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레미야(80) 46:13-28 이집트와 하나님 사이에서 선택하지 못하는 이스라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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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에서 가장 오해하기 쉬운 것은 예언의 대상이다.
- 이집트의 멸망을 예언하고 있기 때문에 예언의 대상도 이집트로 착각하기 쉽다.
- 하나님이 이집트의 멸망과 회복을 예언하여, 이집트가 하나님을 믿도록 하기 위한 기록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본문의 대상은 이스라엘이다.
- 이스라엘에게 이집트가 멸망할 것이라고 예언하는 것이다.
- 그래서 이집트가 아니라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믿도록 하기 위한 기록이다.
[렘 46:27] 나의 종 야곱아, 너는 두려워하지 말아라. 이스라엘아, 너는 무서워하지 말아라. 내가 너를 먼 곳에서 구원하여 데려오고, 포로로 잡혀 간 땅에서 너의 자손을 구원할 것이니, 야곱이 고향으로 돌아와서 평안하고 안정되게 살 것이며, 아무런 위협도 받지 않고 살 것이다.
왜냐하면 당시에 이스라엘이 그렇지 못했기 때문이다.
- 이스라엘이라면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마땅히 하나님을 믿어야 했지만,
- 하나님보다 이집트를 더 믿고 의지했다.
특히 이스라엘 국가의 운명이 하나님보다 이집트에 의해 결정된다고 생각했다.
- 이스라엘에게 하나님보다 이집트가 더 실제적인 힘을 가진 존재로 보였기 때문이다.
- 마치 우리에게 하나님보다 돈이 더 영향력 있어 보이는 것처럼 말이다.
본문은 이집트가 가진 힘으로 세 가지 구분한다.
- ① 힘센 황소, 즉 우상과 ② 많은 군인, 즉 군사력과 ③ 이집트 왕 바로, 즉 지배력이다.
[렘 46:15~17] 어찌하여 너의 힘센 황소가 꺼꾸러졌느냐? 주님께서 그를 메어치셨기 때문에, 그가 서서 견딜 수가 없었다. (16) 너희의 많은 군인들이 비틀거리고 쓰러져 죽으면서 서로 말하기를 ‘어서 일어나서, 우리 민족에게로 돌아가자. 이 무서운 전쟁을 피하여 우리의 고향 땅으로 돌아가자’ 하였다.” (17) “이제는 이집트 왕 바로를 ‘기회를 놓친 떠벌이’라고 불러라.”
- 이스라엘은 이집트의 영적인 힘(우상), 육체적인 힘(군사력), 정신적인 힘(지배력)을 두려워했다.
- 이스라엘은 영, 육, 혼, 즉 전인격적으로 이집트를 의지했다.
그 결과 이스라엘은 상대적으로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았다.
- 하나님을 완전히 거부했다는 뜻이 아니다.
- 하나님을 의지했지만, 이집트의 영향력이 미치지 않는 영역에 한정되었다.
- 예를 들어, 성전 제사나 율법의 영역에서만 하나님을 의지했다.
- 나머지 정치, 경제, 외교, 군사, 행정 등에서는 이집트를 의지했다.
따라서 하나님은 종교 영역에서만 주인이셨고,
- 나머지 일상에서는 이집트가 주인이었다.
- 마치 우리가 교회 혹은 종교 활동에서만 하나님을 떠올리고,
- 가정, 직장 등 일상에서는 세상의 원리에 따라 사는 것처럼 말이다.
하나님 대신 이집트를 의지하는 이스라엘이 언뜻 보면 어리석지만, 지극히 자연스러운 태도이다.
- 누구라도 이집트의 화려한 신전, 강력한 무기를 장착한 군대, 위엄있는 바로 왕을 보면, 고개를 숙일 수밖에 없다.
- 이집트 앞에 선 자신이 하찮은 벌레로 보일 수밖에 없다.
- 이집트가 손가락 하나만 까딱해도 죽을 수 있다는 공포를 느낄 수밖에 없다.
그런 이집트를 어떻게 두려워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그럼에도 누군가는 이스라엘을 이렇게 비판한다.
- 이집트가 아무리 강해도 죽이기밖에 더 하겠는가.
