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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행전

사도행전(14) 7:17-43 구원이 필요할 때 구원자를 거부하는 이스라엘

단락 구분

① 17-22절: 모세의 출생 배경 - 이스라엘 백성의 학대

② 23-29절: 모세의 마흔 살 - 이스라엘 민족으로부터의 거부

③ 30-34절: 모세의 여든 살 - 하나님의 말씀

④ 35-39절: 모세의 소개 - 다섯 가지

⑤ 40-43절: 이스라엘의 거부 - 우상 숭배

본문은 포인트를 어디에 둬야 할까?

- 일단 등장 인물이 셋이다.

- 하나님, 모세, 이스라엘이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신실하심'일까, '모세의 헌신'일까, '이스라엘의 죄'일까?

- 이 세 가지는 나눌 수 없을만큼 서로 연결되어 있다.

- 하나님은 신실하게 약속을 지키시기 위해 모세를 선택하셨다.

- 그래서 모세는 이스라엘을 위해 헌신한다.

- 그러나 이스라엘은 모세를 거부한다.

-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모세를 통해 이스라엘을 구원하신다.

그렇기 때문에 셋 중에 하나를 선택하는 것은 어렵다.

-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금이나마 강조하는 것이 있다.

- 그것은 모세의 헌신과 이스라엘의 죄이다.

- 모세를 통해 예수님이 그리스도라는 것을 드러내고, 이스라엘의 죄를 통해 예수님을 거부하는 현재 성전 지도자의 죄를 드러낸다.

본문은 두 가지 방식으로 말한다.

첫째로, 23-34절의 역사 이야기를 통해서이다.

[행 7:25] 그는 자기 동포가 하나님이 자기 손을 빌어서 그들을 구원하여 주신다는 것을 깨달을 것으로 생각하였는데, 그들은 깨닫지 못하였습니다.

- 모세는 자신이 이스라엘의 구원자임을 자각하고 이스라엘에 헌신하지만, 정작 구원이 필요한 이스라엘은 모세를 거부한다.

[행 7:34] 나는 이집트에 있는 내 백성이 학대받는 것을 분명히 보았고, 또 그들이 신음하는 소리를 들었다. 그러므로 나는 그들을 구원하려고 내려왔다. 이제 내가 너를 이집트로 보내니, 너는 가거라.

- 이스라엘은 여전히 그대로였지만, 모세는 다시 이스라엘을 구원하기 위해 떠난다.

- 마치 예수님께서 이스라엘을 구원하시기 위해 오셨지만 거부하고 죽였던 것처럼,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거부하는 이스라엘을 향해 예수님은 부활까지 해서 다시 오시는 것처럼 말이다.

둘째로, 35-39절의 모세의 소개를 통해서이다.

- 여기서 모세는 다섯 가지로 소개된다.

① 배척당하는 사람

[행 7:35] 이 모세로 말하면, 이스라엘 백성이 '누가 너를 우리의 지도자와 재판관으로 세웠느냐?' 하고 배척한 사람인데,

② 지도자와 해방자

[행 7:35] 하나님께서는 바로 이 모세를 가시나무 떨기 속에 나타난 천사의 능한 손길을 붙여 지도자와 해방자로 세워서 그들에게로 보내셨습니다.

③ 능력자

[행 7:36] 이 사람이 이집트 땅과 홍해에서 놀라운 일과 표징을 행하여 그들을 이끌어냈으며, 사십 년 동안 광야에서도 그러한 일을 행하였습니다.

④ 예언자

[행 7:37] '하나님께서는 나를 세우신 것과 같이, 너희를 위하여 너희의 ⑩동족 가운데서 한 예언자를 세워 주실 것이다' 하고 이스라엘 백성에게 말한 사람이 바로 이 모세입니다.

⑤ 중개자

[행 7:38] 이 사람은, 이스라엘 백성이 광야에서 회중으로 모여 있을 때에, 시내 산에서 그에게 말하는 천사와 우리 조상들 사이에 중개자가 되어서, 산 말씀을 받아서 우리에게 전해 준 사람입니다.

- 즉, 모세는 지도자, 해방자, 능력자, 예언자, 중개자의 역할을 하며 이스라엘 구원을 위해 헌신했다.

- 하지만 정작 구원이 필요한 이스라엘은 구원자를 거부했다.

거부한 이스라엘은 결국 어떻게 되었으냐?

- 구원 이전의 속박 상태로 돌아가길 원했다.

[행 7:39] 그러나 우리 조상들은 그의 말을 들으려고 하지 않았고, 그를 제쳐놓고서 이집트로 돌아가고 싶어하였습니다.

그러한 이스라엘의 바람이 결국 우상 숭배로 표출되었다.

[행 7:41] 그 때에 그들은 송아지를 만들어 놓고서 그 우상에게 희생제물을 바치고, 자기들의 손으로 만든 것을 두고 즐거워하였습니다.

-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자유인으로 만들어서 사랑의 관계를 맺으시려고 하셨지만, 이스라엘은 다시 노예로 돌아가 우상과의 속박 관계를 원했다.

이것이 바로 인류의 원죄이다.

- 사랑의 관계보다 속박 관계를 더 원하는 속성 말이다.

사랑의 관계에서는 어느 누구도 함부로 지배할 수 없다.

- 그래서 지배자 입장에서는 굉장히 불편한 관계이다.

반면에 속박 관계에서는 모두가 전부 지배자가 된다.

- 물론 수천 명을 지배하는 사람과 한 명을 지배하는 사람이 나뉘지만 말이다.

- 예를 들어, 단돈 천원만 있는 사람이라도 편의점에 가면 갑이 될 수 있다.

그래서 인류는 사랑의 관계를 싫어하고, 속박 관계를 사랑하는 것이다.

- 속박 관계 속에서만 사람은 지배자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스라엘은 우상을 찾은 것이다.

- 모세가 사라진 것은 핑게이다.

- 모세가 없는 틈을 타서 본성이 발현된 것이다.

스데반은 이를 통해 이스라엘의 죄를 고발하고 있는 것이다.

- 율법과 성전을 통해 속박 관계를 맺고 있는 것이다.

- 그리고 속박 관계에 있기 때문에, 이스라엘이 모세를 거부했듯이, 예수님을 거부하고 있는 것을 고발하는 것이다.


생각해볼 것

① 우리도 여전히 속박 관계를 원하고 있는가?

- 우리는 자유를 원한다고 말하는데, 정말인가?

- 오히려 속박을 더 원하지 않는가?

② 우리는 구원이 필요한 존재인가?

- 구원이 필요한 이스라엘은 구원자를 거부했다.

- 왜냐하면 자신들에게 구원이 필요한지 몰랐기 때문이다.

- 우리는 어떠한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