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레미야서

예레미야(87) 50:21~46 바벨론 멸망 원인 - 오만함과 우상숭배

안승준 2024. 6. 22. 23:03

<미양교회 팟캐스트 양따양>

미양교회에서 했던 설교를 바탕으로 진솔하게 신앙 경험을 이야기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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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양을 따르는 어린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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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은 바벨론 멸망 원인을 두 가지 제시한다.

- 오만함과

[렘 50:29] 너희는 활 쏘는 사람들을 불러다가 바빌론을 쳐라. 그들이 이스라엘의 거룩한 하나님, 주 앞에서 오만하게 행동하였으니 너희는 바빌론 도성을 포위하고 쳐라. 아무도 빠져 나가지 못하게 하여라. 너희는 그들의 소행대로 보복하여 주어라. 그들이 하였던 것과 똑같이 너희도 그들에게 갚아 주어라.

[렘 50:31~32] 나 만군의 주, 주의 말이다. 너 오만한 자야, 내가 너를 치겠다. 너의 날 곧 네가 벌을 받을 때가 왔다. (32) 오만한 자가 비틀거리다가 쓰러져도, 일으켜 줄 사람이 아무도 없을 것이다. 그 때에 내가 바빌로니아의 성읍에 불을 질러, 바빌로니아의 주변까지 다 태워 버리겠다.

- 우상숭배이다.

[렘 50:38] 가뭄이 땅의 물을 치니, 물이 말라 버린다. 바빌로니아는 온갖 우상을 섬기는 나라이니, 그 땅에 사는 사람들이 그 끔찍스러운 우상들 때문에 미쳐 버릴 것이다.

바벨론은 하나님을 믿지 않고 저항했다.

[렘 50:24] 바빌로니아야, 내가 너를 잡으려고 올무를 놓았는데 네가 그것도 모르고 거기에 걸리고 말았구나. 네가 나에게 대항하였기 때문에, 피하지 못하고 붙잡힌 것이다.

- 하나님을 믿지 않는 존재가 자신만을 최고로 여기며 오만해지는 것과

- 우상숭배를 하는 것은 지극히 자연스럽다.

 

그렇기 때문에 바벨론의 멸망 또한 자연스럽다.

- 하나님께 저항하는 오만한 존재는 멸망할 수밖에 없다.

[렘 50:31~32] 나 만군의 주, 주의 말이다. 너 오만한 자야, 내가 너를 치겠다. 너의 날 곧 네가 벌을 받을 때가 왔다. (32) 오만한 자가 비틀거리다가 쓰러져도, 일으켜 줄 사람이 아무도 없을 것이다. 그 때에 내가 바빌로니아의 성읍에 불을 질러, 바빌로니아의 주변까지 다 태워 버리겠다.

그리고 우상을 섬기는 나라는 결국 자기 바람대로 온 나라가 우상으로 가득 차고,

- 사람이 살 곳은 없게 된다.

[렘 50:38~39] 바빌로니아는 온갖 우상을 섬기는 나라이니, 그 땅에 사는 사람들이 그 끔찍스러운 우상들 때문에 미쳐 버릴 것이다. (39)그러므로 바빌론 도성에서는 사막의 짐승들과 이리들이 함께 살고, 타조들도 그 안에서 살 것이다. 그 곳에는 다시는 사람이 살지 않을 것이며, 그 곳에는 영영 정착하는 사람이 없을 것이다.

 

신앙 생활을 해온 사람이라면, 지금까지의 논리가 자연스럽다.

- 하나님께 거역하여 오만함과 우상숭배를 행하는 이들에게 멸망 심판이 내려지는 것은 당연하다고 여겨진다.

- 오만함 때문에, 우상숭배 때문에 심판받은 이들을 성경에서 많이 찾아볼 수 있다.

하지만 세밀하게 보면 그렇지 않다.

- 오만함과 우상숭배를 연결하면 어색하다.

 

오만함과 우상숭배는 상반된 태도이다.

- 오만함은 자신을 과하게 신뢰하여 다른 존재를 무시하고 부정하는 것이다.

- 그래서 바벨론은 오만하였기 때문에 하나님까지 무시했다.

- 그것이 멸망 원인이었다.

