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양교회 팟캐스트 양따양>
미양교회에서 했던 설교를 바탕으로 진솔하게 신앙 경험을 이야기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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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양을 따르는 어린양
예배 대신 예수님, 설교 대신 성경, 건물 대신 사람을 중심으로 하는 미양교회가 만드는 방송입니다.토끼와 개구리가 진솔하게 신앙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어린양과 같이 십자가에 죽고 부활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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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에서 난해한 동시에 중요한 것은 바울이 지적하는 고린도 교회의 죄이다.
- 표면적으로는 ‘음행 사건’이다.
- 교회 내에 근친상간이 있었다.
- 이는 이방인조차 저지르지 않는 심각한 죄였다.
[고전 5:1] 여러분 가운데 음행이 있다는 소문이 들립니다. 자기 아버지의 아내를 데리고 사는 일까지 있다고 하니, 그러한 음행은 이방 사람들 가운데서도 볼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바울이 음행 사건은 큰 관심을 두지 않는다,
- 따라서 음행은 바울이 지적하는 죄가 아니다.
바울이 집중하는 것은 음행 사건에 대한 고린도 교회의 태도이다.
- 고린도 교회는 음행 사건을 보고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 근친상간은 교회의 엄격한 기준이 아니라 이방인의 느슨한 기준에서조차 죄로 규정되는 사건이었다.
- 하지만 아무런 심판을 하지 않았다.
- 바울은 이런 고린도 교회의 태도를 정죄한다.
[고전 5:2] 그런데도 여러분은 교만해져 있습니다. 오히려 여러분은 그러한 현상을 통탄하고, 그러한 일을 저지른 자를 여러분 가운데서 제거했어야 하지 않았겠습니까?
여기까지는 이해하기 쉽다.
- 신앙이 있어도 음행을 저지를 수 있다.
- 죄가 없으면 더 좋겠지만, 이미 일어난 죄는 어쩔 수 없다.
- 죄를 자백하고, 하나님께 회개하여, 앞으로 죄짓지 않기로 결심하면 회복할 수 있다.
- 그렇게 하도록 돕는 것이 교회의 역할이다.
- 그런데 만약 죄인이 회개하길 거부한다면, 교회는 그것에 맞게 대처하면 된다.
- 회개를 요구하고, 거부하면 출교해야 한다.
- 따라서 음행과 같은 죄 자체는 문제가 아니다.
그래서 바울은 음행을 범한 사람을 정죄하지 않는다.
- 교회가 대처해야 할 일이기 때문이다.
- 적절하게 대처하면 문제 될 것이 없다.
오히려 적절하게 대처한 죄는 교회를 바른 길로 인도하는 이정표가 된다.
- 발생한 죄를 보며 경각심을 느끼고,
- 죄에서 멀어지기 위해 교회 전체가 예수님을 더욱 의지하게 된다.
그러나 고린도 교회는 적절하게 대처하지 않았다.
- 회개 요구나 출교 등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이는 심각한 문제이다.
- 음행에 대처하지 않고 놔두면, 사건 당사자도, 교회도 피해를 본다.
- 발생한 죄를 지적하지 않으면 죄 기준이 흔들리고,
- 그러면 모두가 혼란에 빠진다.
- 죄를 짓고도 떳떳한 모습을 보며 죄를 짓고 싶은 충동을 느낀다.
- 그 정도 죄는 괜찮다고 방심하게 된다.
그래서 바울은 음행 사건 자체보다 음행 사건을 대하는 고린도 교회의 태도에 중점을 두는 것이다.
여기까지는 이해하는 데 어려움이 없다.
- 그런데 여기서부터 해석하기 어려운 부분이 나온다.
고린도 교회를 상상해 보자.
- 교회 안에서 누군가 죄를 범했다.
- 그 죄는 명확했고, 오해의 여지 없이 누구나 그것을 죄라고 인식했다.
- 그러나 교회는 죄를 적절하게 대처하지 않았다.
- 그것이 죄라는 것을 알았지만 말이다.
그렇다면 왜 그랬을까?
- 그것이 죄라는 것을 몰랐다면 그럴 수 있다.
- 고린도는 성적으로 개방된 지역이고, 근친상간을 정죄하지 않는 분위기였다면,
- 그래서 근친상간이 죄라고 인지하지 못했다면, 그럴 수 있다.
- 그러나 아니었다.
- 근친상간은 고린도 지역에서도 볼 수 없는 심각한 죄였다.
따라서 본문 해석의 초점은 여기에 있다.
- 고린도 교회는 왜 죄를 적절하게 대처하지 않았을까?
- 왜 죄인에게 아무것도 하지 않았을까?
바울이 본문을 기록한 이유가 바로 이것이다.