[마 10:28] 그리고 몸은 죽일지라도 영혼은 죽이지 못하는 이를 두려워하지 말고, 영혼도 몸도 둘 다 지옥에 던져서 멸망시킬 수 있는 분을 두려워하여라.
- 담대하게 하나님만 의지하다가 장렬하게 전사하여 천국 가면 되지 않냐는 것이다.
나도 전적으로 동의한다.
- 만약 목에 칼을 들이밀며, 하나님을 모독하면 살려주고 찬양하면 죽이겠다고 하면,
- 비교적 쉽게 하나님을 찬양하며 죽을 수 있다.
- 말씀대로 몸은 죽지만, 몸과 영은 다시 살아서 천국에 갈 수 있다는 믿음으로 죽을 수 있다.
신앙 생활의 어려움
그런데 현실은 이것보다 훨씬 더 어렵다.
- 일상에서 신앙에 따라 생활하는 것이 극단적인 위협보다 더 위험하다.
간단하게 말해서,
- 극단적인 상황은 명확하고, 구체적이며, 선명하다.
- 목에 칼을 들이밀며 신앙을 부정하라고 강요하는 사람은 명확하게 악이다.
- 반면에 죽음을 감수하고 신앙을 인정하는 사람은 명확하게 선이다.
- 선과 악이 명확하게 구분되기 때문에 비교적 선택하기 쉽다.
- 죽음보다 신앙이 중요하면 신앙을 선택하면 되고,
- 신앙보다 죽음이 중요하면 신앙을 거부하면 된다.
물론 죽음을 감수하고 신앙을 선택하기는 어렵다.
- 죽음을 각오하는 엄청난 용기가 필요하다.
그러나 그 용기를 딱 한 번만 내면 된다.
- 딱 한 번 결단하고 딱 한 마디 말을 하는 용기만 내면, 천국이 보장된다.
- 딱 한 번이다.
그런 점에서 극단적인 상황은 쉽다.
그러나 현실은 불명확하고, 추상적이며, 희미하다.
- 마음과 마음에서 나오는 말이 괴리된다.
- 마음에 없는 말을 하기도 하고, 말하는 대로 진실한 마음을 갖지 못해 괴로워하기도 한다.
- 그래서 선한 말 속에 악한 의도가 있기도 하고,
- 악하게 들리는 말 속에 선한 의도가 있기도 하다.
- 선과 악이 선명하게 구분되지 않는다.
그래서 마음을 그대로 말로 표현하기 위해 매 순간 노력해야 하고,
- 말하는 대로 마음을 다잡기 위해 매 순간 집중해야 한다.
- 셀 수 없이 반복해서 집중하고 노력해야 한다.
노력과 집중을 잃어버리는 순간, 자기도 모르게 거짓된 말을 하게 되고,
- 거짓된 말 때문에 거짓된 마음을 갖게 되는데,
- 더 무서운 것은, 거짓에 자신도 속아 자기조차 거짓된 삶을 살고 있다는 인식을 못하게 된다.
이것이 일상에서 신앙 생활이 어려운 이유이다.
- 죽음이 임박하지 않지만,
- 그렇기 때문에 오히려 선과 악을 구분하기 어렵고,
- 더 많은 고민, 집중, 노력을 셀 수 없이 반복해야 한다.
이스라엘이 이집트를 의지하게 된 것도 이와 같다.
- 만약 이집트가 선명하고 노골적으로 이스라엘에게 하나님을 거부하라고 했다면,
- 이스라엘은 죽더라도 이집트와 싸우는 선택을 했을 것이다.
- 선과 악이 명확한 선택은 비교적 쉽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집트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 이집트는 이스라엘의 ‘신앙’을 위협하지 않았다.
- ‘일상’을 위협했다.
먼저, 군대를 동원하여 ‘육체’를 지배했다.
- 다음으로, 그 군대를 지휘하는 바로 왕이 가장 강력하다는 생각을 심어 ‘정신’을 지배했다.
- 끝으로, 바로 왕 뒤에는 힘센 황소와 같은 우상이 있다고 하여 ‘영’을 지배했다.
