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예수님께서 죽기 직전에 하시는 마지막 기도의 마지막이다.
- 예수님은 처음에 예수님 자신을 중심으로, 태초부터 종말까지 일어나는 하나님 ➔ 예수님 ➔ 사람 ➔ 다시 하나님의 '순환 관계'가 원활하게 돌아갈 수 있도록 기도하셨다.
- 다음에는 제자들 중심으로, '세상 안에서 세상과 구분'되어야 할 제자들을 하나님께서 지켜달라고 기도하셨다. 그래서 제자들이 '하나 되게' 해달라고 하셨다.
- 마지막은 미래의 제자들과 그 밖의 세상 전체를 중심으로 기도하시며, 제자들의 하나됨이라는 '내부 결속'을 통해 세상에 하나님의 사랑을 전하는 '외연 확장'이 되게 해달라고 기도하신다.
내부 결속과 외연 확장은 사람이라면 모두 가지는 고민이다.
- 내부 결속이란, 개인이나 집단이 내부를 향해 에너지를 쓰는 것으로, 정체성을 구체화하여 내부를 하나도 통합하는 것에 목적을 둔다.
- 반대로 외연 확장이란, 외부를 향해 에너지를 쓰는 것으로, 정체성을 외부의 더 많은 사람에게 영향을 주어 더 많은 사람을 포용하려는 것에 목적을 둔다.
보통 정치에서 많이 쓰이는 용어이기 때문에 집단에서만 필요한 것 같지만, 개인에게도 중요하다.
- 개인도 내가 누구인지 고민하고 내가 무엇을 잘하는지 고민하는 노력(내부 결속)과 나와 맞지 않는 사람과 어울리고 내가 싫어하는 일에 도전해보는 노력(외연 확장) 모두 필요하다.
- 마찬가지로 집단도 목적과 방향을 선명하게 하고, 그것을 집단 내부에 전하여 하나로 통합하려는 노력과 정체성을 더 많은 사람에게 전하여 더 많은 사람을 설득하려는 노력이 모두 필요하다.
그런데 모든 것이 그렇듯, 내부 결속과 외연 확장에도 명암이 분명하게 나뉜다.
- 내부 결속에 집중하면, 정체성이 분명해지고 내부 역동성이 커진다는 이점이 있지만, 동시에 외부와의 단절된다는 단점이 있다.
- 반면에 외연 확장에 집중하면, 더 넓은 포용력과 영향력이 생긴다는 이점이 있지만, 정체성을 잃고 외부의 입김에 쉽게 휩슬린다는 단점이 있다.
그래서 언제나 둘을 같이 가져가야 하는데, 문제는 그것이 말처럼 쉽지 않다는 것이다.
- 왜냐하면 둘은 완전히 상반된 것이기 때문이다.
- 자원이 한정된 상황에서, 내부에 에너지를 많이 쓰면 외부를 소홀하기 마련이고, 외부에 집중하면 내부가 흔들리기 마련이며, 내부와 외부를 똑같이 집중하면 정체성과 포용력을 모두 잃어버릴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 정치에서도 지지층 결속과 중도층 유입 정책을 번갈아가며 한다.
- 결국 이 두 가지를 잘한 사람이 선거에서 이긴다.
마찬가지로 우리 교회의 목표 역시 이 두 가지이다.
- 세상과 분명히 구분된 그리스도인만의 정체성을 명확히 지키며 동시에, 세상과 분리되고 괴리되지 않고 세상을 이해시키고 설득하여 포용하는 것이다.
- 그런데 개인적으로는 선택과 집중이 필요하기 때문에, 전자를 선택하고 후자를 포기하는 결정을 내린 것이다.
- 후자가 중요하지 않기 때문이 아니라, 제한된 힘을 집중하기 위해서이다.
- 그래서 결국 전자와 후자 모두를 취하기 위해서이다.
그렇다면 왜 전자를 선택했냐? 이유는 두 가지이다.
첫째로, 시대 상황 때문이다. 너도 나도 전도에 뛰어들기 때문이다.
- 많은 사람들이 전도와 선교만이 교회의 본질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 그래서 교회의 정체성이 흔들리고 있기 때문이다.
- 교회가 뭔지, 복음이 뭔지, 예수님이 누구신지 알기는 커녕, 고민조차 해보지 않고 수십 년을 신앙 생활 하고 있는 사람이 태반이기 때문이다.
