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린도전서

고린도전서(10) 6:1~11 지혜로운 사람이 하나도 없었던 고린도 교회

안승준 2024. 12. 28. 23:30

<미양교회 팟캐스트 양따양>

미양교회에서 했던 설교를 바탕으로 진솔하게 신앙 경험을 이야기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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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양을 따르는 어린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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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에서 고린도 교회의 문제는 단순하다.

- 신도 사이에 갈등이 있었다.

- 그 갈등은 복잡하고 심오한 영적인 일이 아니라,

- 일상에서 일어난 작은 일이었다.

- 추정하건대, 속여서 재물을 빼앗는 일, 즉 사기 사건이 일어났다.

[고전 6:4] 그러니, 여러분에게 일상의 일과 관련해서 송사가 있을 경우에, 교회에서 멸시하는 바깥 사람들을 재판관으로 앉히겠습니까?

[고전 6:8] 그런데 도리어 여러분 자신이 불의를 행하고 속여 빼앗고 있으며, 그것도 신도들에게 그런 짓을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피해자는 가해자를 세상 법정에 고소했다.

- 피해자는 가해자에게 손해 배상을 요구했지만, 가해자는 거부했다.

- 그래서 소송까지 이어졌다.

[고전 6:1] 여러분 가운데서 어떤 사람이 다른 사람과 소송할 일이 있을 경우에, 성도들 앞에서 해결하려 하지 않고 불의한 자들 앞에 가서 재판을 받으려 한다고 하니, 그럴 수 있습니까?

[고전 6:4] 그러니, 여러분에게 일상의 일과 관련해서 송사가 있을 경우에, 교회에서 멸시하는 바깥 사람들을 재판관으로 앉히겠습니까?

[고전 6:6] 그래서 신도가 신도와 맞서 소송을 할 뿐만 아니라, 그것도 믿지 않는 사람들 앞에 한다는 말입니까?

 

이에 대해 바울은 고린도 교회를 세 가지로 나눠서 정죄한다.

- 첫째로, 1~6절에서 우선 정죄 대상은 교회 전체이다.

- 사기 사건을 교회 안에서 해결하지 못하고, 교회 밖 세상 법정에서 소송하도록 한 교회의 무능을 정죄한다.

- 둘째로, 7절에서 사기 사건의 피해자를 정죄한다.

- 피해를 당했더라도 속아주고 그냥 넘어가 주라고 권고한다.

- 셋째로, 8~10절에서 사기 사건의 가해자를 정죄한다.

- 속여 빼앗는 일을 특히 신도를 상대로 하는 사람은 구원받지 못한다고 경고한다.

그런데 바울은 특히 교회에 초점을 두고 정죄한다.

- 순서도 가정 먼저이고, 분량도 가장 길다.

바울의 논리는 이렇다.

- 만약 교회가 교회답게 자기 역할을 했다면, 이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 사기 사건이 일어났을 때, 피해자와 가해자를 불러서 옳고 그름을 구분해 주어야 했다.

- 그래서 피해자와 가해자의 갈등을 해결하고 관계를 회복시켜야 했다.

- 그것이 교회의 핵심 역할이다. 

만약 그랬다면, 피해자는 가해자를 교회 밖 법정에 소송하지 않았을 것이다.

- 가해자를 진심으로 용서하고 사랑의 관계를 회복했을 것이다.

- 그러니 자연스럽게 속아서 입은 손해조차 보상을 요구하지 않았을 것이다.

- 그러면 손해 배상을 위해 소송하는 일도 없었을 것이고,

- 세상을 심판해야 할 교회가 세상에 심판당하는 수치스러운 일도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게다가 만약 교회가 애초부터 자기 역할을 했다면, 가해자가 사기 사건을 일으키지 않았을 것이다.

- 교회가 예수 그리스도의 절대 가치를 제시하고, 나머지 모든 것이 무가치하다는 것을 알려줬다면,

- 그래서 재물로는 만족할 수 없고, 예수 그리스도로만 충만할 수 있다는 것을 믿도록 했다면,

- 그래서 재물에 대한 욕망에서 벗어나도록 했다면,

- 굳이 사랑하는 신도의 재물을 빼앗겠다는 마음을 먹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 이 모든 것을 교회는 실패했다.

- 사기 사건이 일어난 이후에도 자기 역할을 하지 못했다.

- 그래서 피해자가 교회 밖 법정에서 소송을 제기했다.

- 게다가 사기 사건이 일어나기 이전에도 자기 역할을 하지 못했다.

- 그래서 가해자가 탐욕을 갖고 사기 사건을 일으켰다. 

 

따라서 바울은 사기 사건의 근본 원인이 교회에 있다고 본다.

- 이는 지난 본문과 맥을 같이 한다.

- 지난 본문에서도 교회는 교회 안에서 일어난 근친상간에 대해 아무런 대처를 하지 않았다.

- 그로 인해 마치 작은 누룩이 전체 반죽을 망가뜨리듯 개인의 죄가 교회 전체를 망가뜨릴 것이라고 경고했다.

- 그러니 출교하라고 권고했다.

