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이 언제나 그렇듯이, 이번 본문도 아리송하고 난해하다.
- 특히 요한복음을 난해하게 만드는 것은 '비유'이다.
이번 본문에서는 '장소 비유'가 많다.
- 아버지의 집(2), 있을 곳(2, 3), 나에게로 데려다가(3), 내가 있는 곳(3), 내가 어디로 가는지(3), 그 길(4, 5, 6), 나를 거치지 않고(6), 갈 사람이 없다(6), 아버지 안에 있고(10, 11), 내 안에 계시다(10, 11)
- 이렇게 장소 비유를 통해 예수님, 하나님 그리고 사람의 관계를 설명한다.
왜 그러느냐?
- 관계는 추상적인 개념이다. 보이지 않는다.
- 그렇기 때문에 관계를 설명하기 위해서는 눈에 보이는 것에 비유할 수 밖에 없다.
예를 들면,
- 친한 관계를 관계가 '가깝다'라고 말하고, 불편한 관계를 관계가 '멀다'라고 말한다.
- 이렇게 보이지 않는 관계를 수평적인 장소 개념으로서, 두 장소의 거리를 이용해서 설명한다.
- 또한, 신뢰하는 관계를 관계가 '깊다'라고 말하고, 불신하는 관계를 관계가 '얕다'라고 말한다.
- 이렇게 관계를 수직적인 장소 개념으로 설명하기도 한다.
본문은 다음과 같은 장소 개념을 사용한다.
- 출발지와 목적지가 있다.
- 두 장소의 지리 정보가 세상과 하나님의 관계를 의미한다.
- 그리고 예수님은 두 장소를 여러가지 방법으로 연결시킨다.
- 예수님은 세상과 하나님의 관계에 영향을 주신다.
이러한 장소 개념이 담고 있는 의미는 다음과 같다.
- 두 대상 사이에 길이 없으면, 관계가 나쁜 것이고, 길이 있으면, 관계가 좋은 것이다.
- 게다가 길이 크고 좋으면 관계가 더 좋은 것이고, 길이 작고 험하면 관계가 덜 좋은 것이다.
- 특히 관계가 가장 좋은 상태는 두 대상이 길 없이 바로 연결되는 것이다.
- 마지막으로 목적지에는 열쇠로 잠겨 있는 문이 있다. 따라서 열쇠가 있으면 관계가 좋아질 수 있지만, 열쇠가 없으면 나머지 모든 조건이 충족되어도 관계가 좋아질 수 없다.
- 따라서 관계가 좋기 위해서는, 길이 있어야 하고, 열쇠가 있어야 하며, 길도, 열쇠도 필요 없이 두 대상이 직접 연결되어 하나가 되어야 한다.
이를 통해 말하고자 하는 것은 다음과 같다.
- 사람과 하나님의 관계가 회복되기 위해서는 길이신 예수님이 사람과 하나님을 연결해야 한다.
- 여기서 예수님은 능력 있으시기 때문에, 크고 좋은 길이시다.
- 또한 예수님은 열쇠로서 관계 회복 가능성을 열어 놓으신다.
- 즉, 예수님은 죽음 부활을 통해 관계 회복을 준비하신다.
- 마지막으로 예수님은 하나님과 동일하신 분으로서, 사람과 하나님은 예수님으로 인해 직접 연결되어 하나가 된다.
이렇게 사람과 하나님의 관계 회복을 위한 예수님의 역할을 규명하기 위해서 장소 비유를 사용한 것을 염두하면서 본문을 보자.
내용 정리
1-4절: 제자들에 대한 예수님의 위로 -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아라.
지난 본문에서 제자들은 멘붕에 빠졌다. 이유는 세 가지다.
① 자기들 중에 배신자가 끼어있다는 말씀(21)
② 예수님이 떠나신다는 말씀(36)
③ 베드로가 예수님을 배신할 것이라는 말씀(38)
제자들은 절망했다.
- 자신들이 예수님을 배신할 것이라는 소식에.
- 그리고 예수님이 우리를 배신하고 떠나실 것이라는 소식에.
- 그래서 근심에 빠지게 된다.
그런 제자들에게 예수님이 근심하지 말라며 위로하시는 말씀이 이번 본문이다.(1)
- 근심하지 말고, 하나님과 나를 믿어라! 라고 명하신다.