- 오만한 자가 하나님을 부정하는 것은 지극히 자연스럽다.

반면에 우상숭배는 자신을 불신하여 자기 존재를 우상에게 의존하는 것이다.

- 이루고자 하는 바를 스스로 할 수 없다고 믿고,

- 다른 대상이 자기 대신 원하는 바를 이뤄줄 것이라고 믿는다.

- 그래서 원하는 바를 이뤄 줄 대상을 숭배한다.

따라서 오만한 자는 우상조차 무시해야 하고,

- 우상숭배를 하는 자는 하나님까지 두려워해야 한다.

 

그런데 오만하게 자신을 과신했던 바벨론이 왜 우상을 숭배했을까?

- 자신을 그만큼 믿었다면, 우상조차 의지하지 않을 텐데 말이다.

반대로, 자신을 부정하고 우상조차 의지했다면, 왜 하나님은 거부했을까?

- 자신을 믿지 못하여 우상을 의지했다면, 하나님도 의지할 수 있었을 텐데 말이다.

 

논리적으로는 오만함과 우상숭배가 상반된 태도이다.

- 그러나 바벨론뿐만 아니라 현실에서는 오만함과 우상숭배가 연결된다.

- 자기 능력을 믿고 대통령까지 된 사람이라면, 오만하게 다른 누구의 말도 듣지 않고 독불장군이 되어야 하는데,

- 왜 현실에서 대통령은 이상한 도사의 말을 듣는 것일까?

 

오만함과 우상숭배의 관계

오만한 자가 우상을 의지하는 이유는 다음과 같다.

- 오만함의 근거는 자기 확신이다.

- 자신이 누구보다 특별하고 뛰어나다고 믿기 때문에 나오는 태도이다.

그런데 자기 확신을 위해서는 자기 무결함이 전제되어야 한다.

- 만약 자신에게 결점과 약점이 있고, 그것이 심각한 영향을 준다고 믿으면,

- 자기를 의심하게 된다.

- 그러면 자연스럽게 다른 사람의 말에 귀를 기울이고,

- 다른 사람을 존중하게 된다.

- 그래서 오만함은 사라진다.

따라서 오만함은 자기 무결함을 믿는 것에 달려 있다.

- 자기는 결점과 약점이 없기에 다른 누구의 도움도 필요 없고,

- 그렇기 때문에 다른 사람을 무시하고 부정하게 된다.

 

그런데 문제는 세상에 무결한 사람이 없다는 점이다.

- 극단적으로 말해서, 아무리 특별하고 뛰어난 사람도 죽음 앞에서는 도움이 필요하다.

- 사람은 누구나 죽음이라는 결점을 가지고 있다.

- 죽음까지 가지 않더라도, 완전한 오만함 속에서 누구의 도움 없이 혼자 살아갈 수 있는 사람은 없다.

따라서 겉으로 아무리 완벽해 보이는 사람도, 모든 사람에게 무결하다고 인정받는 사람도,

- 자신은 적어도 안다.

- 자신에게 결점이 있고, 연약함이 있다는 것을.

 

그렇기 때문에 오만함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결점을 보완해 줄 대상이 필요하다.

- 자기 내부에서는 절대로 발견할 수 없는 무결함을 외부에서 끌어와야 한다.

그것이 바로 우상이다.

 

그런 점에서 우상의 핵심 역할은 ‘위로’이다.

- 현실에서 자신은 연약하고 허약하다. 결점투성이다.

- 무결하지 못한 자신을 보면 괴롭다.

그런데 우상을 보면 위로가 된다.

- 우상이 자신을 무결하게 해줄 것이라는 믿음이 있기 때문이다.

- 그래서 오만함으로 채워질 일상을 지속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 우상을 의지하는 것이다.

 

그러나 실제로 우상은 아무 능력이 없다.

- 애초부터 우상에게 능력이 있느냐 없느냐는 중요하지 않다.

- 위기에서 구해주지 않아도 되고, 부족한 것을 채워주지 않아도 된다.

우상으로 삼을 대상을 아무렇게나 정하기만 하면 된다.

- 태양이 됐건, 소가 됐건, 나무토막이 됐건, 지푸라기로 만든 인형이 됐건 상관없다.