본문에서 역시 고린도 교회는 사기 사건에 대해 아무런 대처를 하지 않았다.

- 그로 인해 세상을 심판해야 할 교회가 세상에 심판당하는 수치스러운 일까지 일어났다.

도대체 이 지경이 되도록 교회는 뭐하였을까?

- 교회가 망가질 위기에 처하고, 교회의 권위가 실추되기까지 왜 교회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을까?

- 무엇이 교회가 자기 역할을 수행하지 못하도록 막았을까?

이 관점으로 본문을 보자.

 

1~6절: 교회를 향한 정죄

바울은 교회를 향해 여덟 개의 질문을 연속해서 쏟아낸다.

① 어떻게 성도 간의 문제를 불의한 자들 앞에 가서 재판할 수 있습니까?

-------------------------

② 성도가 세상을 심판하리라는 것을 알지 못합니까?

③ 교회가 작은 사건 하나를 심판할 능력도 없습니까?

④ 교회가 천사도 심판하리라는 것을 알지 못합니까?

⑤ 하물며 교회가 세상 일을 심판하리라는 것을 알지 못합니까?

-------------------------

⑥ 일상의 일에 대한 판단조차 교회에서 멸시하는 바깥 사람들에게 받아야겠습니까?

⑦ 교회에 성도 사이의 문제를 해결해 줄 지혜로운 사람이 없습니까?

-------------------------

⑧ 성도 사이의 소송을 믿지 않는 사람들 앞에서 한다는 말입니까?

결론부터 말해서, 여덟 개의 질문은 하나이다.

- 바울은 교회 성도 간의 소송을 세상 법정에서 했다는 것을 정죄한다.

- 교회 문제를 스스로 해결하지 못한 것이 정죄의 핵심이다.

- ①과 ⑧에서 그것이 명확하게 드러난다.

- 나머지는 그것의 근거이다.

따라서 질문의 구조는 다음과 같다.

- ①과 ⑧은 전체를 포괄하는 질문이고,

- ②, ③, ④, ⑤에서 교회가 가진 본질적인 능력을 제시하고,

- ⑥, ⑦에서 능력을 전혀 발휘하지 못하는 교회를 정죄한다.

 

②, ③, ④, ⑤는 교회의 능력을 제시한다.

- 교회라는 존재가 세상과 천사까지 심판할 능력이 있다는 것이다.

- 여기서 세상과 천사는 육의 존재와 영의 존재 전체를 상징한다.

- 즉, 본질적으로 교회는 하나님과 동등한 존재로서, 영과 육을 비롯하여 세상 만물을 다스리고 관리하는 존재이다.

- 종말에 하나님과 관계를 완전히 회복한 교회에게 하나님은 능력과 권위를 온전히 공유하신다.

- 그래서 하나님은 모든 일을 교회와 공유하시고, 교회는 하나님이 하시는 모든 일에 참여할 것이다.

[계 20:4] 내가 또 보좌들을 보니, 그 위에 사람들이 앉아 있었는데, 그들은 심판할 권세를 받은 사람들이었습니다. 또 나는, 예수의 증언과 하나님의 말씀 때문에 목이 베인 사람들의 영혼을 보았습니다. 그들은, 그 짐승이나 그 짐승 우상에게 절하지 않고, 그들의 이마와 손에 그 짐승의 표를 받지 않은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살아나서, 그리스도와 함께 천 년 동안 다스렸습니다.

따라서 교회가 ‘아주 작은 사건 하나’, ‘세상 일’을 심판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하다.

- 세상과 천사까지 심판하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고전 6:2~3] 성도들이 세상을 심판하리라는 것을 여러분은 알지 못합니까? 세상이 여러분에게 심판을 받겠거늘, 여러분이 아주 작은 사건 하나를 심판할 자격이 없겠습니까? (3) 우리가 천사들도 심판하리라는 것을 알지 못합니까? 그러한데, 하물며 이 세상 일이야 말할 나위가 있겠습니까?”

 

그러나 고린도 교회는 그렇게 하지 못했다.

- 그래서 바울은 ⑤, ⑥에서 그런 교회를 정죄한다.

- 영과 육을 포함한 세상 만물을 하나님과 함께 다스리고,

- 죄로 인해 영원한 죽음에 이른 인류를 영원한 생명에 이르게 할 만큼 강한 권능을 가진 교회가 사소한 사기 사건조차 제대로 처리하지 못했다.

그래서 교회 안에 갈등이 생겼고,

- 그 갈등을 해결하기 위해 세상 법정에 손을 내밀고 있다.

- 죄로 인해 영원한 죽음에 이른 바로 그 세상에 말이다.

- 특히 자신의 지혜를 자랑하며 교만에 빠진 그 교회가 말이다.

- 바울은 이를 지극히 부끄러운 일이라고 말한다.

[고전 6:4~5] 그러니, 여러분에게 일상의 일과 관련해서 송사가 있을 경우에, 교회에서 멸시하는 바깥 사람들을 재판관으로 앉히겠습니까? (5) 나는 여러분을 부끄럽게 하려고 이 말을 합니다. 여러분 가운데는, 신도 사이에서 생기는 문제를 해결하여 줄 만큼, 지혜로운 사람이 하나도 없습니까?

