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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베소서

에베소서(01) 1:1-14 찬양의 이유 - 현실 아닌 사실

에베소서 첫 시간이니, 개관이 필요하다.

- 아무 사전 지식 없이 그냥 성경을 보면, 막막하고 난해하다.

- 본문만으로 이해가 잘 안되다보니, 상상력을 동원하여 해석한다.

- 그 결과 주관과 선입관으로 얼룩진 오역을 하게 된다.

- 성경을 읽는 이유는 알지 못했던 하나님을 새롭게 알고, 잘못 알고 있던 하나님에 대해서 교정하는 것이다.

- 그런데 성경을 오역하게 되면, 자신의 생각에 갇혀 자기 생각만 강화하게 된다.

이렇게 성경을 읽으면, 기분이 굉장히 좋아진다. 

- 왜냐하면 자기 확신이 더 커지니까.

- 그러나 아무 것도 얻지 못한다.

- 오히려 오해와 편견만 강화된다.

그래서 개관이 필요하다.

- 내 편견대로만 해석하지 않도록, 가이드라인이 필요하다.

- 우리의 상상력이 제한되어야 한다.

하지만 개관이 지나치면 위험하다.

- 개관을 제시한 '사람'의 편견에 제한되기 때문이다.

- 성경을 통해 성경 자체를 알아야 하는데, 그 '사람'의 생각만 이해하게 된다.

- 그 결과 성경의 권위를 '사람'이 독점하게 되고, 성경보다 사람이 더 큰 권위를 갖게 된다.

- 그렇게 된 공동체는 필연적으로 하나님으로부터 끊어질 수 밖에 없다.

이것이 대부분의 교회가 처한 현실이다.

- 대부분의 교회는 목사의 권위에 매여, 하나님으로부터 끊어져 있다.

따라서 개관은 신중하고 적절하게 제시되어야 한다.

- 모자르면 '나'에 갇힌 신앙이 되고, 넘치면 '남'에 갇힌 신앙이 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 나는 넘치기보다 모자르게 할 것이다.

- '남'에 갇히기보다 '나'에 갇히도록 할 것이다.

- 가능하면 최소한의 가이드라인만 제시할 것이다.

이유는 다음과 같다.

먼저, 현재 대부분의 '사람'이 넘치기를 선택하기 때문이다.

- 그래서 교회를 '사람'의 권위에 의지하도록 만들기 때문이다.

- 그래서 스스로 상상하고 고민하지 않고 수동적으로 만들기 때문이다.

- 이러한 현실을 바로 잡기 위해서 반대로 모자르는 것을 선택한 것이다.

다음으로, '남에 갇히는 것보다 '나'에 갇히는 것이 더 낫기 때문이다.

- '나'에 갇히는 것이 좋다는 것이 아니라, '나'에 갇히는 것이 비교적 벗어나기 쉽다는 뜻이다.

- '남'에 갇히면, 스스로 생각하지 않고, 고민하지 않게 되고, 성찰하지 않고, 안주하게 된다.

- 공동체 전체가 한 '사람'에게 종속되어, 서로에 대한 비판도 없어진다.

- 그래서 심각한 문제 속에서도 아무런 문제를 느낄 수 없게 된다.

반면에 '나'에 갇히면, 제한적이지만, 능동적으로 생각하고 성찰하게 된다.

- 그래서 공동체 전체가 서로 '나'가 옳다고 싸우게 된다.

-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서로의 생각이 공유된다.

물론 공동체의 갈등은 대부분 해결되지 못하고 분열 될 것이다.

- 그래서 대부분의 교회는 갈등의 소지를 없애기 위해 '남'에게 갇히게 하는 것이다.

하지만 그런 과정을 통해서 자신의 편견(죄)을 깨닫고 공동체가 하나 되는 성령님의 역사가 일어날 가능성이 있다.

- 적어도 공동체 안에 문제가 있다는 것을 깨닫고 기도하게 된다.

- 그리고 기도하는만큼 성령님께서 해결해주실 가능성도 높아진다.

     - 이 가능성 때문에 모자르는 것이 더 낫다.

조금만 검색해봐도, 에베소 자역에 대한 정보가 많다.

- 그리고 그 정보에 근거해서 많은 사람들이 성경을 해석한다.

그러나 이러한 해석은 괴장히 위험하다.

- 에베소 지역의 정보는 학자들의 권위에 근거한 것이다.

- 따라서 그렇게 성경을 해석하는 것은, 하나님보다 학자의 권위를 높이는 것이다.

- 그래서 역사 정보는 성경 해석의 가이드라인이 아니라, 양념 정도로만 사용되어야 한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떤 개관을 할 것이냐?

- 최대한 편견을 주지 않는, 누구나 쉽게 공감할 수 있는, 보편적이고 일반적인 정보만 제시할 것이다.