- 그러면서 신우회 한다, 봉사한다, 장로 권사 집사라는 겉치레로 천국 갈 것으로 착각하는 사람이 태반이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전도 보다는 정체성을 강조해야만, 지금 시대의 사람들에게 마음의 울림을 줄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 왜냐하면 교회 안팎의 모든 사람들이 가식적인 전도에 신물이 났기 때문이다.
둘째로, 성경이 말하는 선후 관계 때문이다.
- 분명히 성경도 두 가지를 모두 중요하다고 말한다.
- 예수님을 믿는 것도 중요하고, 예수님을 전하는 것도 중요하다.
- 이를 얼마나 강조하냐면, 예수님이 남기신 마지막 계명도 이 두 가지이다.
- 하나님 사랑, 이웃 사랑은 내부 결속과 외연 확장의 다른 표현이다.
- 하나님 사랑을 중심으로 내부를 결속하고, 그 사랑으로 이웃을 사랑하여 외연을 확장하라는 예수님의 명령이다.
그런데 계명에서도 그리고 이번 본문에서도 이 둘 간에 선후 관계가 있다.
- 여기서 선후 관계는, 논리적인 선후 관계가 아니라 시간적인 선후 관계이다.
- 이 둘은 닭과 달걀 문제처럼 논리적으로 서로 얽혀있는 관계이다.
- 내부 결속이 잘 되야 외연 확장이 가능하고, 외연 확장이 잘 될 때 내부 결속도 일어난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시작 지점이 있고, 그것은 내부 결속이다.
- 시간적으로 내부 결속이 먼저 일어나야 한다.
이를 설명하기 위해, 태초의 하나님의 경우를 생각해보겠다.
- 하나님도 내부 결속과 외연 확장을 하신다.
- 삼위일체 관계를 맺는 것이 내부 결속이고, 관계 확장을 위해 창조하시는 행위가 외연 확장이다.
- 이전에도 말했는데, 하나님께도 내부 결속과 외연 확장 모두 필수적인 것이다. 둘 중에 하나만 빠져도 하나님의 지위를 잃는다.
- 삼위일체 내부 결속을 하지 않는 것도 하나님은 사랑이라는 정체성을 잃는 것이고, 창조하지 않으시는 것도 하나님이라 불릴 수 있는 기회를 버리는 것이다.
- 그렇기 때문에 둘 다 똑같이 중요하다.
그런데 하나님은 내부 결속과 외연 확장 중에 무엇을 먼저 하셨냐?
- 창조 행위 이전에 삼위일체 관계가 먼저 있었다.
- 삼위일체의 완전한 상호 관계가 먼저 있고, 그 상호 관계를 확장하기 위해 창조, 구원, 종말을 하시고, 종말을 통해 사람까지 포함된 완벽한 상호 관계가 완성된다.
이는 우리 교회에도 동일하게 적용된다.
- 먼저 예수님을 믿고, 하나님의 사랑을 깨달아, 교회 안에서부터 하나님의 사랑으로 서로 사랑해야 한다. 완벽한 내부 결속이 먼저 일어나야 한다.
- 사도행전에서도 교회 내부의 공동 소유, 공동 생활이 일어났다.
- 그러자 어떤 일이 일어났냐면?
[행 2:47] 그래서 그들은 모든 사람에게서 호감을 샀다. 주께서는 구원받는 사람을 날마다 더하여 주셨다.
- 교회가 특별한 관계를 맺고, 공동 소유를 하며, 서로 사랑하자, 모든 사람에게서 호감을 샀다.
- 이것이 우리 교회가 따라야 할 외연 확장의 이상적인 모델이다.
교회가 앞으로 이렇게 되도록 하시는 것이 예수님의 마지막 기도이다.
- 이런 관점에서 17장을 크게 보면, 처음에 있는 예수님을 위한 기도는 태초부터 종말까지 전체 역사 안에서 일어나는 내부 결속을 위한 기도이다.
- 다음으로 제자들을 위한 기도는 열두 제자들의 초대 교회 안에서 일어나는 내부 결속을 위한 기도이다.
- 마지막으로 미래의 제자들을 위한 이번 기도는 초대 교회 이후로 모든 교회 안에서 일어나는 내부 결속과 그로 인한 외연 확장을 위한 기도인 것이다.