그러면 이집트가 강압적으로 하나님을 거부하라고 말하지 않아도,
- 자연스럽게 하나님을 거부하고, 이집트를 의지하게 된다.
- 이집트 군대에 무릎을 꿇을 수밖에 없고,
- 바로 왕을 정서적으로 두려워할 수밖에 없으며,
- 힘의 원천인 이집트의 우상을 의지하고 숭배할 수밖에 없다.
자신이 이집트를 의지하고 하나님을 거부한다는 사실조차 알지 못한 채 말이다.
다시 말하지만, 이스라엘 스스로가 우상을 섬긴다고 인식했다면,
- 이스라엘은 우상을 완강하게 거부했을 것이다.
- 그러나 그들은 단지 죽지 않기 위해 군대에 항복했고,
- 그러니 바로 왕이 두려웠고,
- 그래서 바로 왕이 하라는 대로 우상을 숭배했던 것뿐이다.
즉, 이집트가 이스라엘의 일상을 지배했고,
- 이집트가 제시한 일상에 우상 숭배가 포함되어 있었던 것뿐이다.
그랬기 때문에 이스라엘은 자신이 우상을 숭배한다고 인식하지 못했다.
- 단지 살기 위한 몸부림이었기 때문이다.
이집트 멸망 예고의 이유
그래서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돌이키기 위해 이집트의 멸망을 예고하신다.
- 이집트의 우상, 군대, 바로 왕 모두 멸망할 것이라고 말이다.
- 그 세 가지가 이집트의 힘을 상징하기 때문이다.
이집트의 우상 암송아지가 무력해지고, 군대가 도망갈 것이다.
[렘 46:20~21] 예쁘디예쁜 암송아지 이집트가, 이제는 북녘에서 마구 몰려오는 쇠파리 떼에 시달리는 암송아지가 될 것이다. (21) 사서 들여온 용병들은 살진 송아지들이다. 파멸의 날이 다가오고 징벌의 시각이 다가오면, 그들마저도 버티지 못하고 돌아서서 다 함께 달아날 것이다.
이집트와 바로 왕도 멸망할 것이다.
[렘 46:22] 적들이 군대를 거느리고 밀어닥치며, 그들이 벌목하는 사람들처럼 도끼를 들고 이집트를 치러 들어오면, 이집트는 소리를 내며 도망 치는 뱀처럼 달아날 것이다.
[렘 46:25] 나 만군의 주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말한다. 보아라, 내가 테에베의 신 아몬에게 벌을 내리고, 바로와 이집트와 그 나라의 신들이나 왕들에게도 벌을 내리고, 바로뿐만 아니라 그를 의지하는 사람들에게도 벌을 내리겠다.
이스라엘이 그 세 가지 때문에 자기도 모르게 하나님을 거부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하나님을 거부하고 이집트를 의지하는 이스라엘을 무작정 정죄하지 않으신다.
- 우상 숭배는 나쁜 것이니, 앞뒤 따지지 말고 당장 우상을 버리라고 강요하지 않으신다.
하나님도 아신다.
- 이스라엘이 이미 우상 숭배가 얼마나 나쁜지 안다는 것을.
- 나쁜지 알면서도 이집트의 우상을 섬기는 것은 그럴 수밖에 없는 복잡한 현실 때문이라는 것을.
그래서 하나님은 우상 숭배를 정죄하시는 동시에, 복잡한 현실 문제도 해결하신다.
- 그래야 이스라엘이 이집트를 의지하지 않고 하나님께 돌아올 수 있기 때문이다.
이집트를 의지할 수밖에 없는 이유 - 외적 문제와 내적 문제
이집트를 의지할 수밖에 없는 현실 문제는 두 가지로 나뉜다.
- 외적인 문제와 내적인 문제이다.
- 외적으로, 이집트의 막강한 영향력이다.
- 내적으로, 이집트를 통해 권력을 가지려는 이스라엘의 헛된 욕망이다.
풀어 말하면,
- 이집트가 주변에 미치는 영향력은 너무 강했다.
- 이집트를 배제하면 일상 생활이 불가능했다.
- 하다못해 큰 길을 지나거나, 바다에서 고기를 잡으려 해도, 길과 바다의 지배자인 이집트의 허락을 받아야 했다.