- 우상을 보면 사람은 반사적으로 마음 안에 허상을 만들어 낸다.

- 그 허상은 위기에서 구해주고 부족한 것을 채워주는 슈퍼 히어로이다.

- 그러면 사람은 즉각적으로 우상에 자기 욕망을 투영하여, 자기 욕망을 성취해 줄 대상으로 삼는다.

슈퍼 히어로는 현실 문제와 내면의 결점을 전혀 해결하지 않는다.

- 단지 슈퍼 히어로가 자신 안에 있다는 믿음 때문에,

- 자신은 특별하고 뛰어나다는 오만함을 지킬 수 있는 것이다.

그것이 우상의 역할이다.

 

한 걸음 더 나아가서, 우상이 형태가 없는 내면의 믿음으로만 있으면 불안정하다.

- 보이지 않기에 믿음이 흔들리기 쉽다.

- 보이지 않으면 마음도 멀어진다(out of sight, out of mind).

그래서 믿음을 강화하기 위해 내면의 우상을 보이는 형태로 바꾼다.

- 게다가 단순히 보이는 것을 넘어 우상이 강하다는 것을 부각하기 위해 화려하게 치장한다.

그것이 우상 신상, 우상 신전, 우상 제사를 만드는 이유이다.

- 우상을 눈으로 볼 수 있어야 믿음을 유지할 수 있고,

- 우상이 화려하고 강해 보일수록 더 강한 믿음을 가질 수 있으며,

- 그 믿음이 강해질수록 자신이 특별하고 뛰어나다는 오만함을 더 잘 유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상은 근원적인 불안을 가진 인간이 자신을 위로하기 위해 인간 스스로 만든 도구이다.

- 자신을 실제보다 더 특별하고 뛰어나다고 속이고 싶은데,

- 자기 실체를 누구보다 잘 아는 자신은 잘 속지 않는다.

- 그래서 자신의 실체가 드러날까 봐 언제나 불안하다.

그 때문에 자신을 더 효과적으로 속이기 위해 우상을 만든다.

- 내가 나를 속이는 것보다 우상이 나를 속이게 만드는 것이 더 쉽기 때문이다.

- 그리고 자신을 더 확실하게 속이기 위해 우상을 더욱 화려하게 만든다.

그래야만 자기 내면의 근원적인 허약함을 외면하고 오만함을 유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

- 비유하자면, 불안한 타조가 모래 바닥에 고개를 파묻어 자신을 위로하듯,

- 거짓말로 숨겨둔 자기 실체가 드러나는 것이 불안해서 우상에 의지하여 자신을 위로하는 것이다.

 

종교의 실체는 마약

이것이 모든 종교가 가진 속성이다.

- 자신을 속여서 불안한 자신을 위로하고,

- 자신을 특별하다고 착각하게 만들어서 근거 없는 자신감을 갖도록 한다.

그 결과 종교는 사람을 나약하고 나태하게 만든다.

- 불안한 자신을 직면하고 인정해야 하는데, 자신을 부정하고 회피하게 한다.

- 그래서 연약함을 인정하고 다른 사람의 도움을 구하던지,

- 아니면 연약함을 극복하기 위해 스스로 노력하던지,

- 극복하지 않더라도, 연약함을 받아들이고 살아야 하는데,

- 종교는 신이 채워줄 것이라는 착각 속에서 아무것도 노력하지 않게 만든다.

- 오직 종교 생활에만 몰입하게 한다.

- 노력하지 않는 자신을 합리화할 구실만 만들어 준다.

 

이점이 종교의 매력임과 동시에 종교의 해악이다.

- 종교는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자신을 특별한 존재로 믿게 만든다.

- 그래서 매력적이다.

하지만 그로 인해 자기 실체를 향해 나아가도록 하기보다,

- 자기 실체를 부정하고 세상이 주입한 욕망에 휩쓸리게 만든다.

- 그러면서도 욕망 성취를 위해 아무 노력도 하지 않게 만든다.

그래서 결국 자기 실체를 잊도록 하여, 살아있지만 죽은 자로 살게 한다.

- 정확하게 마약(아편)이 하는 일이다.

 

돈의 실체도 마약

이는 종교에 국한되는 문제가 아니다.

