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사도행전

사도행전(19) 9:20-31 바울을 움직이게 한 인간적인 원인 - 살해 위협

바울이 회심 후에 하나님의 뜻에 따라 살았다는 것은 말할 필요도 없는 사실이다.

[갈 2:2] 내가 거기에 올라간 것은 계시를 따른 것이었습니다. 나는 이방 사람들에게 전하는 복음을 그들에게 설명하고, 유명한 사람들에게는 따로 설명하였습니다. 그것은, 내가 달리고 있는 일이나 지금까지 달린 일이 헛되지 않게 하려고 한 것입니다.

[행 22:17-8] 그 뒤에 내가 예루살렘으로 돌아와서, 성전에서 기도하는 가운데 황홀경에 빠져 [18] 주님이 내게 말씀하시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는 말씀하시기를 '서둘러서 예루살렘을 떠나라. 예루살렘 사람들이 나에 관한 네 증언을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하셨습니다.

- 두 구절은 모두 바울이 회심 후 첫 번째 예루살렘 방문을 다루는 구절이다.

- 예루살렘에 올라갈 때에도 '계시'에 따라 갔고, 예루살렘에서 나올 때에도 '환상'을 보고 나왔다.

하지만 본문은 이러한 신비한 사건을 인간적으로 표현했다.

[행 9:29-30] 그러나 유대 사람들은 사울을 죽이려고 꾀하였다. [30] 신도들이 이 일을 알고, 사울을 가이사랴로 데리고 내려가서, 다소로 보냈다.

- 앞뒤의 신비한 일은 배제하고 살해 위협이라는 인간적인 사건만 기록했다.

결론부터 말해서, 하나님은 세상 속에서 이렇게 역사하신다.

- 같은 사건 속에 신비한 면과 인간적인 면이 공존하게 하신다.

- 대표적으로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이 그렇다.

- 신비한 면으로 볼 때, 하나님께서 인류의 죄에 대한 대속물로서 죽이신 것인 동시에, 인간적인 면으로 볼 떄, 종교 지도자들의 시기심 때문에 모함을 당해 죽으신 것이다.

- 예수님의 죽음은 누군가에게는 가장 특별한 하나님의 계시이지만, 누군가에게는 하찮은 죄인의 하찮은 죽음이다.

물론 신비하기만 한 일도 있고 인간적이기만 한 일도 있다.

- 그러나 그런 일들은 우리에게 무의미하다.

- 신비하기만 하면 그 사건이 전하는 메시지를 알 수 없고, 인간적이기만 하면 그 사건이 전하는 메시지를 알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 그래서 우리가 관심을 가져야 하는 것은 신비하면서 인간적인 사건이다.

그런데 그 중에 내가 관심 갖고 싶은 것은 사건의 인간적인 면이다.

- 신비한 면이 중요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너무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 바울이 오직 신비한 하나님의 뜻에 따라 살았다는 것은 의심할 수조차 없기 때문이다.

- 그래서 그 점을 좀 비틀어 보자는 것이다. 

- 바울의 인생이 생각만큼 신비하기만 하지 않았다는 것을 말하려는 것이다.

- 인간적이고 구린 부분도 많다는 것을 부각하려는 것이다.

- 예를 들어, 바울이 선교 여행 중에 마가 때문에 바나바와 싸우고 따로 떠나는 것과 같이 말이다.

왜 그래야만 하냐?

- 첫째로, 그래야 바울의 인생을 더 잘 이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 둘째로, 그래야 바울을 인도하시는 하나님의 뜻을 더 잘 이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 셋째로, 그래야 우리를 인도하시는 하나님의 뜻을 더 잘 이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교회는 신앙 생활의 신비한 면을 지나치게 강조해서 우리에게 가르쳤다.

- 균형있게 가르치지 못했다.

- 바울의 인생을 신비한 면에 대해서만 가르쳤다.

- 그래서 신앙을 가지면 바울처럼 신비한 인생을 사는 것으로 착각하게 만들었다.

- 그래서 신비 이면에 있는 시궁창 같은 실제 삶을 감추었다.

- 마치 예수님께서 부활하시기 이전에 죽도록 맞으시고 못박혀 죽으셨다는 것을 감추는 것과 같다.

- 예수님의 부활 이전에 죽음이 있었다는 것을 모르는 신앙이 신앙이 아닌 것처럼 바울의 인생 중에 인간적인 면을 모르는 것 역시 신앙이 아니다.

- 그렇게 균형있게 종합적으로 이해할 때에만 올바른 하나님의 뜻을 그리고 올바른 삶을 알 수 있다.

- 그래서 바울 인생의 인간적인 면을 확대경으로 보는 것이 필요하다.

먼저 초기의 바울의 행적을 간단히 보겠다.

0           예수님 죽음 부활 승천

1년         스데반 순교

2년         다메섹 도상에서 바울의 회심, 그런 후 곧바로 전도

5년         아라비아와 다메섹에서 전도

5년         예루살렘 1차 방문

14년        고향 다소에서 전도

14년        바나바의 초청으로 안디옥에서 전도

14년        예루살렘 2차 방문 - 예루살렘에 헌금 전달

14년        선교 여행 시작

바울의 행적에 대해 가장 많이 오해하는 것이 있다.

- 바울이 선교 여행을 하기 전 14년 동안을 전도 준비 기간으로 생각하는 것이다.