- 그런데 그 과정에서 우상 숭배가 동반되었다.
그랬기 때문에 우상 숭배를 거부하면, 일상 생활에 문제가 생긴다.
- 생업을 유지할 수 없다.
- 그러면 불가피하게 생업을 잃고 굶어 죽는 사람이 생긴다.
이러한 외적인 상황 때문에 이집트를 배제하고 우상 숭배를 거부할 수 없었다.
하지만 이것은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
- 만약 문제가 외적인 상황만 있었다면,
- 그래서 굶어 죽지 않기 위해 생업을 지키느라 원하지 않는 우상 숭배를 했던 것뿐이라면,
- 그래서 우상 숭배가 마치 지나가는 어른한테 인사하듯 별다른 의도가 없는 행위였다면,
- 하나님도 문제 삼지 않았을 수도 있다.
예를 들어, 하나님은 나아만 장군이 의도 없이 우상에게 절하는 행위를 용납하셨다.
- 나아만 장군이 하나님의 은혜로 나병을 치료받고 우상 숭배를 하지 않겠다고 약속한다.
[왕하 5:17] 나아만이 말하였다. “정 그러시다면, 나귀 두어 마리에 실을 만큼의 흙을 예언자님의 종인 저에게 주시기 바랍니다. 예언자님의 종인 저는, 이제부터 주님 이외에 다른 신들에게는 번제나 희생제를 드리지 않겠습니다.
- 그런데 왕을 보좌할 때, 왕을 부축하는 과정에서 우상에게 허리를 굽히는 행위를 용납해달라고 구한다.
[왕하 5:18] 그러나 한 가지만은 예언자님의 종인 저를 주님께서 용서하여 주시기를 바랍니다. 제가 모시는 왕께서 림몬의 성전에 예배드리려고 그 곳으로 들어갈 때에, 그는 언제나 저의 부축을 받아야 하므로, 저도 허리를 굽히고 림몬의 성전에 들어가야 합니다. 그러므로 제가 림몬의 성전에서 허리를 굽힐 때에, 주님께서 이 일 때문에 예언자님의 종인 저를 벌하지 마시고, 용서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 하나님은 기꺼이 용납하신다.
[왕하 5:19] 그러자 엘리사가 나아만에게 말하였다. “좋소, 안심하고 돌아가시오.” 이렇게 하여 나아만은 엘리사를 떠나 얼마쯤 길을 갔다.
- 따라서 아무런 내적 동기가 없이, 외적인 상황 때문에 일어나는 우상 숭배를 하나님은 문제 삼지 않으신다.
게다가 외적인 상황을 해결하기까지 하신다.
- 하나님은 이집트를 멸망시켜서 이집트를 의지하지 않고도 일상 생활을 할 수 있도록 하셨다.
- 우상 숭배를 하지 않고도 생업에 종사할 수 있도록 도우신다.
그것이 하나님께서 이집트 멸망을 예고하신 첫째 이유이다.
- 이스라엘을 우상 숭배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구원하기 위해서 말이다.
그런데 문제는 이스라엘에게 내적인 동기가 있었다.
- 이스라엘이 이집트를 의지한 것은 어쩔 수 없었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 우상 숭배를 이스라엘이 원하기도 했다.
어떻게 하나님의 백성임을 자부하는 이스라엘이 우상 숭배를 원했나?
- 당연히 이스라엘은 드러내놓고 노골적으로 우상 숭배를 원한다고 말하지 않았다.
- 게다가 이스라엘은 자신이 우상 숭배를 원한다는 것조차 인식하지 못했다.
- 이스라엘은 자신이 언제나 하나님만 섬긴다고 생각했다.
이스라엘이 원했던 것은 우상 숭배가 아니라 우상을 통해 얻는 ‘힘’이었다.
- 강한 이스라엘이 되어 자신을 지킬 뿐만 아니라, 다른 국가 위에 군림하길 원했다.
‘힘’은 국가나 집단뿐만 아니라 모든 개인도 갖는 보편적인 욕망이다.
- 누가 강한 존재에게 굴복하여 지배당하길 원하겠는가.