 

고린도 교회의 본질적인 문제 - 갈등 조정 부재

표면적 의미로만 볼 때, 바울은 소송 제기 자체에 초점을 두고 있다.

- 교회 안에서 생긴 문제를 세상에서 재판받으려 한다는 사실을 지적한다.

- 그러나 내면에 깔린 바울의 의도는 그 이상이다.

- 소송 사태는 문제의 본질을 비추는 작은 등불일 뿐이다.

그런데 만약 본문을 소송 제기를 문제 삼는 것으로만 한정해서 이해하면 억울한 피해자가 생긴다.

- 교회 안에서 믿던 성도에게 속아서 사기를 당한 피해자가 생겼다고 해보자.

- 성도라는 이유로 믿었기에 피해가 더욱 컸다.

- 그래서 교회에 알리고 피해 복구를 위한 도움을 구했다.

- 그러나 제대로 도와주는 사람이 없었다.

- 그래서 어쩔 수 없이 경찰에 신고하려 했다.

- 그런데 그때 교회가 본문을 근거로 피해자의 신고를 방해할 수 있다.

- 경찰에 신고하는 것은 교회를 부끄럽게 하는 것이고, 믿음에 반하는 행동이니 하지 말라고 강요할 수 있다.

- 그러면 피해자는 아무런 사과도 받지 못한 채 고스란히 손해를 떠안고,

- 교회를 당당하게 다니는 가해자를 마주치며 2차 가해까지 당할 수 있다.

이것이 본문을 표면적으로만 이해할 때 발생하는 문제이다.

- 따라서 바울의 의도는 단지 소송 제기 자체에 있지 않다.

 

소송 사태를 한 단계 내면으로 들어가 보자.

- 교회는 피해자가 소송을 세상에 제기하지 않도록 애초부터 갈등을 조정해야 했다.

- 사기 사건이 일어나자마자 가해자와 피해자를 불러서 사건의 전말을 이해하고 적절하게 처리해야 했다.

- 가해자가 진심 어린 사과와 함께 일정 정도의 손해를 보상하도록 하고, 

- 피해자도 잘못을 뉘우친 가해자를 용서하고 사랑하도록 인도해야 했다.

- 그래서 피해자가 억울하지 않도록 하는 동시에 가해자를 미워하지 않도록 하고,

- 가해자가 자기 잘못을 깨닫고 사죄하도록 하는 동시에 사기를 칠 수밖에 없었던 속 깊은 사정을 헤아려야 했다.

- 그래서 사기 사건을 통해 가해자와 피해자가 서로의 마음을 더 깊이 공감하고 사랑할 수 있도록 해야 했다.

이것이 바로 죄의 역할이다.

- 죄는 단지 사람 사이의 관계를 파괴하고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지도록 하는 것만이 아니다.

- 죄는 자신과 상대방의 연약함을 이해하고 공감하는 계기를 마련한다.

- 그래서 죄를 깨닫고 회복하면, 이전보다 더 깊은 사랑의 관계를 맺도록 한다.

이 때문에 하나님은 죄를 창조하셨다.

- 멀쩡한 관계를 파괴하기 위해서가 아니다.

- 죄가 없으면 사람의 연약함도 없고,

- 연약함이 없으면 서로 돕고 배려할 필요도 없으며,

- 그러면 서로 이해하고 공감할 필요도 없고,

- 그러면 더욱 깊은 사랑의 관계를 맺을 필요도 없다.

- 따라서 죄가 있기 때문에 더 깊은 사랑의 관계를 맺을 가능성이 생긴다.

- 그래서 하나님은 선악과를 만드신 것이다.

 

그러나 고린도 교회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 세상으로 소송을 제기할 때까지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 한 성도가 사기 죄를 범했고, 다른 성도가 세상에 소송을 제기하는 죄를 범할 때까지 교회의 역할을 하지 않았다.

- 소송 제기보다 이것이 더 본질적인 문제이다.

 

고린도 교회의 더욱 본질적인 문제 - 사랑 부재

그런데 교회의 문제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 한 단계 더 들어가야 한다.

세상에 소송하지 않도록 미리 조정하는 것도 중요하다.

-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애초부터 사기 사건이 일어나지 않도록 대비해야 했다.

 

사기 사건이 왜 일어났나?

- 결국 욕망 때문이다.

- 원하는 것이 있는데, 정직한 방법으로 얻기 힘들기 때문에, 

- 속여서라도 얻기 위해 사기 행위가 일어난다.

따라서 욕망이 없으면, 더 정확하게 말해서, 욕망이 절제되면 사기 사건은 일어나지 않는다.

 

그렇다면 욕망은 왜 생기나?

- 사람이 가진 인식 체계, 가치 체계 안에서 그것을 가치 있다고 판단하기 때문이다.

- 가치 있기 때문에 원하고, 원하기 때문에 욕망하며, 욕망하기 때문에 속여서 빼앗는다.

따라서 욕망을 절제하기 위해서 가치 체계가 바뀌어야 한다.

- 인식 체계가 예수님만 가치 있고, 다른 모든 것은 가치 없다고 판단하는 체계로 바뀌어야 한다.