- 이렇게 17장의 기도에서도, 내부 결속과 외연 확장을 모두 강조하지만, 내부 결속이 시간적으로 먼저 일어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내용 정리
본문은 크게 두 부분으로 나뉜다.
① 20-23절: 미래 제자들을 위한 기도 - 내보 결속을 통한 외연 확장
② 24-26절: 기도 마무리 - 마지막 간구와 다짐
- 예수님 자신, 제자들에 이어 미래의 제자들 그리고 세상을 위해 기도하신 후, 전체 기도를 마무리 하신다.
본문의 전개를 자세히 보면 다음과 같다.
예수님은 먼저 기도 대상을 한정하신다.(20)
- 현재의 제자들에 이어서 미래의 제자들을 위해 기도하신다
- 미래의 제자들은 현재의 제자들의 외연 확장을 통해 생긴다.
다음으로 기도 제목을 밝히신다.(21)
- 먼저 내부 결속이다.
그런데 내부 결속에도 두 단계가 있다.
- 먼저 삼위일체 하나님의 상호 관계가 교회 안에서 이뤄지는 것이다. 교회가 하나 되어야 한다.
[17:21] 아버지,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시고, 내가 아버지 안에 있는 것과 같이, 그들도 하나가 되어서
- 그 다음에 교회가 삼위일체 하나님의 상호 관계 안에 흡수되는 것이다.
[17:21] 우리 안에 있게 하여 주십시오.
- 그래서 교회 공동체 각 사람이 전부 삼위일체 하나님 안에서 하나가 되는 것이다.
- 이렇게 교회 안의 사람과 사람의 관계가 하나 되어 구분할 수 없게 된 이후, 교회와 하나님의 관계가 하나 되어 구분할 수 없게 되는 것, 그래서 교회가 하나님 그 자체가 되는 것, 다른 표현으로 예수님을 머리로 둔 몸 된 공동체가 되는 것이 내부 결속의 핵심이다.
[고전 12:27] 여러분은 그리스도의 몸이요, 한 사람 한 사람은 그 지체입니다.
[빌 1:18] 그는 그의 몸인 교회의 머리이십니다.
- 예수님은 현재 제자들을 시작으로 지속적으로 내부 결속이 일어나기를 기도하신 것이다.
- 이것만이 이 세상에서 복음이 지속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기 때문이다.
다음은 외연 확장이다.(21)
- 그리스도를 머리로 둔 몸된 교회에는 내부 결속으로 인해 교회의 정체성인 예수님이 점점 더 선명하게 드러난다.
- 그래서 세상은 교회를 통해 예수님을 볼 수 밖에 없다. 반드시 그래야 한다. 그것이 교회이다.
- 그래서 교회를 '예수님의 몸'이라고 부르는 것이다.
- 교회만이 예수님을 몸(body), 즉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모습으로 구현하기(embody) 때문이다.
- 그렇기 때문에 공동체가 없는 신앙은 기독교 신앙이 아닌 것이다.
이렇게 세상에 예수님이 구현될(embody) 때, 예수님이 그리스도, 즉 하나님께서 보내신 구원자라는 것을 세상이 알고 믿게 되는 것이다.
[17:21] 그래서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셨다는 것을, 세상이 믿게 하여 주십시오.
- 반대로 말해서, 공동체를 통해 예수님이 구현되는 방식이 아니면, 예수님은 절대로 올바로 전해질 수 없다는 뜻이다.
우리는 전도에 대해 편향된 시각을 가지고 있다.
- 전도라고 하면, 노방 전도, 친구 전도해서 교회에 데리고 오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 물론 이것도 전도의 일부분이지만, 지극히 작은 일부분이다.
- 전도의 기본은 교회의 하나됨을 통하여 삼위일체 하나님의 관계를 전하는 것이다.
전도를 세일즈에 비교해서 생각해보자.
- 세일즈의 기본은 일단 물건이 좋아야 한다.
- 물론 나쁜 물건을 비싸게 파는 사람도 있지만, 그러면 롱런하지 못한다.
- 장사 하루 이틀 하는 것 아니고 오래 하려면, 좋은 물건을 적당한 가격보다 조금 더 싸게 팔아야 한다.
그런데 좋다는 것이 뭐냐?
- 상대방에게 필요한 것이어야 한다.
- 포르쉐, 페라리가 아무리 좋은 차라도, 아이가 있는 부부에게 2인승 스포츠카는 아무 쓸모 없다.