- 죄인을 정죄하지 않은 고린도 교회의 죄와
- 고린도 교회가 그런 죄를 범하게 된 근원적인 원인을 밝히는 것이다.
- 그래서 고린도 교회가 죄인을 적절하게 대처하고,
- 혼란에 빠진 고린도 교회가 회복하며,
- 그런 상태에 빠진 근원적인 원인을 깨닫고 돌이키도록 하는 것이다.
그래야 우리도 죄에 대해 어떤 태도를 가져야 하는지 알 수 있다.
그런 관점에서 본문을 보자.
1~2절: 문제 제기 - 음행에 적절하게 대처하지 않은 고린도 교회
바울은 음행을 저지른 자를 적절하게 대처하지 않은 문제를 제기한다.
- 그러면서 곧바로 적절한 대처가 무엇인지 제시한다.
- 그것은 출교이다.
- 바울은 그를 제거해야 한다고 말한다.
[고전 5:2] 그런데도 여러분은 교만해져 있습니다. 오히려 여러분은 그러한 현상을 통탄하고, 그러한 일을 저지른 자를 여러분 가운데서 제거했어야 하지 않았겠습니까?
이를 이렇게 오해하면 안 된다.
- 죄를 저지른 모든 사람을 전부 출교하라는 뜻이 아니다.
- 바울은 고린도후서에서 죄인을 용서하라고 권면한다.
[고후 2:6~8] 여러분 대다수는 그러한 사람에게 이미 충분한 벌을 내렸습니다. (7) 그러니 여러분은 도리어 그를 용서해 주고, 위로해 주어야 합니다. 그 사람이 지나친 슬픔에 짓눌리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합니다. (8) 그러므로 나는, 여러분이 그에게 사랑을 나타내어 보이기를 권합니다.
따라서 출교 요구는 죄를 저지른 모든 사람이 아니라 극단적인 경우에 대한 것이다.
- 추정하건대, 죄를 깨닫고 회개한 사람은 용서하지만,
- 죄를 인정하지 않고 회개를 거부한 사람은 출교했다.
그래서 바울은 출교를 요구한 것이다.
- 음행을 저지른 사람이 회개를 거부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고린도 교회는 그를 출교시키지 않았다.
- 회개를 거부하며 근친상간을 유지하고 있는 사람을 교회 안에서 관계를 맺으며,
- 개인적인 교제와 성찬식과 같은 공적 의식 참여가 계속되었다.
그래서 바울은 편지를 보내어 고린도 교회의 이러한 태도를 정죄하고 교정하려는 것이다.
[고전 5:11] 그러나 이제 내가 여러분에게 사귀지 말라고 쓰는 것은, 신도라 하는 어떤 사람이 음행하는 사람이거나, 탐욕을 부리는 사람이거나, 우상을 숭배하는 사람이거나, 사람을 중상하는 사람이거나, 술 취하는 사람이거나, 약탈하는 사람이면, 그런 사람과는 함께 먹지도 말라는 말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바울이 난해한 말을 한다.
- 죄인을 출교하지 않은 고린도 교회를 두고 ‘교만’하다고 말한다.
- 비슷한 말은 이후 6절에도 반복된다.
[고전 5:2] 그런데도 여러분은 교만해져 있습니다. 오히려 여러분은 그러한 현상을 통탄하고, 그러한 일을 저지른 자를 여러분 가운데서 제거했어야 하지 않았겠습니까?
[고전 5:6] 여러분이 자랑하는 것은 좋지 않습니다. 여러분은 적은 누룩이 온 반죽을 부풀게 한다는 것을 알지 못합니까?
즉, 바울은 고린도 교회가 죄인을 출교하지 않은 근본 원인이 교만, 자랑 때문이라고 봤다.
- 이를 풀어 말하면, 고린도 교회가 죄인을 출교하지 않고,
- 함께 관계 맺고 대화하면서, 성찬식과 같은 공적인 의식까지 함께 참여하는 것을 자랑으로 여겼다는 뜻이다.
어떻게 이럴 수 있을까?
- 죄인을 정죄하지 않고, 교회 안에 그대로 두는 것을 어떻게 자랑할 수 있을까?
- 만약 죄인을 정죄하지 못한 이유가 죄인이 부자이고 그를 통해 얻는 유익이 컸기 때문이라면 이해할 수 있다.
- 그의 죄가 부끄럽지만, 그를 출교했을 때 금전적인 손해가 커서 출교하지 않은 것이라면 이해할 수 있다.
- 옳고 그름을 떠나서 손해를 감수하는 행동은 용기가 필요하다. 그래서 어렵다.
그런데 어떻게 자랑할 수 있었을까?
- 이는 뒤에서 다룰 것이다.
- 이것을 이해하는 것이 본문 해석의 열쇠가 된다.
3~5절: 대처 방안 - 음행한 사람에 대한 출교 권고
바울은 음행 저지른 자의 출교를 단호히 권고한다.
