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레미야(14) 7:16-29 제사 고기는 다 너희들이나 먹어라! - 우상숭배의 신앙화
<미양교회 팟캐스트 양따양>
미양교회에서 했던 설교를 바탕으로 진솔하게 신앙 경험을 이야기합니다.
팟캐스트도 많이 들어주세요.
https://www.podbbang.com/channels/1790233/
어린양을 따르는 어린양
예배 대신 예수님, 설교 대신 성경, 건물 대신 사람을 중심으로 하는 미양교회가 만드는 방송입니다.토끼와 개구리가 진솔하게 신앙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어린양과 같이 십자가에 죽고 부활하
www.podbbang.com
지난 본문에서 성전 제사를 비판한 이유는 일상 생활에서 범한 죄 때문이었다.
[렘 7:9] 너희는 모두 도둑질을 하고, 사람을 죽이고, 음행을 하고, 거짓으로 맹세를 하고, 바알에게 분향을 하고, 너희가 알지 못하는 다른 신들을 섬긴다.
- 게다가 죄 의식을 털고 더 마음 편하게 죄 짓기 위해 제사를 이용하기까지 했다.
[렘 7:10] 너희는 이처럼 내가 미워하는 일만 저지르고서도, 내 이름으로 불리는 이 성전으로 들어와서, 내 앞에 서서 ‘우리는 안전하다’ 하고 말한다. 너희는 그런 역겨운 모든 일들을 또 되풀이하고 싶어서 그렇게 말한다.
따라서 일상 생활에서의 죄를 막기는커녕 조장하기까지 하는 성전 제사는 파괴되기에 마땅하다.
그런데 이번 본문의 포인트는 제사 의식 그 자체이다.
[렘 7:21] 나 만군의 주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말한다. 내가 너희에게 받고 싶은 것은 제사가 아니다. 너희가 번제는 다 태워 내게 바치고 다른 제물은 너희가 먹는다고 하지만, 내가 허락할 터이니, 번제든 무슨 제사든 고기는 다 너희들이나 먹어라.
- 이는 하나님께서 고기 많이 먹고 튼튼해지라는 것이 아니다.
- 제사 의식을 바베큐 파티에 비하하시며, 제사 의식의 변질을 고발하신다.
왜냐하면 우상 숭배가 제사로 변장하였기 때문이다.
[렘 7:17~18] 너는 지금 그들이 유다의 성읍들과 예루살렘의 모든 거리에서 하는 일들을 보고 있지 않느냐? (18) 자식들은 땔감을 줍고, 아버지들은 불을 피우고, 어머니들은 하늘 여신에게 줄 빵을 만들려고 가루로 반죽을 하고 있다. 또 그들은 나의 노를 격동시키려고, 다른 신들에게 술을 부어 바친다.
- 여기서 '하늘 여신'을 특정할 수 있는 단서는 없다.
- 그러나 출토품과 당시 문헌을 통해 유추해볼 때, 이스라엘에 널리 퍼져서 숭배되었던 여신 '아세라'로 추정된다.
그런데 문제는 사람들이 여신 숭배와 하나님 숭배를 구분하지 못했다.
- 그래서 '우상숭배의 신앙화'가 일어났다.
- 우상숭배를 하면서도 하나님께 제사 드린다고 믿었다.
- 여신 숭배가 우상숭배라는 것을 몰랐다.
- 하나님과 하늘 여신을 동일시했다.
어떻게 그런 일이 일어나냐면,
- 하나님은 남성이기에, 잉태, 출산, 번성, 풍요를 위해서는 여성 신이 있어야 한다는 상식에서 출발한다.
- 그런데 가나안 토착 우상 혹은 앗수르나 이집트 우상으로 보이는 아세라 여신이 있었다.
- '신'의 배우자로 알려진 신이었다.
'여성 신'이 필요했던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그 여신을 신앙 안으로 받아들였다.
- 그리고 그 여신을 하나님의 배우자로서 하나님과 함께 섬길 대상으로 여겼다.
- 그래서 여신을 통해 자녀의 출생, 가축의 번식, 곡식의 발아와 결실을 기대했다.
- 그 분야는 여신의 영역이라는 '상식적 판단' 때문이다.
그로 인해 여신 숭배는 하나님 제사의 일부로 자리 잡았다.
- 우상숭배의 신앙화가 일어났다.