왜 근심할 필요가 없냐?
- 그 이유를 말하는 것이 이번 본문이다.
- 한마디로, 예수님은 결국 돌아와 제자들과 영원토록 함께 할 것이기 때문이다.
- 그 과정을 설명하는 것이 2-4절이다.
예수님이 떠나신 후 하시는 일은 세 가지다.
① 제자들이 있을 곳 마련하기(2)
② 돌아와서 제자들 데려가기(3)
③ 제자들과 함께 있기(3)
-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이 떠난다고 해도, 제자들이 걱정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그런데 예수님이 하시는 일에서 두 가지 의문점이 있다.
① '하나님의 집에 있을 곳'의 의미(2)
직관적으로, 제자들이 믿어서 갈 천국을 의미하는 것으로 보인다.
- 즉, 천국을 마련하시기 위해 예수님이 떠나신다는 뜻이다.
그런데 이를 다르게 말하면, 현재 시점에는 천국이 아직 마련되지 않았다는 뜻이 된다.
- 즉, 예수님이 떠나셔야만, 미완성의 천국이 완성된다는 것이다.
여기서 예수님이 천국을 완성한다는 것이 무슨 의미일까?
- 예수님의 말씀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말씀이 비유라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 본문은 장소 개념으로 설명하고 있지만, 이는 관계를 비유적으로 설명하고 있는 것이다.
- 관계라는 프레임으로 예수님의 말씀을 새롭게 보자.
따라서 '하나님의 집에 있을 곳'은 장소 개념이 아니라 관계이다.
- 하나님과 한 집에서 가족 관계를 맺어, 친밀한 관계를 맺는 상태를 말한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이 있을 곳을 마련한다는 뜻은, 하나님과 사람 사이의 친밀한 관계를 회복시키신다는 것이다.
- 정확하게 말하면, 관계 회복을 위해 '준비'하신다는 뜻이다.
- 사람에게 하나님과 관계 회복 가능성을 열어 놓으신다는 것이다.
- 그것을 위해 예수님은 떠나셔서, 십자가에서 죽고 부활하시는 것이다.
반대로 말하면, 예수님의 죽음 부활 전에는 하나님과 관계 회복 가능성이 닫혀있는 상태인데, 예수님으로 인해 비로소 가능성이 열리는 것이다.
- 다르게 말하면, 죽음 부활 이전의 천국은 미완성 상태인데, 죽음 부활로 인해 완성되는 것이다.
- 또 다르게 말하면, 천국의 주인이신 하나님 역시 예수님으로 인해 미완성에서 완성으로 변하시는 것이다.
- 또한, 예수님 역시 죽음 부활로 인해 참 예수님으로 완성되시는 것이다.
- 이것이 '너희가 있을 곳을 마련하러 간다'는 의미를 확장시킨 것이다.
그런 후에 예수님은 '돌아오셔서 제자들을 데리고 가시는데', 그것은 또 무슨 의미일까?
- 예수님은 죽음 부활로 하나님과의 관계 회복 가능성을 열어 놓으셨지만, 아직 실제로 관계 회복이 성취된 것은 아니었다.
- 하나님 편에서 필요한 일은 해결하셨지만, 사람 편에서 해결해야 할 일이 아직 남아 있다.
- 그것이 예수님이 돌아오시는 이유이다.
② 예수님이 돌아오셔서 제자들을 데려가 함께 계시는 시점(3)
이 역시 직관적으로, 부활인 것 같다. 예수님이 부활을 통해 돌아오시니까.
- 그리고 좀 더 넓게 생각하면, 재림일 수도 있다. 그 때 돌아오셔서 믿는 사람들을 모두 데려가시니까.
하지만 예수님의 말씀이 관계에 대한 비유라고 생각하면 다르게 이해할 수 있다.
- '돌아오셔서 데려가신다'는 말씀은 예수님이 왔다 갔다하신다는 장소 의미보다는 예수님의 역할을 의미한다.
- 예수님은 떠나셔서 하나님과 사람의 관계 회복을 준비하신 이후, 돌아오셔서 새로운 역할을 하신다.
- 그것은 사람을 하나님께 데려다줘서, 관계를 연결시켜주는 역할이다.
정리하면, 예수님의 역할은 두 가지다.