- 그래서 그 기간 동안은 전도하지 않고 기도하고 말씀 보며 전도를 준비했다고 배웠다.

그러나 성경은 다르게 말한다.

[행 9:20] 그런 다음에 그는 곧 여러 회당에서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선포하였다.

- 바울은 회심하자 마자 '곧' 바로 전도한다.

게다가 아라비아와 다메섹에서도 약 3년간 전도한다.

- 근거는 다음 성경 구절이다.

[고후 11:32-33] 다마스쿠스에서는 아레다 왕의 총리가 나를 잡으려고 다마스쿠스 성을 지키고 있었으나, [33] 교우들이 나를 광주리에 담아 성벽의 창문으로 내려 주어서, 나는 그 손에서 벗어났습니다.

- 여기서 아레다 왕은 아라비아의 왕이다.

- 그러니까 바울은 아라비아에서 전도하다가 다메섹으로 도망왔고, 다메섹까지 아라비아의 총리가 잡으러 왔지만 바울은 교우들의 도움으로 간신히 도망간 것이다.

- 만약 바울이 얌전히 앉아서 기도하고 말씀 봤다면 왜 잡으러 왔겠는가.

- 분명히 바울은 전도하다가 소란을 일으켰던 것이다.

또한 다소에 가서도 바울은 약 10년간 전도한다.

- 다소는 바울의 고향인데, 그곳에서 바울이 전도했다는 직접적인 증거는 없다.

- 다만 간접 증거가 있다.

- 그것은 다소에 이미 교회가 있다는 것이다.

[행 15:23] 그들은 이 사람들 편에 아래와 같은 내용의 편지를 써 보냈다. "형제들인 우리 사도들과 장로들은 안디옥과 시리아와 길리기아의 이방 사람 교우 여러분에게 문안합니다.

[행 15:41] 그래서 시리아와 길리기아를 돌아다니며, 모든 교회를 튼튼하게 하였다.

- 바울은 다소에서도 전도했고, 그로인해 교회까지 생긴 것으로 추측된다.

- 이렇게 바울은 14년 동안 전도를 준비한 것이 아니라 계속해서 전도했다.

그런데 이렇게 전도하면 무슨 일이 생기느냐?

- 어딜 가나 살해 협박을 받는다.

[행 9:23] 여러 날이 지나서, 유대 사람들이 사울을 죽이기로 모의하였는데,

[행 9:29] 그리스 말을 하는 유대 사람들과 말을 하고, 토론을 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유대 사람들은 사울을 죽이려고 꾀하였다.

- 바울은 회심한 후 아라비아에서 전도하다가 다메섹까지 도망오는데, 아라비아의 총리가 다메섹까지 쫓아온다.

- 그런데 다메섹에서도 전도하다가 유대 사람들에게까지 미움을 사서 아라비아 총리와 유대 사람들이 합세해서 바울을 죽이려 한 것이다.

- 그래서 어쩔 수 없이 다메섹에서도 오래 머물지 못하고 예루살렘까지 도망한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바울은 예루살렘에서도 오래 머물지 못한다.

- 왜냐하면 또 유대 사람들이 자신들을 배신한 바울을 가만 두지 않기 때문이다.

- 그래서 또 어쩔 수 없이 고향 다소로 도망가는 것이다.

- 다소에서 약 10년간이나 머무를 수 있었던 것은 전도를 살살해서가 아니라 고향 사람들이 친인척이라는 이유 때문에 적어도 죽이기까지는 하지 않았기 때문으로 보인다.

이것이 바울의 현실이다.

- 겉으로 보기에 바울의 인생은 하나님의 뜻에 따라 이곳 저곳을 돌아다니며 멋있게 복음을 전한 것처럼 보인다.

- 그러나 실상은 살해 위협을 피해 이곳 저곳을 떠돌아다닌 현상 수배범과 다를바 없다.

- 하나님의 계시를 받아 장소를 옮긴 것이 아니라, 죽움의 위협을 피하기 위해 옮긴 것이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사람을 인도하시는 방법이다.

- 계시가 없다는 것이 아니라, 계시는 현실에서 도망다니는 것으로 구체화된다는 뜻이다.

- 마치 부활의 기적이 십자가에서 처참한 죽음으로 구체화되는 것처럼 말이다.

하나님께서는 같은 방식으로 우리에게도 계시를 주실 것이다.

- 현상 수배범이 도망가듯 우리 삶을 인도하실 것이다.

- 어쩔 수 없이 신앙을 선택할 수 밖에 없도록 하실 것이다.

- 그런 시궁창같은 현실과 하나님의 계시가 절묘하게 뒤섞여서 우리 인생 가운데 하나님의 뜻이 성취될 것이다.

마지막으로, 우리가 해야할 일은?

- 살해 위협 속에서 열심히 도망가는 것이다.

- 즉, 그때 그때 최선을 다해 합리적인 선택을 해야 한다는 뜻이다.

- 그런 우리에게 하나님은 반복되는 살해 위협을 주셔서 새로운 길로 인도하실 것이고, 그 길 끝에는 구원이 있을 것이다.

- 그러니까 진짜 하고 싶은 말은, 너무 복잡하게 생각하지 말고, 그냥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자는 것이다.

- 그러면 하나님은 살해 위협도 구원도 우리 인생에 가져다주실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