- 에베소서 뿐만 아니라, 모든 성경 그리고 현재 우리 삶을 이해하고 해석하는데도조차 도움이 되는 가이드라인을 제시할 것이다.

- 그래서 함께 스스로 생각할 수 있도록 할 것이다.

가이드라인은 다음과 같다.

- 에베소서는 세 가지 목적을 위해 기록되었다.

- 이는 세 가지 측면에서의 문제가 있고, 세 가지 상황에 기반한다는 뜻이다.

첫째는, 세상과의 관계이다.

- 세상은 사탄이 권세 잡은 배척 대상이다.

- 동시에 내 몸과 같이 사랑해야 할 수용 대상이다.

- 따라서 그리스도인은 한 측면에서 세상과의 관계를 끊어야 한다.

- 반면에 다른 측면에서 세상과 사랑의 관계를 맺어야 한다.

- 하지만 에베소 교회는 세상과 관계를 맺어서 세상의 악영향을 받았다.

- 그리고 맺어야 할 관계를 맺지 않아서 하나님께 불순종했다.

특히 에베소 지역의 중요한 특징이 있다.

- 큰 항구 도시였다는 것과 아데미 여신의 신전이 있었다는 것이다.

- 경제, 종교, 정치, 문화, 사상, 유행 등이 항상 함께 움직인다는 것을 고려할 때, 돈과 사람이 많이 모이는 대도시였을 것이다.

그리고 이는 결국 음행으로까지 연결되었다.

- 왜냐하면 돈과 사람이 모이면 반드시 음행도 모여들기 때문이다.

- 그래서 성도들도 이런 것에 영향을 많이 받았던 것이다.

- 그래서 에베소서는 윤리적, 도덕적 권면이 강조된다.

이는 지금도 똑같다.

- 돈이 모이는 곳에 사람도 모이고, 그곳이 정치, 문화, 사상, 유행의 중심지가 된다.

- 그러면 결국 음행과 타락의 중심지가 된다.

- 우리도 그 중심지에 있으면, 영향을 받고 있다.

- 우리의 의도는 돈을 벌고, 문화를 누리며, 유행을 따라가는 것 뿐이지만, 결과적으로 의도치 않게 음행과 타락에도 빠지게 된다.

물론 신앙이 정말 깊어서, 음행의 중심지에서도 신앙을 지킬 수 있는 사람이 있다.

- 하지만 우리는 아니다. 연약하다. 우리는 쉽게 영향을 받는다.

- 따라서 에베소서의 윤리적, 도덕적 권면이 세상의 중심지에서 세상의 영향을 받고 있는 우리에게도 절실하게 필요한 메시지이다.

그래서 에베소서는 이 두 가지에 대해 경고한다.

- 세상의 권세 잡은 통치자를 배척하라고 경고한다.

[엡 2:1-6] 여러분도 전에는 허물과 죄로 죽었던 사람들입니다. [2] 그 때에 여러분은 허물과 죄 가운데서, 이 세상의 풍조를 따라 살고, 공중의 권세를 잡은 통치자, 곧 지금 불순종의 자식들 가운데서 작용하는 영을 따라 살았습니다. …… [4] 그러나 하나님은 자비가 넘치는 분이셔서, 우리를 사랑하신 그 크신 사랑으로 말미암아 [5] 범죄로 죽은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려 주셨습니다. 여러분은 은혜로 구원을 얻었습니다. [6]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를 그분과 함께 살리시고, 하늘에 함께 앉게 하셨습니다.

- 또한 세상을 사랑하여 세상에 복음을 전하라고 권면한다.

[엡 3:8-10] 하나님께서 모든 성도 가운데서 지극히 작은 자보다 더 작은 나에게 이 은혜를 주셔서, 그리스도의 헤아릴 수 없는 부요함을 이방 사람들에게 전하게 하시고, [9] 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 안에 영원 전부터 감추어져 있는 비밀의 계획이 무엇인지를 [모두에게] 밝히게 하셨습니다. [10] 그것은 이제 교회를 통하여 하늘에 있는 통치자들과 권세자들에게 하나님의 갖가지 지혜를 알리시려는 것입니다.

둘째는, 교회 공동체 안에서의 관계이다.

- 공동체에 문제가 있을 수 밖에 없다는 것은 말할 필요도 없다. 

- 이미 충분히 경험했다.

- 나는 더욱 강조해서, 공동체에 문제가 없다면, 그것은 공동체의 본질을 잃은 것이라고 말했다.

특히 에베소 교회에는 부자와 가난한 자, 이방인과 유대인 등 상극의 사람들이 함께 있었다.

- 교회가 얼마나 시끄러웠을지 뻔하다.

- 오히려 비슷한 사람끼리 모여 아무 문제가 없는 교회가 본질을 잃은 교회이다.

하지만 바른 교회이기에 하나 되려는 노력도 동시에 있었을 것이다.

- 그렇게 할 수 있었던 이유는 그리스도께서 다음과 같이 행하셨기 때문이다.