- 과거에 종교가 하던 일을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돈이 대신하고 있다.

사회는 돈이 슈퍼 히어로처럼 모든 문제를 해결해 줄 것이라고 착각하게 만든다.

- 그래서 모든 사람이 돈을 원하도록 만든다.

- 불안의 원인은 돈이 없기 때문이고,

- 돈이 많아지면, 불안이 사라질 것이라고 스스로 위로하게 만든다.

- 돈만 많아지면, 자신이 특별하고 뛰어난 존재가 될 것이라는 근거 없는 자신감을 갖도록 한다.

그 결과 돈은 사람을 나약하고 나태하게 만든다.

- 불안의 근원적인 원인을 고민하고 찾아가야 하는데,

- 그래야만 그 끝에 진정한 자신을 마주할 수 있는데,

- 모든 불안의 원인을 돈으로 환원시킨다.

- 그래서 근원적인 고민을 하지 못하도록 막는다.

대신에 근원적인 고민을 해야 할 에너지를 온통 돈 버는 것에 쏟아붓게 만든다.

- 진정한 자신을 찾고자 하지 않는 자신을 합리화하게 한다.

- ‘먹고는 살아야 하니까.’라는 거짓 명분으로 말이다.

 

이점이 돈의 매력임과 동시에 해악이다.

- 모든 불안과 고민을 돈으로 빨아들여 현실을 단순하고 쉽게 보도록 만든다.

- 그래서 돈 문제만 해결하면 자유와 평안을 이룰 수 있다는 희망을 갖게 한다.

- 이것이 돈의 매력이다.

하지만 그 때문에 진짜 문제를 보지 못하게 한다.

- 자기 실체로 나아가기를 막고, 세상의 욕망에 휩쓸리게 한다.

- 그래서 살아있지만 죽은 자로 살게 한다.

- 정확하게 마약(아편)이 하는 일이다.

 

우상숭배의 해악 - 착취

오만함과 우상숭배가 연결되는 것이 얼마나 나쁜지는 말할 필요도 없다.

- 오만함도 나쁘고, 우상숭배도 나쁜데,

- 둘이 합쳐지니 얼마나 나쁘겠는가.

그런데 이 두 가지는 나쁘다는 선입견이 너무 강해서 얼마나 나쁜지 아무도 생각하지 않는다.

- 나쁘다고 생각만 하지, 왜 나쁜지 생각하지 않는다.

그래서 오만함과 우상숭배의 해악을 파헤쳐보겠다.

 

오만함을 위한 우상숭배에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 돈이다.

- 우상은 화려하고 사치스러워야 한다.

- 우상이 가진 내면의 능력을 볼 수 없기 때문에,

- 우상이 강하고 유능하다고 직관적으로 느껴지도록 화려해야 한다.

- 볼 수 있어야 마음도 생긴다.

물론 정확하게 말하면, 무능력함을 숨기기 위해 겉이라도 꾸며야 한다.

- 그래서 우상숭배는 필연적으로 사치와 과시가 수반된다.

 

그런데 우상숭배가 오만함을 위한 것이라면, 사치가 배가된다.

- 오만함은 자신의 실체 이상으로 자신을 과신하는 것이다.

- 그래서 그것을 유지하려면 자기 능력 이상으로 자신을 과시해야 한다.

- 그러면 어쩔 수 없이 자기 능력 이상으로 우상을 화려하게 꾸며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오만함을 위한 우상숭배는 엄청난 돈이 들어갈 수밖에 없다.

- 반대로 말해서, 엄청난 돈이 들어가야만 우상숭배가 바른 역할을 한다.

- 그래야 우상을 통해 자신을 과시하여 과신하게 된다.

 

이렇게만 말하면, 우상숭배가 뭐 그렇게 문제냐고 반문할 수 있다.

- 돈은 많이 들지만, 우상숭배를 통해 위로를 받을 수 있다.

- 불안하고 험난한 현실에서 자기 확신을 갖고 자신을 지켜갈 수 있다면 괜찮은 것으로 생각할 수 있다.

그런데 문제는 여기에서부터 시작한다.

 

우상숭배의 본질은 돈인데,

- 특히 자신의 실체 이상의 돈이 필요하다.