만약 하늘 여신 숭배가 하나님을 배척하는 우상 숭배라는 인식이 있었다면, 자정 작용이 일어났을 것이다.
- 완전히 사라지지는 않아도, 주류에서 벗어나 소수의 이상한 집단으로 치부되었을 것이다.
- 그래서 하나님 신앙에는 아무런 영향을 주지 못했을 것이다.
- 마치 어떤 사회에도 일부의 사이비 광신도 집단이 존재하는 것처럼 말이다.
- 그럼에도 그 집단의 존재가 사회 전체에 악영향을 주지 않는 것처럼 말이다.
왜 그러냐면, 그 집단에 사이비라는 낙인이 찍히기 때문이다.
- 그 낙인으로 인해 사회 전체로 퍼지는 것이 자연스럽게 막힌다.
- 대부분이 사이비를 경계하고 배척한다.
따라서 사이비 광신도 집단은 사회 문제가 아니다.
진짜 문제는 여신 숭배가 하나님 숭배와 동일시되는 순간 시작된다.
- 그래서 하나님 신앙에 우상이 침투했다는 것을 아무도 의식하지 못할 때이다.
- 그래서 우상 숭배를 하면서도 우상 숭배를 하고 있다고 아무도 의식하지 못할 때이다.
- 이렇게 우상숭배가 신앙화 된다.
그래야만 죄책감 없이, 과감하고, 담대하게 우상 숭배를 할 수 있고,
- 그래야만 우상숭배가 사회 전체로 확산될 수 있기 때문이다.
- 그럴 때만 우상숭배가 사회에 악영향을 줄 수 있다.
'암'이라는 질병이 무서운 이유도 이와 같다.
- 면역 체계가 암 세포를 문제로 인식하면,
- 암 세포가 아무리 강해도, 면역 체계가 자체적으로 암 세포를 억제할 수 있다.
그런데 문제는 면역 체계가 암 세포를 문제로 인식하지 못한다는 점이다.
- 그래서 불필요하게 세포 분열하도록 놔둬서 몸을 상하게 하고,
- 게다가 암 세포가 다른 곳으로 쉽게 전이되어,
- 결국 몸 전체를 망가뜨린다.
그래서 아무리 작은 암 세포라도 몸 전체를 망가뜨리는 것은 시간 문제다.
- 암 세포와 정상 세포를 구분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상숭배 문제는 우상숭배 자체에 있지 않다.
- 문제가 문제로 인식되는 순간 더 이상 문제가 아니다.
- 몸이든 사회든 자체 방어 시스템이 억제한다.
- 진짜 문제는 문제가 문제로 인식되지 못하는 것이다.
- 우상숭배가 걸러지지 않고, 신앙에 침투되는 것이 문제이다.
- 신앙에 침투되는데도, 침투된 지 모를 때 문제가 된다.
- 그래서 우상숭배의 신앙화가 될 때이다.
어떻게 문제를 일으키냐면,
- 신앙과 우상이 갖는 본질적인 차이 때문이다.
- 신앙은 인생 전체가 영원불변하게 개선되는 것에 목적을 둔다.
- 그래서 근원적인 변화를 일으킨다는 장점이 있지만,
- 즉각적인 변화를 보기 어렵다는 단점이 있다.
- 반면에 우상은 지금 당장 문제를 해결하는 데 목적을 둔다.
- 그래서 즉각적인 변화를 일으킨다는 장점이 있지만,
- 일시적이며, 이후에는 더 큰 문제가 생기는 단점이 있다.
그 결과 사람은 신앙보다 우상에 더 매력을 느낀다.
- 왜냐하면 모든 사람은 즉각적인 변화에 민감하게 반응하기 때문이다.
- 그래서 신앙과 우상이 공존하면, 결국 우상이 주도권을 갖게 된다.
그래서 중요한 것이, 신앙과 우상을 구분하는 것이다.
- 단순히 둘 중에 뭐가 더 매력적이고, 뭐가 더 유용한가를 따지면,
- 언제나 신앙은 배제되고 우상이 선택된다.
- 그렇기 때문에 표면적인 매력이 아닌, 근원적이고 장기적인 가치를 강조해야 한다.
거래와 관계도 마찬가지이다.
- 겉으로 보기에, 관계보다 거래가 더 매력적이다.