- 그러면 주변에서 아무리 돈, 명예, 안정, 인정이 좋다고 해도, 

- 그래서 때로는 그것에 대한 욕망이 생긴다고 해도,

- 흔들리지 않고 욕망을 절제할 수 있다.

- 그것보다 더 귀한 예수님이 있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교회가 해야 할 일은 인식 체계, 가치 체계 변화이다.

- 예수님만이 유일한 절대 가치이고, 나머지는 전부 가치 없다는 것을 알려줘야 한다.

- 그것이 생각의 변화, 삶의 변화로 이어질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

- 물론 이 변화는 성령의 영역이다.

- 그러나 성령은 교회를 통해 일하신다.

 

하지만 교회는 그 일을 하지 않았다.

- 가치 체계를 변화시켜 예수님만이 절대 가치라는 것을 알려주지 않았다.

- 그래서 예수님 외의 다른 것이 얼마나 가치 없는지 알려주지 않았다.

그러니 당연히 욕망을 절제할 수 없다.

- 돈, 명예, 안정, 인정을 원할 수밖에 없고,

- 그것을 얻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게 된다.

그래서 속여서 빼앗는 사기 사건까지 일어날 수밖에 없다.

 

교회 역할의 본질

만약 교회가 역할을 충실히 했다면,

- 그래서 예수님만이 유일한 절대 가치이고, 나머지 모든 것은 가치 없다고 알려줬다면,

- 돈, 명예, 인정, 안정 욕망에 흔들리지 않았다.

- 그러면 욕망 성취를 위한 사기 사건은 일어나지 않았다.

또 다른 관점에서 예수님만이 절대 가치라는 것을 믿었다면,

- 예수님의 말씀 따라 이웃을 사랑했을 것이고,

- 그랬다면 피해자는 가해자를 사랑하여 그의 욕구에 깊은 관심을 가졌을 것이다.

- 그래서 가해자가 어떤 욕망에 쉽게 흔들리는지, 현재 어떤 결핍 때문에 괴로워하는지 미리 알았을 것이다.

- 그래서 욕망에 흔들려서 사기 사건을 일으키기 전에 그의 결핍을 채워주고 흔들리는 마음을 다잡아주었을 것이다.

만약 그랬다면, 가해자는 공감받은 기쁨에 사기 치기는커녕 피해자를 사랑하게 되고,

- 피해자는 사랑받은 기쁨에 가해자를 더욱 사랑하게 되었을 것이다.

- 그래서 교회는 사랑으로 견고해지고, 예수님의 절대 가치는 더 강력하게 전해졌을 것이다.

- 사기 사건이 일어날 가능성 자체가 사라진다.

 

이것이 바로 교회의 역할이다.

- 이 과정을 통해 교회는 세상을 다스리고 심판할 자격까지 얻는다.

- 다스리고 심판한다는 말을 들으면, 직관적으로 교회가 절대 군주가 되어 세상을 쥐락펴락하는 모습을 상상한다.

그러나 교회의 통치 방식은 그것이 아니다.

- 사랑과 공감, 이해와 배려를 통한 가르침과 인도함이다.

- 그래서 세상 모든 사람이 교회의 사랑에 감동하여 전부 서로 사랑하게 되는 것이다.

- 그래서 자발적으로 모든 갈등을 해결하도록 하는 것이다.

- 이것이 올바른 교회의 통치이다.

 

이렇게 사랑하게 되면, 자연스럽게 모든 문제가 해결된다.

- 굳이 교회가 사건마다 개입하여 옳고 그름을 구분해 주지 않는다.

- 서로에 대한 사랑 때문에 각자가 스스로 문제를 해결한다.

- 빼앗은 것이 있으면 몇 배로 돌려주고,

- 빼앗긴 것이 있으면 용서하여 받지 않고 덤으로 더 준다.

- 왜냐하면 서로에게 뭐라도 더 주고 싶은 마음이 생기기 때문이다.

- 서로 사랑하기 때문이다.

[마 5:39~42] 그러나 나는 너희에게 말한다. 악한 사람에게 맞서지 말아라. 누가 네 오른쪽 뺨을 치거든, 왼쪽 뺨마저 돌려 대어라. (40) 너를 걸어 고소하여 네 속옷을 가지려는 사람에게는, 겉옷까지도 내주어라. (41) 누가 너더러 억지로 오 리를 가자고 하거든, 십 리를 같이 가 주어라. (42) 네게 달라는 사람에게는 주고, 네게 꾸려고 하는 사람을 물리치지 말아라.

[눅 19:8] 삭개오가 일어서서 주님께 말하였다. “주님, 보십시오. 내 소유의 절반을 가난한 사람들에게 주겠습니다. 또 내가 누구에게서 강제로 빼앗은 것이 있으면, 네 배로 하여 갚아 주겠습니다.

 

이렇게 사랑하도록 하는 것이 교회의 역할이고 능력이다.

- 이러한 능력을 가졌기 때문에 세상도 천사도 다스리고 심판할 자격을 갖는 것이다.

