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22) 8:1-11 이론과 실제의 차이
이번 본문은 성경에서 몇 안되는 후대 삽입 구절 중 하나이다.
- 대표적인 예로, 마가복음 가장 마지막 16:9-20이 있다.
근거는 세 가지다.
① 사본 상의 문제: 중세에 기록된 사본에서는 대부분 나오지만, 거의 모든 초기 사본에서는 나오지 않는다. 그리고 2세기 경 초기 교부들은 요한복음을 설명할 때 이 구절을 생략하고 넘어간다. 10세기 이후가 되서야 이 단락에 대한 설명이 나온다.
② 맥락 상의 문제: 7장과 8장은 예수님께서 초막절에 물 선포와 빛 선포를 하시는 연결된 내용이다. 그런데, 그 이어지는 맥락을 깨고 간음한 여인 사건이 들어와 있다. 이 단락이 앞뒤 맥락을 끊는다.
③ 문체 상의 문제: 요한복음에 나오지 않은 표현을 다수 가지고 있다. 예를 들면, '올리브 산(감람산)'과 '율법학자들'이다. 다른 복음서에서 올리브 산은 예루살렘 성 바로 옆에 있는 산으로,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서 사역하실 때 숙소가 있었던 곳이다. 또한 율법학자들 역시 다른 복음서에서 바리새인들과 함께 언급되는 사람들이다. 그러나 요한복음에서는 나오지 않는 표현이다.
이런 이유 때문에 다수의 학자들은 후대 삽입 구절이라고 주장한다. 물론 소수의 다른 의견도 있다.
그렇다고 완전히 없던 이야기를 창작한 것이라고 생각하진 않는다.
- 오랫동안 구전된 이야기로 본다.
- 메시지가 예수님의 성품과 일치하기 때문이다.
- 그런 이야기를 요한복음이 아닌 공관복음의 문체로 정리되었고, 불확실한 이유로 요한복음에 삽입된 것이다.
- 이 부분에 삽입된 이유는, 예수님을 공격하는 유대 사람들의 죄악됨을 드러내기 위한 것으로 추정된다.(8:21, 24, 46)
따라서 이번 본문은 초막절 맥락에서 벗어나서 독립적인 이야기로 보고 해석할 것이다.
키워드는 '율법의 적용 문제'이다.
- 유대 사람들은 예수님을 시험할 목적으로 율법 적용 문제를 가지고 왔다.
- 율법을 범한 여자를 데리고 와서, 율법을 적용하기도, 하지 않기도 어려운 상황을 만들었다.
- 율법을 집행하여 사형할 경우, 로마 총독만이 사형 권한이 있는 상황에서 로마에 대한 반역으로 정죄 당할 수 있다.
- 반대로 율법을 집행하지 않을 경우, 예수님 또한 범법자가 되어 정죄 당할 수 있었다.
이런 상황에 예수님은 유명한 말씀을 하신다.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
예수님의 말씀을 '표면적'으로만 이해할 경우 다음과 같다.
- 율법을 어긴 적이 있는 사람은 율법을 집행할 수 없다.
- 그런데, 율법을 어기지 않은 사람은 아무도 없기 때문에, 아무도 율법 집행을 할 수 없고, 결과적으로 율법은 유명뮤실해진다.
- 이는 율법 폐기론까지 이어질 수 있는 문제가 있다.
- 그래서 이 구절을 범죄한 목회자가 자주 인용한다.
따라서 이 구절은, 단순히 죄인은 율법을 집행할 수 없다는 것을 넘어서, 율법 이론과 실제 율법 적용의 차이 문제를 다루는 것으로 볼 수 있다.
- 이론적인 율법이 있지만, 현재의 상황이 그 율법을 적용해야 하는 상황인지 실제 판단을 하는 것은 생각만큼 단순하지 않다는 뜻이다.
같은 문제가 지난 본문에도 있었다.(7:21-24)
- 안식일법이라는 이론이 있었지만, 실제 적용하는 것은 단순하지 않았다.
- 종교지도자들은 무조건 안식일을 지켜야 한다고 주장했고, 예수님은 율법을 올바로 지키기 위해서는 안식일법을 어겨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래서 충돌했다.
- 따라서 율법을 올바로 지키기 위해서는 현재 상황이 안식일법을 적용해야 할 상황인지 아닌지 판단하는 것이 우선시 되어야 한다.