- 즉각적으로 반응하고, 당장 이익을 주기 때문이다.
- 하지만 거래는 결국 사람을 파괴한다.
- 남들에게 거래 잘 되는 사람으로 변해감에 따라 본래 자기 모습을 잃어버린다.
게다가 거래가 사악한 또 다른 이유는,
- 이렇게 거래를 위해 거래가 잘 되는 사람, 즉 사람들이 좋아하는 사람으로 변화되어서,
- 결국 자기 본래 모습을 잃어버린 사람은 정작 거래 시장에서조차 가치가 없다.
- 시장은 많은 사람이 좋아하는 동시에 자신만의 고유한 매력을 가진 사람에게 가치를 두기 때문이다.
반면에 관계는 즉각적인 변화가 없다.
- 당장 사랑해야지 마음먹는다고, 없던 사랑이 생기는 것도 아니고,
- 사랑하는 마음이 있다고 해도, 그 마음을 전달하는 데 오랜 시간이 걸리며,
- 오랜 시간이 걸려서 마음을 전달했다고 해도, 사랑으로 되돌아온다는 보장이 없으며,
- 사랑으로 되돌아온다고 해도, 그것을 사랑으로 받아들이기까지 또 시간이 걸린다.
- 사람 사이의 의사소통이기 때문에 잡음이 낄 수 밖에 없다.
하지만 만약 서로의 사랑이 확인되기만 하면,
- 그래서 내가 사랑받기 충분한 사람이라는 것을 알게 되면,
- 그래서 내가 가치 있는 사람이 되기 위해 나 자신을 버릴 필요가 없다는 것을 알게 되면,
- 그래서 자신의 장점뿐만 아니라 단점까지 포용하고 사랑할 수 있게 되면,
- 시장에서 도태됨을 감수하고 있는 그대로의 나 될 수 있고,
- 그렇게 자신 고유의 매력을 찾으면, 오히려 장기적으로 시장에서의 거래 가치도 올라갈 가능성이 생긴다.
그렇기 때문에 단기적인 매력이 있는 거래보다 장기적인 유익을 주는 관계를 선택해야 한다.
- 거래는 시장에서도, 천국에서도 버려진다.
- 사랑의 관계만이 천국에서 선택될 뿐만 아니라, 시장에서 선택될 가능성도 있다.
다시 우상 문제로 돌아와, 우상숭배가 신앙화 되어,
- 신앙이 우상숭배로 변질되고,
- 신앙이 근원적인 문제 해결이 아닌, 일시적인 문제 해결로 변질되면,
- 일시적이고 자극적인 매력 때문에 폭발적인 성장이 일어난다.
- 하지만 폭발적인 성장은 기독교 전체의 파괴를 가속화하고,
- 결국 본질을 잃고 껍데기만 남게 만든다.
이러한 현상은 우리가 지금 눈 앞에서 보고 있기 때문에 논증이 필요 없을 정도로 자명하다.
이 동일한 문제를 2500년 전 이스라엘이 먼저 겪었다.
- 우상숭배가 정통 신앙으로 둔갑했고,
- 삽시간에 온 나라가 우상숭배에 빠졌다.
- 그러면서도 아무런 죄의식이 없었다.
- 아무도 그것이 나쁜 것이라고 말하는 사람이 없으니까.
- 모두가 똑같이 우상숭배 하고 있으니까.
극소수의 사람들이 우상숭배가 나쁘다고 외쳤다.
- 예레미야 같은 예언자들 말이다.
- 그러나 무시당했다.
- 우리가 극소수의 사이비 광신도를 무시하듯, 사람들은 예언자를 무시했다.
- 왜냐하면 실제로 그들의 귀에는 예언자의 말이 사이비 광신도의 말처럼 들렸으니까.
- 우상숭배를 성전이 인정하는데, 일개 예언자의 말이 어떻게 귀에 들어오겠는가.
- 우상숭배를 하면 즉각적인 유익을 얻을 수 있는데, 그 유혹을 어떻게 뿌리치겠는가.
여러 번 말했지만, 우상숭배가 나쁜 이유는 단지 하나님을 모독하기 때문이 아니다.
- 우상숭배 자체가 사람을 파괴하기 때문이다.