그러나 고린도 교회는 소송 사태가 일어난 후에도 아무런 역할을 하지 않았고,

- 사기 사건이 일어나기 전부터 자기 능력을 발휘하지 않았다.

 

진정한 가해자

그렇기 때문에 모든 문제의 원인은 교회에 있다.

- 표면적으로 소송 사태의 원인은 가해자에게 있는 것처럼 보인다.

- 그가 사기 사건을 일으킨 실제 주체이기 때문이다.

- 그러나 내면적으로 근원적인 가해자는 교회의 각 사람 전부이다.

- 교회 구성원 중에 한 사람도 가해자를 사랑으로 돌보지 않았기 때문이다.

- 그의 결핍에 관심 갖지 않았기 때문이다.

- 그가 사기 사건을 일으키도록 방치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교회의 각 사람이 진정한 가해자이다.

- 여기에는 사기를 당한 피해자까지 포함된다.

이것을 정죄하기 위해 바울이 본문을 기록한 것이다.

 

7~11절: 피해자와 가해자를 향한 정죄

그런 관점에서 바울은 피해자와 가해자도 정죄한다.

- 이 역시 표면적 의미와 내면적 의미가 다르다.

- 표면적으로는 피해자가 세상 법정에 소송하고,

- 가해자는 속여 빼앗은 죄를 정죄한다.

- 하지만 이것은 바울의 궁극적인 의도가 아니다.

[고전 6:7~8] 여러분이 서로 소송을 제기하는 것부터가 벌써 여러분의 실패를 뜻합니다. 왜 차라리 불의를 당해 주지 못합니까? 왜 차라리 속아 주지 못합니까? (8) 그런데 도리어 여러분 자신이 불의를 행하고 속여 빼앗고 있으며, 그것도 신도들에게 그런 짓을 하고 있습니다.

만약 바울의 의도를 이렇게 이해해서,

- 어떤 경우에도 세상 법정에 소송하는 것을 무조건 금지하거나,

- 속여 빼앗은 행위만 정죄하고 그 문제를 해결할 대안 제시가 없다면,

- 교회 안에 갈등은 폭발할 것이다.

- 소송 금지를 빌미로 범죄가 더욱 늘어날 것이고,

- 무고한 피해자는 억울함을 삭힌 채 교회를 떠날 것이다.

- 또한 속여 빼앗는 일을 억제하면 실제 범죄는 줄어들겠지만,

- 욕망 때문에 괴로워하고 결핍에 몸부림치는 사람이 늘어날 것이고,

- 신앙이 아무 도움도 안 된다는 회의감에 쌓인 채 교회를 떠날 것이다.

 

따라서 바울이 소송을 금지하고 속여 빼앗음을 정죄하는 진정한 이유가 있다.

- 결론은 사랑하라는 것이다.

- 애초부터 피해자가 가해자를 사랑했다면,

- 그래서 가해자가 속여서 빼앗을 만큼 결핍에 고통스러워하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면,

- 그래서 가해자의 고통에 공감하고 함께 해결하기 위해 노력했다면,

- 사기 사건이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고,

- 일어났다고 하더라도 피해자는 가해자를 이해하고 속아줄 수 있었을 것이다.

- 따라서 소송 사태까지 벌어진 것은 피해자가 사랑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고전 6:7] ・・・・ 왜 차라리 불의를 당해 주지 못합니까? 왜 차라리 속아 주지 못합니까?

가해자도 마찬가지이다.

- 가해자의 문제는 사기 행위 자체가 아니다.

- 불의한 욕망을 절제하지 못했지만, 이것도 누구나 그럴 수 있다.

- 그런데 특히 ‘신도’에게 그랬다는 것이 문제이다.

- 가장 사랑해야 할, 그래서 빼앗기는커녕 하나라도 더 줘야 할 신도에게 빼앗았다는 것이다.

- 단순히 빼앗았다는 것 이면에 사랑하지 않았다는 것이 핵심이다.

- 따라서 사기 사건이 일어난 것 역시 가해자가 사랑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고전 6:8] ・・・・ 그것도 신도들에게 그런 짓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교회는 이것을 몰랐다.

- 그래서 이것을 피해자와 가해자에게 알려주지 않았다.

- 소송 사태와 사기 사건의 원인이 사랑 없음 때문이고,

- 그것 때문에 하나님 나라를 상속받지 못한다는 것을 교회는 알려주지 않았다.

- 그래서 피해자에 의한 소송 사태와 가해자에 의한 사기 사건이 일어나도록 했다.

[고전 6:9] 불의한 사람들은 하나님 나라를 상속받지 못하리라는 것을 알지 못합니까? ・・・・ 

오히려 교회는 착각했다.

- 근본적인 원인인 사랑 없음이 중요하지 않다고 착각했다.

- 여기서 바울이 여러 가지 죄 목록을 나열하는데, 그 죄의 행위보다 더 중요한 것은 죄를 범하도록 하는 동기이다.

- 죄 목록은 눈 앞의 사람을 사랑하지 않았기 때문에 자기 욕망을 거침없이 분출하고,

- 욕망 분출로 인해 필연적으로 폭력이 발생하며,

- 폭력에 의한 피해와 희생을 다양한 방식으로 나열한 것이다.

