼 말이다.
- 이것만을 위해서라도 죄를 반드시 알아야 한다.
확실한 방법은 없다.
- 이미 여러 번 말했다.
- 최선을 다하는 수 밖에.
- 좋은 방법이라 생각되는 것은 뭐든지 해보는 수 밖에.
그래도 뭐라도 한 마디 던지자면,
- 우리 무의식 안에는 상상할 수도 없는, 감히 생각지도 못했던 추하고 부끄러운 마음이 있다는 것을 논리적으로라도 머리로라도 결론 짓자.
- 그리고 그런 결론 속에서 오늘 내가 했던 선택들을 되돌아보자.
그래서 그 선택 이면에 있는 나의 무의식을 상상, 추리해보자.
- 무의식을 상상하는 과정은 보이는 내 마음을 되돌아보는 것과 완전히 다른 과정이다.
- 완전히 가려져서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 영역을 보는 것이기 때문에, 100% 상상의 과정이다.
- 남 얘기 하듯이 나의 무의식을 상상하는 것이다.
특히 부끄럼고 추한 방향으로 상상하는 것이다.
- 분명히 '선한 의도'로 했던 내 선택과 같은 선택을 다른 사람이 부끄럽고 추한 의도로 했다면 어떤 것이 있을까 추리해보는 것이다.
- 그리고 그런 부끄러움과 추함이 나에게 있는지 되돌아보는 것이다.
이렇게 해서라도 우리의 죄를 더 깊이 깨닫게 되기를 바란다.
- 물론 이는 어둠 속에서 바늘 찾는 격이지만 말이다.
성령님께서 마음의 등불 되어 주시기를, 그래서 등불 속에서 바위 찾기처럼 쉬워지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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