- 한 가족이 편하게 탈 수 있는 세단이나 SUV가 훨씬 좋다.
그렇다면 전도의 세일즈 포인트는 뭘까?
- 기독교가 파는 '물건'이 좋은 것은 알겠다만, 정말 사람들에게 필요한 것일까?
- '물건'을 가지고 있는 우리 입장에는, 이 '물건'이 얼마나 '좋은 것'인지 아는 것도 필요하다.
- 그러나 '물건'을 가지고 있지 않은 전도 대상자에게는, 얼마나 '필요한 것'인지가 더 중요하다.
그동안 전도의 세일즈 포인트는 구원, 영생 등 추상적인 것을 비롯하여, 기쁨, 평안 등 정서적인 것과 부, 건강 등 육체적인 것이었다.
- 특히 정서적, 육체적인 것을 수단으로 사람들을 교회로 끌어 모았다.
- 그렇게 모여든 사람들이었기 때문에, 교회는 사람들을 잡아두기 위해 세속적인 설교를 할 수 밖에 없었다.
- 게다가 구원과 영생도 죽음 이후에 받을 정서적, 육체적 보상으로 취급되었다.
하지만 이러한 전도는 어느 순간 약발이 떨어졌다.
- 실제로 '물건'을 개봉해서 사용해보니 광고와 달랐기 때문이다. 사용 후기가 별로였다.
- 정서적, 육체적 보상을 원하는만큼 바로바로 받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 이것이 현재 교회에 위기가 생긴 이유이다.
그렇다면 성경이 제시하는 진짜 세일즈 포인트는 무엇인가?
- 결국 또 '관계'이다.
- 요한복음이 제시하는 전도 방법도 하나 되는 관계이고, 사도행전에서 사람들이 교회에 호감을 갖게 된 이유도 공동 소유를 할만큼 서로 사랑하는 관계이다.
교회 밖의 사람들은 진리, 구원, 영생 따위에 관심 없다.
- 여기에 대한 관심은 예수님을 알고 믿고자 하는 사람에게 있는 것이다.
그들에게 호감과 환심을 사려면, 그들에게 절실하게 필요한 것을 제시해야 한다.
- 그러면서 동시에 그들에게 필요한 것이 교회가 반드시 제공할 수 있는 것이어야 한다.
- 게다가 사람들이 교회에 오려면, 그 '물건'을 얻을 수 있는 방법이 교회 밖에 없어야 한다.
성경은 그것을 '관계'라고 말하는 것이다.
- 이것을 논증하기 위해서는 정말 긴 설명이 필요하다.
- 그래서 지금은 짧게 화두만 던지고, 설명은 나중에 천천히 하겠다.
특히 다음 세 가지를 논증해야 한다.
- 첫째로, 정말로 사람에게 절실하게 필요한 것이, 돈, 건강, 기쁨, 평안 등보다 '관계'인가?
- 둘째로, 교회는 사람들에게 '관계'를 제공할 수 있는가?
- 셋째로, 교회 말고는 '관계'를 제공할 수 있는 곳이 없는가?
- 성경은 이 세 가지에 대해 모두 'yes'라고 말하며, 그에 대한 충분한 근거를 말해준다.
이 때문에 나는 '관계'를 그토록 중요하다고 말하는 것이다.
- 이것만이 교회의 내부를 결속하여 그리스도 예수님이라는 정체성을 확립할 수 있으며, 이것만이 세상을 설득하여 호감과 환심을 살 수 있는 유일한 세일즈 포인트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예수님도 마지막 기도의 마지막까지 '하나됨', 다른 말로 '관계'를 강조하고 계신 것이다.
다음으로 예수님께서 이렇게 기도하시는 근거를 말씀하신다.(22)
- 예수님은 미래의 제자들이 내부 결속과 외연 확장을 위해 막연하게 기도만 하신 것이 아니었다.
- 기도하시기 이전에 예수님은 평생을 이것을 위해 사셨다.
-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영광'을 주었는데, 목적이 '하나됨'을 위한 것이었다.
- 예수님은 삶 따로 기도 따로 하시는 분이 아니라, 하나의 분명한 목적을 위해 사시고, 그 목적이 이뤄지도록 기도하신 것이다.
- 우리는 삶에서는 욕심대로 살면서, 기도는 정답맨처럼 믿음 달라고 기도하는데, 예수님은 달랐다.