[렘 7:19] 그러나 그들이 그렇게 함으로 나를 격노하게 하는 것으로 그치느냐? 그렇지 않다. 오히려 그들 스스로가 낯뜨거운 수치를 당하는 것이 아니냐? 나 주의 말이다.
- 단순히 하나님을 화나게 하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자기 자신에게 해악을 준다.
간단하게 말하면,
- 돈이 욕구 성취 수단임과 동시에 욕구 숨김 수단인 것처럼,
- 우상숭배도 동일한 역할을 한다.
-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우상숭배를 하는데,
- 그 욕구가 너무 저질이고 천박할 때,
- 그 천박함을 숨기고 싶을 때, 우상숭배의 거룩한 의식으로 포장한다.
- 그래서 욕구가 천박하면 천박할수록 의식은 거룩해지고 화려해지는 것이다.
- 마치 중세 시대 예배가 그랬듯, 그리고 현대의 예배가 그렇듯 말이다.
일반적으로 천박한 욕구는 사회 안에서 자정작용이 일어난다.
- 천박한 욕구를 드러내 성취해서 얻는 유익보다 천박함이 드러나서 얻는 손해가 더 크기 때문에,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천박한 욕구를 감춘다.
- 일부 극소수의 사람을 제외하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천박한 욕구가 억제되면 사라진다.
- 이룰 수 없다는 것을 알기에 처음부터 마음을 갖지 않는다.
- 천박한 욕구는 이뤄봤자 별것 없을 거야. 라고 생각하며 단념한다.
- 마치 신포도 비유처럼 말이다.
- 신포도 비유는 부정적인 의미이지만, 이런 경우 긍정적인 작용을 한다.
하지만 우상숭배는 그 자정작용을 방해한다.
- 우상숭배는 천박해서 드러낼 수조차 없는 욕구가 성취될 수 있다는 소망을 갖게 한다.
- 그래서 자신의 천박함을 드러내지 않고도 천박한 욕구를 성취할 수 있다는 기대를 갖게 한다.
- 왜냐하면 천박한 욕구가 거룩한 의식으로 포장되기 때문이다.
이러한 사회는 결국 누가 더 천박해질 수 있는지 경쟁하는 시합이 된다.
- 그래서 순식간에 사회 전체가 천박해진다.
그러면서도 자신들이 천박한지 모른다.
- 배부른 돼지처럼, 풍요 외에는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으면서 말이다.
- 그러면서 오히려 사랑을 선택하는 대신 풍요를 잃은 사람들을 천박하다고 치부한다.
- 왜냐하면 거룩함과 천박함을 나누는 기준이 풍요이기 때문이다.
- 그래서 바리새인이 예수님을 부정하고 천박하다고 비판한 것이다.
- 풍요를 기준으로 예수님은 가진 것이 없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중요한 것은 숭배의 대상이 누구냐이다.
- 만약 숭배의 대상이 풍요의 신이라면, 그 사회의 사람들은 풍요의 욕구를 절제하지 못한다.
- 서로가 더 풍요로워지기 위해 경쟁한다.
- 왜냐하면 풍요의 욕구가 가진 천박함은 숭배 의식으로 감춰지기 때문이다.
- 그래서 사회 전체가 천박해지고, 그 천박함으로 인해 사회는 파괴된다.
- 이것이 우상숭배가 가진 치명적인 문제이다.
반면 숭배의 대상이 관계의 신이라면, 그 사회의 사람들은 서로 사랑하는 욕구를 절제하지 못한다.
- 서로를 사랑하기 위해 경쟁한다.
- 그래서 사회는 더욱 유기적으로 연결된다.
그런데 풍요를 추구하는 사회와 관계를 추구하는 사회에 근본적인 차이가 있다.
- 풍요를 추구하는 사회에서는 더 풍요로워지기 위해 노력하는데,
- 농업의 예를 들면, 자기 밭에서 더 많은 작물을 생산하기 위한 노력에는 한계가 있다.
- 제한된 땅에서 아무리 최첨단 농법으로 작물을 키운다고 해도, 2배, 3배, 5배 그 이상은 어렵다.
- 그래서 땅을 늘려야 하는데, 그것을 위해 다른 사람 땅을 빼앗아야 한다.
- 그렇게 땅을 얻은 사람은 더 큰 생산량을 갖고, 더 많은 돈으로 더 많은 땅을 얻는다.