- 만약 우상숭배가 자신의 실체까지만 드러내는 것이 목적이라면,

- 우상숭배는 무의미하다.

- 자기 실체만을 드러내는 것은 우상 없이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우상숭배의 목적은 자신과 타인을 속이는 것에 있다.

- 자신이 실제보다 더 뛰어난 존재라고 속일 수 있을 때만 우상은 가치가 있다.

그렇기 때문에 우상숭배에는 자신이 쓸 수 있는 돈보다 더 많은 돈을 들여야 한다.

- 그래야만 자신과 타인에게 자신이 실제보다 더 뛰어난 존재라고 속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자신이 쓸 수 있는 돈보다 더 많은 돈을 쓰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

- 자신이 써야 할 돈을 쓰지 않고 모아서 우상에 쓰거나,

- 다른 사람의 돈까지 끌어와서 우상에 써야 한다.

나는 이 두 가지를 모두 ‘착취’라고 본다.

- 전자는 ‘자신’을 착취하는 것이고,

- 후자는 ‘타인’을 착취하는 것이다.

따라서 오만함과 우상숭배가 나쁜 이유는 착취 때문이다.

- 착취당한 자신과 타인을 고통스럽게 한다.

- 자신과 타인이 마땅히 누릴 수 있는 권리를 빼앗고,

- 평안한 일상을 박탈한다.

이것이 우상숭배 해악의 실체이다.

 

바벨론이 멸망한 이유도 착취 때문이다.

- 오만함과 우상숭배 자체는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

- 누구나 조금씩은 자신을 과신하고,

- 미신이나 샤머니즘에서 완전히 자유로운 사람은 없다.

지나가다가 우연히 똥을 밟거나 새똥을 맞으면,

- ‘아, 재수 없네. 오늘 일진 사납네.’라고 즉각적으로 반응한다.

- 이는 이해할 수 없는 현실을 해석하고자 하는 최소한의 발버둥이다.

- 이렇게 생각했다고 전부 멸망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그런데 바벨론은 생각에만 머물지 않았다.

- 실제의 자신보다 더 뛰어나 보이기를 원했고,

- 그래서 지금 가진 땅보다 더 큰 땅을 갖기를 원했다.

그것을 위해 돈이 필요했고,

- 돈을 얻기 위해서 더 많은 식민지가 필요했다.

- 그리고 더 많은 식민지를 갖기 위해 더 많은 군대가 필요했고,

- 더 많은 군대를 갖기 위해 더 많은 돈이 필요했다.

이렇게 바벨론은 계속 돈이 더 필요해지는 악순환의 고리 속에서 자신과 타인을 파괴했다.

- 오만함과 우상숭배가 아니라 자신과 타인을 파괴하는 것이 진짜 문제이다.

 

결국 그 악순환의 고리가 이스라엘까지 영향을 끼친 것이다.

- 더 많은 돈을 얻기 위해 이스라엘까지 식민지로 삼아 수탈했고,

- 그것도 모자라 이스라엘 백성을 잡아 와서 일까지 시킨다.

그래서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포로로 잡은 것을 바벨론 멸망 원인으로 삼으신다.

[렘 50:11] 나의 소유, 나의 백성을 노략한 바빌로니아야, 너희는 그저 즐거워하고 기뻐서 뛰는구나. 너희는 그저 초원의 송아지처럼 뛰어다니고, 힘센 말처럼 소리를 지르는구나.

[렘 50:33] 나 만군의 주가 말한다. 이스라엘 자손과 유다 자손이 다 함께 억압을 받고 있다. 그들을 포로로 잡아간 자들이 모두 그들을 단단히 붙잡아 두고, 보내 주기를 거절하였다.

 

하나님이 바벨론을 심판하신 이유는 단순히 이스라엘을 공격했기 때문이 아니다.

- 자신과 타인을 착취하면서까지 오만함을 유지하려는 욕망과 의지 때문이다.

- 그러한 상태가 계속되면, 바벨론 주변 나라들이 고통당하는 것은 물론이고,

- 결국 바벨론 자신마저 고통당하기 때문이다.

전쟁이 계속되면, 공격당하는 나라가 피해를 입는 것은 당연하고,

- 공격하는 나라 역시 피폐해진다.