- 우리도 예수님처럼 삶과 기도가 일치될 때, 기도가 응답되고 삶이 변화될 것이다.
그러면서 <아버지 하나님 - 아들 예수님 - 제자들>의 관계를 맺은 이유를 설명하신다.(23)
- <하나님 - 예수님 - 사람>의 관계는 예수님께서 사역을 통해 드러내신 영광의 핵심이며, 태초부터 종말까지 반복되는 인류 존재의 본질이다.
- 그런데 그것의 목적이 '제자들이 완전히 하나 되는 것'이다.
[17:23] 내가 그들 안에 있고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신 것은, 그들이 완전히 하나가 되게 하려는 것입니다.
- 즉, 하나님이 하나님 되셔서, 삼위일체 관계를 맺으시고, 세상과 인류를 창조하시며, 인류에게 구원자 예수님을 보내주시고, 마지막으로 인류 역사를 종말로 끝내시는 모든 것의 목적이 '완전히 하나됨'이라는 뜻이다.
- 이러한 내부 결속이 이렇게 중요하기 때문에, 예수님은 이것을 위해 기도하신 것이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내부 결속을 목적으로 두신 이유는, 그로 인해 외연 확장이 되기 때문이다.
- 내부 결속만이 예수님이 그리스도시며 하나님의 아들, 즉 예수님과 하나님의 관계를 세상에 드러내기 때문이다.
- 세상은 아무거나 붙잡고 하나님이라고 부르며 숭배하는 어리석은 존재이다.
- 그래서 결국 진짜 창조주 하나님은 외면하는 존재이다.
- 그런 세상이 참 하나님을 깨달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교회의 '하나됨' 밖에 없다.
- 그래야 삼위일체 하나님과 제자들의 관계 안으로 세상이 들어올 수 있다.
- 이것이 참된 외연 확장, 참된 전도이다.
내부 결속을 통해 세상이 깨닫게 되는 것이 하나 더 있다.
- 그것은 하나님의 사랑이다.
- 세상은 하나님의 사랑을 절대로 직접 알 수 없다. 안다고 말하는 것은 전부 착각이다.
그러나 간접적으로는 알 수 있는데, 유일한 방법은 교회의 하나됨이다.
- 세상은 교회의 하나됨을 보고 교회에 매력을 느낀다.
- 그런데 그 매력의 원인이 삼위일체 사이의 긴밀한 사랑이라는 것을 깨닫는다.
- 그리고 교회가 하나 될 수 있게 된 것은, 교회의 각 사람들을 삼위일체의 긴밀한 사랑으로 사랑해주셨기 때문임을 알게 된다.
- 그 결과, 처음에는 교회의 하나됨의 매력에 빠져 신앙 생활을 시작했던 사람들이, 결국에는 하나님의 사랑에 감동하여 진짜 신앙 생활을 비로소 하게 되는 것이다.
[17:23] 이것은 또,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셨다는 것과, 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하신 것과 같이 그들도 사랑하셨다는 것을, 세상이 알게 하려는 것입니다.
이것이 진짜 전도이다.
- '예수님 믿으면 천국 간다', '예수님 믿으면 복 받는다'는 전도는 반쪽짜리이다.
- 진짜 전도는, 공동체의 관계와 사랑을 먼저 보고, 그 안에서 하나님의 사랑을 깨달아, 공동체와 하나 되는 사랑의 관계를 맺도록 하는 것이다.
- 만약 반쪽짜리 전도에 목적을 두면, 그에 맞게 우리는 세상에서 성공하고, 돈 벌고, 유명해지려고 노력하게 된다.
- 그래야 교회가 사람들에게 매력 있어 보이기 때문이다.
- 그러면 전도와 신앙이 괴리된다.
- 신앙은 예수님만 믿는 것인데, 전도하기 위해서는 세상의 인정을 받아야 하기 때문이다.
- 그래서 세상과 예수님께 모두 인정을 받기 위해 고군분투 하지만, 결국 이중인격자, 위선자라는 불명예만 얻고, 아무 것도 얻지 못한다.
- 이것이 현재 교회의 현실이다.
그러나 진짜 전도에 목적을 두면, 그래서 교회의 하나됨에 목적을 두면, 우리는 서로를 바라보게 된다.
- 서로 관계 맺고, 서로 사랑하려고 애쓰게 된다.