- 바울은 음행을 저지른 자를 이미 심판하였으며,
- 출교 외에 그에게 죄를 깨닫게 할 수 있는 다른 방법은 없다고 판단했다.
- 그러니 그를 당장 사탄에게 넘겨주라고 말한다.
- 그것이 최선이기 때문이다.
[고전 5:3] 나로 말하면, 비록 몸으로는 떠나 있으나, 영으로는 함께 있습니다. 마치 여러분과 함께 있듯이, 그러한 일을 저지른 자를 이미 심판하였습니다.
[고전 5:5] 여러분은 그러한 자를 당장 사탄에게 넘겨주어서, 그 육체는 망하게 하고 그의 영은 주님의 날에 구원을 얻게 해야 할 것입니다.
왜 그것이 최선이냐?
- 바울은 출교해야 할 이유를 두 가지로 나눠서 설명한다.
- 첫째는 5절에서 음행을 저지른 자 개인의 유익을 위해, 둘째는 6~8절에서 교회의 유익을 위해 출교해야 한다는 것이다.
바울이 음행 저지른 자의 출교를 권면한 이유는 단순히 그를 처벌하기 위해서가 아니다.
- 오히려 그를 구원하기 위해서이다.
- 그래서 바울은 ‘그의 영이 구원을 얻게’ 하도록 출교해야 한다고 말한다.
여기서 ‘영’은 인간을 영과 육으로 나누는 이원론적 관점에서 말한 것이 아니다.
- 눈에 보이는 몸과 보이지 않는 영이 분리되어,
- 몸은 망하여 지옥에 떨어지고, 영은 구원받아 천국에 간다는 뜻이 아니다.
- 영과 육이 분리된다는 관점은 성경 어디에도 없다.
- 바울은 인간을 영과 육으로 나누는 이원론적 관점을 부정했다.
- 그러한 주장은 영으로 극단적인 영지주의자의 태도이다.
- 그들은 예수님을 믿으면 육으로 죄를 지어도 구원받을 수 있다고 주장하며 방탕하게 살았다.
따라서 바울이 구분한 영과 육은 한 사람이 가지고 있는 태도를 상징한다.
- 영은 예수님을 믿고자 하는 태도이고,
- 육은 예수님을 믿지 않고 근친상간과 같이 욕망대로 하고자 하는 태도이다.
그런 점에서 ‘육을 망하게’ 한다는 것은 믿음 없는 태도를 제거한다는 뜻이고,
- ‘영은 구원을 얻게’ 한다는 것은 믿음으로 살도록 한다는 뜻이다.
그래서 그 사람 전체가 예수님을 믿도록 하는 것이다.
그런데 그러한 회복을 위해 바울이 처방을 내린다.
- 그것이 바로 ‘사탄에게 넘겨줌’이다.
이 역시 바울이 그를 망하게 하기 위해 사탄과 협력한다는 뜻이 아니다.
- 사탄의 세계, 즉 교회 밖으로 내보내어 출교한다는 뜻이다.
출교가 죄인에게 최선인 이유
그렇다면 어떻게 출교가 그를 회복시켜서 예수님을 믿도록 하나?
- 음행을 저지른 사람이 가진 문제의 본질을 보면 알 수 있다.
- 그의 문제는 음행이 아니다.
- 오히려 출교는 그가 음행에서 멀어지는 데 도움을 주기는커녕,
-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고 마음껏 음행을 하게 할 것이다.
- 따라서 출교는 음행을 막는 데 도움이 안 된다.
그의 문제는 음행 자체가 아니라 음행을 죄로 인식하지 못하는 것이다.
- 따라서 그의 회복을 위한 처방 역시 음행을 막는 것이 아니라, 음행이 얼마나 죄인지 인식하도록 하는 것이다.
- 물론 교회는 그에게 음행이 죄라고 충분히 알려줬을 것이다.
- 그러나 끝까지 그는 거부했다.
- 자신이 죄를 저질렀다는 것을 부정했다.
그렇기 때문에 마지막 남은 극단적인 처방이 필요하다.
- 그것이 출교이다.
- 출교만이 그가 자기 죄가 얼마나 심각한지 깨닫게 할 수 있다.
누군가는 이렇게 반문한다.
- 만약 그가 출교 후 죄를 깨닫지 못하고, 오히려 아무런 방해 없이 더욱 죄에 빠지면 어떻게 하냐?
- 그래서 신앙에서 완전히 벗어나면 어떻게 하냐?
- 출교해서 죄에 빠지는 것보다 교회에 머물며 교회 사람들에게 조금이라도 견제를 받는 것이 낫지 않나?
- 교회에 머물러 있어야 말씀을 들을 기회가 생기고,
- 말씀을 들어야 죄를 깨달을 가능성이 생기는 것 아닌가?
