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직구조에 대해

어쩌면 세상의 문제는 수직구조에서 오는 것 같다.
단순히 눈에 보이는 것, 강한자가 약한자를 불합리하게 억압하는 것을 말하는게 아니다.
세상에는 보이지 않는 수많은 수직구조가 있다. 우리 모두가 거기에 속해있고, 모두가 수직구조에서 위로 조금더 올라가기 위해 살고 있다.
조금 더 나은 삶, 조금더 편안하고 안락한 삶, 조금더 인정받는 삶을 살기 위해 노력한다.
이것에 대해 문제삼는 사람은 별로 없다. 내가 좀더 잘되고 나아지고 싶어 하는 마음은 나쁜건 아니라고 생각한다. 오히려 나아지기 위해 노력하는 마음은 좋은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정말 그 마음은 좋은 마음일까?
내가 좀더 열심히 일해서 돈을 많이 버는 것, 내가 좀더 열심히 외모를 가꿔서 덜 늙는 것, 내가 좀더 공부를 열심히 해서 좋은 점수를 받는 것, 내가 좀더 선하게 살아서 가치있는 삶을 사는 것, 내가 좀더 신앙생활을 열심히 해서 많은 사람에게 영향력을 끼치는 것…
아무도 이런 것들에 대해 문제삼지는 않는다.
그런데 사실은 이게 문제다. 위 예들에는 보이지 않지만 (남들보다)라는 말이 숨겨져 있다.
내가 좀더 열심히 일해서 (남들보다)돈을 많이 버는 것, 내가 좀더 열심히 외모를 가꿔서 (남들보다)덜 늙는 것, 내가 좀더 공부를 열심히 해서 (남들보다)좋은 점수를 받는 것, 내가 좀더 선하게 살아서 (남들보다)가치있는 삶을 사는 것, 내가 좀더 신앙생활을 열심히 해서 (남들보다)많은 사람에게 선한 영향력을 끼치는 것…
‘남들보다’라는 말이 없다고 우기고 싶겠지만, 찬찬히 생각해보면, 대부분은 ‘남들보다’가 없으면 저 모든 것들이 의미가 없어진다.
아무리 선해보이는 것에서 조차 우리는 서로를 비교하고 무의식에서 우위를 정해버린다. 그래서 나보다 위에 있는 사람은 우러러보고, 나보다 낮은 사람은 무시한다.
결국 자신의 마음에서라도 남들을 짓밟고 한칸이라도 더 올라가려고하는 나쁜 마음일 뿐이다.
수직구조의 세상에선 모두가 그렇게 살아간다. 서로가 서로에게 밟고 올라가기 위한 적일 뿐이다. 그곳엔 사랑은 있을 수가 없다. 살벌하고 무자비한 곳이다. 수직구조를 인식할때 우리는 희망이 없다고 느껴진다.
나도 그렇다. 평생을 수직구조 안에서 살았고, 항상 올라가기 위해 살았다.
외모로 올라가려 했고, 공부로 올라가려 했다. 일로도 올라가려 했고, 신앙으로도 올라가려 했다. 행복한 삶으로도 올라가려했다. 남들보다 가치있는 삶으로도 올라가려했다. 아무리 발버둥을 쳐봐도 나는 내가 가진 모든 것으로 결국 남들을 짓밟고 올라가려 하는 죄인이었다. 내 모든 것이, 내가 선하다 생각했던 것 조차 결국엔 죄일 뿐이다. 성경에서 사랑을 배우고, 사랑하며 사는 삶이 목표가 되었는데, 남들과 다르게 조금 사랑하며 사는 것 같으니 그걸로 또 남들을 짓밟아버린다. ‘나는 (남들보다) 더 사랑하며 살고있어.그러니까 내가 사는 삶이 더 가치있고 더 나은거야’ 라고 말이다.
이것이 세상의 근본적인 문제다.
세상은 모든 것이 수직구조로 되어있고, 사람들은 그 안에서 자신도모르게 우위를 나누며 살고 있다.
하지만 하나님의 세계는 다르다. 하나님은 이 수직구조를 부수기 위해 오셨다. 예수님이 사람으로 세상에 오신 것 부터가 수직구조를 부순 것이다. 우리와 동등하게 사랑하기 위해 오셨다. 하나님은 신이고 우리는 사람으로, 우리에게 위에서 사랑을 베풀어주시기 위해 오신게 아니라, 우리와 동등하게 서로 사랑을 주고 받기 위해서 오신거다.
수직 구조안에서는 여기서 벗어나 수평구조로 가는 것이 불가능해보인다. 그리고 실제로 불가능한게 맞다. 예수님이 없다면. 그런데 하나님이 이 수직구조를 부수셨기 때문에, 우리는 수평관계 안에서 서로 사랑할 수 있다. 애초부터 그것을 위해 하나님이 세상을 지으셨기 때문이다.
우리는 하나님을 오해한다. ‘하나님은 우리가 하나님이 시키시는 대로 살기를 원하신다고…’, ‘하나님은 전지전능하시고 피조물인 우리의 찬양를 받기를 원하신다고’ 이런 생각들은 결국 하나님과 나의 관계 또한 수직구조로 생각하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우리가 하나님 뜻대로 살기를 원하시지만, 하나님 뜻대로 사는 것은 내가 하나님과 사랑의 관계 안에서 주체적으로 능동적으로 사랑하며 사는 것이다. 하나님은 피조물인 우리에게 찬양받기를 원하시지만, 하나님 또한 피조물인 우리를 찬양하길 원하신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관계는 일방적인 것이 아니라 서로 동등하게 능동적으로 주고받는 관계이다.
그럼 어떻게 수직관계에서 벗어나 수평 관계를 맺을 수 있을까?
세상은 어떻게든 한칸 올라가려 발버둥을 치는데… 세상까지 갈 것 없이 나는 지푸라기 하나라도 있으면 그 지푸라기라도 붙잡고 한칸 올라가려하는데 말이다.
먼저는 내가 그 수직관계 안에 있음을 알아야한다. 내가 얼마나 그 수직관계를 좋아하고, 얼마나 그 수직관계에서 남들을 짓밟고 올라갔는지를 알아야한다. (반대로 내가 얼마나 그 수직관계 안에서 밟히고, 그 수직관계를 싫어하는지도)
그리고 수직관계에서 벗어나 수평관계를 시도해봐야한다. 그리고 그게 불가능하다는 것을 느껴봐야한다. 그래서 하나님 없이는 이게 현실적으로 불가능함을 알야야한다.
그 다음은 사실 나도 잘 모른다. 그치만 긍정적으로 시나리오를 써보면 이렇다.
-수평관계의 사랑이 내안에서 불가능함을 느끼고 절망하며 기도한다. 하지만 그럴수록 수평관계에 대한 인식과 소망은 커진다.
-그러는 와중에 나와 세상에 대한 이해가 더 커지고, 다른 사람을 수직관계가 아닌 수평관계로 바라보고 대하는 것을 시도해보며, 절망>나에대한인식>사랑에대한소망>새로운시도 가 선순환으로 일어나며 점차 수직관계에서 벗어나게 된다.
이렇게 되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