- 반면에 적은 땅을 가진 사람은 적은 생산량을 갖고, 결국 가진 땅까지 빼앗긴다.
- 그러면 결국 빈부격차가 생기고, 사회 균열이 일어나, 사회 유지가 어렵다.
- 지금 우리가 겪고 있는 자본주의로 인한 문제가 바로 이것이다.
- 풍요의 욕구가 가진 천박함이 사회 전체를 물들인다.
반면에 관계를 추구하는 사회에는 사랑하기 위해 노력한다.
- 가진 사람은 덜 가진 사람을 돕고,
- 덜 가진 사람은 가진 사람에게 고마워하여,
- 빈부격차는 줄고, 관계는 깊어지며, 사회는 통합된다.
- 서로가 필요해지니, 각자의 존재에 의미가 생기고, 참된 '나'가 될 수 있으며, 서로를 존중하게 된다.
- 그러니 아무도 희생되지 않고 본래 자신의 모습을 되찾으면서도, 서로 연결되어 하나 된다.
- 완전히 세 분이며 동시에 한 분이신 삼위일체 하나님처럼 말이다.
이러한 차이가 어떤 대상을 숭배하느냐에 따라 결정된다.
이스라엘의 우상숭배는 단순히 종교적인 문제가 아니다.
- 정치, 경제, 사회, 외교적인 문제이다.
- 풍요를 추구하면, 정치에서는 독재가, 경제에서는 빈부격차가, 사회에서는 균열과 해체가, 외교에서는 외세 의지가 일어난다.
- 히틀러가 파시즘으로 정권을 잡고 600만 유대인을 학살한 것도 풍요에 대한 독일 전 국민의 욕망에서 시작되었다.
- 그런 다양한 문제가 얽혀서 이스라엘은 멸망당한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은 제사를 부정하신 것이다.
- 제사가 제 기능을 하지 못하는 것을 넘어, 우상숭배의 장이 되었기 때문이다.
- 그로 인해 천박한 풍요의 욕망이 만연해지는 것뿐만 아니라, 제사가 그 천박함을 부추기기 때문이다.
- 그 결과 서로 사랑해야 할 이스라엘이 서로 경쟁하고 대립하며 갈라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하나님은 제사를 부정하시며 순종을 요구하신다.
[렘 7:23] 오직 내가 명한 것은 나에게 순종하라는 것, 그러면 내가 그들의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나의 백성이 될 것이라는 것, 내가 그들에게 명하는 그 길로만 걸어가면, 그들이 잘 될 것이라고 한 것뿐이지 않았더냐?
- 제사는 필요 없고, 순종만 중요하기 때문이 아니다.
- 제사의 본질은 순종이고, 순종의 표현 방법 중 하나가 제사인데,
- 제사가 제 기능을 잃었기 때문에, 본질인 순종부터 다시 시작하라는 뜻이다.
- 순종을 회복한 후에 바른 제사를 드리라는 뜻이다.
그렇다면 순종이 뭐냐?
이 시점에서 누구도 제사 잘 드리는 것이 순종이라고 말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 결국 순종은 관계이다.
- '내가 그들의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나의 백성이 되는 것'이다.
이는 단순히 하나님 말 잘 듣는 '착한 어린이'가 되는 것이 아니다.
- 풍요의 욕망에서 벗어나 관계의 욕구를 갖는 것이다.
- 그리고 관계의 욕구로 하나님과 사람, 세상을 바라보는 것이다.
풍요의 욕망에서 하나님을 보면, 하나님 자리에 풍요의 여신 아세라가 대신한다.
- 그러면 필연적으로 우상숭배를 할 수밖에 없고,
- 빈부격차가 생길 수밖에 없으며,
- 관계는 끊어지고, 사랑은 메마르며, 사회는 파괴된다.
하나님은 이러한 현실로부터 돌이키라고 말씀하시는 것이다.
- 그리고 관계의 욕구로 관점을 바꾸라는 것이다.
그것이 본문에서 말하는 순종이다.
그렇게 순종을 할 때만,
- 우리의 눈에 관계의 신 하나님이 들어올 것이고,
- 하나님이 주시는 사랑을 깨달아, 하나님과 사람을 더욱 사랑할 것이며,
- 끊어진 관계는 회복되고, 사랑이 풍성해지며, 사회는 하나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으면 하나님의 진노를 피할 수 없다.