그런데 상황을 바르게 판단하는 것은 제한된 인식을 가진 사람에게는 불가능하다. 오로지 예수님을 통해서만 가능하다.
- 따라서 율법을 실제로 적용할 때는 죄인인 자기 자신에서 벗어나 예수님을 의지할 때에만 바른 적용이 가능하다.
이론적인 율법을 이해하는 것은 쉬운 일이다. 누구나 가능하다. 하지만 실제 적용하는 것은 어렵다. 예수님을 의지할 때에만 가능하다.
따라서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는 말씀도 이런 의미로 이해해야 한다.
- 누구도 죄인을 정죄하면 안된다는 뜻이 아니다.
- 율법을 적용할 때, 자신이 제한된 인식을 가진 죄인임을 인정하고, 예수님을 의지해야 한다는 뜻이다.
- 특히 율법 적용을 자신의 유익을 위해 예수님 공격 수단으로 삼았던 이들에게는 더욱 그러하다.
율법은 하나님의 뜻을 아는데 필수적이다. 따라서 우리 신앙에도 필수적이다.
- 그러나 단순히 아는 것만으로, 단순히 지키는 것만으로는 하나님을 알 수 없다.
- 율법을 통해 자신의 한계를 알고 예수님을 의지할 때, 율법이 제 역할을 할 수 있다.
예수님 당시에도, 바울이 로마서를 쓸 때에도, 2000년 기독교 역사 속에서도, 현재 기성 교회에서도 율법이 제 역할을 하지 못하고 이용 당했다.
- 그렇기 때문에 성경이 율법을 가지고 물고 늘어지는 것이다.
- 사람이 본성적으로 율법을 이용하여, 예수님을 죽이고 교회를 박해하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론과 실제의 차이가 얼마나 큰지 아는 것이 중요하다.
- 자신의 한계를 알고 예수님을 의지하는 사람만이 그 차이를 알 수 있다.
내용 정리
1-2절: 배경 설명 - 성전에서 가르침을 주시는 상황
7장에서 예수님은 성전에서 가르침을 주셨다.
그런 후 올리브 산(감람산)으로 가셨다.(1) 예수님은 올리브 산의 숙소에서 하룻밤을 주무시고 다시 예루살렘으로 오셨다.(2)
- 올리브 산은 요한복음에는 안나오지만, 공관복음에 자주 언급되는 산이다.
- 예루살렘 성전 바로 옆에 있는 산으로서, 예루살렘에서 사역하실 때 숙소가 있던 곳이다.
성전에서 많은 백성들을 모아, '앉아서' 가르침을 주셨다.
- 이렇게 앉아서 가르침을 듣는 모습은, 마태복음의 산상수훈, 누가복음의 평지수훈을 연상하게 한다.
- 이 역시 요한복음에서는 볼 수 없는, 공관복음의 문체이다.
3-6전반절: 예수님에 대한 율법학자들과 바리새인들의 시험 - 간음하다가 잡힌 여인 문제
종교지도자들은 예수님을 고발할 구실을 찾으려고 '딜레마의 덫'을 놓았다.
- 예수님은 율법을 따라도, 어겨도 고발을 당할 수 밖에 없었다.
한 가지 문제는, 율법에는 간음한 경우에 남자와 여자를 모두 죽이라고 규정한다.(신 22:23-24)
- 올바른 율법 집행을 위해서는 여자와 남자 모두 있어야 했다.
- 그러나 이유는 알 수 없지만, 간음한 남자는 없었다.
- 따라서 현재 상황은 율법을 올바로 지킨 것이 아니다.
- 이로 보아 종교지도자들은 올바른 율법 준수에 관심이 없고, 예수님에 덫을 만드는 것에만 목적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마가복음에도 예수님은 종교지도자들에게 이런 식의 덫에 갖힌 적이 있다.
[막 3:2] 사람들은 예수를 고발하려고, 예수가 안식일에 그 사람을 고쳐 주시는지를 보려고, 예수를 지켜보고 있었다.
[막 10:2] 바리새파 사람들이 다가와서, 예수를 시험하여 물었다. "남편이 아내를 버려도 됩니까?"
- 예수님은 실제로 이런식의 공격을 많이 받으셨던 것 같다.
- 그럴 때마다 기가 막히게 딜레마에서 벗어나신다.
6후반-8절: 예수님의 해결 - 죄 없는 사람이 먼저 돌을 던져라!
예수님께서 땅에 무엇을 쓰셨는지 모른다.