- 따라서 회개를 거부한다고 해도 어떻게든 교회 안에 머물도록 하는 것이 그를 위한 것 아닌가?
이 논리는 많은 현대 교회가 불신자를 교회 회원으로 받아들이는 명분이다.
- 불신자라도 교회 안에 붙잡아 둬야 예수님의 말씀을 들을 수 있고,
- 예수님의 말씀을 들어야 예수님을 믿을 수 있다는 논리이다.
과연 죄인이 죄를 깨닫게 하는데 무엇이 더 올바른 선택일까?
- 죄인을 교회 안에 머물도록 하여 계속 말씀을 듣도록 하는 것일까?
- 아니면 죄인을 교회에서 내쫓아서 자기 죄의 심각성을 느끼도록 하는 것일까?
답은 단순하다.
- 만약 죄인이 죄가 무엇인지, 죄에서 돌이켜 회개가 무엇인지, 예수님을 믿음이 무엇인지 모른다면,
- 계속 교회에 머물도록 하여 알려주는 것이 옳다.
- 그러나 반대로 죄가 무엇인지 충분히 들어 알지만, 그런데도 자기 죄를 부정한다면,
- 마지막 방법으로 출교를 통해 죄를 알려주는 것이 옳다.
그런 점에서 고린도 교회의 상황은 후자였다.
- 음행을 저지른 사람은 교회에서 죄가 무엇인지 충분히 배웠고,
- 음행이 얼마나 죄인지 충분히 경고를 받았지만,
- 몰라서가 아니라 알고서도 자기 죄를 부정한 사람이었다.
- 그는 죄를 깨닫는 유일한 방법이 출교밖에 없는 사람이었다.
그래서 그에게 출교가 최선이었다.
그러나 고린도 교회는 그것을 몰랐다.
- 그래서 출교하지 않고, 그를 그대로 두었다.
- 최선을 다해 그에게 죄를 알려줬지만 실패했고,
- 어쩔 수 없이 그를 그대로 두는 선택을 했다.
- 시간을 두고 말씀에 계속 접하도록 하여 깨닫게 하겠다는 계획이었다.
그래서 바울은 그 계획을 교정하려 하는 것이다.
- 출교하도록 계획을 바꾸도록 하려는 것이다.
아무나 받아들이는 현대 교회
이는 현대 교회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 대부분의 교회는 전도를 명목으로 자기 죄를 부정하고 믿음 없는 사람을 교회 회원으로 받아들인다.
- 게다가 일정 과정을 거치면 직분까지 주면서 교회의 일을 맡긴다.
- 믿음 없는 사람에게 일을 맡기는 명분도 있다.
- 교회 일을 하면서 믿음 있는 사람과 어울리면, 믿음이 생길 수 있다는 논리이다.
- 이러한 이유로 교회는 검증 없이 아무나 교회 회원으로 받아들인다.
하지만 더 중요한 이유가 있다.
- 그렇게 아무나 받아들여 교회 회원이 늘어나면, 교회 권력이 강해지고,
- 헌금 수입이 늘어나기 때문이다.
- 그렇게 교회 권력이 강해지면 더 많은 사람을 끌어모을 수 있고,
- 그러면 교회 수입은 더 늘어난다.
그래서 현대 교회는 교회 문턱을 낮추고, 누구나 간단한 절차를 거치면 교회 회원이 될 수 있다.
- 그리고 교회 회원이 되면, 어떤 죄를 짓더라도 쉽게 출교시키지 않는다.
이에 더하여 교회에 죄를 지적하고 회개하도록 하는 분위기 자체가 없다.
- 누군가 죄를 저지르면, 숨기기에 급급하고,
- 어떻게든 교회 안에 분란과 논쟁이 일어나지 않는 것에만 집중한다.
그러니 죄의 기준이 흐려지고, 믿는 것과 믿지 않는 것의 구분도 희미해진다.
- 용서와 사랑이라는 핑계를 대면서 말이다.
이것이 현대 교회의 현실이다.
그러나 바울의 생각은 다르다.
- 교회 안에서 죄를 엄격하게 다룬다.
- 어떤 이유에서건 자기 죄를 부정하고 믿음 없는 사람을 교회 안에 머물도록 하지 않는다.
- 믿음을 갖도록 한 후에만 교회 회원으로 받아들인다.
- 만약 교회 회원이 믿음을 부정할 때 최선을 다해서 믿음을 가르쳐주지만,
- 그래도 안 되면 출교한다.
- 예수님도 아무리 해도 회개하지 않는 사람을 출교하라고 가르치셨다.