- 그러면 사랑을 싫어하고, 관계를 끊으려하는 우리의 실존, 죄의 본질인 원죄를 보게 된다.
- 그러면 비로소 하나님께 회개하고, 예수님 믿게 해달라고 간절히 구할 수 있게 된다.
- 그래야 진짜 하나님의 은혜, 하나님의 사랑을 경험할 수 있게 된다.
- 그래서 그 사랑으로 서로 사랑할 수 있게 된다.
- 그제서야 비로소 교회의 하나됨은 이뤄지는 것이고, 그제서야 비로소 내부 결속을 통한 외연 확장이 가능하게 되는 것이다.
- 즉, 전도와 신앙과 삶이 일치된다.
- 신앙의 목적도, 전도의 목적도, 삶의 목적도 모두 '관계'가 되기 때문이다.
- 이런 일관성만이 세상에 설득력을 가진 교회가 되는 것이다.
- 그제서야 비로소 교회가 세상에 팔릴만한 '물건'이 되는 것이다.
- 그렇기 때문에 '관계'가 그토록 중요한 것이다.
이제 예수님은 기도를 마치신다.(24)
- 마지막으로 간구하시는 것은 제자들을 위한 기도이다.
- 두 가지 중 첫째는, 제자들의 구원이다.
- 그런데 구원에 대한 표현이 새삼스레 와닿는다.
- 예수님은 제자들을 혼자 두고 떠나는 것이 마음에 걸리셨는지, 마지막까지 제자들과 함께 있게 해달라고 기도하신다.
[17:24] 아버지, 아버지께서 내게 주신 사람들도, 내가 있는 곳에 나와 함께 있게 하여 주시고,
- 그렇게 예수님과 지속적인 관계를 맺으며 함께 있는 것이 참 구원이다.
- 이렇게 예수님의 기도는 관계로 시작하여 관계로 끝맺으신다.
둘째 간구는, 제자들이 예수님의 영광을 보게 해달라는 기도이다.
- 창세 전부터 아버지 하나님께서 사랑으로 예수님께 주신 영광은 '모든 사람을 다스리는 권세'라고 2절에서 말했다.
- 따라서 예수님이 바라신 것은, 예수님이 그리스도로서 세상의 구원자, 통치자라는 것을 제자들이 보고 믿는 것이다.
- 그런데 그 영광을 보기 위해서는,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 부활을 제자들이 보고 믿어야 한다.
- 따라서 예수님의 영광에는 십자가 죽음에 대한 염두가 밤드시 포함되어 있을 것이다.
이제 남은 몇 마디의 기도가 끝나면, 예수님을 잡으러 사람들이 올 것이다.
- 그리고 너무 생각을 많이 해서 잘 알지만, 생각조차 하기 싫은 고통의 하루가 시작될 것이다.
- 그 고통에 앞서, 예수님은 먼저 제자들을 위해 기도하셨다.
- 이제 예수님께 남은 기도는, 자신이 포기하지 않고 자신에게 주어진 길을 끝까지 걸어갈 수 있길 바라는 것 뿐이다.
그러면서 예수님은 하나님을 '의로우신 아버지'라고 부르신다.(25)
- 왜 이렇게 부르셨을까?
- 지금 예수님께 필요한 것은, 하나님의 '올바른(의로운) 판단'이었기 때문이다.
- 예수님의 울부짖음에도 눈감으시고, 세상의 무관심도 무시하셔야 했다.
- 그래야 예수님을 십자가에서 죽이실 수 있기 때문이다.
- 그것만이 의로운 길이기 때문이다.
- 그것만이 예수님이 그리스도가 되시고, 하나님의 의로움이 증명되는 방법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여전히 세상은 무관심하다.
- 그렇지만 적어도 예수님만큼은 하나님을 알고, 제자들도 간접적으로나마 하나님을 알고 있다.
예수님은 평생을 세상이 하나님께 관심 갖도록 애쓰셨다.
- 이제 예수님은 모든 사역을 다 마치시고, 딱 하나 남겨두셨다.
- 마지막 하나까지 충성하겠다는 마지막 다짐을 하신다.
[17:26] 나는 이미 그들에게 아버지의 이름을 알렸으며, 앞으로도 알리겠습니다.
그 처절한 다짐을 하시는 이유도 단 하나다.
- 교회의 내부 결속을 통해 하나님과 예수님과 사람의 관계 맺음이다.
- 이렇게 끝까지 관계를 소망하시며, 예수님의 기도는 끝이 난다.