[렘 7:20] 그러므로 나 주 하나님이 말한다. 나의 무서운 분노가 바로 이 땅으로 쏟아져서, 사람과 짐승과 들의 나무와 땅의 열매 위로 쏟아져서, 꺼지지 않고 탈 것이다.
[렘 7:29] 예루살렘아, 너는 긴 머리채를 잘라서 던지고, 메마른 언덕 위에 올라가서 슬피 울어라. 주님께서는 이 세대를 보시고 진노하셔서, 이 세대를 물리쳐 버리셨다.
-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모든 것을 태워버리실 것이라고 하셨고,
- 그로 인해 예루살렘은 슬피 울며, 버림받을 것이라고 하셨다.
- 이 재앙은 하나님이 주시는 것이지만, 동시에 이스라엘 자신이 자처한 것이다.
- 풍요의 욕망이 일으킨 결말이다.
결론 - 우리 삶의 우상은?
나는 감히 말하고 싶다.
- 이스라엘이 하나님 제사 의식에서 하늘 여신을 숭배한 것처럼, 많은 교회가 예배에서 우상을 숭배하고 있다고 말이다.
특별히 대부분 교회가 숭배하는 우상은, '예배', '설교', '건물'이다
- 그래서 미양 교회 모토가, '예배 대신 예수님, 설교 대신 성경, 건물 대신 사람'이다.
- 우상숭배의 신앙화를 경계하고, 바른 신앙을 갖자는 뜻이다.
그렇다면 왜 예배, 설교, 건물이 우상이냐?
- 예배는 풍요의 욕망을 조장한다.
- 그래서 예배 때마다 하나님의 은혜를 구하도록 한다.
- 설교는 풍요의 욕망을 주입한다.
- 그래서 설교 때마다 하나님은 더 많은 은혜를 주실 것이라고 가르친다.
- 건물은 풍요로움을 보여준다.
- 이미 큰 건물을 가진 교회는 하나님이 풍요로움을 주셨다고 자랑하며,
- 아직 작은 건물에 있는 교회는 앞으로 풍요로움이 생길 것이라고 자랑한다.
그러한 풍요의 욕망이 거룩한 예배, 긴 설교, 화려한 건물에 숨겨져 있다.
따라서 풍요에 대한 숭배 자체가 우상숭배의 본질이다.
- 풍요가 먼저나, 우상이 먼저냐는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와 같은 문제이다.
- 풍요의 욕망이 우상을 소환하고, 우상은 풍요의 욕망을 조장한다.
- 그리고 우상과 풍요의 욕망은 인류 전체를 파괴한다.
그러면 어떻게 살아야 할까?
- 돈 벌지 말고, 있는 돈 다 나눠주고, 굶어 죽으라는 말이냐?
- 돈 벌되, 최소한으로 벌라는 것이다.
- 그리고 나머지 힘을 사랑하는 데 쓰라는 것이다.
그럼 최소한이 얼마냐?
- 사람마다 다른 것이다.
- 그러나 분명한 것은 지금이 최소한은 아니라는 점이다.
- 지금부터 돈 버는 데 쓰는 힘을 점차 줄이고,
- 사랑하는 데 쓰는 힘을 늘리라는 것이다.
돈으로 사랑하면 안 되냐?
- 안 된다.
- 이는 거래 사고 방식에서 나온 생각이다.
- 거래 사고 방식으로는 사랑할 수 없다.
- 물론 사랑하면 돈을 쓸 수 있다.
- 그러나 정말 사랑은 돈 없이도 전할 수 있다.
그럼 갑자기 큰 병이 걸리는 등 목돈이 필요하거나, 노후 대비는 어떻게 하냐?
[마 6:33] 너희는 먼저 하나님의 나라와 하나님의 의를 구하여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여 주실 것이다.
- 하나님을 믿자.
- 하나님이 채워주실 것이다.
게다가 어려움에 처하면, 사랑을 나눴던 사람들이 가만히 있겠는가.
- 돈보다 사람에게 투자하는 것이 더 확실한 노후 대비가 될 것이다.
- 돈은 변하지만, 사랑했던 사람은 안 변하니까.
만약 안 채워주시면,
- 평안히 죽어서, 천국에서 더 평안하게 살게 될 것이다.
그러니 풍요의 신 대신에 관계의 신 하나님 믿자.