착취의 대상에는 자신도 포함되기 때문이다.

 

결국 바벨론은 오만함을 유지하기 위해 전쟁을 했지만,

- 전쟁 때문에 자신을 잃는다.

- 그래서 멸망한다.

바벨론은 살아있지만, 이미 죽은 자였다.

 

악순환의 고리 속에 있는 우리

이는 바벨론만의 상황이 아니다.

- 우리의 현실이다.

 

우리 역시 계속 돈이 더 필요해지는 악순환의 고리 속에서 자신과 타인을 파괴한다.

- 근원적인 고민과 존재의 본질이 돈으로 수렴한다.

- 돈이 많으면 걱정하는 대부분의 문제가 해결될 것이고,

- 자신이 충분히 가치 있는 존재가 될 것이라고 착각한다.

그래서 돈을 벌기 위해 몰입한다.

- 그 결과 상대적으로 주변 상황과 사람에게 소홀해진다.

- 특히 자기 자신에게 소홀해진다.

그래서 더욱 고독과 허무를 느낀다.

- 고독을 해소하기 위해 주변 사람들에게 돈을 쓴다.

- 허무를 해고하기 위해 자신에게 돈을 쓴다.

그러니 돈이 더 필요해지고, 더욱 돈에 몰입하며,

- 어쩔 수 없이 상대적으로 자신과 타인에게 더욱 소홀해지고,

- 고독과 허무를 더욱 느끼며,

- 고독과 허무를 해소하기 위해 더욱 돈이 필요해진다.

이런 삶은 살아있지만, 이미 죽은 것이다.

 

문제의 핵심은 돈이 아니다.

- 돈 자체는 가치중립적이다.

- 돈은 사람을 행복하게 할 능력도 불행하게 할 능력도 없다.

문제는 자신과 타인을 파괴하면서까지 자기 존재 가치를 과시하고 싶은 욕망이다.

- 돈은 그 욕망에 이용된 도구일 뿐이다.

- 그 욕망에 몰입하느라, 욕망을 위해 돈에 몰입하느라, 진정한 자신이 누구인지 잊게 된다.

이것이 진짜 문제이다.

 

우상과 하나님의 차이 - 자기다움

그래서 우리에게 하나님이 필요하다.

- 하나님은 자기 과시 욕망 때문에 정작 자기를 잃어버린 사람들에게

- 자기를 되찾게 해주신다.

- 더 이상 자신과 타인의 파괴를 멈추고, 자신과 타인을 회복하고 사랑하게 해주신다.

 

사람이 자기 과시 욕망에 빠지는 이유는 하나이다.

- 인간이 가진 근원적 두려움 때문이다.

- 자신에게 결코 해결할 수 없는 결점과 약점이 있기 때문이다.

- 앞서 말했듯, 대표적으로 죽음이다.

근원적 두려움을 회피하고 숨기기 위해 자기를 과시하는 것이다.

- 그것을 위해 돈을 벌고,

- 오만함과 우상숭배에 빠지는 것이다.

- 그로 인해 자신과 타인을 착취하여 파괴하고,

- 자기 파괴로 인한 고독과 허무를 회피하기 위해 더욱 자기를 과시하여,

- 또다시 자기 파괴의 악순환을 반복한다.

그것이 바벨론 멸망의 원인이다.

 

따라서 자기 파괴의 악순환이 일어나는 근본적인 원인은 죽음으로 대표되는 근원적인 두려움이다.

- 이것이 해결되지 않으면, 악순환에서 벗어날 방법은 없다.

여기에서 하나님과 우상이 갈린다.

 

하나님은 근원적인 원인을 해결하신다.

- 사람은 죽음을 존재의 ‘파괴’로 생각하기 때문에 두려운데,

- 하나님은 죽음을 존재의 ‘성취’로 이해하게 하신다.

- 그래서 예수님은 십자가 죽음을 통해 자신이 그리스도라는 것을 성취하시고 확증하셨다.

이것이 하나님이 근원적인 두려움을 제거하는 방식이다.

 

따라서 하나님은 자기 자신을 죽음조차 영향을 줄 수 없는 확고한 존재로 인식하게 하신다.

- 그러니 자신을 회피하고 숨기기 위해 과시할 필요가 없다.