[엡 2:14-16] 그리스도는 우리의 평화이십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유대 사람과 이방 사람이 양쪽으로 갈라져 있는 것을 하나로 만드신 분이십니다. 그분은 유대 사람과 이방 사람 사이를 가르는 담을 자기 몸으로 허무셔서, 원수 된 것을 없애시고, [15] 여러 가지 조문으로 된 계명의 율법을 폐하셨습니다. 그분은 이 둘을 자기 안에서 하나의 새 사람으로 만들어서 평화를 이루시고, [16] 원수 된 것을 십자가로 소멸하시고 이 둘을 한 몸으로 만드셔서, 하나님과 화해시키셨습니다.

- 이를 근거로, 바울은 공동체가 하나 되기를 권면한다.

셋째는, 나 자신과의 관계이다.

- 자신과의 관계가 깨져서 생각하는대로, 원하는대로, 믿는대로 살지 못하는 사람도 많았다.

- 우리의 일상에서 매일 보는 장면이다.

이유는 두 가지이다.

- 첫째로, 진리를 바르게 알지 못하기 때문이고, 둘째로, 진리를 알지만 따르기 싫기 때문이다.

- 그래서 모르는 것을 알아야 하고, 아는 것을 행하려는 노력도 필요한 것이다.

그래서 바울은 이렇게 말한다.

- 모르는 것을 알려준다.

[엡 1:17-19]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이신 영광의 아버지께서 지혜와 계시의 영을 여러분에게 주셔서, 하나님을 알게 하시고, [18] [여러분의] 마음의 눈을 밝혀 주셔서, 하나님의 부르심에 속한 소망이 무엇이며, 성도들에게 베푸시는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상속이 얼마나 풍성한지를, 여러분이 알게 되기를 바랍니다. [19] 또한 믿는 사람들인 우리에게 강한 힘으로 활동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얼마나 엄청나게 큰지를, 여러분이 알기 바랍니다.

- 그리고 바르게 살라고 권면한다.

[엡 4:17] 그러므로 나는 주님 안에서 간곡히 권고합니다. 이제부터 여러분은 이방 사람들이 허망한 생각으로 살아가는 것과 같이 살아가지 마십시오.

이 세 가지 문제는 에베소서 뿐만 아니라 다른 모든 성경 그리고 우리의 신앙에도 중요하다.

- 사실상 신앙에서 겪는 모든 문제가 이 세 가지 안에 있다.

- 세상과 교회 공동체와 나와 바른 관계를 맺을 때, 하나님과도 바른 관계를 맺을 수 있다.

- 그리고 하나님과 바른 관계를 맺을 때, 세상과 교회와 나와 바른 관계를 맺을 수 있다.

이것이 신앙이고, 더 나아가 창조의 목적이다.

- 이것을 위해서 태초부터 하나님께서 천지 만물을 창조하신 것이고, 모든 것이 관계를 맺고 하나 되도록 예정하신 것이다.

[엡 1:10] 하나님의 계획은, 때가 차면, 하늘과 땅에 있는 모든 것을 그리스도 안에서 그분을 머리로 하여 통일시키는 것입니다.

그 중심에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이 있고, 그것을 통해 사람들을 죄로부터 구원하신 것이다.

[엡 1:7] 우리는 이 아들 안에서 하나님의 풍성한 은혜를 따라 그의 피로 구속 곧 죄 용서를 받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착하게 살도록 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을 찬양하도록 하기 위한 것이다.

[엡 1:6] 그래서 하나님이 하나님의 사랑하시는 아들 안에서 우리에게 거저 주신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은혜를 찬미하게 하셨습니다.

[엡 1:12] 그것은 그리스도께 맨 먼저 소망을 둔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의 영광을 찬미하는 사람이 되게 하시려는 것이었습니다.

[엡 1:14] 이 성령은, 하나님의 소유인 우리가 완전히 구원받을 때까지 우리의 상속의 담보이시며,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의 영광을 찬미하게 하십니다.

이는 하나님이 영광을 독점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영광을 사람들과 공유하기 위한 것이다.

[엡 2:6]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를 그분과 함께 살리시고, 하늘에 함께 앉게 하셨습니다.

- 하나님의 목적은 만물이 똑같이 영광 받는 것이다.

에베소서는 바울의 다른 서신서와 달리 기록 목적이 분명하지 않은 유일한 편지이다.

- 문제되고 있는 중심 이슈가 불분명하다.

- 그래서 사람들마다 자기만의 논리로 에베소 교회의 상황을 다르게 규정한다.

- 그 결과 사람마다 중심 메시지를 다르게 해석한다.

- 그래서 사람마다 각기 다른 구절에 초점을 두고 해석한다.

따라서 차라리 그렇게 하기 보다, 가이드라인을 보다 넓고 보편적으로 잡는 것이 더 낫다.