- 힘을 얻어 강한 존재의 억압에 저항하여 자유로워지고 싶은 욕망은 본능이다.
따라서 이스라엘이 가진 ‘힘’의 욕망은 비난할 수 없다.
그런데 문제는 힘을 얻으려는 ‘방법’에 있었다.
- 정답은, 유일한 힘의 원천이 하나님이라는 믿음으로 하나님께 힘을 구해야 한다.
- 그럴 때만 자기다운 힘을 키울 수 있고,
- 자신을 지키면서도 다른 존재를 지배하거나 굴복시키지 않을 수 있다.
- 굳이 불필요하게 다른 존재를 훼손하지 않는다.
하지만 이스라엘은 이집트를 통해 힘을 얻으려고 했다.
- 어차피 이집트의 영향력에 저항할 수 없다면, 이집트에 굴복하여 이집트를 이용하는 것이 더 합리적이라고 생각했다.
- 이집트와 좋은 관계를 맺으면, 이집트의 후광을 등에 업고 힘을 키울 수 있다고 믿었다.
그렇게 힘을 키우는 것이 이스라엘을 살리는 현실적인 방법이니,
- 하나님도 좋아하실 것으로 생각했다.
물론 그 과정에 약간의 부정함을 피할 수 없다.
- 이집트의 우상을 들여와 숭배해야 했다.
- 이집트의 우상을 정말 믿기 때문이 아니라, 힘을 얻기 위한 수단으로 말이다.
그렇기에 나아만 장군이 우상에 절한 것처럼 하나님이 용납하실 것으로 믿었다.
- 개인의 욕망이 아니라, 이스라엘 전체를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기 때문이다.
이런 생각 때문에 이스라엘은 죄책감 없이 이집트 우상을 숭배할 수 있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정죄하신다.
- 단순히 우상 숭배 행위를 정죄하시는 것이 아니다.
- 우상 숭배 행위 이면에 있는 이스라엘의 태도를 정죄하신다.
핵심은 힘의 원천이 어디에 있다고 믿는가이다.
- 힘의 원천이 하나님께 있는가, 아니면 이집트에 있는가이다.
- 힘을 얻기 위해 하나님을 의지하는가, 아니면 이집트를 의지하는가이다.
- 힘을 얻으려는 욕망 자체는 문제가 없지만, 욕망을 성취하는 방법에 문제가 있었다.
이스라엘은 이집트를 통해 힘을 얻으려 했고,
- 그것을 위해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자기 정체성을 부정하고 우상을 숭배했다.
- 이미 정체성을 잃었기에, 목적이 힘을 얻는 것에 매몰되고,
- 힘을 얻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기에,
- 자기도 모르게 자신과 다른 존재를 파괴했다.
이것이 이스라엘 죄의 본질이다.
- 핵심은 힘의 원천이 하나님이 아닌 이집트에 있다는 잘못된 믿음이다.
그렇게 힘의 욕망에 매몰된 이스라엘을 구원하기 위해 하나님은 이집트의 멸망을 예고하신다.
- 이집트가 사라지면, 힘의 원천을 이집트라고 믿었던 잘못된 믿음이 파괴되고,
- 그러면 힘의 욕망 분출을 멈추게 되며,
- 그러면 힘의 욕망 때문에 자신과 다른 존재를 파괴하던 행위도 멈출 수 있기 때문이다.
- 그러면 힘의 원천을 이집트라고 생각했던 과거를 성찰하여,
- 힘의 욕망에 매몰되었던 죄를 회개하고, 진정한 힘의 원천이신 하나님께 돌아갈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그동안 가졌던 믿음이 파괴되는 경험은 끔찍하게 고통스럽다.
- 유일하게 믿었던 이집트가 멸망한다는 예고는 오랫동안 이집트의 환심을 사기 위한 모든 노력을 물거품으로 만들기 때문에 절망적이다.
- 마치 오랫동안 갈고 닦아 힘들에 얻은 갑옷과 무기가 한순간 사라져서,
- 전쟁터 한복판에 알몸으로 서 있는 공포이다.
그래서 이집트 멸망을 예고하시는 하나님이 원망스럽다.