주제
내부 결속과 외연 확장의 관계
내부 결속은 삼위일체 하나님의 관계가 교회 안에 구현되어 하나 되는 것이다.
- 이를 굉장히 단순하고 쉽게 말했는데, 사실상 이 과정 안에는 무수히 복잡한 단계가 있다.
- 하지만 분명한 것은, 교회의 정체성은 삼위일체 하나님의 완전한 관계를 세상 안에서 구현하는 것이다.
- 이것을 알아야, 종교의 수 많은 개념, 즉 구원, 영생, 천국, 지옥, 죄, 심판 등의 의미를 이해할 수 있다.
특히 전도의 의미를 이해할 수 있다.
- 참된 전도의 의미는 뭔가 특별한 '도'를 전달하는 것이 아니다.
- 상대방과 참 관계를 맺는 것이다.
만약 전도를 지식 전달, 복음 설득으로 이해하면, 전도를 할 수 없는 것은 물론이고, 우리가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진다.
- 전도를 잘 하기 위해, 더 많은 지식을 쌓으려 할 것이고, 그러다보면 하나님과의 관계가 멀어지게 되기 때문이다.
반면에 전도를 관계 맺는 것이라고 이해하면, 전도가 되는 것은 물론, 우리가 하나님과 가까워진다.
- 전도를 잘 하기 위해, 관계를 더 잘 알려고 할 것이고, 그러면 관계의 신이신 하나님과의 관계에 집중할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래야 내부 결속을 위해 노력하는 것이 외연 확장을 하는데 영향을 주고, 반대로 외연 확장을 위해 노력하는 것이 내부 결속하는 데 도움을 줄 것이다.
- 그렇게 선순환이 되어, 교회 내부 관계가 더 깊어질수록, 교회 외부 사람들과의 관계도 더 깊어지며, 그래서 결국 하나님과의 관계가 더 깊어져야 하는 것이다.
- 이럴 때만이 시간이 지날수록 교회의 정체성은 더 확고해지고, 세상에 대한 교회의 영향력도 동시에 커지며, 하나님과 세상의 관계도 더 깊어지게 되는 것이다.
이 모든 것을 이루는 중심에 우리가 있는 것이다.
- 우리가 예수님과 관계를 회복할 때, 인류의 선순환이 원활히 동작할 수 있는 것이다.
결론
결국 거래 관계, 수직 관계, 지배 관계가 아닌 사랑 관계, 수평 관계, 상호 관계를 알아야 한다.
- 그런데 우리에게 관계를 가르쳐준 부모, 선생님, 친구들, 선후배 모두 이 관계를 한 번도 가르쳐주지 않았다.
- 이것을 알려주는 데가 예수님 밖에 없다.
- 특히 십자가 죽음에서 그 관계가 극단적으로 드러났다.
- 그래서 우리에게 십자가 사건이 생명, 구원을 주는 것이다.
이것이 기독교가 정말 어려운 이유이다.
- 한 번도 배운 적도, 경험해본 적도 없는 새로운 것을 배우고 행해야하기 때문이다.
- 우리는 한 번도 사랑 받아본 적이 없는데, 그 사랑으로 하나님을 사랑해야 하고, 이웃을 사랑해야 하기 때문이다.
과연 우리가 이것을 할 수 있을까 싶다.
- 사랑하는 아내조차, 자식조차 사랑하지 못하는 우리가,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사랑하고, 쌩판 남인 이웃을 사랑할 수 있을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망을 갖는 이유는, 내 안에 있는 참 사랑에 대한 간절한 열망 그리고 사람들에게서 볼 수 있는 관계에 대한 끝없는 욕구를 보기 때문이다.
- 복음이 전하는 사랑이, 나의 간절한 열망과 세상의 욕구를 채워줄 수 있을 것 같기 때문이다.
아무리 생각해도 다음 세 가지가 참이라고 생각되기 때문이다.
- 정말로 사람에게 절실하게 필요한 것이, 돈, 건강, 기쁨, 평안 등보다 '관계'인가?
- 교회는 사람들에게 정말 '관계'를 제공할 수 있는가?
- 교회 말고는 '관계'를 제공할 수 있는 곳이 정말 없는가?
사람의 마음을 채워줄 수 있는 것은 정말 그리스도의 복음, 곧 예수님의 몸된 교회 밖에 없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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