- 그렇게 최소한의 가이드라인만 가지고 성경을 볼 때, 에베소서 자체의 고유 메시지에 한 걸음 더 가까이 갈 수 있다.

- 그런 관점에서 에베소서를 차분히 해석해보자.

마지막으로, 성경 해석은 언제나 본문 초반에는 어렵다가 끝으로 갈수록 조금씩 쉬워진다.

- 본문 초반에는 해석의 선택지는 많은 반면, 선택의 근거가 되는 정보는 적다.

- 그러나 끝으로 갈수록 선택지는 적어지고, 선택의 근거는 많아진다.

- 그래서 해석이 명확해진다.

지금은 초반이라 해석이 어려울 수 밖에 없다.

- 차분히 정보를 쌓아가다보면, 에베소서가 끝날 때에는 본문이 말하는 메세지에 이미 가까이 가 있는 우리를 발견하게 될 것이다.


내용 정리

본문은 크게 두 부분으로 나뉜다.

① 1-2절: 인사

② 3-14절: 서론 -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 아버지께 드리는 찬양

- 인사 단락은 바울의 편지 뿐만 아니라 이 당시 모든 편지에 들어가는 필수 구절이다.

- 발신자, 수신자, 축복 메시지가 들어간다.

- 그리고나서 본격적으로 편지가 시작하기 전에, 하나님께 찬양을 한다.

찬양 단락은 다음과 같이 나뉜다.

① 3절: 하나님에 대한 찬양 선포와 찬양 이유 - 복 주심

② 4-6절: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복 주시는 과정 - 택하심, 예정하심

③ 7-10절: 우리가 하나님께 복 받은 과정 - 죄 용서, 앎

④ 11-12절: 우리가 하나님께 복 받은 목적 - 상속자, 하나님의 영광 찬미

⑤ 13-14절: 여러분의 상황 - 성령님의 인치심

- 한 문장으로 요약하면, ②택하시고 예정하신 하나님께서 ③죄 용서와 알게 하심을 통해 ④우리를 상속자 되게 하셔서 하나님의 영광을 찬미하도록 하신 것과 같이, ⑤여러분도 성령으로 상속자가 되어 하나님의 영광을 찬미하도록 하심을 ①찬양하는 것이다.

1-2절: 인사

인사 구절은 로마 시대의 편지 대부분에서 발견되는 정형화된 틀이다.

- 바울의 편지도 같은 틀을 갖고 있다.

그런데 바울은 자신을 소개할 때, 편지의 상황을 반영한다.

- 예를 들어, 로마서는 자기 소개가 여섯 절이나 된다.

- 이유는, 한 번도 방문하지 못한 로마 교회에게 자신을 자세히 소개할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 또한, 데살로니가 전후서는 자신을 소개하지 않는다.

- 이유는, 자신을 설명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너무 잘 알아서 말이다.

그렇다면 에베소서에서의 특징은?

- '하나님의 뜻으로'라는 문구다.

- 이와 같이 소개하는 다른 편지는 4개가 더 있다.(고린도 전후서, 골로새서, 디모데후서)

- 13개의 바울의 편지 중 5개로 가장 많은 자기 소개 문구이다.

- 따라서 특징이 없는 것이 특징이다.

- 에베소 교회는 특별히 소개를 할 필요도, 하지 않을 필요도 없었던 것이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 다양한 주장 중에 기억에 남는 것은, 에베소서는 에베소 교회를 정해놓고 쓴 것이 아니라, 에베소 지역을 중심으로 소아시아 지역 전체 교회가 돌려보라고 쓴 것이라고 주장한다.

- 그래서 특징이 불분명하다는 것이다.

- 이것을 다양한 성경 사본을 통해 주장한다.

- 하지만 이 역시 여러 의견 중 하나일 뿐이다.

- 이런 불분명함이 에베소서 해석의 가장 큰 어려움이다.

나머지 수신자 소개, 축복 메시지는 아무런 특징이 없다.

3절: 하나님에 대한 찬양 선포와 찬양 이유 - 복 주심

편지가 찬양으로 시작하는 것은 드믄 케이스이다.

- 찬양으로 시작하는 편지는 전체 서신서 중에 총 3개이다.

- 에베소서, 고린도후서, 베드로전서이다.

- 고린도후서는 알 수 없는 심각한 문제로 고린도 교회와 바울이 절교의 위기에 있었는데, 그것이 해결된 것에 감사하는 편지이다.

- 그래서 문제를 해결하신 하나님께 찬양을 드리며 시작한다.

- 베드로전서는 네로 황제의 기독교 대박해 직전에 쓰여진 것이다.

- 죽음 앞에서 의기소침해 있는 성도들에게 용기를 불어넣기 위해, 베드로는 장엄한 찬양으로 시작한다.

- 부활의 소망을 믿고, 구원해주실 하나님을 끝까지 찬양하라는 것이다.