- 인생 바쳐 쌓은 업적을 하나님이 전부 박살 냈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 튼튼한 갑옷과 무기로 나름대로 전쟁에서 잘 싸우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 하나님이 갑옷과 무기를 전부 빼앗을 상태로 전쟁터에 홀로 남겨두셨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 그래서 하나님이 자신을 살리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죽이려 하신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절망과 원망이 이집트 멸망 예고를 들은 이스라엘의 심정이었다.
하지만 현실은 이스라엘의 생각과 전혀 달랐다.
- 이스라엘은 자신이 이집트라는 튼튼한 갑옷과 무기를 들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 이는 전적으로 착각이었다.
당시 이집트는 이미 이빨 빠진 호랑이였다.
- 특히 본문의 배경이 되는 여호야김 왕 사 년째 되던 해는 패권이 이집트에서 바벨론으로 넘어간 해였다.
- 이집트가 지배하던 갈그미스 지역에서 바벨론이 이집트를 격퇴했기 때문이다.
- 그래서 이스라엘 지역의 주도권이 이집트에서 바벨론으로 넘어갔기 때문이다.
[렘 46:2] 이것은 이집트에게 한 말씀으로서, 요시야의 아들 여호야김이 유다 왕이 되어 다스린 지 사 년째가 되던 해에, 유프라테스 강 근처의 갈그미스까지 원정을 갔다가 바빌로니아 왕 느부갓네살에게 격파된 이집트 왕 바로 느고의 군대를 두고 하신 말씀이다.
따라서 이집트라는 갑옷과 무기는 이미 사라졌다.
- 오직 이스라엘 자신만 갑옷과 무기를 가지고 있다고 착각했지, 실상은 이미 벌거벗겨졌다.
- 그래서 적의 공격에 무방비로 노출되었다.
하나님은 위급한 이스라엘을 구원하길 원하셨다.
- 이스라엘을 그대로 놔두면, 전쟁에서 참혹하게 파괴될 것이 뻔하기 때문이다.
- 갑옷과 무기도 없는 알몸으로 적진에 돌격하다가 추풍낙엽처럼 쓰러질 것이 뻔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하나님은 이집트라는 갑옷과 무기가 이미 쓸모없게 되었다고 말씀하신 것이다.
- 그래야 적진에 돌격하지 않고 하나님께 돌아올 수 있고,
- 그래야 이스라엘을 살릴 수 있기 때문이다.
이것이 이집트 멸망 예고를 하신 하나님의 둘째 이유이다.
- 이스라엘이 자신의 실상을 깨닫도록 하여, 무모한 죽음에서 구원하기 위해서이다.
하지만 하나님의 이집트 멸망 예고는 이스라엘에게 두려움 그 자체였다.
- 오랫동안 갈고 닦은 방패와 무기가 사라지니, 얼마나 두려웠겠는가.
- 전쟁터에서 벌거벗은 채 홀로 남아 있으니, 얼마나 무서웠겠는가.
그래서 하나님은 이스라엘에게 두려워하지 말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렘 46:27] 나의 종 야곱아, 너는 두려워하지 말아라. 이스라엘아, 너는 무서워하지 말아라. 내가 너를 먼 곳에서 구원하여 데려오고, 포로로 잡혀 간 땅에서 너의 자손을 구원할 것이니, 야곱이 고향으로 돌아와서 평안하고 안정되게 살 것이며, 아무런 위협도 받지 않고 살 것이다.
이유는 명확하다.
- 하나님이 직접 방패와 무기가 되어 주실 것이기 때문이다.
- 그래서 이스라엘을 전쟁에서 구원하실 것이기 때문이다.
- 이집트같이 불완전한 방패와 무기가 아니라 완전하신 하나님이 말이다.
모든 무기를 막을 수 있고, 어떤 방패도 뚫을 수 있는 하나님이 함께하시니, 무엇이 두렵겠는가.
[렘 46:28] 나 주의 말이다. 나의 종 야곱아, 너는 두려워하지 말아라. 내가 너와 함께 있다. 내가 너를 쫓아 여러 나라로 흩어 버렸지만, 이제는 내가 그 모든 나라를 멸망시키겠다. 그러나 너만은 내가 멸망시키지 않고, 법에 따라서 징계하겠다. 나는 절대로, 네가 벌을 면하게 하지는 않겠다.