- '하나님과 관계 회복 가능성을 여는 역할'과 실제로 하나님과 관계 회복이 되도록 '사람을 하나님과 연결해주는 역할'이다.
- 이를 비유하면, 전자는 '열쇠'이고 후자는 '길'이다.
- 예수님은 천국 문만 열어놓고, 사람 스스로 알아서 들어오라고 하지 않으신다.
- 예수님은, 마치 먼저 천국 문을 열어놓고, 우리가 천국까지 편하게 올 수 있도록 도로를 닦으시고, 그 길로 리무진을 타고 직접 데릴러 오시는 것과 같은 모습이다.
- 우리가 예수님이라는 리무진에 타기만 하면, 편안하고 안전하게 천국까지 갈 수 있도록 말이다.
이는 신앙에 있어서 우리가 드려야 할 노력을 과소평가하는 것이 아니다.
- 우리가 노력해야 할 부분이 분명히 있고, 거기에는 굉장히 큰 헌신이 필요하다.
- 하지만 우리의 노력에 비해서 우리를 위한 예수님의 노력이 너무 크기 때문에 이렇게 말하는 것이다.
- 마치 아무 노력 없이 저절로 천국에 갈 수 있는 것처럼 말이다.
- 그만큼 예수님의 역할이 크고 강력하다는 것이다.
- 그렇기 때문에 잠시 예수님이 없어도 제자들은 아무 걱정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게다가 예수님은 한 가지를 더 추가하신다.(4)
- '그 길'이신 예수님을 제자들은 알고 있다고 말씀하신다.
- 만약 해결책이 있다고 하더라도, 그 해결책을 모르면 아무 소용 없다.
- 하지만 제자들은 해결책을 눈 앞에 두고 있고, 뿐만 아니라 잘 알고 있기까지 하다.
- 그러니 더욱 걱정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불안에 떨고 있는 제자들을 예수님은 이렇게 위로하신 것이다.
- 하지만 다음 절을 보면, 제자들은 전혀 위로가 되지 않았다.
5-7절: 근심할 필요 없는 이유① - 나는 길이요.
제자들이 항상 그래왔듯, 무지를 드러낸다.(5)
- 도마는 목적지(하나님)도 모르고, '그 길'(예수님)도 모른다고 말한다.
그래서 예수님은 '내가 그 길이다'라고 대놓고 알려 주신다.(6)
- 즉, 예수님이 제자들을 하나님께 데려다 줄 것이라는 뜻이다.
- 그렇기 때문에 진리이며 생명이다.
- 진리와 생명만이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시켜주기 때문이다.
- '예수님을 거쳐서'만, 즉 예수님이 '다시 와서 데려가야만' 하나님께 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제자들이 목적지이신 하나님도 이미 알고 있다고 가르쳐 주신다.(7)
- 근거는, 예수님과 하나님은 동일하시기 때문이다.
- 이는 이미 하셨던 말씀이다.
[요 10:30] 나와 아버지는 하나이다.
[요 12:44-45] 예수께서 큰 소리로 말씀하셨다. "나를 믿는 사람은 나를 믿는 것이 아니라 나를 보내신 분을 믿는 것이요, [45] 나를 보는 사람은 나를 보내신 분을 보는 것이다.
- 예수님을 아는 것은 하나님을 아는 것이기 때문에, 제자들은 이미 하나님을 알고 있다고 말씀하신다.
예상할 수 있겠지만, 예수님의 말씀을 제자들은 이해하지 못해서, 또 질문한다.
- 예수님은 그것을 기회로, 예수님과 하나님의 관계를 더 자세히 말씀하신다.
8-11절: 근심할 필요 없는 이유② - 나를 본 사람은 아버지를 보았다.
빌립은 '아버지를 보여달라'고 말한다.
- '너희는 하나님 아버지를 이미 알고 보았다'고 방금 말씀하신 예수님께 말이다.
- 제자들의 막막한 심정도 이해가 가지만, 예수님도 무지 답답하셨을 것 같다.
그래서 예수님은 우선 7절 말씀을 반복하시면서 짜증을 버럭 내신다.(9)
- 나를 본 것이 아버지를 본 것인데, 왜 또 아버지를 보여달라느냐.
그러면서 자신이 아버지와 동일하다는 것을 새롭게 말씀해주신다.(10)
- 이전 10, 12장에서는 '능력'에 있어서 하나님과 예수님의 동일성을 강조했다.