- 이렇게 찬양으로 시작하는 나름의 이유가 있다.

그런데 에베소서는 이것이 불분명하다.

- 특별한 위기도, 감사할 것도 없다.

- 이것이 너무 궁금해서 많이 찾아봤는데, 단 하나도 찾지 못했다.

- 대부분은, '바울이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것이다.'라는 의미 없는 말만 되풀이 한다.

- 찬양으로 시작하는 이유를 알아야, 본문을 바르게 해석할 수 있을텐데 말이다.

- 아쉽지만, 에베소서를 읽어가며, 우리가 함께 찾아보도록 하자.

이렇게 찬양하는 이유는 하나님께서 주신 복 때문이다.

- 그리고 그 복이 무엇인지 설명하는 것이 4절부터 시작된다.

복을 구체적으로 설명하기 전에, 큰 틀을 제시한다.

- 그것은, '그리스도 안에서', '하늘에 속한', '온갖 신령한' 복이다.

- 복이 무엇인지 아직 알지 못한다.

- 하지만 분명한 것은,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복을 주시는 과정에 예수(그리스도), 하나님(하늘), 성령님(신령한)이 함께 일하신다는 것이다.

우리는 복이 무엇인지 다른 성경을 통해서 이미 배웠다.

- 참 복은 삼위일체 관계 안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 세 분이 따로 또 같이 일하심으로, 우리를 그 관계 안으로 끌어들이시는 것이다.

- 그것을 에베소서는 어떻게 설명하고 있는지 본문을 통해 확인해보자.

먼저 대략적으로 보면, 크게 세 가지로 설명한다.

- 4-6절에서는 복이 창세 이전부터 하나님에 의해 예정되었다는 것을 강조한다.

- 7-10절에서는 복으로 인해 우리가 죄 용서를 받게 되었음을 강조한다.

- 11-12절에서는 죄 용서의 결과 상속자, 곧 하나님과의 친밀한 관계를 맺게 되었음을 강조한다.

정리하면, 

- 하나님께서 주시는 복은 창세 이전부터 예정되어있을만큼 강력한 권위를 갖는다.

- 그래서 어떤 권세도, 특히 아데미 여신도 어찌할 수 없는 것이다.

- 그런데 그 복으로 인해 우리는 죄 용서를 받았다.

- 그래서 하늘과 땅에 있는 것들이 하나 되었다.

- 그 결과 부자도 가난한 자, 유대인과 이방인의 차이도 극복할 수 있게 된 것이다.

-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의 상속자가 되었다.

- 단순한 죄 용서를 넘어, 만물의 연합을 통해, 결국 하나님과의 관계 회복에까지 이르게 된 것이다.

- 이것이 에베소서를 통해 말하고자 하는 복이다.

4-6절: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복 주시는 과정 - 택하심, 예정하심

내용 이전에 본문의 구조를 보면,

- 3-14절은 한 문장이다.

- 그런데 분석을 하고자, 의미와 문법을 고려해서 단락을 구분지은 것이다.

- 특히 7절과 11절은 다른 구절들이 주어가 '하나님'인 것과 달리 '우리'이기 때문에 단락의 구분이 두드러진다.

- 그리고 13절은 처음으로 '여러분'이 나오기 때문에 또 구분된다.

- 이렇게 구분할 때 의미도 명확해진다.

4-6절의 연결 관계를 보면,

- 총 네 부분으로 구분된다.

- 그 중 첫 부분에만 동사 '택하여 주셨다(choose)'가 나오고, 둘째 부분은 to-부정사 구문, 셋째 부분은 동명사 구문, 넷째 부분은 전치사 구문이다.

- 따라서 구조적으로, 첫 부분이 중심 메시지를 갖고, 나머지 부분은 보조 역할을 한다.

그렇기 때문에 가장 강조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창세 전에 택하셨다는 점이다.

- 그만큼 하나님께서 주신 복이 강력하다는 것이다.

- 그래서 그 복을 주시는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이다.

그런데 '창세 전의 택하심'이 에베소 교회에 왜 중요했을까?

- 에베소 교회가 너무나 강력한 우상을 눈 앞에 두고 있었기 때문이다.

- 모든 일이 다 우상에 의해서 결정되는 것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 우상을 숭배해야만 정상적으로 살아갈 수 있을 것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어쩌면 이는 사실이었다.

- 우상을 숭배해야 돈을 벌 수 있고, 그래야 권력을 얻을 수 있으며, 새로운 문화와 유행을 경험할 수 있는 곳도 우상 숭배하는 곳이었을 것이다.

- 그리스 로마 신화나 점성술은 단순히 유치한 우상 숭배가 아니었다.

- 정치, 경제, 문화, 사상의 중심이었다.

- 이렇게 당시의 우상 숭배는 삶의 전부였다.

이런 고대인들이 어리석어 보이지만, 우리도 다르지 않다.