하지만 그렇다고 구원이 자동으로 이뤄지는 것은 아니다.
- 하나님은 태초부터 언제나 완전하셨고, 이스라엘과 함께하셨다.
- 그런데도 이스라엘은 여전히 두려워했고, 그래서 의지할 우상을 찾았다.
관건은 완전하신 하나님이 이스라엘과 함께하신다는 사실을 믿는 ‘믿음’이다.
- 그 사실을 믿어서 우상 숭배를 포기하고 하나님만 의지하는 사람에게는 진정한 구원과 평화가,
- 그 사실을 믿지 않아서 두려움 때문에 우상을 찾는 사람에게는 파괴와 멸망이 임한다.
이집트 멸망 예언을 들은 이스라엘은 결국 어떻게 되었을까?
- 이집트를 포기하고 하나님만 의지하여, 두려움에서 벗어나 구원과 평화를 얻었을까?
이미 알다시피, 유다 왕 여호야김은 끝까지 이집트를 포기하지 못한다.
- 이집트 멸망 예고를 듣고 두려워하지만,
- 두렵기 때문에 더욱 이집트를 의지한다.
그래서 여호야김은 바벨론에 의해 죽임당하고 예루살렘도 함락된다.
- 완전하신 하나님이 여전히 함께하셨지만,
- 하나님을 믿지 않고 이집트를 믿었기에, 파괴와 멸망만 당하였다.
이스라엘은 이집트와 하나님 사이에서 갈팡질팡하다가,
- 끝까지 이집트를 포기하지 못하여 멸망한다.
결론 - 하나님은 우리에게 돈의 멸망을 예언하신다.
우리도 이스라엘처럼 돈을 의지하고 있다.
- 돈 자체가 좋아서가 아니라, 돈을 통해 힘을 얻기 위해서이다.
힘의 욕망 자체가 나쁜 것이 아니다.
- 돈 없고 힘 없어서 다른 사람에게 지배당하고 살라는 것이 아니다.
- 힘을 무조건 배척해야 한다는 것이 아니다.
진정한 힘의 원천이신 하나님께 진정한 힘을 얻자는 것이다.
그러나 돈을 통한 힘은 결국 자기를 파괴한다.
- 이스라엘이 이집트를 통해 힘을 얻고자 했지만,
- 결국 우상을 숭배하여 정체성이 파괴되고, 더 나아가 국가가 멸망한 것처럼 말이다.
돈으로 힘을 얻으려면, 힘을 얻는 대가로 자기 자신을 제물로 바쳐야 한다.
그런 우리에게 본문은 돈의 멸망을 예고한다.
- 돈은 힘을 잃고 사라질 것이라고 말이다.
- 돈과 함께 돈을 믿고 돈을 축적한 사람들은 모두 멸망하여 도망 다닐 것이다.
[렘 46:21] ・・・・ 파멸의 날이 다가오고 징벌의 시각이 다가오면, 그들마저도 버티지 못하고 돌아서서 다 함께 달아날 것이다.
[렘 46:22] 적들이 군대를 거느리고 밀어닥치며, 그들이 벌목하는 사람들처럼 도끼를 들고 이집트를 치러 들어오면, 이집트는 소리를 내며 도망 치는 뱀처럼 달아날 것이다.
그러면 우선 우리는 두려워 떨 것이다.
- 돈 없이 내동댕이쳐진 자신을 비관하고, 하나님을 원망할 것이다.
- 하나님이 자신을 비참하고 무력하게 만들었다고 비난할 것이다.
그때 하나님은 우리에게 말씀하신다.
- 두려워하지 말아라. 무서워하지 말아라.
- 내가 너와 함께 있다.
- 내가 너를 구원할 것이다.
이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돈을 주겠다는 뜻이 아니다.
- 마치 본문에서 하나님이 이스라엘에게 이집트를 회복하겠다는 뜻이 아닌 것처럼 말이다.
-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이집트 없이 직접 구원하겠다는 뜻이다.
따라서 하나님의 뜻은 우리가 돈 없이도 살도록 하신다는 뜻이다.