[마 18:15~17] 네 형제가 너에게 죄를 짓거든, 가서, 단 둘이 있는 자리에서 그에게 충고하여라. 그가 너의 말을 들으면, 너는 그 형제를 얻은 것이다. (16) 그러나 듣지 않거든, 한두 사람을 더 데리고 가거라. 그가 하는 모든 말을, 두세 증인의 입을 빌어서 확정지으려는 것이다. (17) 그러나 그 형제가 그들의 말도 듣지 않거든, 교회에 말하여라. 교회의 말조차 듣지 않거든, 그를 이방 사람이나 세리와 같이 여겨라.
그래서 바울과 예수님은 자기 죄를 인정하지 않는 사람을 쫓아내는 것이 최선이라고 생각한다.
- 매정하고 전도에 관심이 없기 때문이 아니다.
- 오히려 정말로 그들이 구원받기를 원하기 때문이다.
- 출교당하여 자기 죄를 돌아보는 것만이 구원받을 길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고린도 교회와 현대 교회는 교회 안에 머물도록 하는 것이 최선이라고 생각한다.
- 다정하고 전도에 관심이 많기 때문이 아니다.
- 정말 사랑해서 그런 것이 아니다.
- 단지 그들이 교회 안에 있을 때 교회 권력이 강해지고 헌금이 많아지기 때문이다.
- 그들이 자기 죄를 깨닫는 것에는 관심이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고린도 교회에 출교를 권고하는 것이다.
영으로 함께 있다는 말의 뜻
그런데 문제가 있다.
- 고린도 교회에서 바울의 부재를 근거로 바울의 권위와 가르침을 부정하는 세력이 생겼다.
- 그래서 바울의 권면이 영향력을 갖지 못할 위기에 있다.
- 추정하건대, 고린도 교회는 바울이 자신에게 관심이 없고, 교회에서 일어나는 일을 전혀 모른다고 단정했다.
- 그래서 바울의 권면은 귀 기울일 필요 없다고 판단했다.
[고전 4:18] 그런데 여러분 가운데는, 내가 여러분에게로 가지 못하리라고 생각하여 교만해진 사람이 더러 있습니다.
그랬기 때문에 바울은 이렇게 말한다.
- 자신은 ‘몸으로는 떠나 있으나, 영으로는 함께 있습니다.’,
- ‘마치 여러분과 함께 있듯이’,
- ‘여러분이 모여 있을 때에 나의 영이 여러분과 함께 있으니’라고 말이다.
이 역시 바울에게 몸과 영을 분리할 수 있는 초능력이 있어서,
- 몸은 그대로 둔 채 영을 고린도 교회에 보낼 수 있다는 뜻이 아니다.
- 영이 함께 있는 것처럼 바울이 고린도 교회의 상황을 면밀하게 파악하고 있다는 뜻이다.
- 그리고 실제로 바울은 고린도 교회 소식을 계속 전해 듣고 있었다.
- 그러니 바울의 출교 권고가 옳다는 뜻이다.
이렇게 바울은 자기 주장을 강화한다.
[고전 1:11] 나의 형제자매 여러분, 글로에의 집 사람들이 여러분의 소식을 전해 주어서 나는 여러분 가운데에 분쟁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6~8절: 근본 원인 지적 - 교회 내의 죄를 과소평가한 고린도 교회
그런데 출교 권고는 단지 음행을 저지른 사람만을 위한 것이 아니다.
- 고린도 교회를 위한 것이기도 하다.
- 이유는 명확하다.
- 그 한 사람의 죄가 교회 전체를 파괴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바울은 누룩 비유를 사용한다.
- 적은 누룩이 온 반죽을 부풀게 하듯, 한 사람의 죄가 교회 전체를 파괴하기 때문이다.
[고전 5:6] 여러분이 자랑하는 것은 좋지 않습니다. 여러분은 적은 누룩이 온 반죽을 부풀게 한다는 것을 알지 못합니까?
이를 이렇게 오해하면 안 된다.
- 교회 안에 죄가 하나도 없어야 한다는 뜻이 아니다.
- 하나라도 죄를 지으면, 전부 출교해야 한다는 뜻이 아니다.
- 죄를 지었더라도, 자백하고 회개하면 괜찮다.
- 바울조차 자신을 죄인 중의 괴수라고 불렀다.
- 바울도 죄가 있었지만, 자백하고 회개했다.
문제는 ‘죄를 부정하는 죄’이다.
- 자기 죄를 인정하는 죄인은 괜찮지만, 자기 죄를 부정하는 죄인은 용납할 수 없다.
- 그런 사람을 출교해야 한다는 뜻이다.
그런 사람이 교회 안에 있으면,
- 죄의 기준이 흔들리고, 동시에 의의 기준도 흔들려서, 결국 예수님의 존재가 훼손된다.
- 그러면 교회 전체가 흔들린다.
- 한 사람의 죄 때문에 말이다.