- 그러니 돈도 우상숭배도 필요 없다.

- 필요한 만큼의 돈만 원하게 된다.

그러니 당연히 자신과 타인을 착취하지 않는다.

- 자신과 타인을 있는 그대로 본다.

- 그리고 있는 그대로 용납하고 사랑한다.

 

특히 자신을 사랑하게 한다.

- 많은 결점과 약점이 있지만, 그조차 인정하고 수용한다.

그렇다고 아무 노력하지 않는다는 뜻이 아니다.

- 최선을 다해 부족함을 채우지만,

- 부족함이 있다고 두려워 숨기지 않는다.

이렇게 자기를 만족하니, 삶 전체가 만족스러워진다.

 

그러니 삶을 만족스럽게 하신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을 수 없다.

- 자기 부족함에 대한 두려움이 없으니,

- 하나님께 부족함을 채워달라고 애걸하지 않고,

- 부족함을 채워주시지 않는 하나님을 원망하지 않는다.

따라서 하나님을 도움을 주시는 분이 아니라, 있는 그대로 하나님을 보게 된다.

- 그러니 하나님 내면에 있는 고유한 매력을 발견하게 되고,

- 참된 하나님을 사랑하게 된다.

이것이 하나님이 하시는 일이다.

 

우상 숭배자와 돈 숭배자의 결말 - 자기 상실

반면에 우상은 근원적인 문제를 해결하지 않는다.

- 애초부터 우상은 아무것도 해결할 수 없다.

- 그러니 우상 숭배자는 언제나 죽음이 자기 존재를 파괴할까 봐 두렵고,

- 자신의 결점과 약점이 드러나 자기 존재의 하찮음이 밝혀질까 봐 불안하다.

우상은 그 점을 이용한다.

- 두려움과 불안함을 숨겨주겠다고 약속한다.

- 화려한 치장, 강한 권력, 풍요로운 삶, 뛰어난 능력을 갖도록 해서,

- 누구도 근원적 두려움을 볼 수 없게 하겠다고 한다.

- 그러면서 두려움을 자극하여 우상에서 벗어날 수 없도록 한다.

 

이 우상의 약속이 어떻게 작용하냐면,

- 우상 숭배자의 시선을 옮겨준다.

- 근원적 두려움에 향했던 시선을 화려한 치장, 강한 권력, 풍요로운 삶, 뛰어난 능력을 원하는 욕망으로 옮긴다.

- 그 욕망에 몰입하여 다른 모든 것을 보지 못하게 한다.

욕망이 성취되느냐는 중요하지 않다.

- 실제로 뛰어난 능력을 발휘하여 권력을 얻고 풍요로운 삶을 살게 되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 욕망이 성취되는 경우도 있고 아닌 경우도 있다.

- 욕망이 성취된다고 해서 우상이 능력을 발휘한 것이 아니다.

- 누구나 욕망에 몰입하고 열중하면, 욕망을 성취할 가능성이 높아진다.

- 열 명 중에 한두 명의 욕망만 성취되면, 그 우상은 능력 있는 우상으로 등극한다.

- 그러면 그 우상은 권위를 얻는다.

중요한 것은 욕망에 몰입하면 실제로 근원적 두려움을 잊는 데 효과가 있다는 것이다.

- 그래서 우상을 통해 평안과 안정을 얻는 것처럼 느껴진다.

 

하지만 그 대가로 우상 숭배자는 자기 자신을 잃는다.

- 욕망에 몰입하느라, 진정한 자기 욕구를 외면한다.

- 능력, 권력, 풍요를 좇느라, 자기다움에서 멀어진다.

그래서 결과적으로 우상숭배자는 평안과 안정도 잃는다.

- 욕망을 성취하는 과정에는 몰입을 유지할 수 있고,

- 몰입하는 동안에는 근원적 두려움을 잊을 수 있다.

그런데 욕망을 성취한 후, 혹은 건강을 잃거나 현실의 벽 때문에 욕망을 성취할 기회가 사라졌을 때,

- 그래서 욕망에 몰입할 수 없을 때,

- 다시 근원적 두려움이 밀려온다.