돈 없는 구원
그런데 과연 돈 없는 구원이 무엇일까?
- 돈 없으면, 집도, 밥도, 옷도 가질 수 없는데 말이다.
- 집, 밥, 옷 없는 구원이 어떻게 구원일 수 있겠는가.
하나님은 창조주시다.
- 아무것도 없는 데서 모든 것을 창조하신 분이다.
- 돈 없이도 집, 밥, 옷 만드실 분이다.
- 집, 밥, 옷 없이도 우리를 구원하실 분이다.
어떻게 그런 일이 가능하냐고 묻는다면, 답할 수 없다. 아무도 모른다.
- 마치 어떻게 인류 구원을 위해 하나님의 아들이 세상에 내려올 수 있으며,
- 어떻게 하나님의 아들이 죽을 수 있으며,
- 또 어떻게 하나님의 아들이 죽은 후 다시 살아날 수 있냐고 묻는 것과 같다.
예수님이 죽고 부활하시기 전까지 이에 답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 수많은 예언자가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가 오셔서 고난당할 것이라고 예언했지만,
- 그 예언이 현실에서 어떻게 성취될지 아무도 상상하지 못했다.
- 하나님의 아들이 죽고 부활한다는 것은 인간 이성의 한계를 넘어서기 때문이다.
따라서 하나님이 돈 없이 우리를 어떻게 구원하실지 대답할 수 없다.
- 인간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영역이다.
따라서 관건은 믿음이다.
- 하나님과 돈 사이에 무엇을 선택하는지이다.
- 이스라엘은 이집트와 하나님 사이에서 갈팡질팡하다가 결국 멸망했다.
- 그리고 이스라엘은 멸망을 통해 하나님만 선택해야 한다는 교훈을 남겼다.
우리는 방금 본문을 통해 그 교훈을 들었다.
- 돈은 멸망할 것이고, 돈을 의지하는 모든 사람도 함께 멸망할 것이라는 예언을 들었다.
- 그러나 돈과 달리 하나님은 완전하셔서 우리와 함께하실 것이라는 약속도 들었다.
이제 선택할 순간이다.
- 계속 갈팡질팡하며 자기도 모르게 하나님을 거부하는 삶을 살지,
- 아니면 돈을 포기하고 하나님만 선택할지 말이다.
- 힘의 원천이 돈에 있다고 믿을지, 아니면 하나님께 있다고 믿을지 말이다.
힘의 원천이 하나님께 있다는 것을 증명해달라고 구하는 사람이 있다.
- 돈 없는 구원이 무엇인지 알려달라고 기도하는 사람이 있다.
- 그것을 알게 되면, 돈을 포기하겠다고 말한다.
그런 사람에게 하나님은 하나님의 능력을 보여주신다.
- 하나님의 아들을 세상에 보내시는 하나님의 능력을,
- 하나님의 아들을 죽이는 하나님의 능력을,
- 죽은 하나님의 아들을 살리시는 하나님의 능력을,
- 그리고 이러한 말도 안 되는 사실을 사람들이 믿도록 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을,
- 세상에서 가장 귀한 생명을 창조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을.
생명조차 창조하시는 하나님이 돈 없는 구원을 왜 못하시겠는가.
- 돈 없는 구원이 무엇인지 구체적으로 알 수 없지만,
- 하나님이 돈 없는 구원을 능히 이루실 분이라는 것은 쉽게 알 수 있다.
성경은 우리에게 하나님만 믿으라고 강압한다.
- 돈을 포기하지 못하고 하나님만 믿지 않으면, 죽을 것이라고 경고한다.
따라서 우리에게 남은 선택은 두 가지뿐이다.
- 성경에 따라 돈을 포기하던지,
- 아니면 돈을 포기하지 못하여 성경을 포기하던지.
돈과 성경을 함께 믿을 수 없다.
- 함께 믿는다고 말하는 것은 둘 다 믿는 것이 아니라 둘 다 믿지 않는 것이다.
- 마치 두 애인을 모두 사랑한다고 말하는 것이 실상은 아무도 사랑하지 않는 것처럼 말이다.
그러니 더 이상 망설이지 말고, 선택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