그래서 아무리 적어도 묵은 누룩을 반드시 치워야 하는 것이다.
- 반죽 전체를 상하게 하기 때문이다.
[고전 5:7] 여러분은 새 반죽이 되기 위해서, 묵은 누룩을 깨끗이 치우십시오. 사실 여러분은 누룩이 들지 않은 사람들입니다. 우리들의 유월절 양이신 그리스도께서 희생되셨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누룩을 제거하고, 죄인을 출교하는 것만이 올바른 유월절 절기를 지키는 것이다.
- 즉, 유월절 양이신 그리스도의 죽음을 바르게 기억하고 따르는 것이다.
- 반대로 만약 죄인을 출교하지 않으면,
- 그래서 죄의 기준이 흔들리고, 교회 안에 죄 인식이 희미해지면,
- 모든 인류의 죄를 위해 죽으신 예수님의 존재 역시 부정되기 때문이다.
- 그래서 바울은 출교를 권고한다.
[고전 5:7~8] ・・・・ 우리들의 유월절 양이신 그리스도께서 희생되셨습니다. (8) 그러므로 묵은 누룩, 곧 악의와 악독이라는 누룩을 넣은 빵으로 절기를 지키지 말고, 성실과 진실을 누룩으로 삼아 누룩 없이 빚은 빵으로 지킵시다.
고린도 교회가 죄인을 자랑한 이유
그런데 바울이 난해한 말을 한다.
- 고린도 교회에게 자랑하지 말라고 한다.
- 이는 고린도 교회가 죄인을 출교하지 않고 교회에 머무르게 한 일을 두고 자랑했다는 뜻이다.
[고전 5:6] 여러분이 자랑하는 것은 좋지 않습니다. 여러분은 적은 누룩이 온 반죽을 부풀게 한다는 것을 알지 못합니까?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을까?
- 죄인이 교회에 있다는 것을 부끄러워하지 않고 자랑할 수 있을까?
- 이것을 알아야 고린도 교회가 처한 실상을 알 수 있고,
- 그래야 바울이 정죄하는 고린도 교회의 실체를 알 수 있으며,
- 그래야 바울이 편지를 쓴 목적을 알 수 있다.
추정하건대, 고린도 교회가 자랑한 핵심은 ‘죄인조차 훼손할 수 없다고 자부하는 지혜’이다.
- 다르게 말해서, 고린도 교회는 자기 지혜에 도취하여 죄에 무관심했다.
- 교회 안에 아무리 죄가 들끓어도 지혜가 있으니 문제없다고 판단했다.
- 지혜만 있으면, 그래서 세상에게 지혜롭다는 칭송만 받으면, 교회를 유지할 수 있다고 믿었다.
- 지혜를 최우선 가치로 여겼고, 그에 따라 죄 문제는 후 순위로 밀려났다.
- 그런데 문제는 그것과 함께 죄를 해결하신 예수님도 밀려났다.
- 물론 고린도 교회는 의도하지 않았겠지만 말이다.
그래서 죄인은 고린도 교회의 지혜를 부각하는 장식이 되었다.
- 죄인이 있음에도 교회의 굳건한 모습은 지혜의 힘이 얼마나 강한지 보여주었다.
그렇기 때문에 바울이 작은 죄가 얼마나 심각한지 말하는 것이다.
- 지혜 따위로 죄를 절대로 이길 수 없다고 말이다.
- 그러니 지혜를 자랑하지 말고, 지혜 믿고 교만하지 말라는 것이다.
- 적은 누룩이 온 반죽을 부풀게 하여 망가뜨리는 것처럼, 죄인 한 사람이 교회 전체를 쉽게 무너뜨릴 수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죄를 강조하는 것은 죄의 강력함을 말하려는 것이 아니다.
- 지혜의 무용함을 말하는 것이다.
- 고린도 교회가 자랑하는 지혜, 믿고 의지하는 지혜가 절대로 구원해 주지 않는다는 것이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이 유일한 구원자이기 때문이다.
- 그런데 그 예수님이 유월절 어린양이 되셔서 죽으셨고,
- 그 죽음으로 인류가 죄에서 해방되었다.
- 그런데도 죄를 하찮게 보는 것은 죄를 위한 예수님의 죽음을 하찮게 보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 죄를 강조하는 것이다.
다시 반복해서 말하지만, 교회 안에 작은 죄도 있어서는 안 된다는 뜻이 아니다.
- 하지만 죄를 저질렀을 때, 죄에 대한 태도가 중요하다.
- 죄를 위해 죽으신 예수님을 믿는다면, 죄를 심각하게 여겨야 한다.
- 죄인이 회개하도록 최선을 다해야 한다.
- 그래도 회개하지 않으면 출교해야 한다.
그러나 고린도 교회는 지혜를 믿고 죄를 하찮게 여겼다.