게다가 오랫동안 욕망에 몰입하느라 자기다움에서 더욱 멀어졌기 때문에,

- 자신의 진정한 욕구, 진정한 두려움, 진정한 결점과 약점을 발견할 가능성은 더 낮아진다.

 

그래서 우상숭배자는 비극적으로 죽을 수밖에 없다.

- 자기 전 인생을 후회하며,

- 자신이 왜 고통스러운지도 모른 채 고통에 울부짖고,

-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지도 모른 채 극심한 갈망과 결핍에 몸서리치며 죽는다.

- 또한 자신을 알지 못하고 사랑하지 못하기에,

- 다른 누구의 사랑도 받지 못한 채로 고독하게 죽는다.

이것이 하나님을 떠나 우상을 의지하는 사람의 숙명이다.

- 단지 우상숭배자만의 문제가 아니라,

- 우상 대신 돈을 의지하는 우리 모두의 문제이다.

 

결론 - 우상의 세상에서 벗어날 방법은?

우리는 돈을 숭배하는 세상에 살고 있다.

- 현대의 많은 사람이 고대 시대의 우상숭배를 보며 비웃는데,

- 우리도 그들의 모습과 전혀 다르지 않다.

- 실상은 돈으로 살 수 있는 것은 극히 일부지만,

- 우리는 돈으로 모든 것을 살 수 있는 것처럼 살고 있다.

그리고 우리가 돈을 중요하게 여기는 정도와 비례해서 자기 자신을 하찮게 여기고 있다.

- 자기를 부정하고 자기다움과 멀어지는 것이 우상숭배의 핵심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우상에서 벗어나는 방법은 무엇일까?

- 엄밀하게 말해서, 없다.

- 우상의 무기는 두려움이다.

- 우리에게 결점과 약점이 있다는 두려움에서 시작하여 극단적으로 죽음의 두려움까지,

- 우상은 모든 두려움을 이용하여 우리를 끌어당긴다.

- 자기가 우리를 두려움에서 손쉽게 벗어나게 해주겠다고 유혹한다.

이 유혹이 얼마나 강력하고 효과적인지는 정말 증명하기 쉽다.

- 사람이 돈을 버는 데 사용하는 시간을 조사하면 당장 나온다.

- 대부분의 사람은 인생 대부분을 돈을 버는 데 쓴다.

- 이는 대부분의 사람이 돈이라는 우상의 유혹에 완전히 넘어갔다는 것을 증명한다.

그만큼 우상은 강하고 효과적이다.

 

따라서 우상에서 벗어나는 방법은 하나밖에 없다.

- 모든 두려움에서 벗어나는 것이다.

- 특히 죽음의 두려움에서 말이다.

그렇기 때문에 우상에서 벗어날 방법이 없다고 말한 것이다.

- 죽음의 두려움에서 벗어날 방법도 없기 때문이다.

- 그렇기 때문에 많은 사람이 돈에 매인 것이다.

- 그들이 어리석기 때문에 우상에 빠져있는 것이 아니라,

- 우상이 그만큼 강하기 때문에 그렇다.

 

그런데 현재까지 죽음의 두려움에서 벗어날 수 있는 가장 합리적이고 유일한 방법은 하나님뿐이다.

- 하나님만이 부활을 통해 죽음을 극복하는 능력을 전면에 내세우신 분이다.

- 그래서 죽음을 통해 우리를 유혹하는 우상에 맞설 수 있는 분이다.

따라서 하나님만이 우리에게 우리를 되찾아주실 분이다.

- 자기를 잃은 상실의 고통에서 벗어나,

- 자기를 있는 그대로 용납할 용기를 주실 분이고,

- 자신을 진정으로 사랑할 수 있게 하실 분이며,

- 그 사랑으로 이웃과 만물과 하나님까지 사랑하게 하실 분이다.

그래서 세상을 사랑으로 연결하여 하나 되게 하실 분이다.

 

우상은 자기를 부정하게 하고,

- 자기를 부정하는 마음으로 서로를 부정하게 하여,

- 결국 자신과 타인을 파괴하게 한다.

그러나 하나님은 자신과 타인을 긍정하게 하여,

- 자신과 타인을 회복하게 한다.

그래서 자신과 온 세상과 하나님까지 회복시키는 것이 하나님의 목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