- 우상이 돈으로 모습을 바꿨을 뿐이다.

- 돈이 정치, 경제, 문화, 사상의 중심이다.

- 세상 만물이 돈에 의해 결정된다.

- 돈은 우리 삶의 전부이다. 

- 돈이면 뭐든지 할 수 있다.

- 만약 돈을 모르는 고대인이나 미래인이 우리를 본다면, 한심하게 여겼을 것이다.

- 단지 종이 쪼가리 모으려고 인생을 소진하는 사람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이런 에베소 교회와 우리에게 바울은 하나님의 복이 얼마나 강력한지 선포한다.

- 로마의 신들이 생기기 전, 하늘의 해와 달, 별조차도 생기기 전에 이미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복 주시기로 결정하셨다는 것이다.

- 그러니 눈 앞에 보이는 것에 두려워하지 말고, 하나님이 주시는 복 믿으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창세 전에 결정하신 것이 뭐냐?

- 우리를 거룩하고 흠이 없게 만드신다는 것이다.

- 즉, 우상 숭배가 판치는 세상 속에서도 하나님만 믿고 살도록 결정하셨다는 뜻이다.

- 그러니 우상 숭배 하지 말라는 것이다.

그렇게 만드실 방법은 뭐냐?

- 하나님의 자녀 삼는 것이다.

- 이는 11절에서 더 구체적으로, '상속자'라고 표현한다.

- 상속자는 아버지의 모든 것을 받는 아들이다.

- 즉, 하나님께서 모든 권세와 능력을 주셔서, 굳이 우상 숭배 하지 않고도 살 수 있도록 복 주신다는 것이다.

- 단순히 신앙 생활 잘하게 된다는 것이 아니라, 우상과 돈에 매이지 않고 나답게 살게 된다는 현실적인 메시지이다.

마지막으로 하나님은 왜 이런 일을 하시냐?

- 우리에게 찬양 받는 것이다.

- 여기서 '찬양'을 수직적인 관계에서 신하가 왕에 의미 없이 쏟아내는 미사여구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 '찬양'은 부부 관계에서 '여보, 오늘 수고했어요. 정말 고마워요. 사랑해요.'라고 말하거나, 부모 자식 관계에서 '아빠, 오늘 정말 고마웠어요. 아빠가 최고에요. 사랑해요.'와 같이 친밀함, 진정성, 존중, 사랑의 복합적인 감정이 응축된 것이다.

- 하나님은 우리와 이런 관계를 맺으시려고 창세 전부터 계획하셔서 창조하신 것이다.

- 물론 사람의 현실은 우상과 돈 때문에 하나님과의 관계가 어긋나고 있지만 말이다.

하나만 더 이야기하면, 그리스도의 역할이다.

- 이 모든 과정에 그리스도가 언급된다.

- 모든 주권은 하나님께 있지만, 모든 일은 실질적으로 하나님이 아니라 그리스도께서 하시는 것이다.

- 예정도, 창조도, 자녀 삼는 것도, 찬양하게 하는 것도 모두 예수님께서 하신다.

- 이는 이번 본문 전체에서 계속 반복된다.

7-10절: 우리가 하나님께 복 받은 과정 - 죄 용서, 앎

이전 단락에서 하나님이 중심이었다면, 이번 단락은 '우리'가 중심이다.

- 그래서 주어가 '우리'로 시작한다.

- 하나님께서 주신 복이 우리에게 어떻게 나타났는지를 설명한다.

이 단락도 네 부분으로 구분된다.

- 첫째와 둘째 부분은 관계 대명사절, 셋째는 동명사 구문, 넷째는 전치사 구문이다.

- 그래서 일반 동사가 사용된 7, 8절이 중요하고, 나머지는 보조 역할을 한다.

우리가 받은 복은 십자가 죽음을 통한 죄 용서이다.

[엡 1:7] 우리는 이 아들 안에서 하나님의 풍성한 은혜를 따라 그의 피로 구속 곧 죄 용서를 받게 되었습니다.

- 복을 죄 용서로 표현한 이유는 가장 보편적이고 납득 가능한 설명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바울은 죄 용서의 의미를 규정한다.

[엡 1:8] 하나님은 우리에게 모든 지혜와 총명을 넘치게 주셔서,

- 지혜(wisdom)와 총명(understanding)을 넘치게 받는 것이다.

- 즉, 죄 용서는 단순히 착하게 사는 표면적인 의미를 넘어, 새로운 것을 깨달아 생각과 가치관이 바뀌는 본질적인 의미를 갖는다.

그렇다면 무엇을 깨닫는 것인가?

[엡 1:9] 그리스도 안에서 미리 세우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뜻을 따라 하나님의 신비한 뜻을 우리에게 알려 주셨습니다.

- 하나님의 신비한 뜻이다.

- 하나님의 뜻을 알 때, 생각이 바뀌어, 죄 용서에 이르게 되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하나님의 신비한 뜻이 뭐냐?