[고전 6:9~10] ・・・・ 음행을 하는 사람들이나, 우상을 숭배하는 사람들이나, 간음을 하는 사람들이나, 여성 노릇을 하는 사람들이나, 동성애를 하는 사람들이나, (10) 도둑질하는 사람들이나, 탐욕을 부리는 사람들이나, 술 취하는 사람들이나, 남을 중상하는 사람들이나, 남의 것을 약탈하는 사람들은, 하나님 나라를 상속받지 못할 것입니다.

 

그렇다면 교회는 왜 착각했나?

- 왜 사랑을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고,

- 사랑 없음을 치명적으로 생각하지 않았나?

그렇지 않다.

- 사랑을 불필요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 아니다.

이유는 단순하다.

- 사랑도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것이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계속 말해왔지만, 그것은 지혜이다.

- 지혜를 탐구하느라, 사사로운 소송 사태와 사기 사건은 챙기지 못했다.

- 피해자와 가해자에 대해 관심을 가질 여유가 없었다.

- 다시 말하지만, 사랑에 관심이 없기 때문이 아니다.

- 사랑을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 하지만 사랑보다, 예수님보다 지혜를 더 중요하게 생각했다.

그래서 사기 사건도, 소송 사태도 강 건너 불 보듯 무관심했다.

- 그들에게 그것은 중요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 교회를 위협할 대상이 아니기 때문이다.

지혜만 있으면, 교회는 굳건하리라 믿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바울은 고린도 교회를 정죄하는 것이다.

- 지혜 믿고 예수님께 무관심한 교회는 하나님 나라를 상속받지 못한다고 말이다.

- 지혜가 특별히 악하기 때문이 아니다.

- 지혜는 좋은 것이다.

- 인생을 바람직하게 이끌어주는 도구 중 하나이다.

- 그런데 지혜가 예수님에 대한 믿음과 관심을 빼앗아 오기 때문에 악하다.

- 그래서 사랑에서 멀어지게 하고,

- 신도의 결핍과 고통에 대해 무관심하게 만들기 때문에 악하다.

그래서 바울은 교회에서 아무런 능력도 발휘하지 못하는 지혜를 고발하는 것이다.

[고전 6:5] 나는 여러분을 부끄럽게 하려고 이 말을 합니다. 여러분 가운데는, 신도 사이에서 생기는 문제를 해결하여 줄 만큼, 지혜로운 사람이 하나도 없습니까?

 

동성애 논란

논외로, 본문에서 논란이 되는 부분이 있다.

- 죄의 목록 중에 동성애가 포함되어 있다.

- 이는 기독교가 동성애를 반대하는 근거가 된다.

- 그래서 동성애를 심각한 죄로 간주하고 교회에서 몰아내야 할 대상으로 삼는다.

그런데 기독교가 특정한 집단을 배척하는 선택은 특별히 신중해야 한다.

- 역사에서 기독교가 배척하지 말아야 할 대상을 배척했던 과오가 많기 때문이다.

- 얼마 전까지 미국 기독교는 흑인을 배척했다.

- 흑인은 사람이 아니니, 노예로 삼아도 괜찮다고 판단했다.

- 독일 기독교는 유대인을 배척했다.

- 그래서 유대인 600만 명을 학살했다.

- 중세 시대에는 가톨릭이 개신교를 배척했다.

- 그래서 교황의 권위에서 벗어나 직접 성경을 읽고 예수님을 믿겠다는 사람을 이단이라고 죽였다.

- 게다가 성경에서 바리새인이 신앙의 이름으로 예수님을 배척했다.

- 그래서 예수님을 십자가에 매달아 죽였다.

이렇게 기독교는 출발부터 배척하지 말아야 할 대상을 배척했던 과오로 시작했다.

- 그리고 같은 과오를 계속 반복한다.

 

또한 동성애를 배척하려면, 본문에 나오는 목록에 해당하는 사람 전부를 배척해야 합당하다.

- 적어도 탐욕을 부리고, 술에 취하며, 남을 흉보고 약탈하는 사람과 동성애자를 동일하게 대해야 한다.

- 그래서 동성애 반대 시위를 하듯 사기 사건이나 성 스캔들에 관련된 목사를 교회에서 퇴출하고,

- 음주 운전한 사람은 교회에서 출교하라는 시위를 교회가 나서서 해야 합당하다.

- 그러나 오히려 교회는 그런 목사를 두둔하면서, 동성애자만 배척하는 어리석음을 범한다.

 

특히 본문을 바르게 읽어야 한다.

- 바울이 죄 목록을 열거한 의도는 목록의 죄만 특별히 정죄하려는 것이 아니다.

- 죄 목록은 교회 안에서 서로 사랑하지 않고 무관심한 상태를 고발하기 위한 것이다.

- 교회 안에 사랑과 관심이 없어서, 서로의 것을 빼앗고, 서로를 성적 대상으로 삼는 실태를 정죄하려는 것이다.

- 음행하거나 도둑질한 사람을 전부 배척하고 퇴출하려고 기록한 목록이 아니다.

