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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행전

사도행전(24) 12:1-25 베드로의 퇴장을 일으킨 헤롯과 헤롯을 죽이신 하나님

본문은 세 가지 이야기가 연결되어 있다.

① 1-5절: 예루살렘 교회를 박해하는 헤롯

② 6-19절: 헤롯의 박해로부터 교회를 보호해주시는 하나님

③ 20-25절: 하나님에 의해 심판 받는 헤롯

- 세 가지 이야기가 각각 흥미진진하다.

- 그래서 해설서에서는 각 이야기를 개별적으로 해석하고 각각의 주제를 제시한다.

예를 들어,

- 1-5절에서 야고보가 죽고 베드로가 갇힌 것에 기도하는 교회의 모습을 보고, 기도의 능력을 강조한다.

- 6-19절에서 베드로가 천사에 의해 탈옥한 모습에, 하나님의 능력을 찬양한다.

- 20-25절에서 교만한 헤롯이 죽임당하는 모습에, 교만의 위험성을 경고한다.

- 전부 맞는 말이지만, 본문을 이해하는데 전혀 도움이 못된다.

- 나는 이런 메시지를 쓸데 없는 것으로 치부한다.

- 성경 이해에 도움이 안될 뿐만 아니라, 오히려 성경 이해를 방해한다.

- 광명의 천사를 위장한 사탄으로서 신앙을 방해한다.

따라서 언제나 그랬듯, 더 중요한 것은 맥락이다.

- 왜 이 맥락에서 세 가지 이야기가 연결되어서 나오냐는 것이다.

- 각 이야기의 주제보다 각 이야기 사이의 관계가 더 중요하다.

- 왜 그런지는 이제 더 이상 말할 필요도 없다.

먼저 본문의 위치를 보면, 다음과 같다.

- 11장에서는 복음의 중심이 예루살렘의 베드로에서 안디옥의 바울로 옮겨과는 과정을 그렸다.

- 13장에서는 안디옥에서 바울이 중심이 되어 본격적인 선교 여행을 시작된다.

- 그렇기 때문에 본문은 복음의 중심 전환이 끝나는 시점이다.

- 따라서 바울의 등장은 11장에서 충분히 나왔으니, 12장은 베드로의 퇴장이 나올 차례이다.

그런데 베드로의 퇴장만으로 보기에는 본문이 그렇게 단순하지가 않다.

- 헤롯이라는 새로운 인물이 등장한다.

- 베드로 퇴장 이야기와 헤롯 이야기가 엮여 있다.

- 따라서 베드로 퇴장 이야기를 헤롯을 통해 더 풍성하게 하는 것이다.

결론부터 말하면, 헤롯은 베드로 퇴장의 원인을 제공한다.

- 헤롯이 박해의 주역이 됨으로써 베드로 퇴장의 현실적인 이유를 설명해준다.

하지만 여기에서 끝나면, 헤롯의 힘이 너무 커진다.

- 복음의 진전을 방해할 수 있는 힘이 헤롯에게 있다는 오해를 준다.

- 하나님이 사람에게 굴복한 것과 같은 인상을 준다.

그래서 본문은 헤롯을 두 가지로 납작 눌러 버린다.

- 첫째로, 잡혀 있는 베드로를 탈옥시켜서 헤롯의 박해를 무력화시킨다.

- 둘째로, 헤롯 자체를 죽인다.

- 이 부분에서 해설서는 베드로를 탈옥하게 한 교회의 기도나 헤롯을 죽게 한 교만함을 강조하는데, 헛다리 집은 것이다.

따라서 본문 전체를 정리하면 두 가지 메시지를 말한다.

- 첫째는, 베드로의 퇴장이다.

- 둘째는, 베드로를 퇴장하게 한 헤롯의 퇴장이다.

그렇다면 이 두 메시지가 엮여서 어떤 하나의 메시지를 말하느냐?

- 베드로의 퇴장이 하나님의 뜻이라는 것이다.

- 그런데 그 뜻을 이루는 과정에 헤롯이 이용되었다는 것이다.