- 반면 이번 본문에서는 '관계'에 있어서 하나님과 예수님의 동일성을 강조한다.
예수님은 하나님과 '상호 내주'의 관계에 있다는 것을 믿으라고 말씀하신다.(10)
- 왜냐하면 이 사실을 믿는 사람만이 구원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 이것을 믿어야지, 리무진이신 예수님이 데릴러 오실 것도 믿을 수 있기 때문이다.
- 그래야 그 차에 타고 천국에 들어갈 수 있기 때문이다.
어찌보면 예수님의 유능 사역 전부는 이 사실을 증명하시기 위한 것이었다.
- 물을 포도주로 변하고, 중풍병자가 낫고, 맹인이 보고, 죽은 자가 살아나는 것은 그 자체로는 아무 의미 없다.
- 그 기적을 통해 예수님이 그리스도시며, 곧 하나님이시라는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한 수단, 즉 표적이었다.
- 지금까지의 예수님 전 생애가 이 사실을 증명하기 위한 삶이었기 때문에, 예수님은 예수님과 하나님의 동일성을 믿으라고 명령하시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만약 예수님의 말씀이 믿어지지 않는다면, 내가 하는 일들, 즉 기적을 보아서라도 믿으라고 끝까지 권면하신다.
- 이 말씀 역시 이전에 하신 말씀이다.
[요 10:37-38] 내가 내 아버지의 일을 하지 아니하거든, 나를 믿지 말아라. [38] 그러나 내가 그 일을 하고 있으면, 나를 믿지는 아니할지라도, 그 일은 믿어라. 그리하면 너희는,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시고 또 내가 아버지 안에 있다는 것을, 깨달아 알게 될 것이다."
- 이렇게 말씀하신 이유는, 당장 예수님의 말씀을 믿지 못한다고 해도, 예수님의 기적까지 부정할 수는 없으며, 예수님의 기적을 믿다보면, 그 안에 담긴 메시지까지 믿을 수 밖에 없고, 그러면 결국 예수님의 말씀까지 믿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예수님은 어떻게서든 제자들이 자신을 믿도록 하려고 애쓰셨다.
- 그래야 예수님이 하나님이라는 것을 알 수 있으니까.(7)
- 그래야 예수님을 통해 하나님을 볼 수 있으니까.(6)
- 그래야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될 수 있으니까.(3)
- 그래야 근심하지 않을 수 있으니까.(1)
12-14절: 근심할 필요 없는 이유③ - 내 이름으로 구하면 내가 다 이루어 주겠다.
이 구절은 우리가 기도할 때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렸습니다'라고 하는 이유를 말해준다.
- 예수님께서 '내 이름으로 구하면 다 이루어 주겠다'고 말씀하시기 때문이다.(14)
왜 갑자기 기도에 대해 말씀하시느냐?
- 지금까지 예수님은, ①하나님과의 관계 회복을 준비하실 것이고, ②사람들을 하나님께로 인도하실 것이며, ③자신이 하나님과 동일하다는 것을 통해 제자들을 위로하셨다.
이제 마지막으로, 예수님이 없어도 제자들은 전혀 걱정할 필요가 없는 이유를 하나 더 말씀하신다.
- 예수님 이름으로 구하기만 해도, 예수님이 바로 옆에 계신 것처럼 구하는 것을 다 이루어 주실 것이기 때문이다.(14)
- 이는 예수님이 바로 옆에 계시는 것과 마찬가지다.
그러면서 기도를 통해서 일어나는 기적의 능력이 예수님과 동일할 뿐만 아니라, 더 클 것이라고 말씀하신다.(12)
- 일단, 기도 응답은 예수님께서 행하시는 것이니, 예수님과 능력이 동일한 것은 당연하다.
- 그렇다면 왜 더 클 것이라고 말씀하셨을까?
그 이유를 '내가 아버지께로 가기 때문'이라고 하신다.(12)
- 즉, 하나님께로 가셔서, 일을 완성하실 것이기 때문이다.
- 여기서 그 일은, 2, 3절의 '있을 곳을 마련하는 것', 즉 하나님과의 관계 회복을 준비하는 것이다.
- 이는 결국 십자가 죽음 부활을 통한 '죄 용서'이다.