따라서 동성애도 그런 관점에서 봐야 한다.

- 바울의 의도는 교회 안에서조차 욕정에 불타서 동성조차 성적 대상으로만 삼으려는 실태를 정죄하는 것이다.

- 그만큼 교회 안에 사랑과 관심이 없다는 것을 고발하려는 것이다.

동성애자를 배척하려는 의도가 아니다.

- 만약 동성애자를 배척하려면, 성 추문 목사, 음주 운전자, 성 접대 경험자, 도둑 전부 배척해야 한다.

- 반대로 그런 사람을 포용해야 한다면, 동성애자도 포용해야 한다.

동성애자를 배척할 유일한 기준은 예수님뿐이다.

- 예수님을 절대가치로 믿고, 나머지 모든 것을 가치 없다고 믿는다면 포용하지만,

- 믿지 않는다면 배척해야 한다.

- 동성애자뿐만 아니라 성 추문 목사, 음주 운전자, 성 접대 경험자, 도둑까지 동일하게 말이다.

 

그러나 고린도 교회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 교회 자체가 예수님을 절대가치로 믿지 않았고,

- 믿음 없는 사람에게 예수님을 알려주지도 않았으며,

- 믿음 없는 사람을 출교하지도 않았다.

- 오직 지혜에만 매달렸다.

- 그런 점에서 고린도 교회는 멸칭으로써 ‘지혜자’였다.

그래서 바울은 고린도 교회를 지혜자라는 죄 목록으로 정죄하는 것이다.

- 지혜 자체가 악하기 때문이 아니라,

- 지혜에 빠져 교회 안에 갈등과 예수님께 무관심했기 때문이다.

- 마찬가지로 동성애 자체가 악하기 때문이 아니라,

- 성적 욕망에 빠져 성도조차 성적 대상으로 대하고 예수님께 무관심한 것이 악한 것이다.

- 그러한 죄는 동성이나 이성이냐와 관련 없다.

 

고린도 교회의 의로움 재확인

마지막으로 11절에서 바울은 고린도 교회의 의로움을 재확인한다.

- 앞에서 죄 목록과 함께 사기 사건과 소송 사태를 제기하며, 

- 고린도 교회의 죄를 지적했다.

- 그런데 죄를 지적하는 이유는 교회를 심판해서 퇴출하려는 것이 아니라,

- 교회가 이전부터 가지고 있었지만 지금은 잠시 멀어진 신앙으로 회복하려는 것이다.

- 그래서 가장 마지막에 바울은 고린도 교회가 이미 예수 그리스도와 성령으로 씻겨지고, 거룩하게 되고, 의롭게 된 존재라는 것을 상기한다.

[고전 6:11] 여러분 가운데 이런 사람들이 더러 있었습니다. 그러나 여러분은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과 우리 하나님의 성령으로 씻겨지고, 거룩하게 되고, 의롭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고린도 교회의 의로움을 재확인하는 또 다른 이유가 있다.

- 의로움을 재확인하는 바울의 의도는 그에 합당한 선택을 하라고 권면하기 위해서이다.

- 사기 사건과 소송 사태는 불의한 것이고, 불의를 행한 사람은 하나님 나라를 상속받지 못하는데,

- ‘그러니까 사기 사건과 소송 사태가 일어난 고린도 교회는 지옥 갈 거야.’가 아니라,

- ‘그러니까 의로운 교회답게 사기 사건과 소송 사태를 빨리 수습하고, 다시 이전처럼 사랑으로 회복하라.’고 권면하는 것이다.

 

이 결론은 상당히 중요하다.

- 바울이 고린도 교회를 정죄하는 이유는 고린도 교회의 죄 때문이다.

- 그런데 죄를 지적할 수 있는 근거는 고린도 교회가 이전에 이미 회복되어 의로운 상태에 있기 때문이다.

- 즉, 이전에 의로웠다가 죄를 범한 상태이기 때문에 정죄할 수 있는 것이다.

- 왜냐하면 정죄를 통해 죄를 깨닫고 의로움을 회복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 원래 의로웠기 때문이다.

그러나 반대로 애초부터 의로워진 적이 없는 존재가 죄를 범했다면,

- 그에게 정죄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

- 죄를 지적해도 회복될 가능성이 전무하기 때문이다.

- 의로웠던 적이 없기에 죄를 인식할 수 없다.

그에게는 단편적인 정죄보다 종합적인 복음 제시가 필요하다.

- 물론 복음을 제시하는 과정에서 죄를 설명할 수 있지만,

- 신중하고 섬세해야 한다.

- 본문에서처럼 죄 지적만으로는 죄를 깨달을 수 없다.

 

그래서 바울은 고린도 교회의 의로움을 재확인하는 것이다.

- 바울에게 고린도 교회에 대한 신뢰가 있기 때문이다.

- 단순히 죄를 지적하기만 해도 죄를 깨달을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 그만큼 고린도 교회가 의롭기 때문이다.

 

결론 - 교회의 본질은 사랑이다.

바울은 본문에서 고린도 교회의 다양한 죄를 지적한다.

- 사기 사건과 소송 사태와 함께 죄 목록을 나열한다.