- 겉보기에는 헤롯이 베드로를 퇴장시킨 것 같다.

- 하지만 하나님은 그 헤롯을 퇴장시킬만큼 강한 능력으로 모든 것을 다스리신다.

- 베드로의 퇴장까지도 말이다.

이러한 원리는 구약에서도 깊이 내재되어 있는 것이다.

- 예레미야는 베발론을 '나의 종'이라고까지 칭하며, 하나님께서 바벨론을 통해 예루살렘을 심판하실 것을 예고한다.

[렘 25:9] 내가 나의 종 바빌로니아 왕 느부갓네살을 시켜서 북녘의 모든 민족을 데려오겠다. 나 주의 말이다. 내가 이렇게 그들을 데려다가, 이 땅과 그 주민을 함께 치게 하며, 그 주위의 모든 민족을 치게 하겠다. 내가 그들을 완전히 진멸시켜, 영원히 놀라움과 빈정거림과 조롱거리가 되게 하고, 이 땅을 영원한 폐허 더미로 만들겠다.

- 하지만 그 바벨론 역시 심판 받게 될 것을 예고한다.

[렘 50:1~2] 이것은 바빌로니아 사람의 땅 곧 바빌론 도성을 두고, 주님께서 예언자 예레미야를 시켜서 선포하신 말씀이다. (2) "너희는 세계 만민에게 이 소식을 선포하고 이 소식을 전하여라. 봉화불을 올려서 이 소식을 전하여라. 숨기지 말고 전하여라. '바빌론이 함락되었다. 벨 신이 수치를 당하였다. 마르둑 신이 공포에 떤다. 바빌론의 신상들이 수치를 당하고, 우상들이 공포에 떤다.'

- 이로써 세상의 진정한 주인은 바벨론이 아니라 하나님이심을 드러내신다.

- 마치 베드로를 박해한 헤롯이 죽임당하듯이 말이다.

이렇게 예루살렘을 중심으로 한 베드로의 사역이 끝나는 것이다.

- 베드로는 복음 전파 과정에서 완전히 사라진다.

- 하지만 토사구팽처럼, 퇴역 장교처럼 비참하게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 마지막까지 베드로의 체면은 살려준다.

- 하나님의 은혜로 멋있게 탈옥하는 모습을 통해 하나님은 여전히 베드로와 함께 하신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후에 베드로는 딱 한 번 더 등장하는데 15장 예루살렘 회의에서이다.

- 바울의 1차 선교 여행 이후 예루살렘에서 이방인 전도에 대한 마지막 논쟁이 일어난다.

- 그때 베드로가 나서서 상황을 정리하고, 결국 이방인 전도가 예루살렘에서 완전히 인정된다.

- 그렇게 이방인 전도의 길을 열어주는 것이 베드로의 남은 마지막 역할이다.


결론

하나님의 뜻은 어떻게 이뤄지는가?

- 세상 속에서, 세상 원리에 따라서, 자연스럽게 이뤄진다.

- 좀 더 한정적으로 말하면, 세상의 주인, 공중의 권세 잡은 자인 사탄에 의해 이뤄진다.

- 마치 예수님의 죽음이 사탄에 이뤄진 것처럼 말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사탄에게 주도권이 있는 것은 아니다.

- 예수님은 부활하심으로 사망 권세, 즉 사탄을 죽이셨다.

- 이로써 예수님이 세상의 실질적인 주인이라는 것이 확증된 것이다.

따라서 세상도 세상 원리에 따라 움직이는 것은 아니다.

- 겉보기에는 세상 원리가 강력해 보인다.

- 자본주의가 모든 것을 다스리는 것 같다.

- 그리고 실제로 전도 역시 자본주의 시스템 안에서 이뤄진다.

- 하지만 그렇다고 세상 원리가 다스리지 않는다.

- 하나님이 다스리신다.

- 단지 하나님께서 세상 원리를 사용하실 뿐이고, 다 사용하신 후에는 버리신다.

- 말 그대로 토사구팽 하신다.

이것이 세상의 본질이다.

- 쓰이고 버려지는 존재이다.