- 그래서 죄를 위해 죽으신 예수님도 하찮게 여겼다.
이것이 고린도 교회의 실상이고, 이것을 정죄하기 위해 바울이 편지를 쓴 것이다.
9~13절: 오해 대처 - 세상 전부가 아닌 신도를 향한 권고
누구나 치부가 드러나면, 치부를 숨기려 한다.
- 그러다 보면 억지 논리를 만들어내기에 바쁘다.
- 고린도 교회도 억지 논리를 만들어낸다.
바울이 이전에 죄인을 출교하고 사귀지 말라는 편지를 썼다.
[고전 5:9] 내 편지에서, 음행하는 사람들과 사귀지 말라고 여러분에게 썼습니다.
그런데 그 말에 고린도 교회는 이렇게 반박한다.
- ‘아니 그렇다면, 죄를 저지른 사람과는 누구와도 사귀지 말라는 말이야?
- 그러면 세상 누구와도 만나지 말라는 거야?
- 그러려면 세상 밖으로 나가서 혼자 살아야 하잖아.
- 그건 말이 안 되.
- 죄인을 만나서 예수님을 전해야 하자나.
- 그러니까 바울 당신의 말은 옳지 않아.’
그래서 바울이 이렇게 말하는 것이다.
- ‘내가 언제 누구와도 만나면 안 된다고 그랬어?
- 내가 언제 세상 밖으로 나가라 그랬어?
- 내가 만나지 말라고 한 사람은 교회 안에 있는 죄인이잖아.
- 죄인이 세상에 있는 것이 무슨 문제가 되겠어.
- 문제는 죄인이 교회 안에 있는 거야.
- 너희가 죄인을 적절하게 대처하지 않고 가만히 있는 것이 문제야.’
[고전 5:10~12] 그 말은, 이 세상에 음행하는 사람들이나, ・・・・ 전혀 사귀지 말라는 뜻이 아닙니다. 그러려면, 여러분은 이 세상 밖으로 나가야 할 것입니다. (11) 그러나 이제 내가 여러분에게 사귀지 말라고 쓰는 것은, 신도라 하는 어떤 사람이 음행하는 사람이거나, ・・・・ 그런 사람과는 함께 먹지도 말라는 말입니다. (12) 밖에 있는 사람들을 심판하는 것이, 나에게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 여러분이 심판해야 할 사람들은 안에 있는 사람들이 아니겠습니까?
고린도 교회는 교회에서 죄인을 출교하라는 바울의 말을 비틀었다.
- 죄인은 아무도 만나지 말라는 뜻으로 왜곡했다.
- 그 왜곡된 뜻으로 바울의 말을 반박했다.
그래서 바울은 고린도 교회의 이해를 교정한다.
- 죄인은 아무도 만나지 말라는 것이 아니라,
- 교회 안에 한정해서 죄인을 만나지 말라는 것이라고 말이다.
여기서 죄인도 죄를 저지른 모든 사람을 뜻하지 않는다.
- 그렇게 말하면 죄인에 바울도 포함된다.
- 여기서 말하는 죄인은 죄를 저지른 사람 중에 끝까지 자기 죄를 인정하지 않고 회개하지 않는 사람이다.
- 그런 사람은 사귀지 말고 출교하라는 것이다.
[고전 5:13] 밖에 있는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심판하실 것입니다. 여러분은 그 악한 사람을 여러분 가운데서 내쫓으십시오.
결론 - 전도를 자랑하는 현대 교회의 실상
무엇이 고린도 교회를 이렇게 만들었는가?
- 지혜이다.
- 지혜에 가치를 부여했기에, 결국 교회 안에서 근친상간조차 적절하게 처리하지 못했다.
여기서 지혜는 단순한 지혜가 아니다.
- 예수님 외에 가치를 부여하는 모든 것을 상징한다.
- 복음서에서는 성전과 율법이 그것을 상징했다.
- 그래서 바리새인은 율법과 성전을 자랑하는 것 때문에 예수님을 죽인다.
- 고린도 교회도 지혜를 의지했기 때문에 죄를 하찮게 여겼고,
- 죄를 위해 죽으신 예수님까지 하찮게 여겼다.
- 이는 십자가에 죽으신 예수님을 또 죽인 꼴이다.
그렇다면 현대 교회는 예수님을 어떻게 죽이고 있는가?
- 전도로 죽인다.
- 전도에 가치를 부여해서 예수님을 하찮게 만든다.
현대 교회는 전도와 선교를 지상명령이라며 최우선 과제로 여긴다.
- 다른 어떤 것보다 중요하게 여긴다.
그래서 전도를 위해 어떻게든 많은 사람을 교회 안으로 끌어들인다.
- 최소한의 믿음조차 확인하지 않는다.
