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레미야 번외편 - 하나님의 기준과 세상의 기준의 차이
<미양교회 팟캐스트 양따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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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양을 따르는 어린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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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그림은 성경에서 자주 다루는 대결 구도를 보여준다.
① 하나님과 세상에게 모두 인정받는 사람
② 하나님께 거부당하지만, 세상에서 인정받는 사람
③ 하나님께 인정받지만, 세상에서 거부당하는 사람
④ 하나님과 세상에게 모두 거부당하는 사람
대결 구도가 비판하는 핵심
세상에서 인정받는 사람이 하나님께도 인정받고, 세상에서 거부당하는 사람이 하나님께도 거부당할 것이라는 사람의 인식을 비판하는 것이다.
- 바리새인은 세상에서 인정받으니까 하나님도 인정하실 거야.
- 수로보니게 여인은 세상에서 거부당하니까 하나님도 거부하실 거야.
- 안승준은 교단에서 인정받은 목사이니까, 하나님도 인정하실 거야.
- 동성애자는 교단에서 거부하는 사람이니까, 하나님도 거부하실 거야.
- 이렇게 사람의 판단을 하나님의 판단과 같다고 혼동하는 것을 비판하는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판단은 사람의 판단과 결코 같지 않다.
- 사람의 판단이 하나님의 판단과 같다고 생각하는 것은, 하나님에 대한 무지, 사람 자신에 대한 무지, 그리고 무지로 인한 교만으로 비롯된다.
- 이러한 사람의 무지와 교만을 비판하는 것이 대결 구도의 목적이다.
대결 구도 상세 설명
세상은 겉으로 드러나는 성과를 근거로 평가한다.
- 육체적, 정서적, 경제적, 정치적, 영적 성과가 드러날 때, 인정한다.
- 누군가의 건강이 나아졌다든지,
- 누군가가 위로를 얻었다든지,
- 누군가에게 얼마의 비용을 들여서 구제했다든지,
- 누군가에게 정치적 자유가 생겼다든지,
- 누군가가 예수님을 주로 고백했다든지 말이다.
이런 성과 자체는 전혀 나쁜 것이 아니다.
- 치유, 위로, 구제, 자유, 전도가 얼마나 좋은 것이냐.
- 그러나 문제는 이런 성과로 밖에 평가할 수밖에 없는 인간의 한계이다.
- 인간은 겉으로 드러난 성과 외에는 아무것도 볼 수 없기 때문이다.
- 그러나 평가의 기준은 겉으로 드러난 성과 외에도 드러나지 않는 것이 있다.
그래서 하나님은 속에 숨겨진 의도를 근거로 평가한다.
- 긍정적인 성과가 있었던, 부정적인 성과가 있었던, 혹은 아무 성과도 없었든 상관없이,
- 그 동기가 유익을 얻기 위한 거래였는지, 손해(죽음)를 감수한 사랑이었는지만 구별한다.
- 하나님은 숨겨진 동기까지 전부 아실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거래가 동기인 사람은 결국 유익을 얻고 성과를 내서 세상의 인정을 받고,
- 사랑이 동기인 사람은 결국 손해를 얻고 실패해서 세상의 거부를 받는다.
왜 이렇게 되냐?
- 사랑의 동기를 가진 사람은, 손해를 반복하다가 결국 죽는다.
- 물론 아무리 손해를 선택했어도, 우연히 유익을 얻고 성과를 낼 수 있다.
- 그러나 그렇게 얻은 유익은, 이후에 반복되는 손해 선택으로 결국 전부 사라진다.
- 그래서 결국에는 아무 성과 없이 죽는다.
다른 예를 들 필요 없이, 예수님이 그렇다.
- 중간에 제자도 모으는 성과를 내고, 오병이어 기적 때문에 많은 사람들을 모으는 성과도 낸다.
- 그러나 결국 사랑을 위한 손해를 반복하니까, 바리새인의 거부, 사람들의 거부, 제자들의 거부 순서로 모든 것을 잃고 죽는다.
- 마지막 죽음까지도 가치 없고 부정하며 불명예스러웠다.
반면 거래의 동기를 가진 사람은, 결국 유익을 낸다.
- 물론 유익을 얻는 과정 중에 많은 실패와 손해를 겪는다.
- 그러나 유익 동기를 여전히 가진 한, 처음 계획했던 목표 성과를 얻지는 못할지라도,
- 목표를 수정하여 소박한 유익이라도 얻는다.
예를 들어,
- 20대 때는 대기업 회장이 목표였다면,
- 30대 때는 잘나가는 중견 기업 사장,
- 40대 때는 소기업 사장,
- 50대 때는 작은 가게 사장,
- 60대 때는 개인 택시 자격증,
- 70대 때는 돈만 벌 수 있다면,
- 80대 때는 걸어 다닐 수만 있다면,
- 90대 때는 살아있을 수만 있다면,
- 100대 때는 평온하게 죽을 수만 있다면 이 될 것이다.
- 이런 과정 중에 어떻게든 성과를 낼 것이다.
그러니까 사랑의 관계를 선택하며 사는 사람은 세상에서 거부당하며 죽는 것이 숙명이다.
