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 틀에서 본문은 중요한 의미가 있다.
- 첫 번째 이방인 전도라는 점이다.
- 이전에는 없었던 일일 뿐만 아니라, 있어서도 안되는 금기 사항이었다.
- 그러한 혁명적인 사건이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힘을 실어 주신다.
- 그것을 위해 주님의 천사, 성령님, 주님의 영이 주도적으로 이끄신다.
- 그리고 전도자 빌립이, 불병거를 타고 승천한 엘리야처럼, 영웅적으로 묘사된다.
- 그런데 이러한 측면은 상식적이고 자연스럽기 때문에 다루지 않겠다.
초점을 두고 싶은 부분은 전도 과정이다.
- 다른 전도 과정은 전부 생략했고, 이사야 53장 말씀만으로 복음의 핵심을 전한다.
[행 8:32-33] 그가 읽던 성경 구절은 이것이었다. "양이 도살장으로 끌려가는 것과 같이, 새끼 양이 털 깎는 사람 앞에서 잠잠한 것과 같이, 그는 입을 열지 않았다. [33] 그는 굴욕을 당하면서, 공평한 재판을 박탈당하였다. 그의 생명이 땅에서 빼앗겼으니, 누가 그의 세대를 이야기하랴?"
요약하면, 두 가지이다.
① 32절: 의인의 잠잠한 죽음
② 33절: 현실의 불의함
- 이사야는 메시야를 예고하면서, 예수님이 불의한 현실 때문에 억울하게 그러나 잠잠하게 죽을 것이라고 말했다.
- 그리고 실제로 그 일이 일어났다.
- 그래서 빌립은 그 말씀을 근거로 죽고 부활하신 예수님을 증언했다.
[행 8:35] 빌립은 입을 열어서, 이 성경 말씀에서부터 시작하여, 예수에 관한 기쁜 소식을 전하였다.
그렇다면 왜 사도행전은 이 부분을 강조했을까?
- 복음을 전하기 위해 이사야 53장 말고도 많은 구절이 있는데 말이다.
이는 스데반의 연설과 이어지기 때문이다.
- 스데반은 성전과 율법에 매여 참 성전과 참 율법이신 예수님을 죽인 이스라엘을 비판했다.
- 그리고 그 이스라엘에 의해 스데반 역시 죽었다.
- 그 결과 복음은 더 이상 이스라엘에 머물 수 없어 이방인을 향해 가는 첫 순간이다.
그런 상황에서 빌립의 전도는 단순한 전도 이상이다.
- 현실을 진단하고 그 현실에 대한 대처 방안을 제안하는 것이다.
33절은 불의한 현실을 고발했다.
[행 8:33] 그는 굴욕을 당하면서, 공평한 재판을 박탈당하였다. 그의 생명이 땅에서 빼앗겼으니, 누가 그의 세대를 이야기하랴?
- 의인이 굴욕을 당하고, 공의(공정한 재판)는 박탈당했다. 생명조차 사라졌다.
- 교회가 놓인 현실이 꽃길이 아니라 흙길이라는 것이다.
- 즉, 교회가 아무리 의롭고 선해도 세상은 교회에게 굴욕을 주고 불공정하게 대할 것이라는 뜻이다.
32절은 그러한 현실에 대한 대처 방안을 제안한다.
[행 8:32] 그가 읽던 성경 구절은 이것이었다. "양이 도살장으로 끌려가는 것과 같이, 새끼 양이 털 깎는 사람 앞에서 잠잠한 것과 같이, 그는 입을 열지 않았다.
- 한 마디로, 아무 소리 하지 말라는 것이다.
- 억울해도 참으라는 것이다.
- 도살장으로 끌려가는 양처럼 말이다.
이러한 제안에는 두 가지 전제가 있다.
- 첫째로, 교회는 세상을 사랑하여 세상의 변화를 위해 헌신해야 한다.