- 예수님을 믿겠다는 형식적인 고백 하나면 교회의 회원이 될 수 있다.
- 더 나아가 교회 회원을 늘리기 위해 신앙 고백을 강요한다.
그러니 당연하게도 교회 안에 죄인이 넘쳐난다.
- 단지 죄를 저지른 사람이 아니라, 자기 죄를 부정하고 회개하지 않는 사람이 생긴다.
- 그 이전에 아무도 죄의 기준을 제시하고 죄를 지적하지 않는다.
- 죄를 지적하여 누군가의 마음이 불편해지면, 죄 지적한 사람을 조용히 불러서 침묵하라고 타이른다.
- 괜히 죄를 지적당해서 교회를 떠날 것에 대한 우려 때문이다.
이렇게 전도를 위해 죄는 하찮은 것이 되었다.
물론 교회는 할 말이 많다.
- 길 잃은 양 한 마리를 찾기 위해 나머지 모든 양을 버리는 예수님처럼 자신은 전도를 위해 모든 것을 희생한다고 말한다.
- 말씀 따라 죄를 처리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 그보다 한 명이라도 더 예수님을 듣고 믿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것이다.
- 괜히 죄 지적해서 교회를 떠나고 구원받지 못하면, 그 책임을 누가 질 것이냐는 것이다.
- 그러니 어떻게든 교회 안에 머물도록 해서 말씀 듣게 해야 하고,
- 말씀 듣다 보면 어느새 믿음이 생긴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한마디 더 한다.
- 자기 교회는 워낙 건강하고 튼튼해서 믿음 없는 죄인이 와도 문제없다.
- 믿음 좋은 사람들이 교회를 지탱하고 있으니, 죄인을 많이 받아들일 수 있다.
- 그러니 다른 중요한 것이 많지만, 전도를 최우선에 두고 다른 모든 것을 포기해야 한다고 말이다.
이렇게 전도 성과를 자랑한다.
그래서 교회는 역설적으로 전도를 위해 예수님까지 포기한다.
- 죄를 지적하지 않으니, 죄를 위해 죽으신 예수님의 존재 이유를 설명할 수 없다.
- 그러니 예수님이 죽음에서 건지시는 구원자가 아니라,
- 소박한 삶에 복을 주셔서 풍요롭게 살게 하시는 수호천사로 전락한다.
- 그러한 예수님만이 존재 의미를 갖기 때문이다.
그런 현대 교회에게 바울은 권고한다.
- 모든 죄인을 교회에서 출교하라고.
- 적은 누룩이 온 반죽을 망가뜨린다고.
- 교회 안에 믿음 없는 사람은 한 사람도 있으면 안 된다고.
- 교회 안에 믿음 없는 사람이 많다고 자랑하는 것은 교만이라고.
이렇게 말하는 이유는 명확하고 단순하다.
- 예수님만이 유일한 절대 가치이기 때문이다.
- 예수님 외에 어떤 것도 가치 없기 때문이다.
- 예수님을 가장 잘 전하는 도구가 되는 지혜도,
- 예수님을 많은 사람에게 전하는 전도와 선교도,
- 하나님의 규범을 담고 있는 율법도,
- 하나님을 예배했던 성전도 전부 가치 없기 때문이다.
오직 예수님만 가치 있기 때문이다.
물론 바울의 권고가 현실적이지 않다.
- 만약 교회가 믿음 없는 사람을 전부 출교하면, 교회는 유지하기 어려울 것이다.
- 헌금이 없어서 예배당 관리비나 월세를 내지 못할 것이고,
- 예배를 준비하고 보조할 사람이 없어서 기존대로 예배를 유지할 수 없을 것이다.
- 그러면 남은 사람도 전부 떠나고 교회가 사라질 수도 있다.
그러나 그럼에도 바울의 권고를 따라야 한다.
- 성경이 언제나 옳기 때문이다.
- 그리고 믿음은 원래 그런 것이다.
- 자기 존재가 파괴되어 사라지는 것이다.
예수님도 믿음 때문에 자기 존재가 부정당하며 죽으셨다.
- 바울도 베드로도 믿음 때문에 죽었다.
- 따라서 교회도 믿음 따라 살면 사라지는 것이 마땅하다.
- 그것이 믿음의 원리이다.
그렇게 죽으신 후 예수님은 부활하셨다.
- 그래서 그리스도로 등극하셨다.
- 바울과 베드로도 죽은지 2000년이 지난 지금까지 말씀으로 살아 움직인다.
따라서 교회도 그렇게 될 것이다.
- 죄인을 출교하여 무너진 교회를 하나님은 부활시키실 것이다.
- 그래서 교회다운 교회로 등극시키실 것이다.
- 그래서 지금으로부터 2000년을 지나 영원토록 살아 움직이는 교회로 만드실 것이다.
이것이 믿음의 원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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