그런데 이렇게 반문해 보자.

- 사기 사건과 소송 사태가 없고, 목록에 나열된 죄가 없으면 교회로서 충분한가? 아니다.

- 반대로 사기 사건과 소송 사태가 있고, 목록에 나열된 죄가 있으면 교회가 아닌가? 아니다.

- 죄는 없으면 좋지만, 있어도 상관없다.

마치 사람에게 질병이 없다고 사람으로서 충분하고,

- 질병이 있는 사람은 사람이 아니라고 말할 수 없는 것과 같다.

- 질병이 없으면 좋지만, 질병이 있어도 상관없다.

- 왜냐하면 질병보다 사람에게 더 중요한 것이 있기 때문이다.

- 사람의 본질은 질병에 의해 좌우되지 않는다.

- 교회도 마찬가지이다.

 

그렇다면 바울은 도대체 왜 정죄할까?

- 죄가 사라진다고 충분한 것도 아니고, 죄가 있다고 교회가 아닌 것도 아닌데,

- 죄를 지적하는 것이 왜 필요할까?

분명한 것은 바울의 의도가 죄 그 자체에 있지 않다는 것이다.

- 바울은 죄를 다루고 있지만, 죄에 큰 관심이 없다.

- 바울의 관심은 죄가 아니라, 죄 때문에 고통당하는 ‘사람’에 있다.

- 더 구체적으로, 사기 사건의 피해자가 되어 억울함에 고통당하는 사람과

- 사기 사건을 일으킬 만큼 결핍과 욕구 불만에 고통당하는 사람이 있음에도,

- 아무런 관심을 갖지 않는 교회에 바울은 관심을 갖는다.

그것은 교회가 아니기 때문이다.

- 교회는 사랑하는 곳이고,

- 사랑하면 사람의 고통에 공감하며,

- 공감하면 고통을 덜기 위해 최선을 다할 수밖에 없다.

- 마치 애굽에서 고통에 부르짖는 이스라엘 백성을 홍해를 갈라서라도 구출하신 하나님처럼 말이다.

그런데 고린도 교회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 억울함에 부르짖는 피해자가 소송 사태까지 일으킬 만큼 무관심했고,

- 결핍으로 고통당하는 가해자가 사기 사건을 일으킬 만큼 무관심했다.

- 그런 교회는 교회가 아니다.

- 죄가 있었기 때문이 아니라, 죄로 인해 고통당하는 사람에게 무관심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어떤 죄를 지었건 무조건 용납하라는 것은 아니다.

- 억울한 피해자와 결핍이 있는 가해자를 포용해야 하지만,

- 동시에 피해자는 억울해도 용서하도록, 가해자는 결핍이 있지만 욕망을 절제하도록 인도해야 한다.

- 그런데 만약 교회가 최선을 다해서 알려줬는데,

- 피해자는 끝까지 가해자를 용서하지 않고, 가해자는 끝까지 욕망을 분출한다면,

- 교회는 어쩔 수 없이 출교해야 한다.

- 그래서 바울은 지난 본문에서 끝까지 죄를 인정하지 않는 사람을 출교하라고 권고했다.

바울에게 출교는 단순한 징벌이 아니다.

- 다른 형태의 사랑이다.

- 그런 상황에는 출교만이 그 사람에게 죄를 깨닫도록 하는 유일한 방법이고,

- 죄를 깨닫는 것만이 최선의 사랑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옳고 그름의 기준은 죄가 아니다.

- 오직 사랑이다.

- 교회가 교회답다고 판단할 기준은 죄가 아니다.

- 오직 사랑이다.

고린도 교회가 바울에게 정죄당한 이유는 죄 때문이 아니다.

- 사랑이 없었기 때문이다.

- 그래서 바울은 고린도 교회가 가해자와 피해자를 사랑하라고 권고하고,

- 피해자는 가해자를 사랑해서 용서하라고 권고하며,

- 가해자는 피해자를 사랑해서 욕망을 절제하라고 권고하고,

- 지난 본문에서 교회는 죄인을 사랑해서 출교하라고 권고한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의 관심도 사랑이어야 한다.

- 얼마나 죄 없이 깨끗한 존재가 되는 것은 중요하지 않다.

- 많은 사람이 죄를 짓지 않기 위해 사랑을 포기한다.

- 예를 들어, 동성애를 지지하는 죄를 짓지 않기 위해 동성애자를 배척하고 미워한다.

- 이는 바울이 지적한 고린도 교회의 문제와 같은 태도이다.

그러나 예수님은 죄를 짓더라도 사랑을 선택하셨다.

- 그래서 안식일에 치유하는 죄를 짓더라고 환자를 사랑으로 치료하셨다.

- 이방인과 함께 식사하는 죄를 짓더라고 이방인과 사랑으로 함께 하셨다.

- 혈루병 환자를 만지는 죄를 짓더라도 혈루병 여인을 사랑으로 만져서 치료하셨다.

따라서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죄가 아니라 사랑이다.

- 더 정확하게, 죄를 감수한 사랑이다.

- 그런 사랑이 교회를 교회답게, 그리스도인을 그리스도인답게, 사람을 사람답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