- 카더라 식의 언급이 많지만, 상상력일 뿐이다.
예수님의 말씀은 신명기 13:9, 17:7에 근거한 말씀인데, '죄 없는 사람'에 대한 정의가 불분명하다.
[신 17:7] 죽일 때에는 증인이 맨 먼저 돌로 쳐야 하고, 그 다음에 모든 백성이 뒤따라서 돌로 쳐야 합니다. 그렇게 하여, 이런 악한 일을 당신들 가운데서 뿌리를 뽑아야 합니다.
- 신명기에서는 단순히 '증인'이 먼저 돌로 치라고 나온다.
- 아마도 이 '증인'에서 '죄 없는 사람'을 도출하신 것 같다. 증인의 조건이 그 죄를 행하지 않은 사람이기 때문이다. 범인이 증인이 될 수 없다.
그런데, 이 '죄'가 여인이 범한 간음죄에 한정될 수도 있지만, 일반적인 모든 죄일 수도 있다.
- 어떻게 해석해도 모호하다.
- 한정적인 의미는 율법을 반영하지만, 모인 사람 모두가 여인의 간음죄에 참여했다는 의미가 된다. 말이 안된다.
- 일반적인 의미라면, 그 자리에 있던 모든 사람이 떠났기 때문에 맥락 상 말이 되지만, 율법과 상관 없는 해석이 된다.
아마도 예수님은 중의적 의미를 통해, 사람들이 막연히 양심의 가책을 느끼도록 한 것 같다.
9-11절: 결론 - 이제부터 다시는 죄를 짓지 말아라!
결국 아무도 돌을 던지지 못하고 다 떠난다.
마지막으로 예수님께서는 남겨진 여인에게 죄 짓지 말라는 말씀을 하신다.
- 예수님은 죄를 용서하시면서, 동시에 죄를 금지하신다.
- 정죄하지 않고 용서하신다고 죄를 용납하시는 것은 아니다.
주제
① 이론과 실제의 차이
간음한 사람은 돌로 쳐 죽여야 한다는 분명한 율법 이론이 있다.
- 그리고 바로 앞에 간음한 여인이 있다.
- 그러면 당장 돌로 쳐 죽이는 것이 마땅한데, 실제 적용은 이렇게 단순하지 않다.
예수님은 율법 이론에서 숨겨진 원리 하나를 더 드러내신다.
- 돌로 쳐 죽이는 절차가 있는데, 반드시 증인이 '먼저' 돌을 던져야 했다.
- 증인이 없으면, 누구도 돌을 던질 수 없다. 법 집행을 할 수 없다. 증인 없는 집행은 범법이다.
- 그리고, 논리 연결 관계는 분명하지 않지만, 예수님은 '증인'에서 '죄 없는 사람'을 도출하신다.
그래서 결론적으로, 아무도 법 집행을 할 수 없도록 하셨다.
- 예수님이 유죄 혹은 무죄로 판단을 내리면 고발을 당하는 상황에서, 예수님은 집행 자체를 하지 못하도록 하신 것이다.
이를 통해 드러난 것은, 율법을 수단 삼아 예수님을 고발하려는 사람들은 정작 율법을 바르게 알지 못했다는 것과, 오히려 예수님은 율법을 바르게 알고 계시다는 것이다.
이렇게 사람은 율법 이론과 율법 자구는 이해할 수 있지만, 그것을 실제 적용하는 것은 차원이 다르게 어려운 문제이다.
- 현실에서도 법률을 안다고 올바른 판결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판결은 정말 어렵다.
- 모든 상황을 100% 알고 판단하는 것이 아니라, 일부만 가지고 전체를 유추해야 하기 때문이다.
- 알지 못하는 단서가 판결을 뒤집을 수 있는 가능성은 언제든 있다.
- 따라서 올바른 판결은 존재하지 않는다. 이것이 모든 판사의 고민일 것이다.
더군다나 하나님의 법인 율법에 따른 판단은 얼마나 더 어렵겠는가!
- 누구도 올바른 판단을 할 수 없다.
- 율법을 바르게 아시는 예수님을 통해서만 가능하다.
- 그렇기 때문에 율법으로 심판 받을 우리에게 예수님이 필요한 것이다.
따라서 자신이 율법 이론 안다고 올바른 판단을 내릴 수 있는 존재가 아님을 인정하고 예수님을 의지한 사람만이 결국 올바른 율법을 지킬 수 있는 것이다.