[엡 1:10] 하나님의 계획은, 때가 차면, 하늘과 땅에 있는 모든 것을 그리스도 안에서 그분을 머리로 하여 통일시키는 것입니다.

- 하늘과 땅의 모든 것이 그리스도 안에서 통일되는 것이다.

- 그것이 무엇인지 아직 자세히 밝혀지진 않았지만, 우리는 잘 알고 있다.

- 삼위일체 관계 속으로 우리 사람을 비롯하여 세상 만물이 들어가는 것이다.

- 이 하나님의 뜻을 알 때, 그래서 관계가 세상 만물의 본질임을 깨달을 때, 그래서 언제나 거래로만 관계 맺었던 자신의 죄를 깨달을 때, 그 때에야 비로소 죄 용서가 일어나는 것이다.

- 그것이 하나님께서 세상을 창조하신 목적이며, 예수님의 십자가를 통해 우리의 죄를 용서하신 이유이다.

11-12절: 우리가 하나님께 복 받은 목적 - 상속자, 하나님의 영광 찬미

이렇게 죄 용서를 통해 하나님께서 궁극적으로 이루시고자 하는 목적이 무엇인가?

- 우리가 상속자가 되는 것이다.

우리는 '상속자'하면 곧바로 '상속물' 혹은 '유산'이 떠오른다.

- 이는 전형적으로 거래 관계의 틀에서 하는 생각이다.

- 상속하는 부모를 사랑의 대상이 아닌 이용의 대상, 즉 돈으로 보는 것이다.

- 대표적인 예가 탕자이다.

여기서 말하는 '상속자'는 부모가 모든 것을 자식에게 물려 줄 수 있을만큼 친밀한 '관계'를 뜻한다.

- 단순히 재산이 부모로부터 자식에게 전해진는 행위가 아니라, 부모의 전부를 공유할만큼 자식을 사랑하는 부모 그리고 부모로부터 그러한 사랑을 받기까지 순종한 자식의 관계 전체를 의미한다.

- 하나님께서는 이것을 복이라고 부르신다.

그런데 이 복이 얼마나 강력한가?

- 이 복 앞에서는 세상 그 어떤 것도 영향을 줄 수 없을만큼 강력하다.

- 어떤 우상도 영향을 줄 수 없으며, 사람의 선택조차도 하나님의 복 주심을 방해할 수 없다.

- 왜냐하면 하나님의 복은, '모든 것을 자기가 뜻하시는 대로 행하시는 하나님께서 예정하신' 것이기 때문이다. 

[엡 1:11] 이것은 모든 것을 자기의 원하시는 뜻대로 행하시는 분의 계획에 따라 미리 정해진 일입니다

하나님의 예정하심이 왜 중요하냐?

- 선택 받았다는 것에 우월감을 느끼고, 방종하면서도 죄책감 느끼지 않으려는 것이 아니다.

- 이를 전문 용어로, '선민 사상'이라고 한다.

정말로 예정하심이 필요한 사람은, 예정하심을 믿지 않고는 숨 쉬는 것조차 불가능할만큼 강력한 현실적인 장벽 앞에 있는 사람이다.

- 그런 상황에서 하나님만을 믿고자 하는 사람이다.

- 아무리 주위를 둘러봐도 현실적인 소망을 전혀 찾아볼 수 없는 사람에게 위로하고 믿음을 독려하기 위해서 예정론이 필요한 것이다.

- 모든 것이 하나님의 예정하심 안에 있으며,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셔서 구원하실 하나님의 뜻은 반드시 이뤄질 것이란 사실만이 현실의 어려움을 인내하게 하기 때문이다.

- 반대로 말하면, 창세 전부터 계획된 하나님의 뜻을 깨닫기 위해서는 숨조차 쉴 수 없는 현실의 장벽에 무릎 꿇을 때 뿐이다.

결국 이것을 깨달을 때, 우리는 하나님을 찬양할 수 밖에 없다.

13-14절: 여러분의 상황 - 성령님의 인치심

여기까지 바울은 하나님의 복을 설명했다.

- 그런데 그 복이 자신 뿐만 아니라 여러분, 즉 에베소 교회에도 동일하게 있음을 말한다.

- 따라서 하나님의 택하심, 죄 용서, 하나님의 신비한 뜻을 깨달음, 상속자 됨, 찬양하게 됨이 에베소 교회에게도 모두 주어진 것이다.

- 하나님의 주권 아래서 예수님이 행하신 것이다.

그런데 그것을 바울은 '성령의 인치심'으로 표현한다.

- 그러니까 하나님 아래에서 예수님께서 행하신 모든 복을 현재 에베소 교회에 실제적으로 주시는 분은 성령님이다.

- 이는 마치 인치심, 즉 도장을 찍어서 인증하듯, 성령님께서 복을 확실하게 주시겠다는 뜻이다.