- 세상의 기준으로 모든 것을 잃는 것이다.
- ③의 사람과 같이 세상에서 거부당하지만, 하나님께 인정받는다.
- 만약 그에게 성과가 남아있다면, 그래서 세상에서 인정받았다면,
- 그는 온전히 사랑하지 않은 것이다.
- 여전히 그에게 거래 동기가 남아있다는 증거이다.
반대로 유익을 선택하며 사는 사람은 세상에서 성과를 낸다.
- 성과의 크기는 사람마다 다르다.
- 그러나 그것이 무엇이건, 큰 기업이건, 작은 가게건, 택시 자격증이건, 건강이건, 마지막으로 영광스러운 죽음이건 말이다.
- 사람마다 크기는 다르지만, 세상에서 인정받는다.
- 그래서 ②의 사람과 같이 세상에서 인정받지만, 하나님께 거부당한다.
아무리 자신은 사랑의 동기를 가졌다고 말해도, 그에게 여전히 남아있는 성과가 있다면,
- 그에게 여전히 거래 동기가 남아있는 것이다.
- 그렇다면 그는 지옥이다.
천국과 지옥의 구분
천국과 지옥의 구분도 새롭게 해야 한다.
- 거래의 관점에서 구분하면, 천국은 이익 보는 곳이고, 지옥은 손해 보는 곳이다.
- 그래서 천국에 가면 풍요롭고, 원하는 것을 전부 얻을 수 있으며, 결핍과 궁핍이 전혀 없는 곳이다.
반면에 지옥은 삭막하고, 결핍과 궁핍이 가득하고, 원하는 것을 아무것도 얻을 수 없는 곳이다.
- 그래서 천국은 좋은 곳, 지옥은 나쁜 곳이다.
그러나 이런 구분은 전적으로 반-성경적이다.
관계의 관점에서 구분하면, 천국은 관계만 있는 곳, 지옥은 관계만 없는 곳이다.
- 그래서 천국은 황량한 광야이다.
- 낮에는 타는 듯 덥고, 밤에는 살을 에는 듯 춥고, 먹을 것, 입을 것도 없으며, 쉴 곳도, 잘 곳도 없는 곳이다.
- 오직 사랑의 관계만 있는 곳이다.
- 하나님과 주변 사람과 아무런 간극 없이 사랑하는 곳이다.
- 마치 출애굽한 이스라엘이 40년 동안 생활한 광야 같이 말이다.
반면에 지옥은 마치 서울 압구정이나 청담동과 같다.
- 따뜻하고, 시원하며, 먹을 것, 입을 것이 널려 있고, 안락하고, 풍요로운 곳이다.
- 단, 사랑의 관계만 없는 곳이다.
- 원하는 모든 것을 다 할 수 있지만, 누구와도 사랑하지 않는 곳이다.
- 오직 거래 관계만 있는 곳이다.
- 마치 소돔과 고모라처럼 말이다.
그래서 천국은 세상의 기준으로 볼 때, 불의한 지옥과 같다.
- 세상의 기준에서 가치 없는 곳이다.
- 마치 ③의 사람과 같이 말이다.
하지만 하나님 나라, 즉 천국은 애통하는 자의 것이다.
- 그래서 하나님 나라에는 결핍과 궁핍으로 인한 애통이 넘쳐난다.
- 우리가 상상하는 지옥처럼 말이다.
- 그러나 그 아픔을 서로가 달래주며, 하나님께 공감받는 곳이다.
- 그래서 애통하는 아픔이 오히려 사랑과 기쁨의 도구가 되는 곳이다.
반면에 지옥은 세상의 기준으로 볼 때, 의로운 지옥과 같다.
- 세상의 기준에서 가치 있는 곳이다.
- 마치 ②의 사람과 같이 말이다.
- 바리새인이 부와 명예, 안정과 인정을 모두 누렸듯, 지옥은 풍요로운 곳이다.
- 그래서 바리새인에게 세상은 천국과 같았다.
하지만 더 많은 것을 얻기 위해, 서로가 서로를 거래 대상으로 보고,
- 어떻게 해서든지 서로에게 유익을 뽑아먹고 죽일 생각만 하는 곳이다.
- 그래서 모든 것을 다 가졌지만, 죽임당함의 두려움 때문에 거지처럼 사는 곳이다.
- 그래서 풍요로움이 사랑의 도구가 아니라, 미움과 살해의 동기로 작용하는 곳이다.
만약 천국이 ①과 같이 하나님과 세상 모두에게 인정받는 곳이라면?
- 그래서 하나님의 기준뿐만 아니라, 세상의 기준에서 가치 있는 것이 가득한 곳이라면?
- 그래서 사랑의 관계만이 아니라, 거래 관계를 맺는 사람에게도 매력적인 곳이라면?
- 그래서 거래 관계를 맺는 사람도 바글바글한 곳이라면?
그곳은 결코 천국이 될 수 없다.
- 여전히 사람을 유익을 위한 도구로 삼을 것이고,
- 도구로 전락한 사람은 유익을 전부 뜯어먹힌 후 버려질 것이며,
- 그런 사람은 결국 죽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그 희생자는 모두 사랑의 관계를 맺는 사람이 될 것이다.