② 죄 용서와 죄 용납
본문에서 여인은 자신의 죄에 대해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하지만 예수님은 죄를 용서하신다.
- 이에 따르면, 예수님의 죄 용서는 아무런 조건이 없다. 회개조차 용서 조건이 아니다.
- 회개와 믿음은 용서의 결과이지 원인이 아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예수님은 죄를 하찮게 여기지 않으신다. 죄를 용납하지 않으신다. 금지하신다.
- 그렇기 때문에, 올바로 회개하고 믿는 사람은 죄를 짓지 않는다.
- 물론 단번에는 아니고 차츰 차츰.
이는 회개와 믿음 이후에도 사람은 죄를 짓는다는 뜻이다.
- 그러나 이전과 다른 점은 회개를 한다는 점이다.
- 예수님이 죄를 얼마나 용납하지 않으시는지 이전보다 더 잘 알기 때문에, 더 회개한다.
- 그리고 예수님의 용서하심에고 불구하고 여전히 죄를 짓는 자신의 연약함을 알기 때문에, 더 회개한다.
그렇기 때문에 죄 용서의 결과로서 끊임없는 회개가 뒤따르는 것이다.
- 이는 예수님께서 이미 모든 죄를 용서하셨음을 알기 때문이다.
- 또한 예수님께서 죄를 얼마나 용납하지 않으시는지 알기 때문이다.
- 이렇게 죄 용서와 죄 용납하지 않으심을 동시에 이해할 때에만 값싼 은혜가 아닌 값진 은혜를 경험할 수 있다.
교회에서도 마찬가지이다.
- 죄 용서 받은 사람들의 모임인 교회는 서로를 용서할 수밖에 없다. 해야만 한다.
- 그렇다고 막 죄를 지어도 되는 모임은 아니다. 교회는 죄를 절대로 용납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죄를 용서하되 용납하지 않는다는 것이 뭐냐?
- 서로를 향해 끊임없이 사과하는 것이다.
- 왜냐하면 자신의 연약함과 한계가 상대방에게 얼마나 큰 상처를 주는지 더욱 더 잘 알게 되기 때문이다.
이렇게 서로 사과할 때에만, 죄 용서와 죄 용납하지 않음이 동시에 이뤄진다.
따라서 하나님께 회개하는 것은 물론이고, 교회 안에서 서로 사과하고 미안해 하자.
결론
어떤 면에서 보면, 하나님께 회개하는 것은 참 쉽다.
- 아무리 회개를 해도, 현실적으로는 아무런 손해가 없기 때문이다.
진짜 어려운 것은 사람에게 사과하는 것이다.
- 사과하면, 책임져야 하고 손해를 감당해야 하기 때문이다.
- 하지만 교회가 교회 됨을 위해 사과는 필수적이다.
그러면 누가 사과할 수 있냐?
- 자신의 한계를 인정하고 예수님을 의지하는 사람만 할 수 있다.
- 자신의 한계를 알아야, 자신의 한계 때문에 주변 사람들이 받을 상처를 알 수 있다.
- 그리고 그 상처를 알아야 사과할 수 있다.
그러면 어떻게 자신의 한계를 알 수 있냐?
- 율법을 통해서이다. 확장하면 성경 전체를 통해서이다.
- 성경을 잘 이해하고, 그 성경 말씀이 옳다는 것을 알아서, 성경 말씀대로 살려고 발버둥쳐 볼 때 자신의 한계를 알 수 있다.
- 성경을 이해하고 깨닫는 것보다 성경을 실제 적용하는 것이 차원이 다르게 어렵다는 것을 알아야, 자신의 한계를 인정하고 예수님을 의지할 수 있다.
- 이론과 실제의 차이를 알지 못하는 이유는 말씀대로 살려고 발버둥쳐보지 않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성경을 실제 삶에서 적용하려고 발버둥치는 사람만 자신의 한계를 인정하고 예수님을 의지할 수 있으며, 그런 사람만이 교회 안에서 사과하여 서로 사랑하는 것이 가능하고, 결국 교회의 교회 됨을 경험하며, 그렇게 한 사람만이 하나님을 향한 참 회개, 참 믿음을 갖게 된다.
그러니 순종하고 믿고, 사과하고 사랑하고, 회개하자.
- 이러한 선순환 과정을 통해 점차 믿음이 견고해지고, 교회가 사랑으로 하나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