그래서 그 성령이 상속의 담보가 되는 것이다.

- 하나님께서 에베소 교회를 상속자로 삼아 주시고, 하나님의 모든 권세를 상속물로 주신다는 것을 성령님께서 보증하시기 때문이다.

- 이렇게 에베소 교회는 성령님을 통해 하나님과의 관계가 보장된 것이다.

- 우상의 강력한 영향력에 두려워하며, 과연 하나님께서 자신들을 우상으로부터 지켜주실 수 있을까 걱정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성령의 담보는 큰 위로와 용기를 주었을 것이다.

그래서 용기를 갖고 담다하게 하나님을 찬양하도록 하는 것이 하나님의 최종 목적이다.

- 물론 하나님을 찬양하면, 경제적, 정치적, 사회적, 문화적으로 배척당하고 소외될 것이지만 말이다. 

- 생존 자체도 불투명해질 것임에도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복 믿고, 성령님의 담보 믿고, 예수 그리스도 의지하며 살라고 바울은 말하고 있는 것이다.


주제

찬양의 이유 - 현실 아닌 사실

우리는 왜, 언제 찬양하는가?

- 기뻐서 찬양한다.

- 바라던 일이 이뤄졌을 때 찬양한다.

그렇다면 신앙 때문에 고통스럽고, 신앙 때문에 바라던 것을 잃었다면, 찬양할 수 있을까?

- 찬양의 이유가 현실과 현실에서 느끼는 감정이 되면, 언제나 찬양할 수 없다.

- 현실과 감정은 계속해서 바뀌기 때문이다.

따라서 찬양의 이유는 바꾸지 않는 것이어야 한다.

- 사실에 근거해야 한다.

본문에서 바울은 그 사실을 제시한다.

- 그것은, 창세 전에 완성된 것으로서, 창조 이후 한 번도 바뀌지 않은 것이며, 지금도 여전히 유효한 것이다.

- 그것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상속자 삼아, 함께 하나님의 권세를 공유하며, 자신과 관계 맺고자 하신다는 것이다.

- 이것에 근거해서 찬양해야, 우리는 언제나 찬양할 수 있다.

에베소 교회의 현실이 그랬던 것처럼, 우리의 현실도 녹록하지 않다.

- 돈의 위력 앞에 매번 무너진다.

- 하나님보다 돈의 영향력이 훨씬 큰 현실에서 살고 있다.

- 하나님이 아니라 돈이 우리의 생명을 담보하고 있다.

- 우리 인생의 모든 희노애락이 돈에 달려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 에베소 교회의 현실과 정확하게 같다.

이러한 현실은 우리에게 하나님의 위력을 잊게 만든다.

- 하나님을 비루하고 형편 없는 무능한 존재로 전락시킨다.

- 하나님과의 관계를 헌신짝처럼 내던져 버리게 한다.

- 이것이 현실에 기반한 찬양이 위험한 이유이다.

그래서 바울은 사실을 재확인시켜주는 것이다.

- 그래야만 비참한 현실 속에서도 찬양할 수 있기 때문이다.

- 그래야만 하나님과의 관계가 유지될 수 있기 때문이다.

- 그래야만 사람답게, 나답게 살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찬양에서 감정을 배제하자는 것이 아니다.

- 감정은 나쁜 것이고, 이성과 깨달음만이 중요하다는 것이 아니다.

- 감정을 현실에 기반하지 말고, 사실에 기반하자는 것이다.

- 왜냐하면 현실은 사실을 왜곡하고 거짓을 부각하기 때문이다.

아마도 이것 때문에 바울은 에베소서 시작부터 장엄한 찬양을 하는 것이다.

- 우상 때문에 움츠려 있는 사람들에게 위로와 격려를 주기 위해서 말이다.


결론

우리도 함께 찬양하자.

- 단순히 노래 부르자는 것이 아니다.

- 노래 이면에 있는 하나님께서 복 주실 사실을 기억하자는 것이다.

그리고 우상 숭배 하지 말자.

- 돈 숭배 하지 말자.

- 우상 숭배 했던 고대인들을 비웃지만, 돈이 우상으로 바뀌었을 뿐 다른 모든 것은 똑같다.

돈보다 관계 의지하며 살자.

- 적당히 좋은 관계 유지하며 살자는 것이 아니다.

- 정말로 상대방의 깊은 부분까지 알고자 하며, 자신의 깊은 부분까지 드러내고자 하자는 것이다.

- 물론 그렇게 살면, 제 명대로 살지 못하겠지만 말이다.

하지만 그것만이 창세 전부터 예정된 하나님의 복을 받는 유일한 길이다.

- 단순히 죽은 후에 천국 간다는 것이 아니다.

- 죽음 이후 뿐만 아니라 이 세상에 사는 삶에서도 나답게, 사람답게 살며, 삶의 가치를 느낄 수 있는 유일한 길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