- 이것이 너무 가혹하고 잔인하게 보이지만, 그렇지 않다.

- 우리는 모든 것을 열심히 쓰고 난 다음에 다 쓰면 버린다.

- 옷도 입고 낡으면 버리고, 집도 살다가 낡으면 이사가고, 밥도 다 먹고 남은 찌꺼기는 버린다.

- 그런 것을 버린다고 누구도 잔인하다고 말하지 않는다.

- 모든 것은 내가 잘 살기 위한 수단일 뿐이다.

- 오히려 낡고 찢어진 옷을 보물처럼 계속 가지고 있는 것이 어리석은 것이다.

- 아끼면 똥된다는 말처럼, 필요한 것은 열심히 잘 쓴 후에 빨리 버리는 것이 현명한 것이다.

- 수단은 수단으로 사용할 때 가치 있는 것이지, 수단을 본질로 착각하면 오히려 가치가 없어진다.

하지만 우리는 어리석게도 세상을 쓰고 버리는 존재로 보지 않는다.

- 세상은 나를 위한 수단인데, 우리는 나를 세상이 유지되기 위한 수단으로 전락시킨다.

- 세상은 우리가 구원 받고 하나님과 교제하기 위한 수단이다.

- 그러나 우리는 세상을 본질로 삼고 나를 수단 삼는다.

- 그래서 세상은 지켜지지만, 나는 하나님과 교제도 잃고 구원도 잃고 소멸된다.

- 게다가 결국 세상 역시 하나님에 의해 소멸될 것인데도 말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 세상 속에 살아야 한다.

- 세상 속에서 세상 원리에 영향 받으며 살아야 한다.

그러면 어떻게 되는가?

- 세상에서 일도 하고 돈도 벌고 살 것이다.

- 그런데 거래의 원리가 아닌 관계의 원리에 따라 일을 할 것이다.

- 그러면 결코 치열하게 경쟁하는 남들처럼 돈을 벌 수 없을 것이다.

- 그러면 세상 원리에 따라 가난해질 것이다.

- 그리고 결국 세상에서 도퇴되어 사라질 것이다.

- 마치 베드로가 예루살렘에서 도퇴되어 더 이상 영향력 있는 사역을 할 수 없게 된 것처럼.

- 그리고 마치 예수님께서 세상에서 도퇴되어 죽으신 것처럼 말이다.

이것만이 신앙 생활이다.

- 이것이 아니면 신앙 생활이 아니다.

- 예수님도 세상에서 도퇴되셨는데, 우리에게 무슨 능력이 있다고 세상에서 살아남길 기대하겠는가.

- 세상에서 살아남는 유일한 방법은 사탄에게 복종하는 것 뿐이다.

[마 4:8~11] 또다시 악마는 예수를 매우 높은 산으로 데리고 가서, 세상의 모든 나라와 그 영광을 보여주고 말하였다. (9) "네가 나에게 엎드려서 절을 하면, 이 모든 것을 네게 주겠다." (10) 그 때에 예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사탄아, 물러가라. 성경에 기록하기를 '주 너의 하나님께 경배하고, 그분만을 섬겨라' 하였다."

그러나 우리의 현실은 어떤가?

- 세상에서 도퇴되지 않고 살아남기 위해 발버둥친다.

- 따지고보면, 내가 하는 대부분의 일들이 세상에서 살아남기 위한 것이다.

- 정작 나를 위한 일은 없다.

- 그것이 내가 세상 유지를 위한 수단이 되었다는 것을 증명한다.

물론 세상에서 도퇴되는 것은 무서운 일이다.

- 무서움을 넘어 공포 그 자체이다.

- 그래서 우리는 어쩔 수 없이 세상에 우리 영혼을 갈아 넣는 것이다.

- 그것만이 우리의 공포를 완화시켜주기 때문이다.

하지만 믿음을 갖자.

- 신앙을 가지고 세상에 도퇴될 때, 참 생명이 임한다는 것을.

- 하나님께서 예수님이 죽으셨을 때 부활케 하신 것처럼, 우리도 부활케 하실 것이다.

그 부활의 생명만이 우리의 유일한 가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