- 왜냐하면 그들이 거래 관계를 맺는 사람에게 가장 쉬운 먹잇감이기 때문이다.
- 죽음을 감수하며 자신을 희생하는 사람은 죽을 때까지 희생을 강요받다가 죽임당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천국에는 거래 관계를 맺는 사람이 절대로 오면 안 된다.
- 그렇기 때문에 천국은 거래 관계를 맺는 사람에게 가치 없는 곳이어야 하고,
- 그렇기 때문에 천국은 세상에게 가치 없고, 하나님께만 가치 있는 곳이어야 하며,
- 그렇기 때문에 천국은 세상에게 거부당하고, 하나님께 인정받는 곳이어야 한다.
이를 다시 신앙 생활에 적용하면?
바른 신앙은 역시 하나님께만 인정받고, 세상에게 거부당해야 한다.
- 그래야 신앙이 세상의 관점에서 가치 없어 보이고,
- 그래야 신앙 공동체 안에 거래 관계를 맺는 사람이 오지 않게 되고,
- 오직 사랑의 관계는 맺는 사람만 모일 수 있기 때문이다.
만약 신앙이 하나님과 세상 모두에게 인정받는다면,
- 그래서 거래 관계를 맺는 사람에게 신앙이 가치 있어 보인다면,
- 그래서 신앙 공동체 안에 사랑의 관계를 맺는 사람과 거래 관계를 맺는 사람이 모두 모인다면,
- 이전에 말한 대로, 거래 관계를 맺는 사람이 사랑의 관계를 맺는 사람을 죽을 때까지 이용한 후,
- 다 이용하면 죽여버린다.
- 즉, 신앙 공동체가 사랑의 공동체가 아니라 살육의 공동체로 변질된다.
물론 이 살육을 막는 방법이 있다.
- 공동체 전부에게 수갑을 채워 아무것도 하지 못하게 막는 것이다.
- 중앙집권적으로 철저하게 통제하는 방식이다.
- 먹으라는 것만 먹고, 들으라는 것만 듣고, 가만히 앉아만 있으라는 것이다.
- 이 방법이 대부분의 교회가 하는 예배이다.
그러나 이 역시 크게 다르지 않다.
- 공동체가 서로 죽이지 못하도록, 지배자가 공동체 전체를 미리 죽이는 것이다.
- 서로가 죽이냐, 한 사람이 죽이냐의 차이만 있을 뿐, 모두 죽는 것은 마찬가지이다.
- 아마도 개신교가 전자, 천주교가 후자이지 않을까 한다.
따라서 신앙은 하나님께만 인정받고, 세상에게 거부당해야 한다.
- 세상에서 환영받는 바른 신앙은 없다.
- 세상에서 환영받는 신앙은 불신앙뿐이다.
결론 - 그렇다면 어디로 가길 원하는가?
황량한 천국인가, 풍요로운 지옥인가?
- 관계만 있고 아무것도 없는 천국인가, 모든 것이 다 있지만 관계만 없는 지옥인가?
질문을 바꿔서, 지금 나는 어떤 선택을 하고 있는가?
- 모든 것을 포기하고 관계만을 위해 선택하는가?
- 아니면 관계를 희생해서 풍요를 얻기 위해 선택하는가?
만약 지금 풍요를 선택하는 사람은, 하나님이 떠밀지 않아도, 자발적으로 지옥에 갈 것이다.
- 그에게는 그곳이 천국이기 때문이다.
- 치열한 경쟁과 살인을 통해 모든 것을 얻을 수 있는 곳이기 때문이다.
- 그는 아마도 지옥에서 천국에 있는 것과 같이 만족스럽게 살 것이다.
- 세상의 인정과 안정, 성과, 부, 명예 등이 그가 정말로 바라는 것이 그곳에 있기 때문이다.
- 마음 속에는 언제나 죽임당함의 두려움과 결핍의 고통에 몸부림치면서 말이다.
그러나 만약 지금 사랑의 관계를 선택하는 사람은, 하나님이 끌어당기지 않아도, 자발적으로 천국에 갈 것이다.
- 그곳이 아무리 지옥 같아 보일지라도 말이다.
- 배고프고, 춥고, 덥고, 머리 둘 곳 없지만, 죽음을 감수하고서라도 사랑하고 싶은 사람과 하나님이 있기 때문이다.
- 그는 어떤 풍요도 채울 수 없는, 오직 사랑으로만 채울 수 있는 결핍이 있다는 것을 알고,
- 천국만이 인간의 근원적인 결핍을 채울 수 있는 유일한 곳이라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 배고픔과 춥고 더움이라는 육체적 불편함이 항상 있지만, 마음은 풍요로울 수 있기 때문이다.
- 풍요로운 마음이 육체적 불편함을 넉넉하게 이기기 때문이다.
과연 지금 우리는 어떤 선택을 하고 있는가?
- 육체적 불편함을 감수한 사랑의 관계인가?
- 아니면 사랑의 관계를 희생한 풍요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