- 들쩨로, 그러나 교회는 변하지 않는 세상의 공격에 희생당해야 한다.
- 한 마디로, 교회는 세상 속으로 들어가야 하지만, 세상과 분리되어 세상의 방법을 거부하고 하나님의 심판을 기대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원리의 가장 이상적인 모델은 예수님이다.
- 예수님은 세상의 몸을 가지고 태어나셔서, 유대인으로써 율법에 순종하셨다.
- 그러나 세상에 저항하며 율법을 비판하셨다.
- 즉, 세상 안에 깊이 들어오셔서 세상에 적응하셨으며 동시에 세상에 저항하셨다.
- 세상을 수용하며 세상과 대립하셨다.
- 세상에 순응하며 세상과 투쟁하셨다.
- 그 결과 세상에 희생당하셨지만, 하나님의 올바른 심판으로 다시 살아나셨다.
- 과정은 슬펐지만, 결과는 기뻤다.
- 우리에게도 같은 기쁨이 올 것을 기대함으로, 현재의 슬픔을 감내하며 도살장의 양처럼 잠잠해야 하는 것이다.
- 우리도 세상에 적응하며 저항하고, 세상을 수용하며 대립하고, 세상에 순응하며 투쟁해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것이 말이 쉽지, 현실성이 없다.
- 현실에 적용해보자. 특히 직업과 육아에.
이렇게 표현해보겠다.
- 돈을 벌기 위해 정글같은 경쟁 세계에 들어가야 하는데, 남들처럼 경쟁해서 이기면 안된다.
- 자녀도 경쟁 세계에 들여보내야 하는데, 남들처럼 경쟁에서 이기도록 가르치면 안된다.
그럼 어떻게 되겠는가.
- 결국 경쟁에서 번번히 져서 돈도 못벌고, 자녀는 주눅이 들 것이다.
- 이것을 본문은 신앙 생활이라고 말하는 것이다.
물론 남들처럼 경쟁하지 않아도 사업이 잘 되고 자녀가 잘 큰다면 얼마나 좋겠냐만...
- 예수님께서 죽음 이후 부활의 기쁨을 누리신 것처럼 말이다.
- 그 부활의 영광이 현실에서도 경험되면, 그래서 인생에서 성공을 경험하면, 그까짓 슬픔 잠잠히 감내할 수 있겠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 성경에서 많은 인물들이 세상에서는 슬픔만 경험하고, 죽은 이후에애 비로소 영광을 경험한다는 것이다.
- 즉, 이것이 말하는 것은, 우리에게 사업 성공과 자녀의 성공이 단 한번도 일어나지 않을 수 있다는 뜻이다.
과연 우리는 이러한 현실을 받아들일 수 있을까?
- 이러한 불의한 현실 속에서 잠잠히 억울한 죽음을 담당할 수 있을까?
- 그 억울한 죽음을 딱 한 번만, 딱 1년만 경험하고 그 이후 삶에는 기쁨이 보장된다면 잠잠할 수 있겠지만,,,
- 억울한 죽음을 생을 마감하는 날까지 수도 없이 반복해서 경험한다면, 과연 우리는 잠잠할 수 있을까?
- 끝까지 남들과는 다른 방식으로 경쟁을 포기할 수 있을까?
나는 신앙 생활 이후 몇 번 억울함을 경험한 것 같다.
- 그러고나니 너무너무 이기고 싶다.
- 어떻게든 복수해서 갚아주고 싶다.
- 내 몸을 불사르는 열정으로 경쟁에 뛰어들고 싶다.
- 그렇게 하지 못하는 나에게 내가 너무 화가 난다.
그래서 더 기도가 필요한 것 같다.
- 다시 세상으로 돌아가, 세상의 방식대로 경쟁하지 않을 수 있도록.
- 눈에는 전혀 보이지 않지만, 확실하게 있는 하나님의 심판을 믿을 수 있도록.
- 그래서 억울함 속에서 끝까지 잠잠할 수 있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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