정리하면, 지금까지 예수님은 많은 가르침, 능력을 보이셨다.
- 제자들도 예수님따라 동일한 가르침과 능력을 보일 것이고, 이는 사도행전에서 증명되었다.
- 하지만 예수님이 아직 하지 못하신 일이 있는데, 예수님을 믿도록 하는 일이다.
- 아직 아무도 예수님을 바르게 믿지 않았다. 그래서 아무도 하나님과 관계를 회복하지 못했다.
- 왜냐하면 아직 예수님께서 죽지 않으셨고, 그래서 예수님이 그리스도 되심이 확정되지 않았고, 그래서 하나님과의 관계 회복 준비도 안되어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예수님의 죽음 부활 이후에 사역하는 제자들은 다르다.
- 예수님이 그리스도 되심이 확증되었다.
- 예수님을 통한 하나님과의 관계 회복 준비가 완성되었다.
- 그 결과 제자들은 가르침과 기적을 통해서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믿도록 할 수 있었다.
- 첫번째 결과가 사도행전 2장이다.
[행 2:41] 그의 말을 받아들인 사람들은 침례를 받았다. 이렇게 해서, 그 날에 신도의 수가 약 삼천 명이나 늘어났다.
- 이 일은 예수님께서는 보지 못하신, 예수님께서 하신 일보다 '더 큰 일'이다.
이러한 기적의 결과 무슨 일이 일어나냐?(13)
- 사람들은 예수님을 통해 하나님과 관계가 회복되었다.
- 관계 회복 결과, 사람들은 영광을 혼자 누리지 않고, 모든 영광을 하나님께 돌렸다.
- 그래서 예수님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영광을 받으시게 되었다.(13)
- 이것을 위해 예수님은 우리에게 '기도'라는 특권을 주신 것이다.
- 사람들이 하나님과 관계 회복을 통해 하나님께서 영광 받으시도록 하기 위해서 말이다.
기도는 스스로를 영광되게 하기 위한 것이 아니다.
- 나 성공하고, 나 부자 되고, 나 건강하라고 주신 것이 아니다.
- 이유는 단 하나, 하나님께서 영광을 받으시게 하려는 것이다. 이것이 기도의 유일한 목적이다.
- 그런데 하나님께서 영광을 받으시려면, 하나님과 사람 관계가 회복되어야 하고, 그러려면 사람들이 예수님을 믿어야 하고, 예수님을 믿으려면 스스로의 힘으로는 안되고 예수님의 도움이 필요하고, 예수님의 도움을 받을 수 있는 방법이 기도 밖에 없기 때문이다.
- 이것을 위해 예수님께서 구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주실 것을 약속하신 것이다.(14)
- 아무거나 구하면 다 주신다는 것이 아니다.
그렇다고 실질적인 도움을 구하면 안된다는 것이 아니다.
- 예수님도 실질적인 문제에 도움을 주셨다. 포도주도 만드시고, 건강도 회복시켜 주셨다.
- 하지만 그 도움은 철저히 예수님을 믿도록 하기 위한 수단이었다.
이는 마치 사랑하는 배우자를 위해 빨래와 청소를 해주는 것과 같다.
- 빨래 청소 해주기 위해 결혼한 것이 아니라, 배우자를 사랑하고 더 깊은 관계 맺고 싶어서 결혼한 것이지만, 사랑하면 배우자의 필요를 채워주기 마련이다.
- 또한, 빨래 청소 시키려고 결혼한 것은 아니지만, 배우자가 빨래 청소 해주면 이런 사소한 것에서도 배우자의 사랑을 느끼게 된다.
예수님도 우리 뒤치닥거리 해주시려고 십자가에 죽고 부활하신 것 아니다.
- 우리를 사랑하시고 관계 맺으려는 것이다.
- 그러나 사랑하면 뒤치닥거리 해주게 된다.
- 그래서 우리의 필요도 채워주시는 것이다.
[마 6:33] 너희는 먼저 하나님의 나라와 하나님의 의를 구하여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여 주실 것이다.
- 그럴 때 우리는 필요 충족에 만족하면 안되고, 그 안에서 예수님의 사랑을 느껴야 한다.
- 그래야 관계가 유지된다.
마찬가지로, 우리도 예수님의 일 대신 해드리려고 예수님 믿은 것 아니다.
- 예수님과 사랑하며 관계의 기쁨 누리려는 것이다.
- 그러나 사랑하면 대신 일해주게 된다.
- 그래서 우리는 예수님을 전하는 일을 해야하는 것이다.
- 그럴 때 예수님은 우리를 보고 기뻐하실 것이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예수님께서 우리의 잡일을 해주시는 것도, 우리가 예수님 대신에 전도하는 것도 모두 단 하나의 이유 때문이라는 것이다.
- 그것은 하나님께서 영광 받으시도록 하는 것이다.(13)
이것을 잃어버리면, 모든 것이 다 사라진다.
- 배우자가 해주는 빨래 청소 속에서 배우자의 사랑을 잃어버리면, 배우자도 떠나고, 청소 빨래도 다 내가 해야 한다.
- 예수님께서 해주시는 뒤치닥거리 속에서 예수님의 사랑을 잃어버리면, 예수님도 떠나고, 예수님의 도움도 전부 사라진다.
그러니 정말 관계에 집중하자.
- 하나님께 영광 돌려 드리자. 하나님을 위해 우리의 모든 것을 포기하자. 하나님만 사랑하자.
- 하나님께서 주시는 일상의 소소한 은혜 속에서, 은혜의 유익에만 빠져 하나님을 외면하지 말고, 하나님을 기억하고 하나님과 관계 맺자.
- 그렇게 될 수 있도록 기도하자.
- 그럴 때 하나님의 관계 회복 뿐만 아니라, 나머지 모든 것을 더하여 받을 것이다.
주제
① 예수님은 하나님과의 관계 회복 가능성을 여시는 '열쇠'시다.
예수님은 십자가 죽음 부활을 통해 하나님과 관계 회복을 시작하셨다.
- 예수님은 인류 전체의 대표로서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한 첫 번째 사람이다.
[고전 15:20] 그러나 이제 그리스도께서는 죽은 사람들 가운데서 살아나셔서, 잠든 사람들의 첫 열매가 되셨습니다.
- 이로서 나머지 인류 전체의 구원 가능성이 시작된 것이다.
따라서 예수님의 죽음 부활이 없었다면, 구원 가능성은 여전히 없는 것이다.
- 이는 인류 중에 하나님과 관계를 맺은 사람이 아무도 없다는 뜻이다.
- 이는 하나님을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는 것이다.
- 이를 다르게 표현하면, 하나님은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 아무도 알지 못하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 것과 같다는 전제 아래서 그렇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의 죽음 부활은, 존재하지 않았던 하나님을 존재하도록 만드신 분이라고 표현할 수 있다.
- 오해 여지가 있는 표현이지만, 신학자들이 많이 쓰는 표현이다.
- 이 표현이 유용한 이유는, 예수님을 절대적인 존재로 격상시키기 때문이다.
- 그만큼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 부활이 중요하다는 뜻이다.
그러나 '열쇠'만으로 사람은 하나님과 관계 회복할 수 없다.
- 가는 길을 모르니까.
② 예수님은 하나님과 사람을 연결시키는 유일한 '길'이시다.
예수님은 사람과 하나님의 관계를 직접 연결시켜주시기까지 하신다.
[요 14:6] 나를 거치지 않고서는, 아무도 아버지께로 갈 사람이 없다.
- 목적지에 열쇠만 있다고 갈 수 없다. 길이 있어야 한다. 그 길이 또 예수님이시다.
예수님은 '구원의 개척자'이심과 동시에, '구원의 인도자'시다.
- 다른 말로, 중보자시다.
- '중보'라는 말이 하나님과 사람 사이를 연결시킨다는 뜻이다.
반대로 말하면, 이는 예수님 말고는 하나님과 연결될 수 있는 다른 방법이 없다는 뜻이다.
- 즉, 예수님을 통하지 않고 알게된 하나님은 미신일 뿐이다.
- 예수님 이전의 하나님은 미완성의 하나님이다.
- 사실상, 옆 마을의 산실령 할아버지와 구분할 수 없다.
- 하나님께 갈 수 있는 길이신 예수님이 나타나신 이후에야 비로소 하나님은 완성되는 것이다.
③ 예수님은 하나님 '그 자체'시다.
예수님은 하나님께 나아가는 길목, 그리고 하나님께 들어가는 문까지도 장악하셨다.
- 이제는 하나님께지도 장악하신다.
- 즉, 예수님이 아니면 하나님의 'ㅎ'자도 알 수 없는 상황이 된 것이다.
예수님이 하나님을 지배한다는 의미가 아니라, 그만큼 예수님의 역할이 커졌다는 뜻이다.
- 예수님은 단순히 '2000년 전에 십자가에 죽고 부활하여 우리를 구원하신 분' 정도가 아니다.
- 예수님은 이 세상에 있는 하나님에 대한 인식을 완전히 뒤집은 분이시며,
- 미완성된 하나님, 다른 표현으로, 하나님이 아닌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만드신 분이시며,
- 이러한 역할을 통해 유일한 참 하나님으로 등극하신 분이시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을 믿는 것만이 하나님을 믿는 것이라고 말하는 것이다.
- 정확하게 말해서, 신앙은 하나님도 믿고 예수님도 믿는 것이 아니다.
- 하나님은 '믿지 않고', 예수님만 믿는 것이다.
- 왜냐하면 그럴 때에만, 참 하나님을 믿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예수님의 역할을 바르게 알아야 한다.
결론
이유는 다르지만, 우리도 제자들과 같이 근심하고 있다.
- 혹은 신앙 생활 열심히 하다가, 세상에서 거지, 왕따 되는 것 아닌가?
- 혹시 신앙 생활 열심히 하다가, 결국 믿음 없어서 지옥 가는 것 아닐까?
- 만약 지금은 신앙 생활 열심히 하다가, 나중에 포기하면 어쩌지?
- 이것 외에도 신앙 때문에 생긴 걱정이 많다.
이런 근심을 할 때,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이것이다.
- 예수님은 우리 생각보다 훨씬 세다는 것이다.
-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할 일 다 하신 후에 쉬고 계시지 않는다.
- 지금도 여전히 한 사람 한 사람 전부 다 챙기고 계신다.
- 잘 들어갈 수 있도록 문도 활짝 열어놓고, 길도 오기 편하도록 넓고 평평하게 만들고, 길 잃지 말라고 간판(표적)도 중간 중간 세워놓고, 오다가 중간에 힘들어서 포기할까봐 계속해서 응원도 하시며, 그것도 모자라 우리를 붙잡고 데려다 주기까지 하신다.
- 구원에 있어서 모든 일을 전부 다 하신다.
그런 측면에서 신앙은 정말 쉬운 것이다.
- 구원 못받을까봐 조마조마할 필요가 전혀 없다.
- 우리의 믿음이 좋아서가 아니라, 예수님의 능력이 너무 세기 때문이다.
- 우리가 지금 어떤 상태에 있느냐와 전혀 상관 없이, 예수님은 우리를 구원하실 충분한 능력이 있으시기 때문이다.
그러나 제자들은 이것을 믿지 못했기 때문에 근심했다.
- 마찬가지 이유로 우리도 근심하고 있다.
- 이렇게 근심하면, 사람은 긴장하고 교감 신경이 자극된다.
- 그러면 시야가 좁아지고 눈 앞에 있는 문제 해결에만 집중하게 된다.
- 문제 이면에 있는 예수님의 사랑을 보지 못한다.
그러니 근심하지 말고, 믿자.
- 예수님께서 우리 구원에 필요한 모든 것을 이미 다 준비해 놓으셨고, 우리 구원을 위해 우리보다도 더 애쓰고 계시다는 것을 믿자.
- 그래서 근심할 필요가 없다는 것을 믿자.
그렇게 믿을 때, 안정 속에서 부교감 신경이 자극된다.
- 그러면 시야가 넓어지고, 문제 해결에 급급하지 않게 되고, 문제 이면에 있는 예수님의 사랑을 볼 수 있다.
- 두려움으로 인한 의무로서가 아닌, 감사로 인한 사랑으로서 신앙 생활을 할 수 있게 될 것이다.
- 그럴 때야 비로소 예수님이라는 분의 인격이 눈에 들어올 것이고, 그분의 깊은 사랑을 느낄 수 있을 것이고, 그제서야 참 관계를 맺을 수 있게 될 것이다.
이것이 본문에서 예수님이 그토록 근심하지 말고 믿으라고 말씀하신 이유이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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